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ício / 로판 / 위협적인 소유의 설계자 / Capítulo 121 - Capítulo 130

Todos os capítulos de 위협적인 소유의 설계자: Capítulo 121 - Capítulo 130

177 Capítulos

121. 지독한 미련

같은 시각, 아르젠트 궁의 집무실. 르세인은 바델이 올린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카시안은.”“여전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카르노스의 연락망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지만 영애의 안위에 대해서만 반복적으로 묻고 있습니다.”르세인의 펜 끝이 멈췄다. 그는 서류 위에 묻은 잉크 얼룩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그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에게 형을 가하라 했을 텐데. 바델, 내 명령이 비효율적으로 전달된 건가.”“아닙니다, 전하…. 이미 그의 몸은… 서, 성하지 않습니다….”르세인은 다시 펜을 움직였다.“그가 영애를 걱정할수록 영애는 내 곁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날 거다. 그 절망의 대비는 가장 완벽한 제국의 풍경이 될 테지.”*** 레비안 전각의 정오를 알리는 시계탑의 타종 소리는 묵직했다.엘라엔은 벨모어 백작 부인이 내민 비단 장갑을 끼고 있었다.“영애. 황후 폐하와의 오찬은 제국에서 가장 정교한 연극이어야 합니다. 특히 정부들은 영애의 사소한 실수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엘라엔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무표정한 안색을 응시했다.가슴속에는 여전히 카시안이 남긴… 타버린 나뭇조각이 숨어져 있었다.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를 저주하다가도, 문득 지하 감옥의 습한 공기 속에 홀로 남겨진 그를 떠올리면 숨이 턱 막혔다. 그건 미련이라기보다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라 믿었던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비참한 파편이었다.“준비가 끝났습니다. 나가시죠.”엘라엔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전각을 나섰다.오찬이 있을 회랑의 천장은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로 덮여 있어, 정오의 태양광이 쏟아질 때마다 바닥의 녹색 대리석 위로 몽환적인 물결무늬를 만들어냈다.그 빛은 부드러웠으나 그 아래 모인 여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바늘 끝 같았다.엘라엔은 황후 로잘린의 바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르세인이 하사한 백색 실크 드레스 위로 황후가 직접 선물한 남부산 레이스 숄을 어깨에 두른 채였다.황후는 엘라엔을 바라보는 내내 흐뭇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19
Ler mais

122. 내 인내심은

엘라엔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르세인은 가슴 한구석이 이유 없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수치화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했으나 지금 느껴지는 이 불쾌한 통증만은 도무지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방금 전, 그녀가 장미 차를 마시며 아주 찰나의 순간… 슬픔에 젖은 눈동자로 어딘가를 보았다는 것을 똑똑히 본 르세인은 미간을 좁혔다. 평소라면 절대 오지 않았을 이곳에 발을 들인 상황도 우스웠다.‘소유물의 결함인가. 아니면 관리의 부실인가.’그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엘라엔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차가운 이성 아래 잠들어 있던 야만적인 소유욕을 꿈틀거리게 했다.‘어머니가 그리운 건가.’르세인은 엘라엔의 찻잔에 손을 뻗어 각설탕 통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영애, 설탕을 넣죠. 당신의 눈에 서린 그 쓴맛을 지우려면 이 정도의 달콤함으로는 부족할 테니.”르세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게 깔렸다.그는 엘라엔이 설탕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르세인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위로인지, 아니면 그녀의 내면을 확인하려는 추궁인지 알지 못했다.다만, 엘라엔이 모친이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한… 그러니까, 카시안을 향한 미련의 조각을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면 그는 이 우아한 오찬장을 통째로 부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운 적 없는 그가 처음으로 마주한 질투라는 이름의 발작이었다.황후 로잘린은 아들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황태자. 그대가 라안느 양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단지 그 영특함 때문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좋습니다, 라안느 양. 이제 그대가 답할 차례예요. 황태자가 내미는 이 달콤함을 받아들이겠나요? 아니면 여전히 그대 마음속의 그 쓴맛에 머물겠습니까.”회랑 안의 모든 시선이 엘라엔의 손끝에 집중되었다. 엘라엔은 르세인이 밀어준 각설탕을 보았다. 그건 자신의 진심을 시험하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19
Ler mais

