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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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그 여자는 벌써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슬비 앞에 멈춰 섰다. 위아래로 슬비를 훑는 눈에 묘한 빛이 스쳤다.“진짜 너 맞네!”여자는 환하게 웃었다.“오랜만이다. 못 알아볼 뻔했어. 왜, 우리 과대님은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그제야 슬비는 기억 깊숙한 곳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끄집어냈다.대학 동기, 임서영.학교를 다닐 때도 슬비와 썩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이제 기억도 희미했다.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서 흔히 생기는 비교나 질투 같은 것들이 이유였을 것이다.“임서영.”슬비가 담담하게 이름을 불렀다.“어머, 나 기억하네?”서영은 더 환하게 웃었지만 시선은 슬비가 입은 웨딩드레스에 꽂혔다. 감탄과 질투의 기색이 한꺼번에 비쳤다.“너 지금 웨딩드레스 피팅하는 거야? 결혼해? 왜 아무 말도 없었어? 동기들은 아무도 모르던데?”슬비는 가볍게 웃고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너도 드레스 보러 왔나 봐. 우연이네.”“그러게. 진짜 우연이다.”서영은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을 돌아봤다.“얘 기억하지? 우리 대학 때 과 대표였잖아. 학과에서도 제일 예쁘다고 유명했고 학교에서도 손꼽히던 애.”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슬비에게 향했다. 저마다 시선에 담긴 의미는 달랐다.곱슬머리 여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 그 유명한 과 대표였구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 요즘은 어디서 일해?”“아직 구직 중이야.”슬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구직 중이라고?”서영은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이 짙어졌다.“말도 안 돼. 그때 너 우리 과에서 제일 잘나갔잖아. 우리 교수님들이 얼마나 아끼셨는데. 난 벌써 자리 잡고 이름 날리는 줄 알았어.”칭찬처럼 들렸지만 말 사이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슬비는 적의를 알아차렸지만 굳이 받아치지 않았다. 입가에 얕은 미소만 걸쳤을 뿐,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서영은 자랑이라도 하듯 옆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아,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만 했네. 소개할게. 내 약혼자 주민 씨야. 스타엔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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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슬비가 순간 굳어졌다. 대답하기도 전에 서영의 시선이 막 다가온 도우에게 옮겨갔다.“되게 젊어 보이시는데, 무슨 일 하세요?”도우는 표정이 살짝 굳은 채 슬비를 바라봤다. 슬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운전기사입니다.”“운전기사요?”서영은 잠깐 멈칫하더니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뒤에 있던 여자들도 따라 웃었다. 비웃는 기색을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아, 운전기사였구나.”서영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우리 과대님... 보는 눈이 꽤 독특하네.”곱슬머리 여자도 맞장구를 쳤다.“운전기사도 괜찮지. 안정적인 직업이잖아. 잘생기기도 했고.”“맞아. 요즘 연애할 때 집안만 볼 수는 없지. 사람 됨됨이가 제일 중요해. 주민 씨처럼 능력 좋은 약혼자는 흔치 않으니까.”여자들은 슬비 편을 들어주는 척 한마디씩 보탰지만 속뜻은 뻔했다.슬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아냥거림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태연했다.오히려 도우가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미간을 찌푸렸다.도우가 설명하려 입을 열려던 때, 서영이 주민의 팔을 끌어안았다.“그럼 우리 방해 안 할게. 드레스 잘 골라. 행복하게... 잘 살아.”마지막 말을 유난히 힘주면서 말하는 목소리에는 조롱이 가득했다.일행은 웃고 떠들며 자리를 떠났다. 한참 멀어졌는데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도우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사모님, 저분들이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요. 제가 가서 설명해 드릴까요?”“괜찮아요.”슬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지금 슬비에게 가장 위험한 비밀은 대신 결혼한 신분이었다. 도우가 괜히 서영을 붙잡고 해명하다가 자신의 정체라도 들키면 더 큰일이었다.도우가 다시 말하려 입술을 움직였지만, 뒤에서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야?”“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학 동기 몇 명을 만났어요.”이재는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더 묻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슬비의 허리를 감쌌다.“힘들어?”“네.”“그럼 갈아입고 집에 가자.”