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설야팔부 (雪夜八部): Capítulo 321 - Capítulo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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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 닫힌 겨울 궁

북방왕궁의 문은 혈비가 돌아오기 전에 닫혔다.쇠못을 박은 빗장이 세 겹이었다. 성루에는 붉은 달 문양 대신 아무 표식 없는 검은 깃발이 걸렸고, 문밖에는 중원에서 올라온 피란민과 상인 수백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가짜 선우현의 군세가 이틀 앞서 지나간 뒤부터 중원 말씨를 쓰는 사람은 누구도 들이지 않았다고 했다.“내 궁이다. 열어.”혈비가 말 위에서 명했다.성루의 장수가 활을 내리지 않았다.“전하의 얼굴을 쓴 자가 셋이나 왔습니다.”“그 셋의 목을 내 얼굴과 견주었느냐?”“그 전에 모두 우리 병사를 죽였습니다.”혈비가 칼자루를 잡았다. 사백이 그녀의 말머리 앞에 섰다. 성문을 벨 수는 있어도, 그 뒤에 선 자기 병사까지 베고 들어가면 왕궁을 되찾는 의미가 없어졌다.운설은 문밖 사람들 사이를 먼저 걸었다. 쓰러진 노인의 발가락은 검게 얼었고, 짐수레 밑에는 열이 오른 아이 둘이 담요 한 장을 나눠 덮고 있었다. 왕궁 안으로 못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닫힌 문 때문에 약과 곡식도 함께 멈췄다.“성 안 의원에게 줄 글을 묶어 올릴게요.”“글씨도 위조됐습니다.”성루에서 대답이 왔다.운설은 약낭에서 침 하나를 꺼내 성문 나무판에 꽂았다. 월하곡에서 쓰던 푸른 실이 침귀에 매여 있었다.“이 실을 아는 사람이 안에 있어요. 모르면 태워도 돼요.”잠시 뒤 성벽 안쪽에서 같은 푸른 실이 내려왔다. 끝에는 빈 약봉지가 달렸다. 운설이 처방을 적지 않고 약재 냄새만 하나씩 묻혀 다시 올렸다. 위조범이 문장을 흉내 내도, 손끝으로 구별하는 배합 순서까지 알기는 어려웠다.빗장 하나가 풀렸다.그 틈으로 창 세 자루가 먼저 나왔다. 검문은 얼굴보다 손바닥을 오래 보았다. 승검회 수결은 엄지 아래를 얕게 베고 검댕을 문지르는 방식이었다. 상인 다섯, 피란민 열셋, 혈비의 기병 가운데 둘에게 같은 흔적이 있었다.혈비의 칼이 반쯤 뽑혔다.“전하.”손바닥이 걸린 기병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가족이 남쪽 길에 있습니다. 서명하면 통과시켜 준다고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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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 두 자매의 전쟁

“저 글씨는 내가 썼다.”혈비는 깃발을 태우지 않았다. 겨울 궁 대전 바닥에 펼쳐 놓고, 자기 서명이 찍힌 마지막 획을 손톱으로 긁었다.반년 전 북방 장수들의 충성 맹세문에 써 준 글씨였다. 원문에는 설원 침입자를 적으로 선포한다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 비단을 풀어 가운데 넉 자만 갈아 끼웠다. 실밥까지 왕실 침방 솜씨였다.“침방 궁인 스물셋을 가두어.”혈비의 명에 운설이 고개를 들었다.“바느질한 손과 시킨 입이 다를 수 있어.”“그러니 죽이지 않고 가두는 거다.”“스물셋을 한 방에 넣으면 진짜 수결자가 먼저 증인을 죽여.”대전의 장수들이 숨을 죽였다. 두 사람이 어릴 적 싸울 때와 달라진 점은, 이제 어느 쪽 말이 이겨도 누군가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었다.혈비는 궁인들을 셋씩 나누어 각기 다른 일을 시켰다. 찢어진 군복을 꿰매게 하고, 실 색을 고르게 하고, 같은 문양을 다시 뜨게 했다. 운설은 손가락의 굳은살과 손목 떨림을 보았다. 일곱째 조의 늙은 궁인이 검은 실만 닿으면 숨을 짧게 삼켰다.궁인의 소매에서 승검회 통행패가 나왔다.“손녀가 관도 남쪽에 있습니다.”그녀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깃발 하나를 만들면 데려다준다고 했습니다. 만들었습니다. 아직 못 봤습니다.”혈비는 통행패를 부러뜨렸다. 궁인을 가둘 대신 손녀가 붙잡힌 역참 위치를 물었다. 