넓고 따뜻한 이재의 손이 슬비의 귀를 완전히 감싸서 외부 소리를 막았다.슬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이재가 슬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에는 아직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슬비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는 금세 부드러워졌다.“여보, 내 말을 잘 들어.”손가락 사이로 이재의 목소리가 조금 먹먹하게 들려왔다.“알맹이도 없는 놈 헛소리는 듣지 마.”이재는 ‘알맹이도 없는’이라는 부분을 유난히 또렷하게 말했다.지혁은 그 의미를 알아듣고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어깨를 계속 들썩거렸다.하빈의 얼굴이 금세 시퍼렇게 굳어졌다. 두 주먹을 꽉 쥐면서 곧바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빈아.”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화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하빈의 움직임은 그대로 멈췄다.하빈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이재를 죽일 듯 노려본 뒤, 분을 삭이지 못한 얼굴로 결국 하석구의 뒤로 물러났다.주인이 목줄을 잡아당긴 사나운 개와도 같았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도 더 이상 앞으로 달려들지는 못했다.하석구가 손을 들어 이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눈매는 다정하게 휘어 있었고 미소도 온화했다.“이재야, 좋은 날인데 형이랑 싸우지 마.”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석구가 만진 어깨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눈썹을 살짝 세우면서 손으로 천천히 털어냈다. 마치 더러운 거라도 묻은 것처럼.하석구는 그 모습을 보고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시선이 곁에 선 슬비에게 향했다.“이 아이가 네 신부구나? 보기 좋네. 네가 꽁꽁 숨긴 이유를 알겠어. 삼촌한테 청첩장 한 장 안 보내더니.”이재가 담담하게 말했다. “삼촌은 괜한 말씀을 하시네요. 애초에 초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돌려 말할 생각도 아예 없다는 듯한 대답이었다.곁에서 듣던 지혁은 괜히 두피가 당기는 기분이 들면서 등을 곧게 세웠다.그런데도 하석구는 화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재야, 그게 무슨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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