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설야팔부 (雪夜八部): Capítulo 351 - Capítulo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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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 살리고 싶지 않은 목숨

백도겸은 막다른 물창고에 앉아 있었다.무너진 성채 지하로 내려간 피 자국은 쇠문 앞에서 끊겼다. 하문령이 문틈에 칼을 넣어 빗장을 들었고, 운설이 어깨로 밀었다. 안에는 도망칠 길도, 숨은 병사도 없었다.백도겸은 벽에 기대 자기 다리의 붕대를 풀고 있었다. 운설이 묶은 매듭을 칼로 잘라 냈고, 상처에 박힌 검 조각을 절반쯤 뽑아 둔 상태였다. 피가 바닥의 얕은 물과 섞였다.“조금 늦었군.”그가 말했다.운설은 다가가지 않았다.“일부러 뽑았어요?”“그대가 치료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주려고.”“죽는 것도 남이 고르게 해야 해?”백도겸의 손이 검 조각에서 멎었다. 그는 운설이 달려들어 지혈하리라 생각했다. 의원이라는 이름을 이용하면 자기 목숨도, 자기 죽음의 의미도 그녀 손에 얹을 수 있었다.“나는 당신 치료 안 해.”운설이 말했다.하문령이 그녀를 보았다. 운설은 약상자를 닫았다.“밖에 선우현이 죽을 만큼 다쳤고 연도하 손도 아직 몰라. 내가 가진 시간과 약을 당신에게 쓰고 싶지 않아.”“의원이 환자를 고르는군.”“응. 지금은 골라.”백도겸은 의원이 그 말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리라 생각했는지 천천히 검 조각을 놓았다. 피는 계속 흘렀다. 운설의 시선이 상처로 내려갈 때마다 그는 손을 다시 가까이 가져갔다.“선우현은 살리고 나는 버리면, 그대도 사람 목숨에 값을 매긴 것이오.”“맞아.”운설은 부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값을 모두에게 법으로 강요하지는 않아. 내가 감당할 선택으로 남겨.”“그대 때문에 내가 죽으면?”“내가 기억해. 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치료까지 해서 당신 결말을 완성해 주지는 않아.”백도겸은 더는 상처를 건드리지 않았다. 죽음으로 운설에게 죄를 넘기려던 마지막 수단도 말을 얻는 순간 힘을 잃었다.말하고 나자 손끝이 떨렸다. 눈앞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일은 치료보다 힘들었다. 운설은 그 불편함까지 백도겸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자기가 내린 선택으로 그대로 들고 있었다.백도겸이 검 조각을 더 당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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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 서로의 경쟁자

무너지는 계단 앞에서 누가 누구를 업을지를 두고 말다툼이 붙었다.“그 팔로?”선우현은 옆구리를 묶은 채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피는 느려졌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붕대가 젖었다. 연도하의 오른팔은 가슴에 고정됐고 손가락 셋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왼팔과 등이 남았소.”“나는 다리가 남았네.”“일어날 수 있으면 해 보시오.”선우현이 벽을 짚고 일어났다. 두 걸음 만에 무릎이 꺾였다. 연도하가 왼팔로 허리를 받치면서도 다친 오른팔을 몸 사이에 끼우지 않으려 몸을 틀었다. 둘은 한 사람처럼 느리게 계단을 올랐다.선우현은 세 계단마다 멈췄고 연도하는 멈추지 않은 척 같이 섰다. 한쪽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한쪽은 손끝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서로 약한 곳을 말하면 자기 약점도 인정해야 해서, 두 사람은 성채 구조와 하란주 표식만 이야기했다.“운설이 보면 둘 다 눕힐 거요.”“먼저 도착한 사람이 덜 혼날 수 있소.”“그대는 밤새 문밖에 세울 걸세.”연도하가 잠깐 웃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웃는 움직임만으로 관통상이 당겼다. 