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Kapitel 41 – Kapitel 50

100 Kapitel

제41화

신태현은 곧장 민윤서에게 다가가는 대신 뒷좌석에서 검은색의 트렌치코트를 꺼내 팔에 건 뒤 민윤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빗물이 신태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머리카락을 촉촉해 보이게 했는데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애처로워 보였다.“바람도 불고 비도 오는데 왜 안에서 안 기다리고 나와 있어?”민윤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신태현은 팔을 들며 민윤서에게 옷을 걸쳐주었다.널찍한 트렌치코트가 민윤서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옷에는 신태현의 은은한 우디 향과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숨을 쉴 때면 부드러운 숨결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고 거기에 홀릴 것만 같았다.그 순간 민윤서는 마치 처음 신태현과 사랑에 빠졌을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예전처럼 세심하게 겉옷을 챙겨주고, 비바람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에게 모든 다정함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마치 여전히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것처럼, 보물처럼 여기는 듯이 말이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가 무자비하게 그 짧은 온정을 깨부쉈다.‘아니야. 저건 전부 연기일 뿐이야.’신태현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위장이었다.신태현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많은 일을 겪어 보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다정함이나 관심, 애정, 사랑은 다른 이들은 진심을 다해야 겉으로 드러나는데 신태현에게는 아주 쉬운 연기였다.신태현은 마치 진짜처럼 연기해서 사람들은 그걸 진실이라고 믿었다. 예전에 민윤서 또한 마찬가지였다.만약 그날 신태현이 민윤아와 함께 산부인과로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신태현처럼 늘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민윤아를 안아 올리지 않았더라면 민윤서 또한 진짜라고 믿었을 것이다.민윤서는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연기라는 걸 까발리는 것도, 반항하기도 귀찮았다. 어차피 곧 안 볼 사람인데 그저 조용히 조연 역할이나 하면서 둘의 관계가 끝나는 날까지 버티는 편이 나았다.민윤서는 말없이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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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노영순은 상석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아주 정정해 보였다. 민윤서를 보자 원래도 웃음기 어린 눈동자가 잔뜩 휘어지며 곡선을 그렸다.노영순은 곧바로 민윤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애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윤서야, 어서 이리 와 봐. 우리 윤서 얼굴 좀 보자.”민윤서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빠르게 걸어가 노영순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이모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복잡하게 얽힌 이 집안에서 노영순만큼은 진심으로 민윤서를 아끼고 챙겨 주는 사람이었다. 민윤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노영순은 언제나 민윤서의 편이었고, 시간만 나면 민윤서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적적함을 달래주었다. 쉽지 않은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동안 노영순은 몇 번이고 민윤서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노영순은 민윤서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마음 아픈 얼굴로 말했다.“살이 빠졌네.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태현이가 너한테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그러다 옆에 있던 신태현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태현이도 왔니? 이번에는 해외로 안 떠나는 거지?”신태현은 민윤서의 곁으로 다가간 뒤 곧은 자세에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상부 지시에 따라서 움직일 예정이거든요. 그래도 앞으로는 윤서와 같이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요.”노영순은 신태현의 말을 듣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민윤서의 손을 토닥이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너무 좋지. 그런데 나는 언제쯤 증손주를 안아 볼 수 있으려나?”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던 민윤서는 곧바로 바짝 긴장했다.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숨이 턱 막혀 왔고 얼굴도 살짝 창백해졌다.민윤서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며 긴 속눈썹으로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숨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아이.민윤서는 이번 생에 절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민윤서에게 결코 이룰 수 없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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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하지만 그런 환상은 차가운 현실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전부 산산조각 나 버렸다.민윤서에게 더 이상 아이는 없을 것이다.민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오르려는 감정을 억눌렀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덤덤하면서도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평온하게 말했다.“생길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생기겠죠.”민윤서는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로 그 화제를 손쉽게 끝냈다.바로 그때 현관 쪽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소리를 듣고 그쪽을 바라봤다.민윤아가 안으로 들어왔다.민윤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곳까지 온 걸까?민윤아는 밝은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손에는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들려 있었고 자태는 우아했으며 연약하고 얌전해 보였다.