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161 - Chapter 170

198 Chapters

제161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이재가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서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오늘은 회사 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안 돼요. 오늘 권도혁 가수... 녹화가 있어요.”“지혁이한테 가서 보라고 할게. 걔 말을 안 듣는 일은 없을 거야.”슬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권지혁 대표요? 괜찮겠어요?”“스타엔터 전 대표인데, 그 정도도 안 될 리가 없지.”‘그래, 안 될 리가 없겠지.’이재는 마지막 단추까지 채운 뒤 돌아서서 슬비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게다가 그 상태로 회사에 갈 수 있겠어?”자신의 몸에 남은 흔적을 내려다보던 슬비는 두 다리까지 훑어보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알았어요.”...이재가 침실에서 나오자 도우가 복도에 서 있었다.“회장님, 아침 식사 준비됐습니다.”이재는 짧게 대답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 시켜서 멍에 바르는 연고 좀 사 와. 효과 좋은 걸로.”도우가 잠깐 멈칫했다. “누가 다치셨습니까?”이재가 곁눈질로 도우를 바라봤다.담담한 눈빛이었지만 도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슬비는 한참 동안 침실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발바닥이 카펫에 닿자 발등에 퍼진 시퍼런 멍에서 둔한 통증이 올라왔다. 급히 협탁을 짚고 몸을 세운 슬비는 절뚝거리며 욕실로 향했다.거울 속 모습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쇄골 아래로 붉은 흔적이 빼곡했다.슬비는 발까지 내려다봤다. 발등의 멍은 더 심했다. 피부 밑으로 번진 피멍이 하얀 피부 위에 군데군데 퍼져 있었다.슬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젯밤 장면을 떠올리자 귓불이 다시 뜨거워졌다.수도꼭지를 틀어서 찬물을 한 움큼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턱을 타고 떨어졌지만 달아오른 뺨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한참을 꾸물거린 뒤에야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앞의 테이블에는 멍 연고 몇 개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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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아파?”슬비는 얼굴을 붉힌 채 급히 고개를 저었다.이재도 같은 장면을 떠올린 듯 눈빛이 짙어졌다. 목젖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손바닥의 열도 한층 뜨거워졌다.아무 말도 없이 다시 시선을 내리고 약을 발랐다.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연고를 묻힌 뒤 피부 위를 천천히 훑었다. 힘은 고르고 부드러웠다. 발등에서 발목으로, 발목에서 발바닥으로 옮겨 가며 멍이 든 곳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슬비는 고개를 숙여 이재를 바라봤다.호강시에서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남자가 지금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발에 약을 발라 주고 있었다.이유도 모르게 마음 한쪽이 말랑해졌다.“어제 일부러 당신을 속여서 오라고 한 건 아니에요.”“응. 알아.” 이재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계속 약을 발랐다.이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 슬비는 아예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자신을 보게 했다. “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요.”억지로 고개를 든 이재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세상 다정한 얼굴이었다. “응, 말해.”“어제 정인 아가씨가 운서원에 왔어요. 내가 신분을 바꿔서 대신 결혼한 것도 알아버렸고요...”“그래서?”슬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흘 안에 당신한테서 스스로 떠나래요. 안 그러면 이 일을 다 터뜨려서 내 평판도 끝내고 원씨 집안도 망하게 만들겠다고 했어요.”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지로 슬비의 발목을 가볍게 쓸었다.“그래서 어젯밤에 나한테 오라고 한 거야?”슬비는 찔린 듯 시선을 내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신도 안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나한테 따지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따져?”이재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가슴을 울리면서 남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끝까지 미세하게 떨렸다.“내가 정말 너한테 따질 생각이었으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슬비가 눈을 깜빡였다. “그럼... 나한테 뭐라고 안 할 거예요?”이재는 대답 대신 슬비의 손을 떼어 내고 다시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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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이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다가와서 슬비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이제 괜찮아.”머리가 흐트러진 슬비가 급히 그의 손을 쳐 냈다. “됐어요. 빨리 가요.”이재는 조용히 웃으면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검은 세단이 운서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서야 슬비는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그때 식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발신자는 혜림이었다.“여보세요?”[지민 씨! 빨리 실시간 화제어 확인해 보세요!]혜림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터져 나와서 슬비는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뗐다.“무슨 일이에요?”[지민 씨랑 권도혁 가수 열애설이 떴어요! 여자 친구 아니냐는 말이 퍼지고 있어요. 빨리 확인해 보세요!]‘나랑 권도혁이?’‘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슬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SNS 앱을 열었다.실시간 화제어 맨 위에는 붉은 표시와 함께 제목 하나가 걸려 있었다.