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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위협적인 소유의 설계자: Kabanata 41 - Kabanata 50

113 Kabanata

41. 살아남는 방법

성문 방어관의 검자루를 쥔 손이 하얗게 질려갈 무렵 육중한 성문 너머에서 지팡이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탁, 탁, 탁.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베르제 대공가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제국의 공신인 블러드 폰 베르제의 등장을 알렸다.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백발의 대공이 서늘한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전하의 발걸음이 이토록 거칠 줄이야. 노인의 잠을 깨우는 방식치고는 과격하시군요.”대공의 목소리는 갈라진 고목처럼 메말라 있었지만 수십 년간 전장을 누빈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위엄이 담겼다.그러나 르세인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대공의 영역을 침범했다.그는 대공의 옷에 묻은 붉은 흔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함을 느꼈다.“영애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 영애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무사한 겁니까.”그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질서와 이성 속에 살던 그가 처음으로 내보인 균열이었다. 블러드는 그런 르세인을 가소롭다는 듯 비웃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전하, 참으로 우습지 않습니까. 엘라엔을 사지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 듯싶습니다만.”“그건….”“전하의 설계가 제 손녀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습니다. 그 아이를 지킨 것은 전하의 그 잘난 기사단도, 전하의 질서도 아니었습니다. 전하께서 유약한 그림자라 비웃던… 그분이 몸을 던져 엘라엔을 구하셨죠.”블러드의 일갈에 르세인은 가슴에 꽉 막힌 답답함을 뱉어내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금발을 쓸어넘겼다. 카시안이 엘라엔을 구했다는 사실은 르세인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엘라엔이 살아있다는 안도.그리고 그녀의 곁에 자신이 아닌 카시안이 있었다는 패배감.“비켜주십시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습니다.”르세인이 블러드를 비켜서 들어가려 하자 블러드의 손이 르세인의 가슴팍을 막아 세웠다.“베르제는 황실의 사냥개가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서 거둔 방패의 대가는 제가 이미 치르는 중입니다. 이제 엘라엔은 마레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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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더 잔인하고, 더 완벽한

블러드는 흥미로운 눈빛을 내보이며 호탕하게 웃었다.“일황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군. 황실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것이냐.”“아니요. 전하께서 제게 맡겼던 장부의 오차를 베르제의 이름으로 수정하는 것뿐이에요. 전하께서 제게 능력을 증명하라 하셨으니, 저는 그분의 방식대로 발등을 찍을 생각이죠. 명분은 황태자비 후보로서 가문의 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 해두죠.”엘라엔은 펜 끝으로 지도상의 마레즈나와 황궁 사이를 가로질렀다.“저는 이사벨라가 준비한 화려한 데뷔를 하지 않을 겁니다. 베르제 대공가의 유일한 외손녀로서, 전하의 숙청에 살아남은 가문들을 대동하고 연회장에 나타날 거예요.”“…….” “전하가 숙청하려던 자들이 제 발치에 있는 광경을 본다면 그 잘난 평정심이 어떻게 무너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엘라엔이 계획한 일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르세인이 설계한 질서라는 공전 궤도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중력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선언이었다.그때, 의관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대공 각하, 카시안 경께서 의식을 회복하셨습니다.”엘라엔의 펜이 툭, 떨어졌다.“카시안은! 카시안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의관은 엘라엔의 몰골을 보고 흠칫 놀라면서도 보고했다.“출혈은 잡았습니다. 워낙 깊게 베였던 터라 열은 오를 겁니다. 지금은 의식을 회복하셨으니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어서 가보거라. 경은 너를 위해 제 명줄을 내던진 자이니까.”대공 블러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엘라엔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약과 피 냄새가 뒤섞여 있는 치료실 내부에 있는 카시안은 힘겹게 눈을 떴다. 창백한 안색으로 엘라엔을 발견한 그의 입술이 얕게 떨렸다.“……엘라엔.”그는 여전히 다정했고, 따스했다. 목소리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엘라엔은 그의 온전한 모든 것에서 온기와 함께 포근한 마음을 느꼈다.그녀는 더 이상 그의 다정함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엘라엔은 카시안의 차가운 손을 붙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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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분노와 희열이 뒤섞인

