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설야팔부 (雪夜八部): Chapter 131 - Chapter 140

275 Chapters

제131화 — 봉화 읽기

봉화는 이틀 내내 두 사람의 오른편에서 타올랐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연기 기둥으로, 쉬지 않고.귀로는 강행이었다. 말을 아끼지 않고 달리면서, 혈비는 연기 기둥의 수와 간격을 읽었다. 삭월의 옛 봉화법은 언니의 몸에 남아 있었다."넷이 나란히 — 대군이다. 만(萬)을 넘는다는 가락이야. 남관에서 처음 올랐고, 하루 만에 중관을 지났다. 빠르다. 치중을 버리고 오는 속도다.""어느 깃발입니까.""봉화는 깃발을 못 읽는다. 한데—" 언니의 낯이 어두웠다. "이 길로 만군이 북에 온 것은 열여덟 해 만이다. 그때와 같은 길, 같은 계절이야. 눈 녹은 물이 불을 대로 분 계절."십팔 년 전의 재연. 운설은 등줄기가 식었다. 그 재연을 바라는 자가 누구인지, 이제는 물을 것도 없었다.달리는 이틀 동안 운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을 갈래갈래 곱씹었다. 놓아주는 것도 물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눌러 드리지요, 한 번에. 그 말들이 봉화의 연기와 한 하늘에 있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만군이 북으로 오면 대월의 안의 것이 날뛸 것이고, 날뛰는 것을 누르는 자리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열여덟 해 만에 찾은 사람들이 전부 한 판 위에 얹히고 있었다.궁의 문루가 보였을 때, 마당은 이미 전비로 끓는 중이었다.남궁완이 파발 묶음을 들고 마중을 나왔다. 세가의 연통이 밤낮으로 달려온 종이들이었다."북벌이에요."여인의 목소리는 종이처럼 건조했다."맹이 아니라 — 맹을 뒤집은 자들이요. 열두 줄이 읽힌 뒤로 공신 가문들이 둘로 갈렸어요. 남궁가처럼 죄를 저울에 달자는 쪽과, 저울 자체를 부수자는 쪽. 부수자는 쪽이 이겼어요. 명분은 간단해요. 재앙의 씨가 물을 부려 강호를 해치니 — 씨를 태우고, 북쪽 소혈을 마저 지운다.""간수문은."한겸이 제 상관의 이름을 묻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궁완은 파발 한 장을 젊은 감찰에게 건넸다."실각했어요. 집법당주 자리에서. 죄목이 — " 여인이 잠깐 말을 골랐다. "재앙의 씨와 내통한 죄. 재감정 감찰을 북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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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 전비(戰備)

궁은 사흘 만에 성이 되었다.흑요가 창고를 열어 십팔 년 묵은 병장기를 꺼냈고, 바토의 대장간이 밤새 불을 밝혔다. 외눈 대장장이는 아들의 위패에 절 한 번을 올리고는, 두드리기 시작한 망치를 놓지 않았다. 서른 기는 이백이 되었다. 흩어져 살던 삭월의 유민들이 봉화를 보고 하나둘 산을 넘어온 것이다. 낫을 든 자, 도리깨를 든 자, 맨손인 자. 흑요는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싸우러 온 게 아니라 죽으러 온 낯들이다." 노파가 혈비에게 말했다. "십팔 년 전에 못 죽은 게 한이 된 낯들이야. 저 낯들한테는 — 이번에는 지킬 것이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남궁완과 한겸은 남쪽 일을 맡았다. 세가 연통으로 북벌군 안의 온건파를 짚어 내는 일. 만군이 다 저울을 부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명분에 끌려온 자, 가문 눈치에 낀 자, 애초에 진실을 모르는 자가 반은 넘을 것이었다. 그 반을 물에서 건질 준비를, 종이의 사람들은 종이로 했다."수결의 임자를 만군 앞에서 세울 수만 있다면 — 절반은 칼을 내려요." 남궁완이 말했다. "증거 체인은 있어요. 공훈록, 초고, 명부, 그리고 공자의 눈. 모자란 건 단 하나 — 그걸 세울 무대죠."판의 눈은 둘로 갈렸다.만군이 얼음여울로 온다. 대월의 물이 그 여울에서 기다린다. 궁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아무것도 안 하면 됩니다."흑요의 답은 차가웠다."중원의 만군이 중원을 지운 자의 물에 삼켜지는 겁니다. 십팔 년 전 값을 물이 대신 받는 것이지요. 우리는 산등성이에서 구경만 하면 —""그 물이 만군만 지우고 얌전히 돌아갈 것 같으냐."혈비가 잘랐다."불은 강의 하류에 뭐가 있는지 세어 봐라. 북관 안팎의 마을들. 유민들의 골짜기. 물은 만군을 지우고 — 그대로 남으로 내려간다. 대월의 셈에 하류의 목숨 따위는 처음부터 없어. 그자가 지우려는 건 만군이 아니라 세상이다."그리고 그 물목의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었다. 자매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내지 않는 것으로 서로에게 말했다.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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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 늦게 지키는 약조