[#권도혁_열애설#]게시물을 올린 건 유명 연예 매체 계정이었다. 글에는 ‘‘슈퍼 보이스’ 백스테이지 단독! 권도혁, 의문의 여성과 다정한 모습... 열애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함께 올라온 건 짧은 영상 몇 개였다. 전날 방송된 ‘슈퍼 보이스’ 1회 장면을 잘라 낸 것이었다.영상 속 도혁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슬비가 물을 건넸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몇 마디를 나눴고, 도혁이 웃자 슬비가 가까이 다가가서 귓가에 무언가 말했다.그 짧은 장면 하나가 방송에 잡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캡처하고 확대하고 느리게 돌려 보며 온갖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슬비가 아래로 내려 댓글을 확인하자 상단은 이미 도혁 팬들의 글로 가득했다.[??? 저 여자 누구야? 왜 우리 오빠한테 저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진정해. 스태프나 매니저일 수도 있잖아...][매니저도 안 돼! 오빠한테서 떨어져!][나만 저 언니 예쁘다고 생각해? 옆모습 미쳤는데...][위에 너 누구 편이야?!][...]몇 개 더 읽던 슬비는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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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같은 시각, 하씨 본가.이재와 도우는 앞뒤로 긴 복도를 지나 응접실로 향했다.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이재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울음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오히려 더 크게 이어졌다.응접실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민혜숙은 짙은 청록색 실크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상석에 앉아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정갈하게 빗어 올린 상태였다.그 옆에는 주예원과 정인이 민혜숙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큰며느리 강자은은 옆 소파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화장은 이미 번졌고 눈가도 엉망이라 처량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이재가 들어오자 방 안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다.“왔니? 앉아.” 민혜숙의 굳은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이재는 옆쪽 1인용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았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강자은은 다시 울음을 키웠다. “할머니, 하빈이 좀 살려주세요. 아직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경찰이 밖을 지키고 있어서 저도 못 들어가게 해요. 하빈이...”민혜숙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만 울어. 운다고 해결되니?”강자은은 훌쩍거리며 겨우 울음을 줄였다.민혜숙은 이재를 바라보면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네 형 일은 들었지?”이재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 손가락 사이로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굴렸다. “들었습니다.”“네 형이 칼에 찔려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 고작 들었다는 말이 다야?”이재가 눈을 들어 민혜숙을 바라봤다.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길 바라십니까?”민혜숙은 말문이 막힌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아무리 버릇없게 굴어도 가장 아끼는 손자였다. 민혜숙은 결국 또 참았다.한참 침묵하던 민혜숙이 입을 열었다. “그 망할 놈이 여자애들을 불법 감금하고 괴롭힌 데다 몇 명은 크게 다치게까지 했다더구나.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야.”한바탕 욕을 쏟아 낸 뒤 민혜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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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한참 뒤에야 강자은은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도련님이랑 우리 그이는 친형제잖아요! 지난번 도련님도 우리 그이의 손바닥을 꿰뚫어 놓고도 우리 그이는 도련님한테 따지지도 않았는데, 도련님은 어떻게...”“따지라고 하세요.”이재는 손가락에 끼워 둔 담배를 다시 입에 물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강자은의 안색이 완전히 창백해졌다.민혜숙이 눈을 들어 이재를 바라봤다.“이재야... 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네 형을 미워하는 거니?”응접실이 숨소리조차 크게 느껴질 만큼 고요해졌다.이재의 손끝이 흠칫하며 멈추더니 입가에 머물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한동안 같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지만, 손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제가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민혜숙은 입술을 떼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길게 한숨을 내쉰 뒤 손을 내저었다. “됐다. 나 피곤하다. 정인 에미, 올라가자.”주예원은 바로 일어나 민혜숙의 팔을 받치고 천천히 계단 쪽으로 부축했다.강자은은 이를 악문 채 이재를 노려보다가, 가방을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응접실에는 이재와 정인만 남았다. 이재는 소파에 기대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끝내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은 채, 한참 동안 손끝에서 굴리기만 했다.테이블 위 찻잔을 들어서 느긋하게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이미 식어서 씁쓸했지만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정인은 구석에 앉아 몰래 이재를 한 번 올려다본 뒤 재빨리 시선을 내렸다.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서 숨을 크게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조금 기다려도 이재가 일어날 기색이 없자, 정인은 살금살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움직였다.“거기 서.”정인의 발이 그대로 멈췄다.천천히 돌아선 정인은 울상에 가까운 웃음을 억지로 지었다. “오빠, 나 불렀어?”