선우현은 못 본 척 자기 걸음을 더 줄였다.두연복은 아련과 옛 부하들이 들것으로 먼저 옮겼다. 화살을 자르지 못한 채였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 검신검이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성채 지붕이 내려앉으며 앞 계단을 막았다. 뒤에서는 불길이 물길로 번졌다. 연도하는 벽에 적힌 상단 표식을 찾았다. 서쪽 수레를 들일 때 하란주가 남긴 화살표였다.두 사람 뒤로 물이 차올랐다. 불붙은 기름이 수면 위를 따라와 퇴로까지 밝게 비췄다. 빨리 가면 선우현 상처가 터지고, 느리게 가면 불이 닿았다. 연도하는 자기 외투를 벗어 물에 적셔 선우현 등에 덮었다.“장사꾼 옷값은 비싼데.”“살아 나가 청구하시오.”“운설에게 받을 거요.”선우현이 젖은 외투를 벗어 연도하 다친 팔까지 함께 감쌌다. 누구 몫인지 따질 여유가 사라졌다.“왼쪽 창고로.”“막힌 길이오.”“내 사람이 그렸소.”“그대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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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 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여자

하문령은 백도겸의 포승을 자기가 묶었다.한겸은 관원의 매듭으로 다시 묶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거절했다. 도망치면 어느 힘줄을 당겨야 멈추는지 아는 매듭이었다. 살리기로 한 사람을 놓치지 않는 방식도 칼을 배우며 익혔다.백도겸은 부상자 천막 한쪽에 누웠다. 운설이 치료하지 않겠다고 한 뒤 하문령이 지혈했고, 북방 군의가 최소한의 처치만 했다. 죽지는 않되 걷기도 어려웠다.“후회할 거요.”백도겸이 하문령에게 말했다.“무엇을?”“나를 죽이지 않은 것, 검신검을 부순 것, 아비 이름을 버린 것.”“아버지 이름은 내가 안 버려. 좋은 것만 남기지도 않을 거고.”하문령은 하진악 편지와 그가 죽인 사람 명단을 같은 주머니에 넣었다. 하나를 태워 다른 하나를 깨끗하게 만들지 않았다.한겸 앞에는 세 가지 재판안이 놓였다. 북방왕실은 국경 침범과 왕명 위조를, 중원 관부는 살인과 사병 조직을, 장례 유족은 기록 조작을 물으려 했다. 어느 쪽이 먼저 백도겸을 데려갈지 다투기 시작했다.“그는 물건이 아닙니다.”하문령이 말했다.혈비가 피식 웃었다.“네가 포승 잡고 있으니 네 물건처럼 보이는데.”“그래서 아무 데도 안 줍니다. 세 쪽이 같은 자리에서 죄목을 읽을 때까지.”“그런 법정은 없다.”한겸이 말했다.“만들어요.”남궁완은 가문 인장 없이 증언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연도하는 상단 장부를 공개하고 길목 마을 대표들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혈비는 북방 죄목을 먼저 집행하지 않는 대신 포로 감시를 맡았다.완전한 합의는 아니었다. 백도겸을 옮기는 수레가 출발할 때마다 서로 다른 호위가 교대하고, 모든 열쇠를 세 조각으로 나누기로 했다. 번거롭고 느렸으며 누구도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백도겸은 세 조각 열쇠를 보고 비웃었다.“밤중에 내가 죽으면 셋이 서로 탓할 거요.”“그래서 밤마다 당신 맥을 세 사람이 따로 적어.”하문령은 북방 군의, 중원 의원, 장례 유족 가운데 한 사람에게 같은 시각 맥을 확인하게 했다. 기록이 다르면 다음 역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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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 문을 닫은 밤