슬비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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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이재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지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개를 키운 적도 있어?”“네.”슬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옛일을 떠올리자 얼굴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번졌다.“흑풍이처럼 검은 셰퍼드였어요. 제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온몸이 엉망이었고, 귀 한쪽 끝도 조금 뜯겨 있었어요.”“그런데 크고 나서는 정말 사나워졌어요. 제 말만 들었고요...”추억을 말하는 슬비의 얼굴은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이재는 그런 슬비를 가만히 바라봤다. 짙은 눈동자 밑으로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한동안 말이 없던 이재가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 뒤에는?”“그 뒤에는...”슬비의 입가에서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그 남자가 개장수에게 팔아 버렸지.’그날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슬비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재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손을 내밀었다.“들어가자. 밖이 쌀쌀해.”이재가 슬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자 흑풍은 서운한 듯 낑낑거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도우가 슬비가 하던 대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었다.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흑풍은 태도를 싹 바꿨다. 도우를 향해 사납게 몇 번 짖더니 곧바로 자기 집으로 뛰어가 버렸다.도우는 말문이 막혔다.‘저 녀석을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먹여 키웠는데...’...현관에 들어선 슬비는 신발장 앞에 놓인 핑크색 토끼 슬리퍼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고개를 돌려 이재를 바라봤다.“저기... 이건 뭐예요?”슬비가 토끼 슬리퍼를 가리켰다.“이 집에서 일하시는 이모님이 준비했어. 여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셨어.”이재의 표정은 너무 태연했다.슬비는 말없이 이재가 신은 검은 가죽 슬리퍼를 본 뒤, 다시 자기 앞의 핑크색 토끼 슬리퍼를 내려다봤다.‘이모님의 취향이... 생각보다 꽤 소녀 같으시네.’저녁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정갈한 반찬 네 가지와 국 한 그릇이 넓은 식탁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하루 종일 돌아다닌 슬비는 제법 배가 고팠다. 음식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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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거기 서서 뭐 해? 이리 와.”이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고 거칠었다.슬비는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다가갔다.침대 옆에 선 뒤 어느 쪽으로 올라가야 할지 망설이던 때 손목이 붙잡혔다.이재가 가볍게 당기자 슬비의 몸이 그대로 품 안으로 기울었다.샤워젤의 깨끗한 향과 슬비 특유의 달콤하고 따뜻한 체취가 가까운 거리에서 한꺼번에 퍼졌다.슬비의 몸이 굳었다.이재의 팔이 허리를 감싸면서 손바닥이 아랫배 위에 닿았다. 얇은 잠옷 천 너머로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회장님...”슬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응?”이재가 내려다봤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짙은 눈이었다.그 시선에 심장이 빨리 뛰면서 슬비가 몸을 피하려고 하자,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움직이지 마.”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억눌린 거친 숨이 묻어 있었다.슬비는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이재의 품에서 굳어진 채 가슴이 오르내리는 움직임과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느꼈다.단단하고 힘 있는 박동이 가까이에서 전해질 때마다 슬비의 가슴까지 떨렸다.“나 무서워?”슬비가 고개를 저었다.이재의 입가가 살짝 휘어졌다.이재는 손을 들어 슬비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손끝이 귀 끝을 스치자 가느다란 떨림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그런데 왜 이렇게 떨어?”“...”슬비는 입술만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이 이재의 잠옷 깃을 꽉 쥐었다.이재가 고개를 숙여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샴푸 향과 따뜻한 체향이 뒤섞여 참기 힘든 유혹처럼 느껴졌다.입맞춤은 머리 위에서 이마로, 눈가로, 코끝으로 천천히 내려왔다.끝내 슬비의 입술을 덮었다.이번 키스는 어젯밤보다 부드러웠다. 깨지기 쉬운 뭔가를 다루듯 조심스러웠다.슬비의 호흡이 흐트러졌다.손으로 이재의 가슴을 짚자 단단한 근육이 손끝에 닿았다. 