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하필 상대가 도혁이었다. 달래도 소용없고 몰아붙여도 꿈쩍하지 않는 데다,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이러시면 저희도...”고상철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잇기도 전에 슬비가 앞으로 나섰다. 문 앞에 선 슬비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빨리 문 열어.”안쪽이 잠잠해지더니 곧 기타 줄을 느슨하게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여유롭고 건방진 소리였다.슬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셋 셀 때까지 안 열면 사람 불러서 문 따게 할 거야.”고상철은 깜짝 놀라면서 슬비를 바라봤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하는 말은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까지 더해지니 정말 스타엔터 직원이 맞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다.고상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어느 쪽에서 오신 분이십니까?”“안녕하세요. 저는 가수님의 새 매니저 원지민입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안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문이 열리고 도혁이 문가에 기대고 섰다. 검은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채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있었다. 날카롭게 뻗은 턱선이 모자 아래로 드러났다.도혁은 눈을 내리깔고 슬비를 바라봤다. 입가에는 비웃음 같은 기색이 걸렸지만 목소리는 싸늘했다.“우리 매니저님... 아주 기세가 좋네. 이제는 내 연습실 문까지 따겠다고?”슬비는 대꾸하지 않았다. 옆으로 비켜서며 고상철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들어가세요.”고상철은 잠시 동안 도혁의 눈치를 살폈다.도혁은 대놓고 싫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불쾌함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사람을 내쫓지는 않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고상철을 한번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안으로 돌아갔다.고상철은 살았다는 듯 다른 보조직원과 함께 얼른 연습실로 들어섰다.슬비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자 복도에서 기웃거리던 시선도 함께 끊겼다.도혁은 가운데 놓인 1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긴 다리는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고 기타는 허벅지에 기댄 채였다. 처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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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슬비는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한 뒤 저장된 번호 하나를 화면에 띄워 도혁 앞에 내밀었다.“계속 제작진하고 제대로 얘기 안 할 거면 지금 바로 여기로 전화할 거야.”도혁이 기가 막힌 듯 웃었다.“내가 전화 한 통에 겁먹을 것 같아? 경찰이라도 부르게?”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쪽도 오늘 바로 회사에서 짐 싸게 할 수도 있어.”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자, 고상철과 보조직원은 서로 눈치만 봤다.‘큰일 났네.’이러다 새로 온 매니저까지 첫날부터 잘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번호부터 제대로 봐.”슬비가 여유롭게 핸드폰을 한 번 흔들었다.도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화면을 흘끗 봤다. 그러다 눈이 확 커졌다.“이...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아?”슬비는 대답하지 않고 눈썹만 살짝 치켜세웠다.“맞춰 봐.”‘뭘 맞춰? 사람 환장하게 하네.’도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에 뜬 번호를 노려봤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번호였다.큰형 권태혁의 신상 정보는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개인 번호 역시 가족과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져 있었다.그 번호를 저장해 둔 외부인이라면 떠오르는 관계는 하나뿐이었다.슬비도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이재가 알려 준 방법이 정말 통할지 걱정했지만,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린 도혁의 반응을 보고는 제대로 짚었다는 걸 알았다.도혁은 슬비를 한동안 쳐다봤다. 표정이 여러 번 바뀌더니 마침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매니저님... 진짜 대단해!”도혁은 고개를 돌리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뒤이어 고상철을 바라봤다.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적어도 대화할 생각은 생긴 듯했다.“자료 주세요.”고상철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얼른 진행 자료를 건넸다.도혁은 빠른 속도로 내용을 훑었다. 중간중간 필요한 것만 짧게 물었고 태도도 여전히 차가웠지만, 더는 일부러 일을 꼬이게 만들지는 않았다.고상철은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첫 방송 관련 세부 사항을 차례로 확정했다.20분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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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문 앞에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이번 시즌에 나온 명품 한정판 원피스를 입고 가느다란 하이힐을 신은 채,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었다.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사람을 내려다보는 눈매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손가람.스타엔터의 베테랑 매니저로, 현재 인기 연예인 두 명을 맡고 있었다. 집안 역시 만만치 않아서, 호강시 손씨 집안의 외동딸이었다.“실장님...”혜림이 어색하게 불렀다.가람은 혜림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슬비에게만 향해 있었다.가람은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슬비 앞에 멈춰 서서 위아래를 한번 훑었다.“좋은 뜻으로 하나만 알려줄게요.”가람은 몸을 조금 숙이고 슬비에게만 들릴 만큼 목소리를 낮췄다.“본인이 정말 대단해서 권도혁 가수를 다룰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요. 그 정도로 만만한 애는 아니니까요.”말을 마친 가람은 허리를 펴고 돌아섰다. 