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객주 방에는 빈 자리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선우현은 그 자리에 연도하의 수레표를 내려놓았다.“무한에는 데려가지 맙시다.”운설이 젖은 머리를 닦던 천을 멈췄다.“왜요?”“고윤의 길을 안다는 이유로 또 그 사람 판단에 기대게 되오.”“그 길을 만든 사람이니 끝까지 봐야죠.”“보고 계산받을 곳은 무한이 아니어도 되오.”“당신도 검신 장례에서 끝까지 봤어요.”선우현의 턱이 굳었다. 등잔불 아래서 포승 자국이 난 손목만 보였다.“그때 나를 데려간 것은 그대였지.”“그래서 알아요. 듣기 싫은 증언일수록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걸.”“가까이 두고 싶은 까닭이 그것뿐이오?”말이 떨어진 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운설은 천을 상 위에 놓았다.선우현은 질문을 거두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질투를 걱정이라는 말 속에 숨기고 연도하를 다른 길로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보기 싫은 자기 욕망까지 운설 앞에 꺼내 놓고 있었다.운설도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연도하가 이마 한 치 앞에서 멈추던 손과, 부상당한 채 문밖에 앉았던 새벽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일을 배신처럼 감추면 선우현은 다시 그녀 침묵을 짐작해야 했다.“질투하는 거면 그렇게 말해요.”“질투하오.”선우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 사람이 그대 앞에서 죄를 꺼내 놓고, 그대가 끝까지 들어 주는 것이 싫네. 상처 난 손을 볼 때마다 그대 눈이 먼저 가는 것도.”“그래서 길에서 빼고 싶어요?”“그 마음도 있소.”숨기지 않은 말은 거칠었다. 운설은 화를 내는 대신 한 걸음 가까이 갔다.“그럼 당신이 옳은 까닭과 원하는 까닭을 섞지 마.”“섞여 있네.”“나도 그래요. 도하가 한 일을 알고 싶고, 끝까지 값을 치르는 걸 보고 싶어. 그 사람이 죽거나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도 있어.”“그대를 원하는 마음을 놓지 않겠다 했지.”“그랬어요.”“그 말을 들었을 때 싫지 않았나?”운설은 바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내가 아직 누군가의 욕망이 될 수 있다는 건 싫지 않았어요. 그
일곱째 수레라는 말에서 연도하의 붓이 멎었다.그믐까지 남은 날을 세려던 상 위였다. 마르간이 그린 수뢰 그림과 누리 편지, 여덟 수레표를 날짜대로 맞추자 일곱째 수레가 석잔촌을 지난 밤이 비어 있었다.“그날 어디서 잤어요?”운설이 물었다.“잠들지 않았소.”“왜?”연도하는 대답 대신 수레표 모서리를 눌렀다.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종이 밖으로 처졌다.선우현이 물었다.“무슨 소리를 들었나.”한참 뒤 연도하가 입을 열었다.“기침.”마부 셋이 같은 소리를 들었다. 봉한 짐칸 안에서 사람이 숨을 참다가 터뜨리는 마른기침이었다. 첫 번째에는 나무가 마찰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두 번째에는 수레를 세웠다.그날 밤 바람은 북관 쪽에서 불었다. 수레를 멈추자 뒤 약짐에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말들이 울었다. 관문 위 횃불은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연도하는 짐칸 옆에 귀를 댔다. 안쪽 사람이 손바닥으로 벽을 세 번 두드렸다. 그는 같은 수로 답했고, 벽 너머에서는 손톱이 널을 긁는 소리가 났다.“물이 필요하오?”그가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작은 구멍이라도 뚫으려 칼끝을 댔다가 황실 밀랍 아래 이어진 검은 실을 보았다. 봉함이 끊기면 관문에서 곧 알 수 있는 줄이었다.뒤 수레 마부가 약짐을 가리켰다. 그중에는 해산 뒤 피가 멎지 않는 여인에게 갈 약과 폐병 마을의 겨울 뿌리가 실려 있었다. 어느 이름도 짐칸 안 사람보다 가볍지 않았다.연도하는 칼을 거두었다.“열지 않았소.”“왜요?”“그날 북관 문이 닫히기 한 시진 전이었소. 봉함을 풀면 수레뿐 아니라 뒤따르던 약짐 스물두 대가 전부 돌아가야 했네.”연도하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도 세 번 두드려 답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는 마부에게 출발하라 했다.“스물두 대 약을 기다리던 마을이 있었소.”“그 말로 정했군.”선우현의 목소리는 낮았다.“그때는 충분한 까닭이라 생각했소.”“지금은?”“여전히 그 약으로 산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더 싫소.