운설은 언니의 턱이 굳는 것을 보고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궁인의 손녀를 찾을 정찰조를 짜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방식은 부딪쳤다. 혈비는 역참을 포위해 한 사람씩 끌어내자고 했고, 운설은 약수레를 먼저 보내 안의 숫자와 상태를 보자고 했다. 포위가 들키면 인질이 죽고, 수레가 덫이면 의원이 죽었다.“이번에도 네가 들어가겠다고 하겠지.”“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으니까.”“그래서 늘 네 목을 가장 값싼 패처럼 올려놓는다.”“언니는 다른 사람 목부터 올려놓고.”혈비가 탁자 모서리를 칼집으로 내리쳤다. 명단 위 먹물이 튀었다. 사백이 장수들을 물렸으나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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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 길을 잃은 상단주

연도하의 일곱 약길 가운데 셋이 하룻밤 사이 이름을 바꿨다.청명로는 검신로가 되었고, 백사나루에는 승검회 검문소가 섰다. 북쪽 염전으로 가던 산길 입구에는 죽은 선우현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길을 만든 사람보다 길을 빼앗은 이름이 더 빨리 퍼졌다.연도하는 왕궁 지도방 바닥에 장부를 펼쳤다. 수레 쉰두 대 중 열일곱 대가 사라졌고, 약재를 나르던 사람 아홉이 승검회에 붙었다. 붙잡혀서인지 스스로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길 셋을 버리겠습니다.”하란주가 눈을 크게 떴다.“단주님이 십 년 만든 길입니다.”“그러니 어디를 끊어야 못 쓰는지도 내가 알지.”연도하는 세 길의 교량과 얼음 창고를 표시했다. 불태우지는 않았다. 다리를 내려앉히면 봄 장마에 마을이 고립되고, 창고를 없애면 승검회보다 먼저 주민이 굶었다. 대신 길목 상인들에게 외상 장부를 풀고, 수레바퀴 규격을 바꾸라는 전갈을 보냈다. 적은 길을 차지했지만 그 길을 움직이는 약속까지 얻지는 못했다.빼앗긴 길에서 돌아온 마부 셋이 지도방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귀가 잘렸고, 한 사람은 승검회 완장을 차고 있었으며, 마지막 사람은 입안에 계약서 조각을 숨겨 왔다. 연도하는 완장을 찬 마부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어느 검문소가 따뜻했고 어느 곳 병사들이 사흘째 굶었는지 물었다.“저를 의심하지 않습니까?”마부가 물었다.“의심하니까 묻는 거다. 믿었으면 집에 보냈지.”세 사람의 답을 겹치자 승검회가 점령한 것은 길 전체가 아니라 세 개의 창고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 병력은 같은 깃발을 옮겨 달며 수를 부풀렸다. 연도하는 일곱 길을 모두 잃은 상단주처럼 소문내되, 빈 수레 스무 대를 밤새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선우현은 그가 적을 속이는 방식보다 자기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지켜보았다. 귀를 잃은 마부에게는 치료값을, 완장을 찬 마부에게는 다시 선택할 하루를 주었다. 계약서 조각을 삼킨 사람에게만 연도하가 직접 물을 건넸다.“누가 죽었지?”“창고지기 둘이요.”연도하의 손이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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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 검을 기억하는 몸

경례는 칼보다 빨랐다.선우현이 궁 마구간을 지날 때 늙은 북방 병사 하나가 오른 주먹을 왼 가슴에 붙였다. 검신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 쓰던 예였다. 옆 병사가 따라 했고, 말에 안장을 얹던 소년까지 어설프게 손을 올렸다.선우현은 받지 않았다.“나는 그대들의 장수가 아니오.”늙은 병사가 주먹을 내리지 않았다.“제 동생은 대협 명령을 받고 남쪽 협곡에서 죽었습니다.”“내가 내린 명령이오?”“대협의 인수가 찍혀 있었습니다.”“얼굴을 보았소?”병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을 못 본 사람에게도 원한은 남았고, 원한을 받을 진짜 얼굴은 눈앞에 있었다.