123. 그 어떤 감정의 파동도 없는

복도의 끝.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철문 너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엘라엔은 르세인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어둠을 보았다. 그건 제국을 제패하려는 군주의 눈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진심을 얻지 못해 미쳐가는 남자의 눈이었다.“대답이 없다…?”“황태자 전하!”입매를 잔뜩 비튼 르세인의 손아귀에 잡힌 엘라엔의 손목이 하얗게 질려갔다.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의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회랑의 화려한 공기를 단숨에 집어삼켰다.르세인은 엘라엔의 턱을 거칠게 잡아 올려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했다. 그녀의 루비빛 눈동자에는 두려움보다 더 지독한 무언가가 있었다. 거부였다.자신의 모든 세상을 지배하려는 르세인을 향한 견고한 거부.“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무엇입니까. 제가 그를 저주하길 원하시나요? 아니면 그의 비명 소리를 음악 삼아 전하와 춤이라도 춰야 하나요?”엘라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계단 아래, 어둠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환청 때문이었다.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긁는 소리,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 카시안.그 이름이 심장 속에서 맥박칠 때마다 엘라엔은 자신이 르세인의 질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그를 향한 증오는 여전했다. 자신을 기만하고 제국을 무너뜨리려 했던 스파이….하지만 그가 주었던 그 온기가 르세인이 강요하는 이 화려한 질서보다 더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이 엘라엔을 미치게 했다.그를 살려야 했다. 그가 죽으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감정의 조각도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피곤해요. 비켜주세요.”엘라엔은 강고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하?”르세인은 기가 막힌 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금발을 쓸어넘겼다. 엘라엔은 그 틈에 얼른 발걸음을 돌려 회랑을 뛰기 시작했다.르세인은 저 가녀린 것을 당장 잡아다 끌고 와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왜 이토록 제어를 못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왜…. 왜….그렇게 르세인은 허탈한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0
Ler mais

124. 살릴 방법을 복기할 뿐

그날 오후, 르세인이 예고도 없이 전각을 찾았다. 그는 집무복 차림으로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엘라엔의 뒤로 다가왔다. 르세인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저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가느다란 손목의 움직임을 관찰할 뿐이었다.그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엘라엔이 카시안의 일을 겪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하지만 그 평정 아래 숨겨진 거대한 심연을 볼 때마다 르세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왜 평소처럼 내 논리에 반박하지 않는 거지? 왜 그 눈동자에 더 이상 나를 향한 분노조차 담기지 않은 거냐고.그는 엘라엔이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차라리 매달려 카시안을 살려달라 애원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라엔은 그저 평안했다. 그 평안이 르세인에게는 그 어떤 비명보다 더 큰 거절로 다가왔다.“영애, 책 내용이 마음에 듭니까.”결국 르세인이 먼저 침묵을 깼다. 엘라엔은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제국 건국사에 대한 기록이군요. 승자가 어떻게 패자의 역사를 지우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지 잘 적혀 있어요. 전하께서 좋아하실 법한 내용이네요.”“역사는 결과로 증명되는 법입니다. 패배한 오류는 기록될 가치가 없죠.”르세인은 엘라엔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가 읽던 책장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당신이 이 평안을 유지하려 애쓰는 이유를 압니다. 내게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겠지. 영애…. 당신이 침묵할수록 나는 당신의 속내를 파헤치고 싶어지군요. 그게 잔인한 방식이 될지라도.”르세인은 엘라엔의 새하얀 뺨을 아주 느릿하게 그어내렸다. 우습게도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르세인은 이것을 소유물에 대한 집요한 탐구심이라 정의하려 애썼다.하지만 엘라엔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는 순간, 르세인은 깨달았다.자신이 지금 갈구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복종이 아니라 그녀의 루비빛 동공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0
Ler mais