민윤아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이모할머니,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는 윤서 언니 민윤아예요. 오늘 이모할머니 생신이라고 들어서 꼭 인사드리고 싶었어요."좋은 날 찾아온 손님인 데다가 민윤서의 언니라고 하니 노영순의 가족들은 반갑게 민윤아를 맞이하며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신태현은 덤덤한 눈빛으로 민윤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눈빛은 파문 하나 일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민윤서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양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으니 신태현이 민윤아와 가까운 사이라는 걸 드러낼 리가 없었다.신태현은 연기를 정말 잘했다.민윤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윤아가 이유도 없이 이 자리에 나타났을 리 없었다.어쩌면 신태현이 몰래 연락해 민윤아를 노영순의 생신 잔치에 부른 걸지도 몰랐다. 민윤서 앞에서, 그리고 집안 어른들 앞에서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민윤아는 두 사람이 언제까지 연기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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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신태현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덤덤히 말했다.그러나 그 말에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미소를 짓고 있던 민윤아는 바로 표정이 굳어버렸고 늘어뜨린 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민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신태현을 바라보았다.민윤아뿐만 아니라 민윤서 또한 조금 놀랐다.신태현이 민윤아를 거절하다니.신태현은 언제나 민윤아를 세심하게 챙겼고 민윤아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게다가 민윤아와는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다.그런데 이렇게 많은 집안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윤아가 함께 피아노를 치자고 먼저 제안했는데도 신태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민윤서는 시선을 들어 옆에 있는 신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신태현은 여전히 온화하면서도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사소한 부탁 하나를 거절했을 뿐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하지만 민윤서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신태현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민윤아는 신태현의 곁에 선 채 손끝을 살며시 움켜쥐며 가볍게 말했다.“괜찮아. 나 혼자 하면 되니까. 내가 오빠 입장을 잠깐 깜빡했어.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께 연주하는 건 좀 그렇지.”민윤서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신태현의 신분을 생각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신태현이 민윤아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민윤아는 말을 마친 뒤 신태현이 대꾸하기도 전에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임시로 마련된 무대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신태현은 무대 아래 소파에 앉아 손가락으로 무릎을 툭툭 치면서 검은 눈동자로 무대 위 민윤아의 모습을 파문 하나 일지 않은 평온한 얼굴로 바라봤다.민윤서는 지금 이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민윤서는 신태현의 옆에 나른한 자태로 의자에 몸을 기대고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시선을 내려뜨린 채 휴대폰을 보면서 이따금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주위의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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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신태현은 고개를 들어 친척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작은할아버지, 제 아내는 민씨 가문 사람이에요.”신태현의 또렷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민윤아는 뛸 듯이 기뻤다.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민윤아는 놀라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신태현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신태현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다.그런데 신태현이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며 그 순간의 짧은 정적을 깨뜨렸다.신태현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더니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친척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안한 듯 말했다.“죄송해요, 작은할아버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 대신 제 아내가 말벗이 되어드릴 거예요.”말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민윤아는 본능적으로 신태현이 말한 아내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그동안 신태현은 유독 민윤아만 특별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함께 밥을 먹고, 자신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고, 슬퍼할 때는 위로해 주고... 민윤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본인을 신태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래서 신태현이 몸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앞으로 나서면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먼저 친척에게 말을 건넸다.“안녕하세요, 작은할아버지. 저는 민윤아예요. 태현 오빠는 평소에 일이 많이 바빠요. 제가 말동무를 해드릴게요. 어서 앉으세요.”아주 자연스럽고 친근한 태도였다. 마치 자신이 정말로 신태현의 아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근처에 있던 손님들은 그 모습을 보자 민윤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잘 보이려는 사람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민윤서는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아주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민윤서는 문득 오늘 노영순의 생신 잔치에 괜히 참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신태현이 민윤서를 부른 이유는 민윤서에게 그런 꼴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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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민윤서는 말을 마친 뒤 몸을 옆으로 틀어 진경태를 지나쳐 가려 했다. 