간수문은 문루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중 나온 얼굴들을 하나씩 보았다.혈비를 보고, 운설을 보고, 곳간에서 나온 운백천을 보고 — 마지막으로 한겸에게 눈이 멎었다. 젊은 감찰은 관복 차림 그대로였다. 실각한 당주 앞에서 그 관복이 무슨 뜻인지, 노인은 오래 보았다."아직 입고 있구나.""벗으라는 명은 — 지금의 집법당에서 온 것이라." 한겸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다가 곧아졌다. "제 관복은 법에게 받았지, 그들에게 받지 않았습니다.""법이 무엇인지 아직도 아는 놈이 집법당에 하나는 남았군."노인은 그렇게만 말했는데, 그것이 마흔 해 치 칭찬이라는 것을 마당의 모두가 알았다.대전 곁방에서 노인은 제 봇짐을 풀었다. 흰옷 한 벌뿐인 봇짐에서 나온 것은 기름 먹인 함 하나였다."맹옥이 나를 가둔 것은 사흘이다. 사흘이면 — 늙은이가 서고의 바닥돌 하나를 들어내기에 족하지."함이 열렸다. 안에 든 것은 낡은 첩(帖)이었다. 열두 장. 장마다 수결 하나씩."십팔 년 전, 토벌이 끝난 뒤 열두 가문의 수장이 공훈록에 수결을 두었다. 그 수결을 받던 자리의 원부(原簿)다. 열두 수결이 진본으로 남은 유일한 종이지. 공훈록의 마지막 장이 뚫린 지금 — 대조할 저울추는 이것뿐이다."선우현이 첩을 한 장씩 넘겼다. 획을 아는 눈이 열두 수결을 지나며 낮게 확인해 나갔다. 아니오. 아니오. 이것도 아니오. — 열두 장이 다 넘어갔다."없소. 물 위에서 본 그 획은 — 이 열둘 중에 없소.""당연하지." 간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내린 손이 명을 받은 열둘 틈에 수결을 남겼겠느냐. 한데 그것이 증거다. 열두 수결이 전부 아니라면 — 마지막 장의 수결은 열셋째 손, 명부 밖의 손이라는 것이 만군 앞에서 성립한다. 반쪽 증거 열 개보다 좋은 것이 온전한 배제 하나야."남궁완이 증거의 순서를 짰다. 갈대 종이의 서신 초고, 긁힌 명부와 뒷면의 달 월, 열두 수결의 원부, 그리고 낭독자의 눈. 무대에 세울 순서와 말의 순서까지. 세가의 눈과 법의 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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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 첫 칼