125. 본능적으로

반면, 아르젠트 궁의 집무실은 폭풍 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르세인은 바델이 올린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보고서에는 엘라엔이 오늘 하루 동안 보인 반응들이 시간 단위로 기록되었다.[오전 아홉 시 : 레일리 양과의 식사 소식을 듣고도 평온한 표정 유지.][오후 세 시 : 네르사 양의 소식을 듣고 숙면을 기원. 자수 작업에 몰두.]“숙면을 기원했다고?”르세인의 펜 끝이 서류를 찢을 듯 멈춰 섰다. 그는 셔츠 단추를 거칠게 풀어 헤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던졌다.르세인은 사흘 동안 레일라와 네르사를 포함한 정부들을 곁에 두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부들의 재롱을 억지로 지켜보며 그녀들의 천박한 향기가 자신의 몸에 배도록 내버려뒀다.그 향기를 묻힌 채 엘라엔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가 코를 찌푸리며 질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붙이기를 바랐다.하지만 엘라엔은 완벽하게 무관심했다. 그녀는 르세인이 설계한 질투의 굴레 밖에서 너무나 고결하고 평온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바델, 영애가 정말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나?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며 불쾌해하지 않았단 말인가.”바델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예, 황태자 전하. 영애께서는 오히려 평소보다 자수 작업에 더 몰입… 하셨습니다.”르세인은 실성한 듯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분노가 아닌, 지독한 모멸감이 그의 이성을 갉아먹었다.제국의 황태자인 자신이 고작 한 명의 여인에게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 정부들을 도구로 쓰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했다.“내 논리가 틀렸군. 결핍은 갈망을 낳는 법인데 그녀에게 나는 결핍조차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르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서늘한 광기가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다.“황태자 전하, 어디 가십니까.”“그녀가 바라는 대로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평온한 얼굴을 직접 짓밟아야겠어.”르세인은 아르젠트 궁을 나서 레비안 전각으로 향했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그의 심장은 비논리적인 열기로 타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0
Ler mais

126. 승리자라는 착각 속에

아르젠트 궁의 집무실은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도 서늘한 침묵을 유지했다.르세인은 책상 위에 펼쳐진 카르노스 왕국의 군수 보급로 최종안을 내려다보았다. 엘라엔의 손길이 닿아 정교하게 수정된 지도는 제국의 승리를 약속하는 가장 완벽한 논리의 결정체였다.평소라면 그 효율성에 감탄하며 즉각 명령을 하달했을 그였으나, 지금 르세인의 시선은 지도의 우측 하단. 엘라엔의 손가락이 머물렀던 흔적 위에서 멈춰 있었다.어젯밤, 바닥을 구르며 뺏어냈던 나뭇조각의 감촉은 여전히 손끝에 남았다. 엘라엔은 처절하게 울분을 토하며 나뭇조각을 사수하려 했고 르세인은 그 절박한 모습에 허탈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그대로 라비엔 전각을 나섰다.솔직히 말하면 그 나뭇조각을 다시 불태웠다간 엘라엔의 얼굴을 영영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탓이었다.“전하….”“…….”“황태자 전하…?”바델의 여러 번 부름 뒤에 르세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바델은 마른침을 삼켜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황태자 전하, 보급로 안은 이대로 확정할까요? 군수사령부에서 명령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르세인은 대답 대신 펜을 들어 서류 위에 서명을 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들렸다.“바델, 사람은 곧 죽을 것들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 거지? 대체 어떤 논리적인 가치가 있단 말이냐.”바델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르세인이 어젯밤 레비안 전각에서 어떤 추태를 보였는지 알고 있었다. 찢어진 의복과 엘라엔의 손톱자국이 남은 황태자의 목덜미는 이미 아르젠트 궁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다.“가치란 주관적인 것입니다, 황태자 전하. 누군가에게는 곧 죽을 것이 보잘것없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생존의 이유라…….”르세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국의 모든 것을 쥔 자신이… 고작 죽을 스파이의 흔적 하나를 이기지 못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평소처럼 정부들을 불러들였다. 그녀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1
Ler mais