아르젠트 궁 집무실로 돌아온 르세인은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서 있었다.말을 몰아 베르제까지 달려갔던 그의 감정은 다시 본래의 이성적인 자리를 되찾고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깊게 가라앉았다.“…보고.”르세인의 낮은 음성이 더욱 낮게 울렸다. 책상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바델은 조심스럽게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전하, 베르제 대공저 주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공의 명으로 카르네티아 주요 관문이 봉쇄된 것은 물론이고, 남부와 수도를 잇는 베르제 소유의 물류 거점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바델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르세인의 입매가 조금씩 뒤틀렸다.“단순한 보복이 아니군. 베르제 대공이 직접 움직이는 것치고는 방식이 지나치게… 정교해.”“그렇습니다, 전하. 베르제 측에서 전하의 숙청 명단에 올랐던 일부 가문들에게 은밀한 서신을 보낸 정황 역시 포착되었습니다. 명분은 물자 보호이나 실상은 전하께서 장악하려던 남부 보급로의 이권을 베르제가 가로채려 하고 있습니다.”르세인은 바델이 내민 명단을 빠르게 훑어내렸다. 그곳에 적힌 가문들은 모두 그가 만찬 자리에서 엘라엔에게 던져준 장부 속 오차로 기록되어 있던 자들이었다.르세인은 제 턱 끝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소름 끼치는 만족감이 전신에 퍼져들었다. 자신이 던져준 장부는 그녀를 고립시키기 위한 덫이었고, 그녀가 무너져 자신에게 매달리게 하려 했던 설계도였다. 그런데 엘라엔은 그 덫을 해체해 자신을 겨누는 창으로 갈아냈다.‘내 질서의 빈틈을 이용해, 내 수하가 될 자들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리겠다?’이건 르세인이 엘라엔에게 기대했던 자격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였다.그녀는 이제 단순히 숫자를 읽는 부품이 아니라 숫자를 이용해 판을 흔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만족감의 이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도사렸다.그녀가 그 날카로운 창을 휘두르기로 결심한 계기가 자신이 아닌 카시안의 피 때문이라는 사실이 르세인의 거만함을 난도질했다.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가르친 질서와 이성은 그녀를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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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건방진 남자

“네,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엘라엔은 결심을 마친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 앞으로 다가갔다. 은제 함의 뚜껑에는 르세인이 늘 사용하는 만년필의 각인과 닮은 정교한 문양이 새겨졌다.함 안에는 한 권의 명부와 짧은 서신, 그리고 작고 투명한 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엘라엔은 먼저 서신을 펼쳤다. 르세인의 필체는 늘 그렇듯 제 외관을 닮아 매혹적이었지만 내용만큼은 소름을 끼치게 만들었다.[영애가 찾은 오차가 내 질서의 일부를 무너뜨렸더군. 그 대담함에 대한 보답이자, 어제의 소란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사교계의 진정한 생리가 담긴 명부를 보냅니다. 성인식 날 당신이 휘두를 창이 무뎌지지 않기를 기대하지.]엘라엔은 서신 옆에 놓인 명부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이건 르세인이 직접 관리하던 사교계 가문들의 치부와 약점이 기록된 극비 명부였다.르세인은 자신이 베르제의 힘을 빌려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꿰뚫었다. 그리고 도망가거나 방어하는 대신 되레 자신에게 더 날카로운 칼날을 쥐여주며 어디 한번 저를 찔러보라고 도발하고 있었다.함께 들어있던 작은 병 속에는 붉은색 액체가 담겼다.엘라엔이 병을 들어 조명에 비춰보자 피처럼 진한, 잔혹한 색깔이 일렁였다.“……이건 잉크군요.”엘라엔이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카시안이 흘렸던 선혈을 연상케 하는 짙은 붉은색 잉크.르세인은 이 잉크로 성인식 날의 살생부를 작성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카시안의 희생을 조롱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희생조차 자신의 계획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선물이었다.블러드는 엘라엔의 곁으로 다가와 그 붉은 잉크병을 내려다보았다.“제 목을 겨누는 것을 알면서도 무기를 보태주다니. 이건 배려가 아니라 모욕이다, 엘라엔.”“맞아요, 할아버지.”엘라엔은 병을 꽉 움켜쥐었다. 그것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그는 제가 이 명부를 들고 성인식 장소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그의 질서 안에서 춤추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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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이해하지 못할 진심