문 앞까지 갔다가 걸음을 멈추고 슬비를 돌아봤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두고 봐요. 언젠가는 제대로 델 테니까...”가람이 나가자 혜림의 볼이 화가 나 붉어졌다.“정말 왜 저래요? 지민 씨가 권도혁 가수 일을 해결한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 봐요. 저분도 전에 권도혁 가수의 매니저를 맡았는데 사흘 만에 잘렸거든요.”“회사에서 체면이 다 구겨졌는데, 지민 씨가 첫날부터 제대로 해내니까 속이 뒤집히는 거죠.”슬비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도혁의 자료를 다시 펼쳤다.혜림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계속 말했다.“게다가 회사에서 그분이 권도혁 가수를 좋아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몇 년째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까 일부러 매니저까지 자청한 거잖아요.”“가까이 지내다 보면 뭐라도 될 줄 알았겠죠. 그런데 권도혁 가수한테 사흘 내내 면박만 받고 쫓겨났으니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그래서 지민 씨만 보면...”“혜림 씨.”슬비가 말을 끊었다.“‘슈퍼 보이스’ 첫 방송 일정은 정확히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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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그 시각 스타엔터 회의실.긴 회의 테이블 양쪽에는 스타엔터의 임원과 각 부서 책임자들이 빠짐없이 앉아 있었다.회의실 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모두 오랜 세월 연예 산업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었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만큼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자리는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았다.스타엔터가 새 주인에게 인수됐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그 인수자가 하씨 집안의 하이재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대체 무슨 일이지?’‘하씨 집안은 반도체, 방산, 첨단 산업을 주력으로 하잖아.’‘갑자기 연예 기획사를 왜 인수한 거야?’‘설마 업계 전체에 큰 변화라도 생기는 건가?’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잠시 동안 정적이 이어진 뒤 이재가 입을 열었다.“더 할 말 있으세요?”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없으면 끝냅시다.”이재의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의자를 미는 소리가 났다. 모두 풀려난 사람처럼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도혁은 남고.”막 일어서던 도혁의 몸이 굳어졌다.도혁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나머지 사람들은 더 빠르게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이 문까지 조심스럽게 닫아 주었다.넓은 회의실에는 이재와 도혁만 남았다.이재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아 맞은편의 도혁을 바라봤다.도혁은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평소의 까칠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얌전히 앉아서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 끝만 만지작거렸다.“매니저를 열세 명이나 바꿨다며?”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일주일이고?”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도혁의 등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이재는 잠깐 도혁을 바라보다 느릿하게 말했다.“오늘 새로 온 매니저한테도 처음부터 성질을 부렸다던데.”도혁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그 원지민이...”“원지민이 뭐?”이재가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도혁은 괜히 어깨가 굳어졌다.“또 네 성질 못 이기고 사람 내보내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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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도혁은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빠르게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로 도혁의 굳은 표정이 더 어둡게 보였다.도혁은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신호음이 두 번 울린 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형.”도혁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왜. 무슨 일인데?]전화 너머의 지혁은 프라이빗 라운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누가 우리 막내 심기를 건드렸어? 말해 봐. 형도 좀 웃게.]“좀 진지하게 해.”도혁이 이를 갈았다.“물어볼 게 있어.”[뭔데?]“큰형 여자친구 생겼어?”입가로 가져가던 지혁의 잔이 멈췄다.[무슨 여자친구?]도혁은 입술을 삐죽였다.‘형도 모르는 모양인데...’지혁이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큰형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네가 봤어?]“나도 진짜 여자친구인지는 몰라. 그런데 어떤 여자 핸드폰에 큰형 개인 번호가 저장돼 있어.”지혁은 잠시 멈춰 있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와, 우리 형이 드디어 연애를 해?]“그러니까 형이 알고 있냐고.”도혁이 답답한 듯 벽을 발로 툭 찼다.[몰라. 나도 처음 듣는데?]지혁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때문에 조금 뭉개진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형 성격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나한테 먼저 알려 주겠냐? 그래도 네 말대로 개인 번호까지 저장하고 있다면...]지혁은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보통 사이는 아니겠네.]“형도 여자친구 같지?”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그 여자가 오늘 회사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큰형을 내세워서 나한테 일을 시켰어.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어.”[오늘 처음 들어왔다고?]지혁이 바로 핵심을 짚었다.[스타엔터에서 일해?]“응. 내 새 매니저야.”도혁이 마지못해 대답했다.지혁이 웃었다.[날씨가 풀리니까 여기저기서 연애 바람이 부나 보네.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씩 다 이러고.]“또 누가 있는데?”도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지혁이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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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지민 씨, 괜찮아요?”