뜨거운 체온에 손을 떼려고 했지만 이재가 놓아주지 않았다.이재는 슬비의 손을 잡아 손가락을 맞물린 뒤 베개 옆으로 눌렀다.키스가 점점 깊어졌다.빼앗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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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이재는 슬비의 손을 놓고 양옆으로 팔을 짚은 채 위에서 내려다봤다.“약 안 먹었어.”낮게 잠긴 목소리였다.슬비는 믿지 못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안 됐잖아. 그런데 오늘 갑자기...’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슬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어떻게...”이재가 눈썹을 올렸다.“어떻게 뭐?”슬비는 차마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죽어도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당장이라도 이불 속에 숨어 버리고 싶은 슬비를 보자 이재의 눈에 웃음이 짙어졌다.이재는 고개를 숙여 슬비의 입꼬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이제 계속해도 돼?”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고 참는 기색이 뚜렷했다.“내가 진짜 되는지 안 되는지 제대로 확인해 봐.”그러나 슬비는 여전히 이재가 무리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키스하려는 이재의 어깨를 급히 막았다.“자, 잠깐만요! 그런 약은 자주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그러시면 안 돼요.”이재는 잠깐 멈췄다가 슬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가슴 안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가까이 붙어 있던 슬비의 가슴까지 미세하게 떨릴 정도였다.“내가 약을 먹었다고 생각해?”슬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분명했다.‘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진지하면서도 난처해하는 슬비를 바라보던 이재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졌다.이재가 몸을 낮춰 슬비의 귀 가까이 입술을 가져갔다.“내가 약을 먹었는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볼래?”슬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이재의 손이 허리 옆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슬비가 흠칫 떨면서 급히 손을 붙잡았다.“안... 안 돼요.”이재가 움직임을 멈췄다.아직 가라앉지 않은 욕망이 눈에 남아 있었지만 슬비를 재촉하지는 않았다.“왜?”슬비는 입술을 다문 채 시선을 돌렸다.“저...”잠깐 망설인 끝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저, 친밀 불안 장애가 있어요.”이재가 미간을 찌푸렸다.“친밀 불안 장애?”이재가 믿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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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다음 날 아침.따뜻한 아침 햇살이 통유리창을 지나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이재는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서류를 펼쳐 놓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다.막 샤워를 마친 듯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뒤로 넘겨져 있었다. 반듯한 이마와 깊은 눈매가 드러났고, 늘 눈 밑에 남아 있던 피곤한 기색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회장님, 권 대표님 오셨습니다.”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 문이 열렸다.지혁이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짙은 와인빛 캐주얼 정장에 셔츠 단추를 두 개쯤 열어 놓아서 쇄골 부근의 레터링 문신이 언뜻 보였다.이재를 본 지혁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대놓고 훑어봤다.“오...”길게 감탄한 지혁은 이재 맞은편 소파에 털썩 몸을 던지고 다리를 꼬았다.“이재야, 오늘은 무슨 보약이라도 먹었냐? 상태가 왜 이렇게 좋아?”이재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긴 손가락으로 서류 한 장을 넘겼다.지혁은 포기하지 않고 몸을 앞으로 숙여 얼굴을 살폈다. “다크서클도 싹 없어졌네. 설마... 어젯밤에 드디어 총각 딱지 뗀 거야?”그제야 이재가 눈을 들어 지혁을 무심하게 바라봤다.“할 말 있어?”“할 말이 없으면 오면 안 되냐?”“쓸데없는 소리 말고 본론.”지혁도 더 빙빙 돌리지 않았다.“솔직히 말해 봐. 원지민이 너한테 대체 뭘 한 거야?”이재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무슨 뜻이지?”“말 그대로지.”지혁은 입술을 비틀었다.“나도 들은 게 있거든. 원지민... 외모도 그냥 그렇고 그쪽 집안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별로라며...”“성격도 드세고 제멋대로인 데다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해외에서 유학할 때도 명품 사고 술집 돌아다니는 것밖에 안 했다고 하던데.”이재는 대답하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지혁은 이재가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더 보탰다.