엘라엔은 자신이 밤새 정리한 쪽지를 시어드에게 내밀었다.그 안에는 르세인이 숙청 대상으로 분류한 가문들 중 베르제의 물류권에 편입시켜 살릴 수 있는 가문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그들을 살려주되, 베르제에 종속시킬 거예요. 전하가 그들을 죽여 공포를 심을 때 저는 그들을 살려 빚을 씌우는 거죠. 성인식 날 제 뒤에 서는 가문들은 전하의 질서에 겁먹은 자들이 아니라 베르제의 자비에 목숨을 건 자들이 될 겁니다.”시어드는 엘라엔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창백한 낯빛 위로 드리워진 분노는 노회한 정치가의 것처럼 깊이를 더해갔다.그는 엘라엔이 르세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방식을 가장 완벽하게 흡수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개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위험한 도박이다, 엘라엔. 전하께서는 자신의 사냥감이 사냥꾼으로 변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어.”“그는 지켜볼 거예요. 그게 그가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니까. 자신이 만든 오차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그 순간까지 그는 분명 그 과정을 즐길 겁니다.”엘라엔은 다시 깃펜을 집어 들었다.“삼촌, 베르제가 후원하는 문양사들을 불러주세요. 제 성인식 초대장에 찍힐 인장을 새로 만들어야겠어요. 라안느의 장미가 아니라 베르제의 늑대가 장미 위에 서 있는 형상으로.”시어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엘라엔은 다시 홀로 남은 서재에서 붉은 잉크로 초대장의 견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한참을 작업하던 엘라엔은 문득 창밖을 보았다. 안개가 걷힌 정원 너머 치료실이 있는 별채의 창문이 보였다. 카시안은 여전히 고열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시선을 내려 붉은 잉크가 묻은 손가락 끝을 보았다. 르세인이 준 이 붉은색은 복수의 색이자 카시안이 흘린 희생의 색이었다.‘카시안, 너는 내게 웃어달라고 했지만….’엘라엔은 잠시 숨을 크게 내뱉었다.‘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가장 서늘한 표정을 배우기로 했어.’명단 작성을 마친 엘라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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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예속의 증거

아르젠트 궁.르세인의 집무실은 가을의 끝자락이 가져온 메마름으로 가득했다.르세인은 창가에 서서 베르제 대공저가 있는 하늘을 응시했다.그의 손가락은 습관처럼 책상 위를 톡, 톡.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엘라엔에게 보낸 붉은 잉크가 그녀의 손을 어떻게 물들였을지, 그리고 그 잉크로 그녀가 어떤 문장을 자아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르세인은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똑, 똑.그가 한참 엘라엔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 지을 때 바델이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베르제 대공가의 인장이 찍힌 은밀한 서신 한 통이 들렸다.“전하, 영애께서 보내신 답신입니다.”르세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 바델이 내민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봉투를 뜯기 전 그 위에 찍힌 붉은 인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라안느의 장미가 아닌 베르제의 늑대가 장미 위에 서 있는.엘라엔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기로 했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선언이었다.서신을 펼치자 자신이 보낸 그 붉은 잉크로 쓰인 글자가 나타났다.[전하가 보내신 잉크는 참으로 매혹적이더군요. 제 성인식 날 이 잉크가 누구의 이름 위로 번지게 될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기대하라.”르세인이 낮고 잔잔한 목소리를 아주 조용히 내뱉었다.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실으면서.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태연함은 소름을 돋게 했다.짧은 문장이었으나 그 안에는 자신이 설계한 질서에 대한 조롱과 도전이 서슬 퍼렇게 날 서 있었다.르세인은 종이를 코끝에 가져다 대었다. 잉크 냄새와 함께 그녀가 머무는 베르제 서재의 향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그는 엘라엔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영악했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원수의 독조차 약으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정면으로 자신을 겨누는 창을 들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건 예상 밖의 즐거움이었다.“바델, 사교계의 움직임은 어떠한가.”“베르제로부터 날아온 초대장 한 장에 모든 가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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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서리 맞은 장미