마구간 밖에서 깃발이 펄럭였다. 선우현의 옛 검 문양이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른발이 반 치 뒤로 밀리고, 빈손 엄지가 허리의 칼코등이를 밀려 했다. 없는 내공을 끌어올리려던 가슴이 차갑게 꺼졌다.그의 손에는 지팡이뿐이었다.선우현은 발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종아리 근육이 한동안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수백 번 되풀이한 살인의 순서를 기억했고, 머리는 그다음에 올 통증을 알고 있었다. 억지로 힘을 주자 옆구리의 오래된 상처가 당겼다.운설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았지만 다가오지 않았다. 도와 달라는 눈길을 보내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팔을 내밀면 선우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더 오래 서 있을 터였다. 대신 마구간 소년에게 지팡이 끝의 쇠를 갈아 달라고 했다. 빙판에서 덜 미끄러지는 넓은 촉이었다.소년이 새 촉을 내밀자 선우현은 값을 치르려 했다.“경례값으로 받았습니다.”“나는 받지 않았는데.”“저희가 한 겁니다.”그는 끝내 지팡이를 받았다. 검을 들던 손으로 지팡이 무게를 재는 동안 마구간 병사들은 다시 경례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오래 따라왔다.병사의 눈길이 그 손으로 떨어졌다. 연민도 조롱도 없었다. 믿었던 형상이 어긋났을 때 생기는 빈자리만 있었다.“대협이 아니라면 누가 제 동생을 보낸 겁니까.”“찾아내겠소.”“찾은 뒤에는요?”선우현이 대답하려는 순간 혈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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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 훔친 남편

빈 침상 아래 젖은 장화 자국이 창문까지 이어졌다.선우현은 창으로 나갔고, 창틀 아래에는 지팡이 끝이 긁은 흠이 남아 있었다. 혼자 간 사람이 지팡이까지 들고 담을 넘었다. 운설은 화를 삼키지 않았다. 약낭을 메고 곧장 동쪽 문으로 갔다.경비는 연도하의 목패를 보고 문을 열어 주었다.“언제 받았어요?”“상단주께서 해 질 무렵 두고 가셨습니다.”선우현이 떠나기도 전이었다. 연도하는 그가 무엇을 할지 알았고, 막지 않은 채 말과 문을 준비했다.운설은 눈길의 말발굽 자국을 따라갔다. 한 시진쯤 지나 폐쇄된 봉수대에서 검신 깃발이 불에 그을리고 있었다. 선우현은 불 옆에 앉아 천을 결대로 뜯었다.“잘 타요?”그가 고개를 들었다. 운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 손등으로 이마부터 짚었다. 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깃발을 빼앗아 눈 위에 던졌다.“혼자 죽으면 편해요?”“죽으러 온 게 아니오.”“나한테 말하지 않고 담을 넘은 사람이 늘 그렇게 말했어.”“안에 옛 부대의 접는 법이 있었소. 누가 쓰는지 확인해야 했네.”“그래서 확인했어요?”선우현은 봉수대 벽을 가리켰다. 불에 데운 먹으로 그린 북쪽 진지가 있었다. 병력 이동 시간과 보급 횟수가 적혀 있었고, 한쪽에는 사람 키만 한 빈 윤곽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깃발을 걸어 놓고 선우현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연습한 자리였다.“여기에 한 시진 먼저 사람이 있었소.”“그 사람을 쫓았고?”“놓쳤소.”봉수대 밖에는 말 한 필이 매여 있었지만 안장에 탄 흔적은 없었다. 선우현은 말을 미끼로 두고 끝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운설이 지팡이 촉의 얼음을 털자 새 쇠 가장자리가 반쯤 갈려 있었다.“얼마나 따라갔어요?”“삼 리.”“거짓말.”“오 리.”“당신은 내 앞에서 숫자 줄이는 버릇부터 고쳐.”“그대는 화나면 상처보다 거짓말을 먼저 찾는 버릇이 있소.”“상처는 도망가지 않아. 거짓말은 다음 거짓말을 낳고.”운설은 부은 무릎에 차가운 천을 대고 양옆을 나무판으로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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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 세 갈래 눈길