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지난달 자선 만찬에서도 남자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직원 뺨을 때렸다는 얘기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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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누가 왔나?’슬비는 발을 잠깐 멈췄다가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졌다.“야, 내가 진짜 하는 말인데... 원지민은 아니야. 그쪽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평판인지 다 알잖아. 괜히 잘못 엮여서 고생하지 말고...”슬비의 걸음이 멎었다.‘지금... 내 얘기를 하는 거야?’입술을 꾹 다문 슬비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거실이 시야에 들어왔다.이재의 맞은편에는 와인빛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선이 화려한 얼굴이었다. 특히 살짝 올라간 눈매는 지나치게 잘생겼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눈에 띄었다.“그런 여자를 왜 굳이 아내로 들여? 못생긴 게 좋아서? 머리가 나쁜 게 좋아서? 아니면 성격이 더러운 게 취향이야?”지혁은 여전히 쉬지 않고 떠들었다.맞은편에서 건성으로 듣던 이재가 계단 쪽에서 나는 작은 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지혁의 말도 끊어졌다. 이재의 시선을 따라 돌아본 지혁은 그대로 굳었다.계단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옷차림은 더없이 단순했다. 그런데 가느다란 몸선과 맑은 피부,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지자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지혁은 28년을 살면서 웬만한 미인은 다 봤다고 생각했다.연예계에서 비현실적으로 예쁘다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봤고, 직접 가까이 지냈던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슬비는 달랐다.무엇이 다른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다.이목구비가 유난히 화려해서도, 몸매가 특별해서도 아니었다.분위기였다.맑고 깨끗했다.산속 바위틈에서 처음 흘러나온 물처럼 투명하면서도 쉽게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느낌이었다.특히 맑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둥근 눈매 끝이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어서 사람을 바라볼 때 본인도 모르는 묘한 매력이 묻어났다. 하지만 정작 눈빛은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순수한 분위기와 성숙한 매력이 한 사람 안에서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지혁은 당장 어울리는 말을 찾지 못했다.무의식적으로 이재를 돌아봤다.“미쳤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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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슬비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무슨 말이지?’지혁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 슬비는 반사적으로 이재를 바라봤다.이재는 슬비 뒤쪽 소파 등받이에 팔을 느슨하게 걸친 채 지혁을 무심하게 바라봤다.“이제 좀 가 주지?”지혁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간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소파에 다시 기대며 능청스럽게 웃었다.“나 아직 아침도 못 먹었는데.”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재가 등받이에 걸쳐 둔 팔을 천천히 거뒀다.“도우야.”“네, 회장님.”“배웅해.”지혁은 말문이 막혔다.“야,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나 방금 왔어. 차 한 잔도 못 마셨다고.”이재가 무심한 눈으로 한번 바라보자 지혁은 뒤에 붙이려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결국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기 전에는 슬비에게 손까지 흔들었다.“제수씨, 다음에 내가 차 한잔 살게요.”슬비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제수씨?’‘갑자기 무슨 호칭이야?’무거운 문이 지혁 뒤에서 닫혔다.복도에 선 지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잠시 서 있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핸드폰을 꺼내 은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야, 이재 옆에 여자 생겼다.]은강에게 곧바로 답이 왔다.[???]지혁은 글을 쓰는 게 귀찮아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난 액막이 결혼 때문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이재는 자기 인생은 절대 손해 안 봐. 집에 저런 예쁜 애까지 숨겨 놓고 있었어. 진짜 장난 아니야.]다시 물음표가 이어졌다.은강도 음성으로 물었다.[이재 옆에 있는 여자 원지민 아니야?][뭘 안다고 그래.]지혁은 더 답하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느긋하게 자리를 떴다....아침 식탁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이재는 접시에 놓인 샌드위치를 천천히 잘랐다.