문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북방왕궁 별채에 돌아온 첫날 밤이었다. 선우현은 아직 옆구리에 붕대를 감았고 운설의 두 손바닥에도 칼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의원들은 따로 자라고 했고 혈비는 문밖에 호위를 세웠다.운설은 호위를 물린 뒤 문을 잠갔다.“왜 잠그오?”“오늘은 아무도 못 들어와.”선우현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가 등잔을 줄이는 모습을 보았다. 불빛이 하나씩 낮아질수록 성채에서 놓친 말들이 방 안에 가까워졌다.운설이 그의 앞에 섰다.“왜 도하부터 찾았어?”“다친 손이 마음에 걸렸소.”“그 사람을 살리고 싶었어요?”“그렇소.”대답이 빨라 운설은 다음 말을 잃었다. 선우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가 죽으면 내가 편해질 거라 생각한 적도 있네. 물속에서는 그 생각보다 먼저 손이 나갔고.”“나 때문에?”“그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람 때문이기도 하오.”운설은 그의 무릎 사이로 한 걸음 들어갔다. 손바닥 상처가 닿지 않게 손등으로 뺨을 쓸었다.“나도 그 사람이 죽는 건 싫어.”선우현의 턱이 굳었다.“알고 있소.”“안다고만 하지 마.”“질투했네.”그가 운설의 허리를 당겼다. 상처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할 줄 알았던 손이 단단했다.“그대가 그의 손을 붙잡는 동안, 내가 살아 돌아온 것도 잊을 만큼.”“그래서?”“지금 확인하고 싶소.”“뭘.”“그대가 여기 있다는 것.”입술이 닿기 전 숨이 먼저 섞였다. 운설은 그를 피하지 않고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베인 손바닥이 뺨에 닿자 선우현이 아주 조심스럽게 손목을 잡아 내렸다.“아프네.”“당신 옆구리보다는 덜해.”“그러니 천천히.”그 말과 달리 운설이 먼저 입을 맞췄다. 며칠 동안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선우현은 한 손으로 그녀 뒷목을 받치고, 다른 손은 허리 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오래 머물렀다.운설이 입술 사이로 짧게 숨을 삼켰다. 그 소리에 선우현의 손끝이 떨렸다. 그는 더 가까이 당기려다 옆구리에 힘이 들어가 얼굴을 찌푸렸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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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 한 치를 남긴 사람

밤새 문밖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연도하는 방금 왔다고 답했다.“방금 왔소.”운설이 문을 조금만 열고 내려다보았다. 그의 어깨와 머리 위에는 새벽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방금 왔다는 거짓말치고는 너무 차가웠다.“왜 안 불렀어요?”“안에서 잘 들리던데.”운설의 귀가 붉어졌다. 문 안에서 선우현이 마른기침을 했다. 연도하는 웃지 않고 시선을 내렸다.그의 오른손 손가락 둘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밤사이 감각이 돌아오는지 보려고 바늘로 찌른 흔적도 있었다. 운설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손 보여 줘요.”연도하는 왼손만 내밀었다.“장난할 때 아니야.”“나는 늘 장난할 때요.”운설이 오른팔을 직접 끌어왔다. 손목 맥과 손가락 혈색을 보고 하나씩 눌렀다. 약지에는 희미한 감각이 돌아왔으나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통증은?”“당신이 잡은 곳은 납니다.”“나머지는?”“모르겠소.”운설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연도하의 얼굴에는 평소의 매끈한 웃음이 없었다.“떠나려고 왔어요?”“서쪽 약길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내가 없는 동안 하란주가 장부를 너무 정직하게 썼어.”“언제?”“오늘.”“손이 이 모양인데?”“손 하나 때문에 당신들 문밖에서 계속 살 수는 없지.”그는 문 안을 보지 않았다. 선우현이 듣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물러난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운설의 손이 멎었다.“당신이 그 사람을 고른 것도 알고, 어젯밤 문을 잠근 뜻도 알아. 그래도 내가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겠소.”“도하.”“선택하라고 안 해. 기다린다고도 안 하겠습니다. 내 길을 살다가 당신이 부르면 오고, 안 부르면 내 욕망은 내가 들고 가지.”