첫째 길에는 말이 백이십 필, 둘째 길에는 수레 서른 대, 셋째 길에는 선우현 한 사람이 있었다.혈비의 기병은 왕궁 북문을 열고 관도로 나갔다. 붉은 달 깃발을 숨기지 않았다. 가짜 선우현 군세가 북방을 침범했다면 왕실이 정면으로 맞선다는 표시였다. 사백은 기병을 열 줄로 나누되 앞줄마다 다른 뿔나팔을 쥐여 주었다. 멀리서 들으면 천 명이 움직이는 듯 울릴 터였다.연도하의 수레는 서쪽으로 향했다. 앞 열 대에는 약재를 싣고 뒤 스무 대는 비워 두었다. 적이 약을 태우려 달려들면 빈 수레가 흩어지고, 진짜 약수레는 얼어붙은 개울 위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하란주는 바퀴마다 천을 감아 소리를 죽였다.선우현의 소수대는 동쪽 산길로 들었다. 운설, 한겸, 남궁완과 북방 길잡이 모수까지 다섯이었다. 선우현이 더 적은 사람을 원했고, 혈비가 그보다 적게는 허락하지 않았다.세 길의 목적도 달랐다. 혈비는 침범한 군세를 꺾으려 했고, 연도하는 빼앗긴 길과 사람을 되찾으려 했다. 선우현은 자기 이름으로 내려진 다음 명령이 어디서 생기는지 찾아야 했다. 운설은 어느 목적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나오는 곳으로 갈 뿐이라고 했다.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첫 신호가 왔다. 서쪽 하늘에 푸른 연기 두 줄. 연도하의 수레가 첫 검문소를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곧 관도에서는 혈비의 뿔나팔이 세 번 울렸다. 적과 접촉했으나 전투는 시작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동쪽 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남궁완은 출발 전 받은 작은 동경으로 햇빛을 튕겼다. 서쪽 수레가 답하면 한 번, 관도 기병이 답하면 두 번이었다. 세 차례 신호를 보냈지만 산허리 어디에서도 빛이 돌아오지 않았다. 길이 갈라진 지 반나절 만에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운설은 그 침묵을 메우려 사람들 숨소리를 들었다. 한겸은 오르막마다 왼발을 끌었고, 남궁완은 부채를 쥔 손을 옷소매 안에서 쉬었다. 모수는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전에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선우현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걷다가 남들이 보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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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 반달협의 배신

모수가 지도를 삼키려 했다.한겸이 그의 턱을 잡았지만 종이 귀퉁이는 이미 입안에서 젖었다. 운설이 손가락으로 목 안을 눌러 토하게 하자 모수는 눈 위에 엎드려 기침했다. 왕실 지도에는 그가 그리지 않았다고 했던 길이 선명했다.“가족이 어디 있죠?”운설의 첫 질문에 모수의 어깨가 무너졌다.그는 처음부터 배신하려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왕궁에서 출발한 뒤 첫 이정표까지만 틀리게 읽으면 가족을 풀어 준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첫 이정표에는 둘째 지시가, 둘째에는 셋째가 기다렸다. 매번 이번만 넘기면 된다는 글이 붙었다. 어느새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은 뒤에 있었다.“내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당신들이 내 가족부터 구했겠소?”한겸이 바로 답하지 못했다. 임무와 낯선 네 식구를 저울에 올리면 자신도 반달협을 먼저 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운설은 모수의 포승을 확인했다.“지금도 우리를 전부 살릴 생각은 없죠?”모수가 그녀를 보았다.“당신들 가운데 하나를 남겨야 저들이 가족 있는 곳을 알려 준다고 했소.”