얼음여울로 가는 행렬은 새벽에 궁을 나섰다.이백에서 추린 정예 여든. 자매와 선우현, 사백과 우르, 간수문과 한겸과 남궁완, 그리고 운백천. 궁은 흑요와 부수가 지켰고, 묵할멈은 문루까지 나와 손짓 하나를 오래 지었다. 살아서. 그 한 손짓이었다.이틀째 오후, 척후로 나갔던 우르가 말을 몰아 돌아왔다. 앞니 빠진 자리로 바람 새는 소리가 급했다."북벌군 선봉 척후요! 스물 남짓 — 능선 하나 너머요! 우리를 봤습니다!"봤다면 선택은 둘이었다. 흩어져 숨거나, 먼저 치거나. 숨기에 여든은 많았고, 놓아 보내면 만군이 이쪽의 수와 길을 안다."세운다." 혈비가 정했다. "죽이지는 않는다. 지금 흘릴 피는 나중에 열 배로 돌아온다. 세우고 — 판을 보인다."말이 쉽지, 스물의 기병을 피 없이 세우는 판이었다. 사백이 활의 배치를 그렸고, 선우현이 제 자리를 골랐고, 한겸이 관복의 매무새를 여몄다. 각자의 병기가 갈렸다. 활과 검과 — 종이.운설은 행렬 가운데서 은침 통을 쥐었다 놓았다. 이 판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없는 것이 판대로였다. 물을 쓰는 순간 소문의 마녀가 만군의 눈에 실체가 되고, 북벌의 명분에 장작이 얹힌다. 보여 주는 순간 값이 정해진다 — 저울의 방에서만 유효한 문법이 아니었다.능선 사잇길의 좁은 목에서 양쪽이 마주쳤다. 척후장은 젊었고, 젊은 만큼 빨랐다. 활이 먼저 올라왔다.사백의 살이 그보다 먼저 시위를 떠났다.살은 척후장의 활시위를 끊고 지나갔다. 사람도 말도 건드리지 않고, 시위만. 끊긴 활이 튕겨 오르는 사이 두 번째 살이 그 곁 기수의 창대를 쪼갰다. 세 번째 살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것이 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스무 개의 목이 스무 대의 살값이라는."북벌군 척후는 들어라!"한겸이 말을 몰아 나섰다. 흰 관복이 능선 바람에 펄럭였다. 집법당의 관복을 본 척후들의 창끝이 흔들렸다."집법당 감찰 한겸이다! 그대들이 쫓는 재앙의 씨가 여기 있다 — 한데 그 씨가 지금 그대들의 만군을 구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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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 불어나는 것

얼음여울이 하루 거리로 다가올수록, 강이 이상해졌다.물이 줄고 있었다.봄물이 한창 불어야 할 계절에, 여울로 이어지는 본류의 물가에는 젖은 돌들이 뼈처럼 드러나 있었다. 물이 마르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상류를 막았군."간수문이 말 위에서 마른 물가를 내려다보았다."눈 녹은 물을 어딘가에 모으고 있다. 며칠 치를. 만군이 여울 한가운데 들어서는 시각에 — 한꺼번에."운설은 눈을 감고 강의 감각을 상류로 흘려보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 물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갇힌 물. 눌린 물. 며칠 치의 봄물이 좁은 어딘가에 갇혀 몸부림치는 소리. 물마당의 소용돌이도, 불은 물목의 급류도 이것에 대면 실개천이었다."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막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물의 양이 — 셀 수가 없습니다. 저 물이 풀리면 여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류의 벌판까지 한 번에 씻깁니다.""막은 것은 무엇이냐. 둑이냐.""둑이면 차라리 낫습니다." 운설은 감각의 끝에 닿는 그것의 결을 짚었다. 물이 아닌 것. 물을 막고 선 거대하고 차가운 것. "얼음입니다. 골짜기 어귀를 — 얼음으로 막았습니다. 이 계절에, 저 두께로. 사람의 손으로."얼음 궁려에서 여덟 해를 산 사람. 얼음이 어는 차례를 아는 사람. 지키던 자들이 다 죽었다는 그 풍문의 임자.얼음으로 물을 가두고, 때가 오면 제 손으로 얼음을 깨는 것이다. 심법으로 세운 둑은 심법으로만 무너지고 — 그 시각은 오직 한 사람의 손안에 있었다.해 질 녘 행렬은 여울이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능선 아래 진을 쳤다. 운설은 능선에 올라 그 여울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넓었다. 강이 산 사이에서 풀려나며 몸을 펴는 자리. 물 빠진 여울 바닥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섬처럼 드러나 있었다. 십팔 년 전 얼음이 얼었을 때 만군이 건넌 자리. 아버지가 물길을 연 자리. 이제 물이 빠진 채 — 다음 만군을 기다리는 자리.곁에 선 선우현이 오래 말이 없다가 물었다."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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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 무대