이재는 소파에 기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위에 올린 채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어제 운서원 갔었지?”그 말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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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이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앞으로 슬비한테 잘해. 또 가서 괴롭히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응...” 정인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정인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재가 이 정도까지 말한 이상, 신분을 바꿔 대신 결혼하게 된 일 자체가 애초부터 이재가 꾸민 판일 가능성이 컸다.슬비가 제 발로 들어오게 만든 덫이었던 셈이다.‘그런데 오빠는 대체 언제 부슬비를 알게 된 거야?’‘원래라면 서로 엮일 일도 없는 두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거지?’‘저런 큰 판을 짤 정도로?’정인이 물었다. “그럼 원지민이 도망간 것도 오빠가 꾸민 거야?”“응.”정인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물었다. “액막이 결혼 운세를 봐 줬다는 역술인도 오빠가 준비한 거야?”“응.”정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재는 원래도 한참 앞까지 내다보고 판을 짜는 사람이었다.‘그 머리를 전부 부슬비한테 쓴 거였어?’“더 물어볼 거 있어?”“없어.”이재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도우가 곧장 뒤를 따랐다.정인은 그 자리에 서서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내가 목소리를 너무 높였나?’‘지금이라도 원슬비한테 사과하러 가면 늦지 않았을까?’‘아니야.’‘뭔가 제대로 만회할 방법부터 찾아야 해...’...검은 마이바흐는 하씨 본가를 빠져나와서 굽이진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뒷좌석에 기댄 이재는 눈을 감은 채 무심코 미간을 문질렀다.도우가 룸미러로 이재를 한 번 본 뒤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회장님, 한 가지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말해.”“사모님이 실시간 화제어에 올랐습니다.”이재가 눈을 떴다. “무슨 화제어?”도우는 핸드폰을 건넸다. “어젯밤 ‘슈퍼 보이스’ 1회가 방송됐는데 사모님과 권도혁 씨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누군가 그 부분을 캡처해서 권도혁 씨 여자친구 아니냐는 글을 올렸고요. 권도혁 씨 소속사에서 이미 해명문을 냈고,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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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도한은? 최근에 연락 왔어?”쌍둥이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도우의 입가가 드물게 부드러워졌다. “어제 전화가 왔습니다. 원지민 씨가 계속 자기를 노린다면서, 필사적으로 순결을 지키고 있다고 불평하더군요...”이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도우는 룸미러로 이재의 표정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회장님, 도한이 저한테 대신 여쭤봐 달라고 했습니다. 언제 돌아와도 되겠습니까?”“월말. 결혼식 끝나고.”도우의 눈이 밝아졌다. “그럼 금방이네요. 일주일 남았습니다.”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가 금세 사라졌다....같은 시각, 스타빌딩.성준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회사로 향했다.하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슬비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성준은 굳은 표정으로 스타빌딩을 나왔다. 한낮의 햇살이 너무 강해서 눈앞이 아찔할 정도였다.뒤따라 나온 우찬이 양산을 펴서 성준의 머리 위로 받쳐 들었다.“성준아, 일단 호텔로 가자. 이 땡볕에 계속 서 있으면 쓰러져.”성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만 더 어두워졌다.우찬은 그런 성준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삼켰다.북명시에서 호강시까지 비행기로 세 시간. 오는 내내 성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옆에 앉은 우찬도 눈치만 살피며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이제는 말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가자.”한참 만에 성준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우찬은 안도하며 급히 뒤를 따랐다.그런데 성준은 곧장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네가 운전하려고? 어디 갈 건데?”“운서원.” 성준은 안전벨트를 당겨 채우면서 주소를 입력했다.우찬은 그곳이 어디인지 깨닫자 표정이 굳어졌다.운서원.이재의 개인 저택이었다.“성준아, 청해만 일대는 이재 사유지나 다름없어. 우리 못 들어가...”성준은 대답하지 않고 차 문부터 닫았다.우찬은 이를 악물고 조수석에 올라탔다.차가 청해만 일대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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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성준은 이재의 얼굴을 사진과 기사에서 수도 없이 봤다.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이재는 생각보다 젊었고, 훨씬 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검은 눈동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잠시 마주 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성준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북명시에서는 성준 역시 누구도 쉽게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재 앞에서는 이유도 없이 기세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재는 굳이 무언가 하지 않아도 상대를 하찮게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었다.성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다잡고 먼저 입을 열었다. “하 회장님,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차에서 내린 이재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고개를 기울여 불을 붙이자 옅은 연기가 날카로운 옆모습을 흐렸다.“강 대표, 무슨 일이지?”성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를 아십니까?”