진경태와는 전혀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진경태는 민윤서의 반응을 예상한 듯이 걸음을 옮겨 다시 한번 민윤서의 앞을 가로막았다.진경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은은한 술 냄새와 함께 남자 향수 냄새가 확 끼치자 민윤서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형수님, 왜 이렇게 급하게 떠나려고 해요?”진경태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노골적인 눈빛으로 민윤서를 훑어보았다.“오랜만인데 말 몇 마디 나눌 수 있잖아요?”민윤서는 미간을 찌푸렸다.“그쪽이랑은 할 말이 없어요.”진경태는 민윤서의 거절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갑자기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팔을 뻗어 민윤서의 손목을 잡았다.진경태의 손은 크고 뜨거웠으며 놀라울 만큼 힘이 셌다. 진경태가 손목을 단단히 움켜쥔 탓에 도무지 손을 뺄 수가 없었다.“이거 놔요!”민윤서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힘껏 저항했다.“진경태 씨, 이거 놓으라고요!”“가만히 좀 있어 봐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진경태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에 잡힌 가느다란 손목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끝으로 민윤서의 부드러운 손등을 살살 문질렀다.진경태는 짓궂은 농담을 하며 민윤서를 희롱했다.“형수님, 왜 그래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내가 태현이 형 사촌 동생이라서?”진경태가 무례하게 굴자 민윤서는 곧바로 강렬한 분노와 함께 역겨움을 느꼈다. 힘껏 손을 흔들었으나 진경태의 손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었다.“진경태 씨, 선 넘지 말아요. 나는 진경태 씨 형수예요. 분수를 지키라고요!”“분수를 지키라고요?”진경태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진경태는 민윤서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민윤서는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뒤로 물러났다. 진경태는 민윤서의 몸 옆을 팔로 짚어서 민윤서를 자신과 벽 사이에 가두었다.“형은 민윤서 씨에게 못되게 굴고 투명 인간 취급까지 하던데요. 심지어 다른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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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민윤서는 목이 타들어 갔다.진경태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한 민윤서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지금 민윤서는 이 넓은 진씨 가문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였다.어둠이 내려앉은 정원, 신태현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어두운 눈빛으로 민윤서를 바라봤다.신태현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그래?”민윤서는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민윤서는 신태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설명해도, 변명해도 소용없었고 심지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조차 신태현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불필요한 행동이었다.얘기해 봤자 신태현은 믿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민윤서만 더 난처해질 것이다.진경태가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다는 말을 신태현이 믿어줄 리가 없었다.민윤서는 신태현이 자신을 위해 나서 주거나, 자신을 위해 진씨 가문과 등을 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괜히 일을 키우느니 차라리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나았다.민윤서는 고개를 들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맞아.”신태현은 그 말을 듣더니 웃는 듯 마는 듯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대꾸했다.“알겠어.”말을 마친 뒤에는 민윤서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민윤서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신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허리를 곧게 편 채 걸음을 내디디며 그곳을 떠났다.그때 등 뒤에서 진경태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형수님, 형수님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요.”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골이 서늘해졌고 속까지 울렁거렸다. 민윤서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마침내 생신 잔치가 끝날 때쯤이 되었고 밤은 더욱 깊어졌다.갑자기 쏟아진 폭우가 처마를 세차게 두드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산속은 점점 더 추워졌다.민윤서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애초에 민윤서는 오늘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기에 진통제가 집에 있었다.통증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점점 더 강해지는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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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진경태는 아주 빠르게 도착했다.진경태가 나른한 미소를 띤 채 민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형이랑 싸웠어요? 왜 같이 안 간 거예요?”민윤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절대 진경태의 차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민윤서는 노영순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모할머니, 방금 태현 씨한테서 데리러 온다고 답장이 왔어요. 그러니까 경태 씨가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노영순은 민윤서를 바라봤다.“그래? 그러면 경태는...”진경태는 원래 눈치가 빠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흥미롭다는 듯이 순식간에 바뀐 민윤서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진경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진경태는 할머니의 말을 끊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잠시 뒤에 형이 데리러 온다고 하니까 제가 데려다줄 필요는 없겠네요. 