혜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에어컨이 너무 추운 거 아니에요?”“괜찮아요.”슬비는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봤다.이재가 보낸 메시지는 아직 대화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퇴근하면 기다려. 같이 집에 가자.]슬비는 그 문장을 한참이나 바라봤다.아직도 믿기지 않았다.자신이 스타엔터에 입사하자마자 이재가 회사를 인수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절묘한 우연이었다.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설마 나 때문에?’하지만 떠오르자마자 스스로 지워 버렸다.‘그럴 리가 없지.’‘하 회장이 어떤 사람인데?’하씨 집안의 사업은 반도체와 방산, 첨단 기술 분야를 두루 아우르고 있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스타엔터는 이재에게 큰 의미가 없는 회사일 수도 있었다.스타엔터 인수 역시 사업적인 판단일 가능성이 컸다.괜히 혼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슬비는 생각을 접고 도혁의 자료를 다시 펼쳤다.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가람이 인턴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한 명은 커피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서류를 안고 있었다. 마치 수행원이라도 거느린 듯한 모습이었다.“다들 들었어요?”가람은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사무실 전체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새 대표님, 하씨 집안의 하이재 회장이래요.”사무실 사람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렸다.“하씨 집안? 그 하씨 집안?”“호강시에 하씨 집안이 또 어디 있어요?”가람이 눈을 굴리며 은근히 자랑하는 투로 말했다.“하이재 회장 말이에요. 우리 집안도 하씨 집안이랑 조금 아는 사이거든요. 우리 아버지도 하이재 회장이랑 몇 번 식사하셨어요.”가람은 턱을 살짝 들고 슬비 쪽을 흘끗 봤다.하지만 슬비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가람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하이재 회장은 워낙 사람을 안 만나기로 유명해요. 호강시에서 개인적으로 말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힐걸요?”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사람인데 같이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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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그 말이 나오자 사무실이 조금 조용해졌다.여러 사람의 시선이 슬비에게 쏠렸다.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슬비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려고 했다.그때 뒤에서 가람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말도 안 되죠.”가람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다리를 꼰 채 슬비를 위아래로 훑었다. 입가에는 대놓고 비웃는 기색이 걸려 있었다.“여우 같은 누군가를 새 대표님이 왜 찾아요? 상상도 적당히 해야죠.”사무실이 조용해졌다.인턴들은 서로 눈만 마주칠 뿐 감히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듣는 사람까지 불편할 만큼 심한 말이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슬비에게 향했다.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듯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예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다.가람은 호강시 손씨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인기 연예인 두 명을 맡고 있을 만큼 회사 안에서 입지도 탄탄했다.반면 슬비는 오늘 막 입사한 신입 매니저였다. 아직 수습 기간도 시작 단계였다.가람과 정면으로 부딪혀 봐야 슬비에게 좋을 게 없다고 모두 생각했다.이번에는 그냥 참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슬비는 천천히 돌아서서 가람을 바라봤다.이제야 가람이 회사에서 왜 평판이 좋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세상에는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제가 여우면 실장님은 뭐예요? 음식물 쓰레기?”슬비는 가람의 입가를 한번 쳐다봤다.“남 헐뜯기 전에 비뚤어진 말버릇부터 고치고 말씀하세요.”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저 신입, 보통이 아닌데? 절대 양보하지 않은 스타일이야.’첫날부터 도혁을 움직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가람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슬비는 할 말을 끝내고 그대로 돌아섰다.뒤에서 가람의 날 선 목소리가 터졌다.“원 매니저! 거기 안 서요?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슬비는 멈추지 않았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원 매니저 내일 당장 스타엔터에서 잘리게 할 수 있어요!”슬비는 이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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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무슨 손님? 내가 남도 아닌데.”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슬비는 아직 이재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일어나기에는 늦었다.당황한 슬비는 그대로 이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이재가 나지막하게 웃자 가슴에서 울리는 진동이 얇은 옷 너머로 전해졌다.슬비는 귀까지 뜨거워졌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내가 왜 이렇게 찔려?’‘법적으로도 부부고 혼인신고까지 했는데...’‘왜 꼭 들키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하다가 걸린 사람 같지?’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안으로 들어왔다. 입에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있었고, 눈가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걸려 있었다.“이재야, 내가 말인데...”말이 뚝 끊겼다.지혁은 문 앞에서 그대로 굳어졌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질 뻔했다.이재의 무릎 위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등을 보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가늘고 흰 목덜미와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만 눈에 들어왔다. 