이재는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말없이 성준을 바라봤다.차갑고 무심한 눈빛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사람을 훑어보는 듯한 기색도 섞여 있었다.성준은 그 시선이 불편했지만 입술을 다문 뒤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오늘 찾아온 건 원슬비 씨 일로 회장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회장님은 원슬비 씨를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 곁에 두고 계신 원지민이 사실은 원슬비입니다. 언니 신분으로 대신 결혼한 겁니다...”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의 담배가 반쯤 타면서 재가 길게 매달렸다.성준은 이재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덧붙였다.“회장님이 원지민이라고 알고 계신 사람은 원지민이 아니라 동생 원슬비입니다.”“집안의 강요를 받아 대신 결혼한 거지, 슬비는 회장님과 결혼하고 싶어 한 적이 없습니다. 회장님께서 슬비를 보내 주신다면 조건은 원하시는 대로 맞추겠습니다.”성준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북명시 쪽에 제가 맡고 있는 사업 몇 개가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관심 있으시면 수익 지분을 30% 넘겨드리겠습니다. 매년 수억 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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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그 말을 듣고도 성준이 이재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하이재... 다 알고 있었어...!’‘슬비가 원지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옆에 두고 있었다고?’‘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이재가 몸을 돌려 마이바흐 쪽으로 향하자, 성준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회장님이 뭔데 슬비 일을 마음대로 결정합니까?”이재의 걸음이 멈췄다. 고개만 돌려 성준을 봤다.성준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슬비는 회장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접니다! 결혼을 했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습니까? 슬비의 마음은 저한테 있습니다.”“몇 년을 저만 좋아한 사람인데, 회장님과 고작 십여 일 같이 지냈다고 그 마음이 사라질 것 같습니까?” “슬비는 결국 제게 돌아올 겁니다! 두 분이 이혼하는 건 시간문제...”성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친 신음이 터졌다.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여서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머리가 짓눌렸다.“크흑... 뭐...”성준의 뺨이 거친 바닥에 쓸리자,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곧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당기더니 귓가에 싸늘한 웃음이 내려앉았다. “나 이번 달 말에 결혼식 올려. 그런데 내 앞에서 이혼 운운해? 그 입 제대로 못 쓸 거면 내가 아예 닫아 줄까?”“성준아!”우찬이 얼굴이 굳어지면서 달려들려거 했지만 무표정한 도우가 앞을 막았다.체격이 큰 도우는 우찬 앞을 막아선 벽 같았다.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옆으로 돌아가려 해도 길을 내주지 않았다. 우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비켜!”도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찬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성준은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람이었다. 이렇게 거칠게 얻어맞아 본 적도 없었다. 머리가 부서질 듯한 압박에 결국 비명을 질렀다. “아! 아파! 놔... 놓으라고!”“아파? 어디가?”이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구두로 더 강하게 눌렀다. “여기가 아파?”“악...!” 성준이 고통에 찬 소리를 질렀다.그때 이재의 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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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검은 마이바흐는 부드럽게 운서원 안으로 들어섰다.이재는 뒷좌석에 기대 앉은 채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가슴 안쪽에서 치솟던 분노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거칠게 뛰면서 머릿속을 두드리는 듯 아팠다.이재는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도우가 룸미러로 힐끗 바라봤다. 이재는 약병을 꽉 쥔 채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등의 핏줄까지 선명했다.도우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앞쪽 도로에 시선을 고정했다.이재는 뚜껑을 열어 하얀 알약 두 정을 손바닥에 덜었다.한동안 약을 내려다보던 이재는 턱에 힘을 준 뒤 약을 다시 병 안으로 넣었다.창문을 내리자 청해만의 짭짤한 바닷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이재에게 남은 희미한 피 냄새를 흩어 놓았다.이재는 약병을 쥔 채 잠깐 망설이다가 창밖으로 던졌다.검은 약병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길가 관목 사이로 떨어졌다. 가벼운 둔탁음이 난 뒤 더는 보이지 않았다.룸미러로 그 모습을 확인한 도우는 굳어 있던 어깨를 조금 풀었다.하지만 이내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오늘 회장님의 감정이 크게 흔들린 건 강성준 때문이었다.하지만 결국 그 뿌리에는 슬비가 있었다.도우는 이재의 곁에서 십 년을 지냈지만, 이재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는 모습은 처음 봤다.‘이제 보니... 사모님이 회장님의 약인데... 동시에 가장 위험한 도화선이기도 해...’도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검은 마이바흐가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진 뒤에도 성준은 바닥에 누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우찬이 비틀거리며 달려와서 부축하려고 했지만 성준이 손을 뿌리쳤다.성준은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아팠지만 가슴 안쪽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조금 전 이재가 한 말이 하나하나 칼처럼 가슴에 박혔다.성준은 슬비가 그저 화가 나서 떠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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