만군은 이튿날 오후에 왔다. 척후장의 씨앗이 어디까지 자랐는지, 물길잡이의 실종이 어느 귀까지 닿았는지 — 답은 대장기와 함께 오고 있었다.먼지가 먼저 왔다. 만 사람과 만 마리 말이 미는 흙먼지가. 능선 너머 남쪽 하늘이 누렇게 흐려지더니, 땅이 낮게 울기 시작했다. 운설은 그 울림을 발바닥으로 들으며, 십팔 년 전의 삭월이 들었을 소리를 생각했다. 봉화가 오르고, 땅이 울고, 그리고 —이번에는 그 소리를 마중 나가는 자들이 있었다.전날 밤의 마지막 회의에서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첫 마디는 간수문 — 실각했어도 만군이 낯을 아는 유일한 법. 증거는 남궁완 — 세가의 말은 세가가 알아듣는다. 획의 증언은 선우현. 그리고 운설은 — 맨 뒤였다. "그대는 말이 아니라 일이 증거요." 그가 그렇게 정리했고, 그 정리가 무슨 뜻인지는 물이 오면 알게 될 것이었다.무대는 여울 초입의 언덕이었다. 만군의 행군로가 여울로 꺾이는 목. 대장기에서 화살 두어 마장 거리. 언덕 위에 탁자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증거들을 차례로 얹었다. 공훈록. 갈대 종이 초고. 긁힌 명부. 열두 수결의 원부. 종이의 상이 차려지고, 그 뒤에 사람들이 섰다.실각한 당주. 실성한 검신. 수배 중인 의녀. 붉은 달의 주인. 남궁가의 영애. 그리고 흰 관복의 젊은 감찰."격은 다 갖췄군." 간수문이 마른 웃음을 흘렸다. "강호가 버린 것들만 모아서."선봉이 언덕을 보고 멎었다. 창칼이 숲을 이루고, 숲이 갈라지며 대장기가 앞으로 나왔다. 검은 바탕에 은도끼 — 모용가의 기였다.말 위의 가주는 마흔 줄의 거한이었다. 아비의 도끼를 물려받았다는 등 뒤의 대부(大斧)가 사람 하나 무게로 보였다. 가주의 눈이 언덕 위를 훑었다. 종이의 상을, 그 뒤의 낯들을."재앙의 씨와 그 무리가 — 제 발로 나와 섰군."목소리가 우레 같았다. 만군의 창끝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낮아졌다."베기 전에 유언은 들어 주마. 짧게 해라."창의 숲 사이사이에 운설은 다른 것들도 보았다. 젊은 병졸들의 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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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 첫 물

물러나라는 외침을, 만군은 웃었다."수가 뻔하구나!" 모용 가주가 대부를 뽑아 들었다. "겁을 줘서 군을 물리자는 수작—"말은 끝나지 못했다.상류 쪽 골짜기에서 흰 것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안개 같았다. 다음에는 눈사태 같았다. 물마루가 골짜기의 굽이를 돌아 나오며 양쪽 벼랑을 때렸고, 부서진 물보라가 해를 가렸다. 며칠 치 봄물의 첫 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 첫 숨일 뿐이었다."물이다!"누가 먼저 소리쳤는지 몰랐다. 만군의 앞줄이 뒤로 밀리며 대열이 접혔다. 여울 바닥을 정찰하던 척후 기병 서른이 물마루와 저들 사이의 거리를 쟀고, 재는 사이에 거리가 반으로 줄었다.운설은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물을 쓰지 마라. 보여 주지 마라. 그 모든 셈이 물마루 앞에서 종이처럼 젖었다. 서른의 숨이 물의 아가리 안에 있었다. 숨은 편을 안 가린다 — 제 입으로 한 말이었다.여울가의 바위에 손을 짚고, 그녀는 강에 부탁했다.세우지 않는다. 겨루지 않는다. 다만 — 비켜 다오. 서른 걸음만.물마루가 여울에 들이닥치는 순간, 물이 갈라졌다.가른 것이 아니었다. 물 스스로 두 갈래로 몸을 틀어, 척후들이 밟고 선 얕은 목을 — 딱 그 목만 — 비켜서 지나갔다. 갈라진 물이 다시 합쳐지며 하류로 우레처럼 내려갔고, 젖은 말 위의 척후 서른은 제가 산 것을 한 호흡 늦게 알았다.만군이 그것을 보았다.만 개의 눈이, 물을 비켜 세운 여자를 보았다. 재앙의 씨가 물을 부린다던 격문의 문장이 눈앞에서 뒤집히는 것을. 물을 부려 서른을 — 저들의 서른을 — 건지는 것을.첫 물은 그것으로 지나갔다. 시위였다. 둑의 문을 한 뼘만 열었다 닫은 것. 진짜 물은 아직 골짜기 안에 갇힌 채,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여울가에 정적이 앉았다. 운설은 바위를 짚은 채 코에서 흐르는 것을 소매로 눌렀다. 시야가 반 바퀴 돌다 멎었다. 등 뒤에 어느새 그가 와 서 있었다. 부축하지 않고, 다만 넘어지면 받을 자리에.모용 가주가 말에서 내렸다.거한은 대부를 땅에 꽂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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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 자매의 활