127.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무력감

초가을의 바람은 에르디엔 황궁의 높은 첨탑 사이를 지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르세인의 취향에 따라 아르젠트 궁과 레비안 전각은 계절의 변화조차 무채색의 대리석 위에 부서졌다.르세인은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는 식물의 생명력을 통제되지 않는 천박함이라 규정했기에, 그의 궁 정원은 백색 자갈과 석조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엘라엔은 차가운 바람이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르세인이 보내온 아침 약탕을 내려다보았다. 곡기를 끊으려던 그녀의 저항은 르세인이 직접 전각으로 찾아와 강압적으로 먹이려는 행동 앞에 무너졌다. 르세인은 그녀가 수척해지는 꼴을 견딜 수가 없었다.그 시각, 르세인은 아르젠트 궁의 가장 깊은 지하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감옥의 철문 앞에 서 있었다.무거운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비릿한 피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향이 르세인의 정갈한 수목 향을 침범했다.르세인은 손수건으로 코를 가리지 않았다. 되레 그 불쾌한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자신이 이 공간의 절대적인 지배자임을 확인하려 애썼다.“…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건가.”르세인의 목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공명했다. 형틀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시안은 힘겹게 눈을 떴다.한때 베르제 숲에서 엘라엔을 안아주던 그 건장했던 체구는 간데없었다. 르세인의 명에 따라 집행된 고문은 그의 육체를 조각조각 부셔놓았다.“황태자 전하…. 오늘도…… 내 비명을 들으러 오셨습니까.”카시안의 갈라진 목소리에 르세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타올랐다. 르세인은 천천히 다가가 카시안의 턱을 거칠게 쥐어 잡았다.“비명이 아니라 네놈의 그 하찮은 존재가 지워지는 소리를 들으러 온 거다. 엘라엔이 오늘 아침에도 너를 위해 기도를 올리더군. 물론 내 앞에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하아. 하.”“엘라엔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네놈이라는 오점이 일렁이고 있어.”르세인은 카시안의 짓물러진 상처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카시안의 몸이 경련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르세인은 그 고통을 보며 눈을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1
Ler mais

128. 거래

황궁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건조해졌고, 촛농과 향의 냄새가 피 냄새를 밀어냈다.에르디엔 회랑 끝, 외부 사절을 비밀리에 맞이하는 소접견실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작고 낡은 금속 문양이 달렸다. 카르노스 왕국의 표식이었다.“엘레니르 제국의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사절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르세인은 상석에 앉지도 않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카르노스가 내게 머리를 조아릴 일이 있었나.”“국왕 폐하께서는 거래를 원하십니다.”그 말에 르세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거래?”“카시안 폰 루카르디아를 카르노스에 넘겨주십시오.”짧은 침묵이 흘렀다.바델은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르세인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제국을 흔들던 스파이를 돌려달라? 카르노스 국왕이 제정신이 아닌 듯하군.”“국왕 폐하께… 후계가 없습니다.”사절은 떨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그것이 르세인을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카르노스는 카시안 경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제국의 파멸을 위해 가장 멀리 던져둔 칼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칼은 여전히 날카롭고, 카르노스의 왕위는 비어 있습니다.”르세인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즉, 카르노스의 국왕 루드비히 6세는 카시안을 도구로 필요로 한다는 뜻이었다. 피로 이어진 것조차 목적 앞에서 기능으로 환원하는 태도. 제국과 카르노스가 서로를 혐오하면서도 닮아 있는 방식….“대가는.”“카르노스 북서부 광산 지대의 독점 채굴권입니다. 그리고 향후 십 년간 보석 원석의 우선 반출권을 에르디엔 황궁에 양도하겠습니다.”바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는 그 조건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고 있었다. 카르노스 광산의 보석뿐 아니라 희귀 금속까지 섞여 있어, 황실 재정에 막대한 파급력을 가질 터였다.하지만 르세인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내가 왜 그런 거래를 받아들여야 하지?”사절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황태자 전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1
Ler mais

