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엔이 내리깐 눈매를 들어 올려 황제를 마주 보았을 때 그녀는 황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황제 헤이브릭의 시선은 엘라엔의 얼굴 구석구석을 면밀히도 살펴보았다. 와인빛 머리카락과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 그리고 목선까지.그의 머릿속으로 아득한 과거 기억의 편린들이 스쳐지나 갔다. 수십 년간 자신을 괴롭혀 온 단 하나의 망령… 아델라이드 폰 베르제의 모습이 지독히도 선명하게 덧씌워졌다.‘아델라이드…….’황제는 숨을 들이켰다. 세월은 그의 육신을 쇠락하게 했으나 첫사랑을 향한 연정은 심장 깊숙이 박혀 무슨 수를 써도 뽑히지 않았다. 눈앞의 소녀는 아델라이드가 남긴 가장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증거였다.황제는 홀린 듯 엘라엔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황후 로잘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지만 황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라안느가의 영애인가.”“예, 황제 폐하. 엘라엔 폰 라안느,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과연……. 이황자가 그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를 알겠군. 제 아비의 눈을 닮았던 게야.”“…….”“황후.”“예, 폐하.”“잠시 자리를 좀 비켜주겠소. 내 이 소녀에게 요새의 공을 치하할까 하니.”“그러하시지요, 폐하.”헤이브릭은 엘라엔의 맞은편, 황후가 앉아 있던 자리에 무겁게 주저앉았다.로잘린은 부채를 쥔 손을 얕게 떨며 먼저 자리를 떴고, 헤이브릭은 손을 휘저어 주변의 모든 영애와 시종들을 물러나게 했다. 세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엘라엔을 한 번 돌아본 뒤, 시종들의 안내에 따라 멀어졌다.정원에는 오직 황제와 엘라엔, 두 사람만이 남았다.“요새에서의 공이 혁혁하니 상을 내리고 싶은데, 무엇을 원하느냐. 보석인가, 아니면 영지인가.”황제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엘라엔은 르세인이 쳐놓은 촘촘한 그물을 찢어발길 유일한 칼날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음을 직감했다.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황제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황제 폐하. 저는 화려한 보석이나 땅을 원하지
Last Updated : 2026-07-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