엘라엔이 르세인의 질서를 뒤흔들고 베르제의 힘을 빌리는 것은 결국 하르만과 루시안이 르세인의 가혹한 숙청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방패를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하녀 마리에게 건네받은 이사벨라의 서신을 쥐었을 때는 엘라엔의 낯빛이 단번에 차갑게 날이 섰다. 그녀는 거칠게 서신을 펼쳐 들었다.[하르만과 루시안이 네 부재를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어하는구나. 특히 루시안은 요새에서 네가 겪은 험한 일들을 듣고 밤새 열병에 시달렸지. 또한 네가 베르제에서 안락을 누리는 동안 하르만이 라안느 후계자로서 받아야 할 엄격한 교육이 얼마나 가혹해졌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하겠지.]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엘라엔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명백한 협박이었다. 베르제의 힘을 빌려 자신을 압박한다면 자신은 엘라엔이 아끼는 하르만과 루시안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겠다는… 이사벨라 특유의 은밀하고도 잔인한 경고.이사벨라는 결코 자신의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늘 어머니의 사랑과 교육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엘라엔의 가장 아픈 곳만 골라 찔러왔다.“이사벨라…. 당신은 정말 지독해.”엘라엔은 서신을 구겨버렸다. 이따위 협박으로 무너질 엘라엔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사벨라에게 보낼 짧은 답신을 빠르게 써 내려갔다.[아이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권한이나 그 결과가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방관하지 않겠습니다. 곧 다가올 성인식 날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베르제가 쥐고 있는 남부의 보급로가 라안느 가문을 거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군요.]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대신 이사벨라가 가장 탐내는 실리를 건드리는 반격이었다. 서신을 봉인한 엘라엔은 창밖의 메마른 정원을 바라보았다. 황궁에서 르세인은 지금쯤 바델을 통해 사교계에 퍼진 베르제의 초대장 소동을 보고받고 있을 것이다.그는 엘라엔과 이사벨라가 벌이는 이 추잡하고도 치열한 기싸움을 가장 높은 곳에서 관전하며 황태자 책봉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차 없이 걸어가고 있었고, 엘라엔은 동생들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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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가장 아름답고도 영악한

그녀는 이사벨라의 눈을 직시하며 계단을 기품있게 올라갔다. 이사벨라는 그런 엘라엔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성인식 날이다, 엘라엔. 오늘 네가 사교계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하렴. 제 부모를 돈 줄로 협박하는 영애를 누가 환영하겠니?”“그들의 환영 따위는 관심 없어요. 저는 그저 제 자리를 확인할 뿐이죠.”“엘라엔! 너 정말!”엘라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이사벨라에게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루시안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루시안이 눈을 번쩍 떴다.“누나…!”곧 자그마한 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자 엘라엔의 차갑게 식어있던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그녀는 루시안을 꽉 끌어안았다. 이사벨라는 루시안의 열병을 핑계로 자신을 흔들려 했지만 정작 루시안을 열병에 시달리게 한 것은 이사벨라 본인이 가한 엄격한 훈육과 고립이었을지도 모른다.엘라엔은 문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이사벨라를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루시안, 누나가 선물을 가져왔어. 이건 베르제에서 가장 솜씨 좋은 세공사가 만든 펜던트야. 뒷면에는 나의 서명이 새겨져 있지. 이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야.”“…….”“베르제의 보증서라고나 할까? 이걸 지니고 있으면 그 누구도 너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거야. 그게 설령… 어머니라 할지라도.”이사벨라는 포악하고 드센 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와 아주 자연스럽게 엘라엔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엘라엔은 억센 힘이 들어간 그녀의 끔찍한 손을 힘겹게 잡아 내리며 시선을 꽂았다.“지금 이 무슨 추태입니까, 어머니.”이사벨라는 자신의 손을 쥔 엘라엔의 힘에 아파 이지러지는 눈매로 엘라엔의 낯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제 어미를 똑 닮은 발칙한 것!“오늘 저녁 연회, 기대하세요. 제가 어머니를 위해 아주 특별한 정산을 준비했거든요.”엘라엔은 이사벨라의 손을 거칠게 탁, 놓으며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몸을 돌렸다.*** 하늘은 어느새 붉은 노을로 타올랐고 마른 나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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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예쁘지, 그거?