대신 같이 기다릴게요. 마침 형한테 인사하려고요.”민윤서는 심호흡을 했다.신태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면 이곳에 민윤서를 버려두고 갔을 리가 없었다.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민윤서는 신태현이 현재 민윤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민윤서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좋아요.”곧이어 민윤서는 고개를 숙여 서승재에게 자신의 위치를 보내며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문자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 상단에 답장이 떴다.[30분 안에 도착할 거야.]민윤서는 그 문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경태는 다리를 꼬고 민윤서의 곁에 앉아 있었다.“안색이 안 좋은데 감기라도 걸렸어요?”민윤서는 고개를 저으며 진경태와 거리를 유지했다.진경태가 말했다.“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요?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거예요? 뒷마당에서 있었던 일은 사과할게요. 됐죠?”진경태는 그렇게 말하면서 겉옷을 벗어 민윤서에게 걸쳐 주었다.“거절하지 말아요. 추워서 감기 걸리고 열이 나면 고생하는 건 본인이니까요.”민윤서는 실제로 추웠다. 비가 내리는 데다가 산속이라 견디기가 힘들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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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민윤서는 서서히 시선을 내려뜨렸다.“이혼할 건데 처리할 일들이 많이 남았어요. 얽혀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쉽게 끝내기가 힘들어요. 피할 수도 없고.”재산, 인맥, 가문, 이혼이라는 말로 단번에 끊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서승재는 백미러를 통해 민윤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신태현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신분인지 너는 누구보다 잘 알잖아. 이혼하기가 정말 쉽지 않을 거야. 만약 신태현이 너를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면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는 힘들 거야.”민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승재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신태현이 무자비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걸 민윤서는 지난 5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고, 누구보다도 신태현의 수단을 잘 알고 있었다.서승재는 민윤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는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히터 온도를 높일 뿐이었다. 따뜻한 바람이 천천히 몸을 감싸자 민윤서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온기를 느꼈다.서승재는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천천히 해.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마.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를 불러. 꼭 달려갈 테니까.”민윤서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통해 서승재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선배.”민윤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억눌렀다.이제는 진지하게 신태현에게 이혼을 요구해야 할 때라는 걸 민윤서도 잘 알고 있었다.더는 미루지도, 망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이나 체면 때문에 계속 참을 생각도 없었다.둘의 결혼 생활은 허울뿐이었고, 둘 사이에 남은 것이라고는 끝없는 모욕과 괴로움뿐이었다. 게다가 현재 민윤서의 몸 상태로는 더 이상 이런 삶을 버틸 수가 없었다.오랫동안 연구실에 틀어박혀 밤을 새우며 연구에 몰두했고, 끼니도 거른 채 일만 해 온 탓에 몸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의사 역시 더 이상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경고했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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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현관의 조명이 켜져 있었다. 따뜻한 노란 불빛이었지만 그로 인해 집이 더 따뜻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민윤서는 무심코 신발장을 바라보았다.신발장 위에는 민윤서와 가정부의 신발 외에 처음 보는 여자의 플랫슈즈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디자인은 세련됐고 색감은 선명했다.거실 조명은 모두 켜져 있었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오로지 안방 쪽에서만 선명한 물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것은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였다.민윤서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민윤서는 발소리를 죽인 채 안방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그리고 방문 앞에 다다른 뒤에는 팔을 들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바로 다음 순간, 눈에 익은 여자가 욕실 안에서 걸어 나왔다. 여자가 입고 있는 것은 민윤서가 가장 좋아하는 실크 잠옷이었다.연한 베이지색에 촉감이 부드러운 그 잠옷은 민윤서가 자신의 생일 때 스스로 산 생일 선물이었고 평소에는 아까워서 잘 입지도 않는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그 잠옷을 민윤아가 입고 있었다.민윤서의 언니 민윤아가 말이다.민윤아는 민윤서가 갑자기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멈춰 섰다.그러나 민윤서를 발견했음에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서야, 왔어? 태현 오빠가 너는 오늘 밤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나는 네가 진짜 이모할머니 집에서 자고 오는 줄 알았어.”민윤서는 그 자리에 서서 물었다.“내가 언제 안 돌아온다고 했는데?”신태현은 너무도 당당하게 민윤서를 그들의 집으로 데려왔고 안방으로 들였다. 심지어 민윤아가 민윤서의 잠옷을 입고 욕실까지 쓰게 했다.아직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뻔뻔하게 한집에서 지내려고 했고 진짜 신태현의 아내인 민윤서는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민윤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오해하지 마. 나는 비를 맞았고 집이 여기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이야. 감기에 걸려서 약을 먹는다면 아이한테 안 좋을까 봐 걱정되길래 여기에 와서 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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