편지는 황실 약봉지 안쪽에 꿰매져 있었다.촌장이 약 백 첩을 받은 날의 봉함을 뜯자 누런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누리의 글씨는 길을 자주 잘못 전하던 때처럼 획 하나가 거꾸로 누워 있었다.타간이 첫 줄을 읽었다.운설 의원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저는 무한에 들어간 뒤일 겁니다.누리는 속았다고 쓰지 않았다. 석잔촌과 자기 고향에 보낼 약 백 첩을 받고 한 달 동안 몸을 빌려주기로 했다고 적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다 알지 못했지만 손목의 조각으로 물길을 찾는 일이라는 설명은 들었다.끌려간 사람으로 쓰지 마십시오. 제가 골랐습니다.명주가 그 줄을 손가락으로 오래 짚었다.다음 문장은 운설에게 향해 있었다.다만 의원님도 우리에게 조각을 나눠 주고 떠났습니다. 그날은 살아났지만 다음 겨울에 무엇이 될지는 묻지 않았습니다.담우가 운설 눈치를 보았다. 타간은 읽기를 멈췄다.“나머지는 제가 읽겠습니다.”운설은 편지를 받아 끝까지 소리 내어 읽었다.누리는 원망만 적지 않았다. 걸쇠가 거짓말을 알아보는 때, 열이 오르는 날, 남의 상처를 고치고 나면 자기 다리가 얼마나 오래 저리는지를 적었다. 조각은 선물이면서 일감이었고, 때로는 다른 사람이 기대는 빚이었다.여리에게는 추운 날 손가락 없는 자리가 타들어 갔고, 진눈은 남의 기침을 들을 때마다 자기 폐가 따라 아팠다. 누리는 그 일을 전갈로 들으며 처음에는 모두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다 조각을 빼 달라는 편지가 두 번 왔다.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몰라 누리는 품고 다녔다. 운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힘을 되돌려 주는 길을 아는 이는 없었다.나누는 날에는 문이 열렸지만 돌려주는 문은 없었습니다.운설은 그 줄 앞에서 오래 멈췄다. 자신은 독점을 깨려 했고, 떠나는 자유까지 주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 어느 문을 두드릴지는 남기지 않았다.돌려드리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살린 사람이 다시 아플까 입을 다뭅니다.마지막에는 무한으로 오고 싶다면 누구의
서련이 첫 약 사발을 벽으로 밀어 버렸다.명주의 손이 움직였으나 목소리는 물그릇에서 나왔다.“그걸 먹이면 손부터 썩는다.”타간이 깨진 사발을 주우며 투덜댔다.“당신이 불러 준 양대로 달였소.”“이 마을 황련은 우리 고을 것보다 독해. 혀가 없나?”“곰보는 얼굴에 났지 혀에 난 게 아니오.”두 약사는 한 몸을 사이에 두고 사흘 내내 다퉜다. 운설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환자 셋에게 아주 적은 양부터 먹였다.우물물은 아침마다 한 숟갈씩 줄였다. 대신 흰 나무껍질과 데운 소금, 타간이 겨울마다 말리던 뿌리를 넣었다. 첫 환자는 둘째 날까지 손이 굳지 않았고, 둘째는 밤마다 오던 오한이 한 번 줄었다. 셋째는 약을 바꾸자 숨이 더 가빠졌다.셋째 환자 묵돌은 우물물을 입에 대기 전부터 숨을 얕게 쉬던 사람이었다. 열병 뒤 생긴 가슴 상처를 물의 힘으로만 누르고 있었던 탓에, 약을 줄이면 묵은 피가 먼저 막았다.운설은 물을 다시 늘리지 않고 등을 두드려 검은 피를 토하게 했다. 타간은 물을 주자고 세 번 말했으나 묵돌이 고개를 저었다.“늘리면 오늘은 편하겠지. 내일 또 줄일 때 같은 고비를 넘어야 하오.”환자가 고른 말을 듣고 타간은 사발을 내려놓았다. 약사가 살리고 싶은 속도와 환자가 견디고 싶은 속도가 처음으로 갈라졌다.“셋이 같은 병이 아니에요.”운설이 말했다.타간은 처음부터 한 처방을 나눠 먹인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우물물이 모두를 살렸다는 믿음 때문에 다른 몸을 보지 못했다.“그럼 저 사람은?”“물을 갑자기 줄이지 않습니다. 시간을 더 들여야 해요.”촌장은 사흘 약조가 끝난다며 불안해했다. 명주는 우물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라진 맥 자리를 쓸었다. 눈앞의 물을 삼키면 살아날 수 있다는 서련의 말과, 그러면 환자 셋이 다시 얼 수 있다는 타간의 말이 같은 입에서 번갈아 나왔다.셋째 밤, 명주가 운설에게 나무 칼집을 달라고 했다.“칼도 없는데 왜요?”“제 손을 넣고 묶어 주세요.”“어제는 포승만으로 버텼잖아요.”“오늘은
