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는 흥미로운 눈빛을 내보이며 호탕하게 웃었다.“일황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군. 황실과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것이냐.”“아니요. 전하께서 제게 맡겼던 장부의 오차를 베르제의 이름으로 수정하는 것뿐이에요. 전하께서 제게 능력을 증명하라 하셨으니, 저는 그분의 방식대로 발등을 찍을 생각이죠. 명분은 황태자비 후보로서 가문의 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 해두죠.”엘라엔은 펜 끝으로 지도상의 마레즈나와 황궁 사이를 가로질렀다.“저는 이사벨라가 준비한 화려한 데뷔를 하지 않을 겁니다. 베르제 대공가의 유일한 외손녀로서, 전하의 숙청에 살아남은 가문들을 대동하고 연회장에 나타날 거예요.”“…….” “전하가 숙청하려던 자들이 제 발치에 있는 광경을 본다면 그 잘난 평정심이 어떻게 무너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엘라엔이 계획한 일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르세인이 설계한 질서라는 공전 궤도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중력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선언이었다.그때, 의관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대공 각하, 카시안 경께서 의식을 회복하셨습니다.”엘라엔의 펜이 툭, 떨어졌다.“카시안은! 카시안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의관은 엘라엔의 몰골을 보고 흠칫 놀라면서도 보고했다.“출혈은 잡았습니다. 워낙 깊게 베였던 터라 열은 오를 겁니다. 지금은 의식을 회복하셨으니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어서 가보거라. 경은 너를 위해 제 명줄을 내던진 자이니까.”대공 블러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엘라엔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약과 피 냄새가 뒤섞여 있는 치료실 내부에 있는 카시안은 힘겹게 눈을 떴다. 창백한 안색으로 엘라엔을 발견한 그의 입술이 얕게 떨렸다.“……엘라엔.”그는 여전히 다정했고, 따스했다. 목소리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엘라엔은 그의 온전한 모든 것에서 온기와 함께 포근한 마음을 느꼈다.그녀는 더 이상 그의 다정함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엘라엔은 카시안의 차가운 손을 붙잡
Huling Na-update : 2026-07-08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