남궁완의 부채가 펼쳐졌다. 선우현은 누굴 남기기로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이 나오면 모수는 다시 거짓말할 터였다.승검회는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반달협 북쪽 벌목촌에 가두었다. 선우현 일행을 지도에 없는 절벽으로 데려오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절벽 아래에는 눈사태를 일으킬 화약이 묻혀 있었다.남궁완이 주변 칼잡이 셋을 제압했다. 그들은 모수의 가족을 본 적도 없다고 했다. 명령은 봉수대 벽에 매일 붙었고, 성공하면 가족을 보내 준다는 문장만 되풀이됐다.“허상에 우리를 팔았군.”한겸이 모수의 멱살을 쥐었다.“허상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습니다.”“그래서 다섯 목을 넣었나?”“내 목까지 여섯이오.”선우현이 둘 사이에 지팡이를 세웠다. 손목을 삐어 손끝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낮았다.“지금 판결하면 길을 아는 자가 사라집니다.”“살려 두자는 겁니까?”“빠져나간 뒤 그대가 법으로 물으시오.”한겸은 손을 놓았다. 혈비가 있었다면 칼을 들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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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 칼을 거꾸로 쥔 여자

숯막 지붕을 뚫고 들어온 것은 눈이 아니라 하문령이었다.그녀는 칼을 거꾸로 쥔 채 지붕 널빤지를 찍어 틈을 벌렸다. 운설과 남궁완이 아래에서 받치고, 한겸이 눈을 퍼냈다. 마지막으로 선우현이 빠져나오자 지붕이 완전히 내려앉았다.하문령의 왼쪽 관자놀이에는 마른 피가 붙어 있었다. 빈 칼집은 사라졌고 허리에는 승검회 병사의 검이 꽂혀 있었다.“따라오지 말랬잖아요.”“따라간 게 아니라 묻힐 뻔했소.”선우현의 답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은 것인지 욕을 삼킨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문령은 가슴 속에서 기름종이 지도를 꺼냈다. 반달협 북쪽의 보급 창고, 병사 교대, 봉화 순서가 적혀 있었다. 붉은 선은 백도겸의 성채까지 이어졌고, 검은 점은 가짜 선우현이 모습을 보이는 곳이었다.그녀가 적진에서 보낸 사흘은 지도보다 얼굴에 더 선명했다. 밥을 한 번 먹을 때마다 오른쪽 어금니로만 씹었고, 잠들려 하면 검을 무릎 위에 세웠다. 승검회 병사들은 맹추산의 제자라는 말만 듣고 그녀를 받아들였지만, 매일 새벽 하진악을 욕하게 했다. 하문령은 아비를 겁쟁이라 세 번 부르고서야 보급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그 말을 믿은 사람도 있었습니까?”선우현이 물었다.“제가 제일 먼저 믿을 뻔했습니다.”하문령은 자신이 뱉은 욕을 다시 삼키려는 듯 물을 마셨다. 손이 떨려 물 절반이 턱 아래로 흘렀다. 운설은 닦아 주지 않고 물주머니를 한 번 더 건넸다. 스스로 손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어디서 났지?”한겸이 물었다.“훔쳤습니다.”“누구에게서?”“스승에게서.”맹추산은 백도겸과 함께 북으로 달아난 뒤 보급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하문령은 적진에 섞여 그를 만났다. 죽일 수 있는 거리에 두 번 들어갔고 두 번 모두 칼을 거두었다고 했다.첫 번째는 스승이 잠든 밤이었다. 두 번째는 맹추산이 모수의 두 아들에게 죽을 나눠 주던 때였다. 칼을 뽑으면 죽일 수 있었지만 아이들 얼굴에 피가 튈 거리였다. 하문령이 망설이는 동안 맹추산은 눈을 뜨고도 소리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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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 붉은 달이 넘어진 자리