운설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고맙다고 하면 거절을 포장하는 말이 되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의 마음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 것 같았다.연도하가 한 걸음 물러났다.“그 한 치는 배웠소.”그가 왼손을 들어 운설 턱 가까이 가져왔다가 닿기 전 멈췄다. 장례 창고에서 허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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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 맹주 없는 길

협약문 첫 장은 하루 만에 찢어졌다.북방왕궁 대전에 길목 마을 열둘, 상단 셋, 문파 다섯, 북방 장수와 중원 관원이 모였다. 백도겸이 잡힌 뒤 누가 길을 지킬지 정하려는 자리였다. 이름부터 합의되지 않았다. 한겸은 통행 공동규약이라 썼고, 촌장 진패는 겨울길 약속이라 고쳤다. 연도하 측 사람은 길마다 장부 규격부터 맞추자고 했다.남궁완의 숙부는 무림맹이 임시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산적이 오는데 네 조각 열쇠를 맞추고 있을 셈이냐?”혈비가 물었다.“지휘가 없으면 각 마을이 제 살길만 찾습니다.”“그 지휘가 다시 검신 이름을 쓰면?”“감시하면 됩니다.”“누가?”대답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운설은 상석에 앉지 않고 창가에서 선우현 붕대를 갈았다. 둘은 협약 대표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검신 이름을 다시 의자에 올리려 할 때마다 선우현이 입을 열어야 했다.“임시로만 맡아 주시오.”남궁 장로가 말했다.“한 달 뒤 내려놓아도 됩니다.”“내가 한 달 쓴 이름을 다음 사람이 평생 빌릴 거요.”선우현은 거절했다.“그럼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겁니까?”곽 노인이 유족석에서 물었다.“내가 내린 명령은 책임지겠소. 앞으로 남들이 내 이름으로 내릴 명령까지 주인이 되지는 않겠소.”곽 노인은 만족하지 않았지만 더 밀지 않았다. 아들 죽간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그는 협약보다 먼저 자기 마을에서 증언 자리를 열겠다고 했다.회의는 세 번 깨졌다. 첫째는 통행세 비율, 둘째는 무장 인원, 셋째는 위급 시 단독 명령을 허용할지 때문이었다. 연도하는 자리에 없었지만 하란주가 왼손으로 쓴 그의 장부를 가져왔다. 글씨가 비뚤어 읽기 어려웠고 숫자는 정확했다.연도하는 네 주체가 같은 장부를 나눠 갖고, 한 곳이라도 수치가 다르면 다음 달 통행세를 걷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길목 마을, 운송 상단, 지역 관부, 순찰 무사대였다.“넷이 짜고 속이면?”진패가 물었다.“다섯째로 길을 쓰는 사람이 원장과 대조하시오.”“그 다섯째가 또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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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 돌아오는 날짜

백로진 약방 달력에는 비어 있는 날이 스물아홉 칸이었다.운설은 집을 떠날 때 돌아올 날짜를 쓰지 않았다. 약방을 맡은 왕철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달력 귀퉁이에 작은 점만 찍었다. 스물아홉 번째 점을 찍던 아침, 골목 끝에서 지팡이 소리와 수레바퀴 소리가 함께 들렸다.문 앞 사람들이 먼저 뛰어나왔다. 떡집 노파, 대장장이, 약값을 외상으로 달아 둔 환자들이 저마다 질문을 던졌다. 북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신이 정말 죽었는지, 상단주는 왜 같이 오지 않았는지.“환자부터 내려요.”운설의 한마디에 질문이 흩어졌다.수레에는 두연복과 성채에서 다친 사람 셋이 타고 있었다. 백도겸과 맹추산은 공동 호위 아래 다른 길로 재판지에 갔다. 하문령은 그 수레를 따라갔고, 아련은 진무경 기록을 들고 자기 마을로 향했다. 함께 떠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문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선우현은 새 지팡이를 짚었다. 