이안은 그들에게 일일이 다정한 눈인사를 건네며 연회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녹였다.에드먼과 이사벨라는 이안의 등장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이황자 전하! 가문의 연회에 발걸음을 해주시니 이건 라안느가의 영광입니다.”에드먼이 고개를 숙였고, 이사벨라는 드레스를 쥐며 무릎을 굽혔다. 이안은 그들의 환대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눈매를 휘어 웃었다. 은발을 타고 흐르는 빛은 그를 더욱 고귀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공작. 오늘 영애가 성인이 되는 날인데 내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의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감미로웠지만 시선은 에드먼의 뒤편 홍색의 드레스를 입고 선, 눈부신 엘라엔에게 꽂혀 있었다.엘라엔은 곁에 선 카시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이안에게 다가갔다.에드먼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제국의 적통 황자 앞에, 하녀 태생의 오점인 카시안을 대동하고 나타난 엘라엔의 행위는 그 자체로 가문에 대한 모독이었다.“이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엘라엔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이안은 엘라엔의 얼굴을 세밀하게 훑어보다가 그녀의 곁에 선 카시안을 보았다.그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 미소 너머에는 불쾌함이 내려앉았다. 고귀한 황실의 혈통을 더럽힌 불순물이 자신이 탐내는 장미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꼴이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그는 카시안을 유령 취급하지 않았다. 되레 그 반대였다.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그의 비천함을 일깨워 주는 것.“카시안. 오랜만이군. 폐하의 승인을 받아 이리 영애 곁에 있을 수 있다니. 영애의 배려가 상당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곳에 네 자리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이안의 말속에는 네가 설 곳은 없다라는 명확한 선이 그어졌다.카시안이 주춤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고 할 때, 엘라엔은 카시안의 손을 꽉 잡으며 이안을 올려다보았다.“카시안은 제 친구이자 오늘은 저의 귀빈입니다, 전하. 전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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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목을 노릴 만큼 급전직하로 변화된

르세인이 돌연 상체를 숙여 엘라엔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동공 속에 박힌 엘라엔은 분명 얕게 떨고 있었다. 분노였다.물건이라니.“영애, 그대가 베르제의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든, 폐기물을 옆에 끼고 있든….”“…….” “결국 넌 내 질서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어. 네 아버지인 라안느 공작과 거래를 했거든.”“……!”엘라엔은 르세인의 어깨너머로 급격히 창백해진 안색의 카시안과, 뭔가 모를 흥분을 채 숨기지 못하는 에드먼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비비안과 이를 갈고 있는 이사벨라까지.엘라엔은 조소를 내뱉었다. 그녀는 르세인의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다른 한 손을 마리에게 내밀었다.마리는 미리 준비한 베르제의 인장이 찍힌 작은 장부를 엘라엔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전하. 전하의 질서가 완벽하다고 믿으시나요? 전하께서 숙청하려던 남부 보급로의 가문들은… 지금 이 연회장 밖에서 베르제의 기사단과 함께 대기 중이죠. 그들은 전하의 법도가 아니라 저를 선택했습니다.”르세인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엘라엔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덧붙였다.“제가 오늘 입은 이 홍색의 드레스는 전하가 설계한 그 붉음이 사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세워졌는지 보여드리기 위함이죠. 공작 부인이 상단을 통해 세탁하던 자금의 행방… 그 끝이 황실 직속 기사단의 군수물자 비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아버지께서 아신다면….”“…….”“과연 전하의 뒤를 밀어주며 황태자로 옹립하고 저와의 약혼을 반기실까요…?”르세인의 눈동자가 격하게 일렁였다.엘라엔은 라안느가의 파멸을 원치 않았다. 되레 가문의 치부를 움켜쥐어 에드먼이 르세인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판을 뒤집으려 했다.가문을 지키기 위해 이사벨라의 목줄을 죄고 르세인의 독주를 막아 세우는 것.그것이 베르제에서 한 달간 갈아온 그녀만의 칼날이었다.엘라엔은 르세인의 품 안에서 거칠게 빠져나오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이사벨라를 향해 우아하게 고개를 까닥였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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