흰 셔츠를 청바지 안에 넣어 입은 탓에 잘록한 허리선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이재는 그 허리를 한 팔로 감싸고 있었다.누가 보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미쳤다.”지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연애 시작한 사람은 역시 다르네. 이재야, 너 회사에서 대놓고 이래도 되는 거야?”지혁이 의미심장하게 손짓했다.이재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혁을 한번 봤다.슬비를 몇 번 살피다가 아침에 봤던 여자인 걸 알아차리자, 지혁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우리 이재가 진짜 많이 좋아하나 보다?”지혁은 놀리듯 말했다.“회사까지 데리고 왔어? 내가 여기 대표로 있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는데...”지혁은 슬비를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제수씨, 또 뵙네요.”슬비는 얼굴이 더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급히 이재의 무릎에서 내려와 옆의 소파에 앉았다. 그대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평생 지켜 온 체면이 한꺼번에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다.이재가 지혁을 봤다.“여기 왜 왔어?”지혁은 장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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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슬비는 아직 아까의 민망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퉁명스럽게 답했다.“아무거나요.”“그래, 아무거나.”이재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주방에 ‘아무거나’라는 요리를 해 달라고 해야겠네.”“소갈비찜요.”“알았어.”...지혁은 꼭대기 층에서 내려와 느긋하게 도혁의 연습실로 향했다.문을 열자 기타를 안은 도혁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줄을 건드리기는 했지만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는 게 분명했다.“그 여자 어디 있어? 빨리 불러 봐.”지혁이 문가에 기대면서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진짜 빠르네.”도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고 기타를 옆으로 내려놓았다.“기다려. 내가 불러 올게.”도혁은 연습실을 나가 곧장 매니지먼트팀 사무실로 갔다.가람은 자리에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도혁이 들어오자 눈이 반짝였다. 바로 허리를 펴고 앉으며 매니큐어 병을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누구 찾으세요?”도혁은 가람에게 대답하지 않고 사무실 전체를 훑었지만 슬비는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도혁이 물었다.“제 매니저님 어디 있어요?”순간 가람의 웃음이 굳어졌다. 눈 안쪽으로 질투가 스쳤지만 금방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지민 씨는 없어요. 무슨 일인데요? 저한테 말씀하셔도 돼요. 제가 그 사람보다...”“실장님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도혁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돌아섰다.“잠깐만요.”가람이 도혁을 불러 세웠다. 눈을 굴리던 가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했다.“아까 윗분이 찾는다고 하던데요. 누가 맨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봤대요.”도혁의 걸음이 멈췄다.“맨 위층...?”그곳은 이재의 집무실이 있는 층이었다.사무실 사람들은 은근히 서로 눈을 마주봤다.가람이 일부러 ‘원지민’에게 이상한 소문을 씌우려 한다는 걸 모를 사람이 없었다.이제 막 들어온 신입 매니저가 꼭대기 층 회장실에 올라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도혁이 다시 돌아섰다. 미간은 더 깊게 찌푸리고 있었다.“거기 왜 갔는데요?”“저야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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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그래... 형도 참...’지혁은 감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결정하면 바로 움직이는 방식은 태혁다웠다.“그 여자가 진짜 큰형 여자친구였어?”도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권씨 집안의 막내인 도혁은 어릴 때부터 큰형 태혁의 강한 존재감 아래에서 자랐다.형제 사이에서도 큰형은 부모 못지않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도혁은 웬만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권태혁만큼은 어려워했다.“큰형이 집에 데리고 온다고 했으면 거의 결정 끝난 거지.”지혁이 웃으며 도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동생의 곤란함이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앞으로 형수님한테 잘해. 괜히 사고 치지 말고.”“응.”도혁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나 오늘 형수한테 너무 크게 말했는데...’‘내일부터 얌전히 굴면 어떻게든 되려나?’지혁은 웃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도혁에게도 한 개를 건넸다.도혁은 담배를 받아 들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두어 번 굴리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골치 아프네.’‘내가 얌전히 굴어 본 적이 있어야지.’...그 시각 북명시.성준은 새별엔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책상 위 재떨이에는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가득했다.컴퓨터 화면에는 경제 뉴스 속보가 떠 있었다.[HM그룹, 스타엔터 인수 절차 완료... 하이재 신임 대표 취임]성준은 그 문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손가락 사이의 담배가 필터 가까이까지 타들어 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손끝이 뜨거워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성준아.”우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확인했어. 스타엔터 인수한 곳, 하씨 집안이...”말을 하다 화면의 기사를 본 우찬은 나머지 말을 삼켰다.성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다른 상대였다면 마지막까지 방법을 찾아봤을 것이다.하지만 하씨 집안은 달랐다.성준이 정면으로 겨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하나 더 있는데 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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