북방 마구간 소년이 넓은 쇠촉을 달아 준 물건이었다. 옆구리 때문에 걸음은 더 느려졌지만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약방 문턱을 넘었다.안방 문 뒤에서 작은 얼굴 하나가 내다봤다.단은 부모를 알아보고도 바로 달려오지 않았다. 떠날 때보다 머리카락이 길었고, 낯선 상처와 냄새를 본 눈이 조심스러웠다. 운설이 먼저 앉아 팔을 벌리지 않고 기다렸다.“어머니 왔어.”아이는 잠깐 왕철 바짓자락을 잡았다가 운설에게 두 걸음 다가왔다. 그 뒤 선우현의 새 지팡이를 보자 방향을 바꿨다. 손잡이를 붙들고 그대로 달아났다.선우현이 빈손으로 섰다.“내 지팡이오.”단은 마당 끝에서 지팡이를 말처럼 타고 웃었다. 낯섦은 그 짧은 장난 사이 풀렸다. 선우현이 잡으러 가려다 옆구리를 누르자 운설이 어깨를 잡았다.“천천히.”“저 아이가 먼저 훔쳤소.”“당신한테 배웠네.”왕철이 단을 데리고 뒤뜰로 가자 운설과 선우현은 약방으로 돌아왔다. 아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탁자에는 밀린 처방전과 약재 장부가 쌓여 있었고 대기 환자만 열한 명이었다.약방도 두 사람이 떠난 동안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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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 아직 끝나지 않은 강

물자국은 아침까지 마르지 않았다.운설은 뒤뜰 돌을 들어 올렸지만 아래에는 흙뿐이었다. 우물에서 샌 물도, 약재 독에서 흐른 물도 아니었다. 손바닥을 가까이 대자 오래전에 놓아 보낸 월하의 강과 닮은 울림이 났다.“그대 안에서 나는 소리요?”선우현이 물었다.운설은 눈을 감았다. 몸 안에는 예전처럼 가득 찬 강이 없었다. 여덟 갈래로 나누고 남은 얕은 물길만 조용했다. 돌바닥 소리는 바깥에서 왔다.“달 걸쇠.”그녀는 여덟 사람에게 전갈을 보냈다. 여리, 진눈, 타간, 누리, 마르간, 더운돌, 묵할멈, 흑요. 각자 침통에 달린 월하의 조각을 확인하고 방울을 세 번 울리라고 했다.가장 먼저 여리의 답이 왔다. 동상 환자를 보던 아이는 이제 북쪽 마을을 도는 의원이 되어 있었다. 걸쇠는 제자리에 있고 물소리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진눈은 자기 폐보다 걸쇠 소리를 먼저 들을 만큼 나아졌다. 타간은 부엌 화상 환자를 치료하다 답을 보냈고, 누리는 전갈 방향을 한 번 잘못 보내 하루 늦게 도착했다. 마르간과 더운돌, 묵할멈의 답도 차례로 왔다.흑요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일곱 답장에는 각기 다른 이상도 적혀 있었다. 여리의 걸쇠는 얼음 가까이 가면 뜨거워졌고, 진눈 것은 환자가 거짓으로 아프다 해도 울렸다. 타간의 조각은 불에 넣어도 녹지 않았으며 묵할멈의 것은 말하지 못하는 환자 앞에서만 가볍게 떨렸다. 나눈 뒤의 월하는 하나의 법이 아니라 각자 손에서 다른 도구가 되어 있었다.그래서 흑요의 침통 하나가 사라진 일은 여덟 중 한 조각이 줄었다는 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조각이 노파의 감시와 의심을 배운 채 누군가 몸 안으로 들어갔다면, 다른 일곱을 찾는 방식도 알고 있을 수 있었다.선우현은 답장의 봉투를 냄새 맡았다. 여리 것에는 북쪽 잣나무, 타간 것에는 기름 연기, 묵할멈 것에는 강가 진흙 냄새가 났다. 그런데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세 봉투에 같은 향 가루가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누군가 전령을 중간에서 만났소.”향은 황실 문서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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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 맥이 없는 환자