129. 서로 다른 생각

“폐하, 재고하셔야 합니다.”르세인의 음성이 차갑게 갈라졌으나 헤리브릭은 이미 정부 하나를 끌어당기며 웃고 있었다.“카시안? 그 애가 아직도 살아 있었나? 흠, 내가 왜 그놈을 신경 써야 하지? 광산이 더 중요하다. 그 반짝이는 것들이야말로 제국의 위엄을 빛내주니까. 카시안 그 아이가 이리 도움이 될 날도 다 오는군.”정부들이 교태 어린 웃음을 흘렸다.르세인은 그 웃음소리 속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는 황제 앞에서 무릎을 굽히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이를 악문 채 물러섰다.카시안은 이제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무능한 황제가 보석 광산과 맞바꾸려는, 철저히 무가치한 존재. 그리고 바로 그 무가치함 때문에 엘라엔의 마음에 더 깊숙이 박혀 있는 이름.회랑을 빠져나오던 르세인은 문득 깨달았다.자신이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던 카시안을 황제는 애초에 단 한 번도 아들로 여긴 적이 없었다는 것을.그리고 그 순간, 르세인의 가슴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더 깊고 검은 감정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오류는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이제는 그 오류가 왜 엘라엔의 마음속에서 살아남았는지, 그 이유를 끝내 부숴야 했다.솔레움 궁을 빠져나오자 밤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르세인은 회랑 한가운데 멈춰 섰다. 방금 전, 귓가를 흔들던 웃음소리와 현악기의 소리는 여전히 머릿속을 긁었다.광산.그 단어는 계속 떠올랐다.헤이브릭에게 카시안은 아들이 아니었다. 정치적 변수도 아니었고, 심지어 제거해야 할 위험 요소조차 아니었다.그저 교환 가능한 사소한 물건일 뿐.르세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바델.”“예, 전하.”“카시안의 이송 준비는 언제부터 가능하지.”바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그는 곧 고개를 숙였다.“카르노스 측 사절단이 머무르는 동안이라면 삼일 내로 가능합니다. 국경까지의 이동은 야간 행군으로 처리하면 기록을 최소화할 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2
Ler mais

130. 어떻게 반응할까

에르디엔 황궁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정교하게 시작되었다. 시녀들의 발걸음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고, 은제 쟁반 위에 놓인 아침 식사는 정확히 같은 시각에 레비안 전각으로 옮겨졌다. 모든 것이 어제와 같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엘라엔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르세인이 보내온 약탕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나 입술이 닿기 직전, 엘라엔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평소라면 전각 주변을 지키던 흑색 기사단은 세 줄로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그 배치는 아주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한 줄이 비어 있었다.“클로이.”“예, 영애.”“오늘 경비가 줄었나요?”클로이는 고개를 들었다가 금세 시선을 떨구었다.“황태자 전하의 명으로 일부 기사들이 외곽 경비로 이동했다고 들었습니다.”엘라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잔을 입술에 가져갔지만 마시지도 않았다.이건 단순한 경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통제의 언어였다.르세인이 한 번 배치한 질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엘라엔은 잔을 내려놓았다.“말리트.”“예, 영애.”“어젯밤 아르젠트 궁은 조용했나요?”말리트는 잠깐 망설였다.“황태자 전하께서 늦은 밤까지 정무를 보셨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집무라….”엘라엔은 아주 미묘하게 웃었다.르세인이 밤을 정무를 보냈다는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레비안 전각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그는 늘 그랬다.분노할 때도, 질투할 때도, 확인하고 싶을 때도 그는 결국 이 전각으로 왔다.그런데 어젯밤은 아니었다. 엘라엔의 손가락이 식탁 위에서 가볍게 움직였다.‘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어.’그녀는 확실할 수는 없었지만 황궁 안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같은 시각, 아르젠트 궁의 집무실.르세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서류를 검토하지는 않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작은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2
Ler mais
ANTERIOR
1
...
1112131415
...
18
ESCANEIE O CÓDIGO PARA LER NO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