증거를 태우러 오는 손을, 사백은 자정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담판이 문을 연 밤이었다. 종이가 만군을 세웠으니, 판을 되잡으려면 종이부터 지워야 했다. 사냥꾼은 저들의 셈으로 저들을 기다렸다. 종이의 상은 언덕 위에 그대로 두고 — 속은 빈 함으로 바꾼 채 — 저는 상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무더기의 어둠에 스몄다.새벽으로 넘어가는 어름, 바람이 한 번 죽었다.그 죽은 바람 속에서 시위 소리가 났다. 여덟.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한 호흡으로.사백은 소리보다 먼저 굴렀다. 방금까지 어깨가 있던 바위에 불화살 세 대가 박히며 어둠이 붉게 찢어졌다. 나머지 다섯 대는 언덕 위 — 종이의 상으로 날았다. 빈 함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보며, 사냥꾼은 제 첫 살을 얹었다.불빛은 양날이었다. 상을 태운 불이 태운 자들의 자리를 비췄다.사백의 살이 불빛의 가장자리를 갈랐다. 짧은 비명 하나. 여덟이 일곱이 되었다. 답살 네 대가 어둠 속의 사백을 더듬었으나, 사냥꾼은 이미 세 걸음을 옮긴 뒤였다. 활잡이의 싸움은 자리 싸움이고, 자리는 소리가 판다. 쏘면 옮긴다. 옮기고 듣는다.일곱은 흩어지며 되쐈다. 훈련된 손들이었다. 한데 사냥꾼의 밤은 손이 아니라 귀의 밤이었다. 사백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소리 없이 흘러 다니며 하나씩 지웠다. 살로 둘. 돌팔매로 하나. 여섯이 넷이 되고, 넷이 남긴 답살이 전부 빈 어둠을 때렸다.한데 넷 가운데 하나가 — 사백의 법으로 사백을 듣고 있었다.세 번째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발밑의 마른 가지가 울기도 전에 화살이 왔다. 사백은 몸을 접었다. 살깃이 어깨의 옷깃을 찢고 지나갔다. 반 치.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났다."언니 걸음은 스물에서 안 늘었네."사수였다."쏘고 셋 걷고, 듣고 둘 걷고. 아버지 — " 웃음이 한 박자 멎었다 이어졌다. "그 어른이 언니 걸음을 내게 외우게 했지. 십 년을.""네 어른이 내 걸음을 어찌 아느냐.""모르는 게 없는 분이니까."탐이 끝나고 변이 왔다.사수가 불붙은 함 쪽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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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 물가로 가는 사람들