밧줄 끝은 촌장의 손바닥을 깊이 베고 있었다.우물 안으로 내린 쇠망에는 흰 돌덩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달 걸쇠 소리가 가장 크게 나는 벽을 깨서 돌째 꺼내려 한 것이다.선우현이 밧줄을 밟았다.“어디로 가져가려 했소?”촌장은 놓지 않았다.“당신들이 못 꺼내게 숨길 거요.”“황실에도?”“황실은 이게 있어야 약을 줍니다.”그는 조각을 팔려 한 것이 아니었다. 운설이 대신 쓸 처방을 찾은 뒤 우물을 비울까 두려워, 자기 집 지하에 돌을 옮길 생각이었다.타간이 촌장 뺨을 때렸다.“이 물은 네 것이 아니야.”“네 것은 되고?”촌장의 되물음에 타간 손이 멎었다.“누구에게 물어보고 걸쇠를 넣었는데? 죽은 열하나 가족한테? 살아난 스물하나한테? 우물 쓰는 집들한테?”타간은 때린 손을 내렸다. 걸쇠를 넣은 선택은 사람을 살렸지만 마을 전체에게 묻고 한 일은 아니었다.“내가 했소.”그는 운설을 보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첫날 내가 넣었다. 촌장은 우물 자리를 감췄고, 황실 사자에게는 걸쇠가 그대로 있다고 약조했소. 저 사람 혼자 묶어 끝낼 일이 아니오.”촌장이 품에서 가죽 장부를 꺼냈다. 황실 약이 온 날과 양, 그 대가로 내준 물과 사람이 적혀 있었다.촌장은 장부를 자기 집에 두지 않았다. 우물가 죽은 이들의 위패 뒤에 감췄다. 누구도 쉽게 태우지 못할 곳에 두면서도, 살아 있는 이들이 날마다 보지 않는 자리를 골랐다.“이걸 왜 이제 내놓습니까?”운설이 묻자 촌장은 피 묻은 손바닥을 폈다.“어젯밤까지는 우리가 얻은 약만 보였소. 오늘 저 돌을 숨기려다 타간 말이 맞는 걸 알았지. 나도 내 선택을 남의 눈에서 감추고 있었소.”타간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마을 한가운데 펼쳐 놓자고 했다.첫달에는 우물물 열 항아리, 둘째에는 병을 견딘 사람 셋의 피, 셋째에는 타간이 모르는 소년 하나의 수결이 있었다.“이 사람은 누구예요?”운설이 물었다.촌장이 입술을 핥았다.“삭월 궁에서 전갈 나르던 아이. 이름이 누리랬소.
두레박은 김이 나는 물을 길어 올렸다.겨울도 아닌데 물은 사람 체온만큼 따뜻했다. 흰 광물 사이로 푸른 점이 떠다녔고, 두레박 밑에서는 달 걸쇠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타간이 침통을 풀어 운설 앞에 놓았다.“지난겨울 열병이 마을을 돌았소. 약을 아무리 써도 사흘째면 숨이 얼었지.”환자는 서른둘이었다. 그중 열하나는 어린 나이에 죽고, 남은 사람도 손발 끝부터 굳어 갔다. 황실에서 약 백 첩이 왔으나 병을 늦출 뿐 낫게 하지는 못했다.타간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솥 뚜껑 안쪽에 새겨 두었다. 살아난 사람만 세면 자기가 옳았다고 믿게 될까 두려웠다고 했다. 이름 열하나 사이에는 칼끝이 미끄러진 자국과 다시 새긴 획이 겹쳤다.촌장은 그 뚜껑을 사람들 앞에 보이지 말라 했고, 타간은 매일 약을 달일 때마다 열어 보았다. 둘은 같은 우물을 지키면서도 기억하는 방법이 달랐다.“그래서 걸쇠를 녹였습니까?”“불에는 안 녹더군. 우물 바닥 흰 돌 위에 놓으니 물이 먹었소.”타간은 누구에게 묻지 않았다. 첫 환자의 숨이 돌아온 뒤에는 꺼내려 했지만 걸쇠가 우물 벽 속으로 스며든 뒤였다.장정 하나가 소리쳤다.“그 물 아니었으면 우리 절반은 죽었소.”다른 여인이 반박했다.“그 뒤 황실이 우물 앞에 사람을 세웠잖아. 약도 저 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줬고.”마을은 물 덕에 살았고 같은 물 때문에 감시받았다.운설은 환자 셋을 보았다. 열병은 지났으나 하루라도 우물물을 마시지 않으면 입술이 파래지고 손이 굳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물을 마시게 하자 첫 환자의 손가락이 한 식경 안에 오므라들었다.첫 환자 옥심은 손이 굳기 전 실을 꼬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우물 덕에 살았지만 이제 하루 두 번 물을 마시지 않으면 발끝 감각도 잃었다.“이 물을 빼면 나는 다시 겨울로 갑니다.”옥심이 명주를 보며 말했다.“그래도 당신 몸에 필요한 거라면 내 앞에서 말해요. 밤에 훔쳐 가지 말고.”명주는 우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옥심 앞에 앉았다.“필요합니다.”“그래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