소년은 제 발로 약방까지 걸어왔다.비가 오지 않았는데 회색 옷자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얼굴은 눈밭에 오래 묻힌 사람처럼 희었다. 한 손에는 흑요의 침통이 들려 있었다. 달 걸쇠는 떨어져 나가고 빈 고리만 남았다.“담우?”운설이 묻자 소년은 대답 대신 약방 문턱에 앉았다.“여기까지는 혼자 왔습니다.”“누가 쫓아와?”“지금은 없어요.”선우현이 골목을 살폈다. 발자국은 소년 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젖은 자국은 골목 입구가 아니라 약방 세 걸음 앞에서 갑자기 시작됐다.운설이 손목을 잡았다.맥이 없었다.선우현은 소년 코앞에 얇은 거울을 댔다. 김이 맺혔다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늦게 사라졌다. 왕철이 등 뒤에 손을 넣자 척추 양옆으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지나갔다. 심장이 하던 일을 몸 안 물길이 나누어 하고 있는 듯했다.“아프냐?”선우현이 물었다.“어디가 제 몸인지 모르겠어요.”담우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고 낯선 물건을 보는 얼굴을 했다.“걷다가 발이 먼저 멈추고, 잠들면 다른 사람이 제 눈으로 산을 봅니다.”운설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없는 맥을 억지로 찾는 대신 소년이 말할 때 목에서 울리는 진동을 셌다.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피부 아래 아무 박동도 잡히지 않았다. 목과 발목을 짚어도 같았다. 그럼에도 담우는 숨을 쉬고 눈을 깜박였다.“언제부터 이랬어?”“사흘.”“맥이 멎고 사흘 동안 걸었다고?”“걸은 건 하루예요. 나머지는 물이 데려왔어요.”운설은 곧장 침상에 눕히지 않았다. 소년이 문턱을 붙든 손부터 보았다. 손바닥 한가운데 이지러진 달 모양 화상이 있었다. 걸쇠를 녹여 몸에 넣은 흔적이었다.“흑요 걸쇠를 어떻게 했지?”담우가 웃었다. 입술 사이로 맑은 물 한 줄이 흘렀다.“삼켰어요.”“쇠를?”“녹인 달을.”운설은 선우현에게 화로를 끄라고 했다. 열을 올리면 몸 안 물길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왕철에게는 환자를 모두 돌려보내고 뒤뜰 문을 잠그게 했다.담우가 침상에 눕자 젖은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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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 버린 강의 주인

담우의 몸 안에서 두 번째 방울이 울렸다.첫 소리는 흑요의 걸쇠였다. 두 번째는 운설이 본 적 없는 음이었다. 더 낮고 무거워 쇠보다 뼈를 두드리는 듯했다.“달 조각이 하나가 아니야.”운설이 소년 가슴 위로 손을 옮겼다. 푸른 강줄기 가운데 서로 다른 두 물결이 부딪쳤다. 하나는 여덟 조각으로 나눴던 월하, 다른 하나는 더 오래되고 탁한 흐름이었다.담우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여덟 번째가 아니에요.”“목패에는 그렇게 썼어.”“그들이 보라고.”“누가?”소년은 골목 창문부터 확인했다. 선우현이 문밖을 살피고 돌아와 빗장을 걸지 않은 채 문 앞에 섰다. 도망갈 길은 남겨 두되 들어오는 사람은 보려는 위치였다.담우는 설산 지하 방의 진짜 쓰임을 말했다. 무진이 만든 곳이 아니었다. 눈먼 노승이 암자에 오기 훨씬 전, 월하 왕가가 실패한 그릇을 숨기던 곳이었다. 강을 온전히 담지 못한 사람은 맥이 사라지거나 몸 안 물이 썩었다. 기록에는 이름 대신 차례를 나타내는 숫자만 남았다.“저는 열아홉 번째입니다.”운설의 손이 멎었다.“앞의 열여덟은?”“관이 비어 있었습니다.”“살아 나갔다는 뜻이야?”“누군가 가져갔다는 뜻이에요.”황실 감찰 고윤은 그 빈 관을 찾았다. 딸을 살리려 월하의 조각을 모았고, 백도겸에게는 북방 길을 틀어쥘 힘을 주었다. 승검회가 모은 약재와 환자 기록은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어떤 몸이 월하를 견디는지 고르는 장부이기도 했다.운설은 백도겸의 치료소 장부를 떠올렸다. 맥이 느린 사람, 상처가 빨리 아문 사람, 독을 견딘 사람이 따로 표시돼 있었다. 장례의 유족 명단까지 다음에 시험할 몸을 고르는 데 쓰일 수 있었다.“백도겸은 알고 있었어?”“절반만요. 길을 만들면 황실이 법으로 인정해 준다고 믿었습니다.”“고윤의 딸은?”“자기 아버지가 한 일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담우는 그 말을 비난하지 않았다. 자신도 여자를 살리려고 걸쇠를 녹였다. 한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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