새벽의 얼음 울음은 시위를 지나 예고가 되어 있었다.운설은 능선에서 상류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강의 감각이 전하는 그림은 하나였다. 둑의 얼음이 얇아지고 있었다. 대월이 제 손으로, 심법으로, 조금씩 녹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안이었다. 오늘 안에 저 골짜기의 며칠 치 봄물이 한 번에 세상으로 나온다.판이 마지막으로 모였다. 만군의 가주까지 낀 판이었다. 어제까지 서로를 태우고 베러 온 자들이 한 지도 앞에 머리를 모으는 그림을, 화톳불이 말없이 비췄다. 물이 만든 동맹이었다. 물 앞에서는 만 개의 창도 하나의 숨이었다."군은 물러 세웠소." 모용 가주가 말했다. "여울에서 십 리. 한데 그것으로 모자라다는 거요?""모자랍니다." 운설이 답했다. "저 물은 여울을 지우고 하류로 갑니다. 북관 안팎의 마을들, 유민의 골짜기 — 물이 닿는 데까지가 판입니다. 만군이 아니라 세상이 표적입니다.""그럼 수는.""둑으로 갑니다." 그녀는 지도의 골짜기를 짚었다. "물이 나오기 전에 — 나오는 문에서 세웁니다.""세운다니. 며칠 치 봄물을 무슨 수로.""세우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겁니다. 문이 한 번에 다 열리면 물마루가 서지만, 문이 천천히 여러 번 열리면 — 그냥 큰 물이 며칠 흐르는 것으로 끝납니다. 얼음 둑에 숨구멍을 내는 겁니다. 여럿, 조금씩, 미리.""그 둑 위에 명을 내린 자가 서 있다면서.""그래서 다 같이 갑니다." 혈비가 받았다. "물을 다루는 손과, 획을 아는 눈과, 법과, 활과 — 그리고 저자가 열여덟 해 진 빚의 임자들이."가주는 군에서 물에 밝은 자 이백을 추려 하류의 마을들로 먼저 내려보냈다. 물이 새는 판에 대비해 사람부터 물리는 손. 격문에 실려 온 만군이 하루 만에 물막이 부역꾼이 되는 것을 보며, 간수문이 마른 소리로 웃었다. "종이가 한 일 중에 제일 큰 일이군."출발 전의 반 시진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썼다.한겸은 관복을 벗어 개켰다. 접은 관복 위에 봉서를 얹고, 그 위에 제 관모를 얹었다. "법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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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 둑 위의 담판

보여 줄 것이 있다는 말에, 답한 것은 혈비였다."보여 줄 것은 이쪽에도 있다."언니가 앞으로 나서며 품에서 그것을 꺼내 들었다. 찬 달의 패. 우물 밑에서 열여덟 해를 기다린 왕의 패가, 얼음 둑 아래에서 형의 아우를 올려다보았다."형님의 유해는 대전에 모셨다. 등 뒤의 칼자국까지 — 다 보았다."둑 위의 노인은 오래 말이 없었다. 얼음이 낮게 우는 소리만 골짜기를 채웠다.일행은 둑 아래 백 걸음에 벌여 서 있었다. 사백의 활은 시위를 얹은 채 내려져 있었고, 선우현은 운설의 반 보 뒤에, 간수문과 운백천은 나란히 — 십팔 년 전 눈밭의 두 사람이 나란히 — 서 있었다. 화살이 닿을 거리였고, 화살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 거리였다. 저 노인이 무너지면 둑이 무너진다. 심법으로 세운 벽은 심법의 임자와 한 몸이었다."형님은," 이윽고 대월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등을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등을 보인 것은 — 믿어서가 아니다. 돌아섰던 것이지. 아우의 청을 마지막까지 듣고, 안 된다 하고, 돌아선 것이다.""무슨 청.""심법을 돌려 달라 했다." 노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여덟 해를 얼음 속에서 벼렸다. 그릇이 이제 되었으니 —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으니 — 돌려 달라 했지. 형님은 안 된다 했다. 죽은 것은 못 살린다. 그 금이 너를 살렸고, 그 금이 삭월을 지킨다."죽은 것은 못 살린다. 그 금이 형의 마지막 말이 된 것이다."그래서 등에 칼을 꽂았나." 혈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가 반, 다른 것이 반이었다. "그 말이 들려서 — 그 말이 맞아서?""맞는 말이 사람을 제일 깊이 벤다."노인은 답이 되지 않는 답을 놓고, 손을 들었다. 얼음 둑이 응답하듯 길게 울었다."자, 셈을 하자. 너희는 숨구멍을 뚫으러 왔겠지. 물을 나눠 흘려서 세상을 살리러. 좋은 수다. 한데 그 수에는 내가 서서 안 되지. 그러니 — 흥정이다."노인의 곁에서, 흰머리의 여인이 한 걸음 나섰다.어머니는 딸들을 내려다보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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