혈비의 말이 앞다리를 꺾으며 눈밭에 처박혔다.화살은 말을 겨눈 것이 아니었다. 얼음 아래 묻힌 밧줄을 끊었고, 밧줄에 매달린 통나무가 기병 후미를 덮쳤다. 선두를 노린 척하며 뒤의 보급마와 부상자를 자르는 매복이었다.혈비는 굴러 떨어지는 순간 안장에서 칼을 뽑았다. 말 몸통을 타고 넘어온 적의 창을 쳐 냈고, 눈에 무릎을 박은 채 두 번째 창대를 잘랐다. 사백이 그녀를 일으키려 하자 혈비는 후미를 가리켰다.“나 말고 수레.”통나무 아래 병사 셋이 깔려 있었다. 적은 성루도 진지도 없이 눈구덩이에서 솟아났다. 검신 깃발을 등에 묶은 북방인들이었다. 혈비의 옛 국경수비대에서 탈영한 자도 보였다.“칼을 버리면 산다!”사백이 외쳤다.“검신께서 북방왕 목을 가져오라셨다!”대답과 함께 화살이 쏟아졌다. 혈비는 깃발 든 자를 베려다 뒤에서 들린 비명을 들었다. 칼의 방향을 바꾸어 부상병 위로 떨어지는 통나무 조각을 쳐 냈다. 그 틈에 적의 칼끝이 왼쪽 허벅지를 갈랐다.사백이 적을 밀어내고 혈비를 말 뒤로 끌었다. 피가 장화 안으로 흘렀다.“지휘권을 받으십시오.”혈비가 말했다.“전하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내가 서 있느라 후미를 또 잃게 할 셈이냐.”그녀는 왕실 패를 떼어 사백의 가슴에 달았다. 주변 장수들이 주저하자 피 묻은 손으로 가장 가까운 깃대를 내려쳤다.“오늘부터 내 목소리를 기다리는 자는 지휘관이 아니다. 사백의 명을 들어.”사백의 첫 명령은 추격 중지였다. 두 번째는 쓰러진 통나무를 방패 삼아 부상자를 중앙으로 모으라는 것이었다. 혈비라면 적 깃발까지 빼앗으려 했을 순간에 그는 길부터 열었다.세 번째 명령은 적에게도 퇴로 하나를 남기는 것이었다. 포위하면 끝까지 싸울 자들이 북쪽 좁은 골짜기로 빠져나갔다. 혈비는 그 길 끝에 다시 적이 모일 것을 알았다.“놓친 숫자를 세었느냐?”“스물하나입니다.”“내가 지휘했으면 열도 못 갔다.”“대신 우리 쪽 열이 더 쓰러졌을 겁니다.”사백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혈비가 맡긴 권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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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 살아 있는 자의 장례

흰 천은 성문보다 길었다.검신 선우현의 장례에 모든 원한을 초대한다.검은 글씨 아래에 작은 붉은 글씨로 조건이 붙었다. 칼을 가져와도 좋고, 증언만 가져와도 좋으며, 그를 사랑했던 사람도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성문을 넘는 순간 누구도 선우현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선우현 일행은 혈비의 기병보다 먼저 성채 아래에 닿았다. 세 길이 다시 만났지만 연도하의 수레만 보이지 않았다. 서쪽으로 보낸 정찰도 돌아오지 않았다.성문 앞에는 유족들이 모여 있었다. 백발 노인은 선우현의 초상에 침을 뱉었고, 젊은 여자는 초상 앞에 따뜻한 술을 놓았다. 같은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끼리도 그를 살인자와 은인으로 다르게 불렀다.벽 한쪽에는 유족이 가져온 물건들이 걸렸다. 부러진 비녀, 타 버린 호패, 주인 없는 신발, 검신대가 남기고 간 은전 한 닢. 어떤 물건 아래에는 감사가 적혔고 어떤 곳에는 저주가 적혔다. 백도겸은 둘을 가르지 않고 같은 못에 걸어 두었다.선우현은 오래된 푸른 허리띠 앞에서 멈췄다. 십오 년 전 자신이 후퇴 명령을 늦게 내려 전멸한 전령대의 물건이었다. 유족 이름은 없고 기다리다 죽은 자라고만 쓰여 있었다. 그는 손을 대지 않았다.한 아이가 선우현의 얼굴을 알아보았다.“저 사람이 죽은 사람이에요?”아이 어미가 입을 막고 뒤로 물러났다. 경비병들은 선우현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열고 허리를 숙였다.“관이 기다립니다.”하문령이 칼을 뽑으려 하자 선우현이 지팡이로 칼집을 눌렀다.“네 이름도 관 속에 있다.”“그래서 먼저 열어 보려고요.”“저들이 원하는 순서대로 들어가면 네가 무엇을 고르는지 알기도 전에 역할이 정해진다.”운설은 성벽 위를 살폈다. 궁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흰 등마다 기름이 가득했고, 성문 바닥에는 물길처럼 얕은 홈이 파여 있었다. 불이 붙으면 바깥 군중까지 한꺼번에 갇힐 구조였다.남궁완은 유족들 사이에서 남궁가 사람 둘을 발견했다. 그들은 가문의 명 없이 왔다고 했다. 선우현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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