맞은편의 슬비는 우유를 조금씩 마시면서 가끔 벽시계를 확인했다.오전 8시 20분.집에서 스타빌딩까지는 출근 시간대에 최소 40분은 걸렸다.슬비가 컵을 내려놓고 입을 열려고 하는데 이재가 먼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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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시연의 눈이 반짝거렸다. 곧바로 성준의 팔을 끌어안더니 발끝을 들고 볼에 빠르게 입을 맞췄다.“고마워, 오빠!”성준은 미간을 더 세게 찌푸렸다. 한마디 하려던 그의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몸이 그대로 굳었다.‘슬비?’그때 슬비도 도우의 차가 멀어지는 걸 보고 돌아섰다가 익숙한 두 사람을 발견했다.마침 시연이 발끝을 들고 성준의 볼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었다.‘웃기네.’슬비는 아무 표정 없이 시선을 거두고 회사 입구를 향해 걸었다.“슬비...”성준이 거의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와 슬비의 길을 막았다.“왜 아무 말도 없이 여기로 와? 내가 며칠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 언제부터 이렇게 멋대로 굴었어?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말이 길어질수록 말하는 속도는 빨라졌고 짜증과 답답함까지 묻어났다.슬비는 말없이 성준을 바라봤다.2년 동안 수도 없이 바라본 얼굴이었다. 눈을 감아도 윤곽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예전에는 이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믿었다. 결혼해서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함께 늙어 갈 거라고 생각했다.지금은 그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뿐이었다.“오빠.”어느새 성준 옆에 온 시연이 소매를 잡아당겼다.“왜 저렇게 길게 말해? 어차피 못 듣잖아.”성준은 그제야 슬비의 귀에 보청기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손으로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시연은 수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내밀고 슬비를 위아래로 훑었다.“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오빠랑 싸웠다고 집까지 나가 버린 거야?”슬비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연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오빠한테 들었는데... 언니한테 친밀 불안 장애가 있다며. 몇 년 동안 오빠가 손도 못 대게 했다면서?”“남자도 다 욕구가 있어. 오빠가 왜 계속 언니 옆에 있었다고 생각해? 내가 일으킨 그 사고 때문에 미안해서 그런 거잖아.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슬비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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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성준도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슬비만 바라봤다.‘청력이 돌아온 거야?’“슬비야...”성준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으려고 했다.슬비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그 손길을 피했다.한때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달려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손끝 하나 닿는 것조차 불쾌했다.실망이 너무 오래 쌓이면 사랑도 정말 끝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았다.성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 시연이 한 말을 떠올린 듯 눈빛이 흔들렸다.“슬비야, 내가 다 설명할게.”“뭘 설명할 건데?”슬비가 말을 잘랐다.“나한테는 시연이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고 해 놓고 뒤에서는 애매한 짓을 한 걸 설명할 거야? 아니면 나를 바보로 만들고 2년 동안 속인 걸 설명할 거야?”목소리는 차분했다. 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그런데 한마디 한마디가 차갑게 벼린 칼처럼 날카로웠다.성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내가 뭘 어떻게 생각했는데?”슬비가 싸늘하게 웃었다.“방금 둘이 한 말, 하나도 안 놓치고 다 들었어. 다시 그대로 말해 줘?”성준은 목이 꽉 막힌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슬비는 더 바라보지 않고 돌아섰다.성준이 급히 손목을 붙잡았다.“여기서 얘기할 일이 아니야. 돌아가서 말하자.”“왜? 남들이 보면 창피해?”슬비가 손목을 내려다봤다가 성준을 똑바로 바라봤다.“자기 여동생처럼 키운 애랑 애매한 짓 할 때는 안 창피했어?”성준은 흠칫 굳어지더니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화가 난 듯 목소리도 가라앉았다.“말 조심해.”“내가 말을 조심해야 해?”슬비가 비웃었다.“강시연이 방금 한 말을 내가 처음부터 다시 말해 줘야 정신 차릴래?”성준의 표정이 더 굳었다.“전부 오해야. 시연이 철없이 억지로 달려든 거야. 난 바로 밀어냈어.”“철이 없고 제멋대로라서?”슬비의 차가운 시선이 시연을 스쳤다.“얼마 전 술집에서는 강시연이 예전보다 철들었다고 했잖아. 벌써 잊었어?”성준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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