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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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신태현의 시선이 민윤서가 입어보지 않은 롱드레스에 머물렀다.“왜 안 입어 봐? 내가 직접 도와주길 바라는 거야?”민윤서는 더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기 귀찮아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괜찮아. 맞으니까 이걸로 할게.”신태현의 시선이 민윤아에게 향했을 때 눈빛이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졌다.“마음에 들어? 별로면 다른 거로 하고.”민윤아에게만큼은 언제나 인내심이 넘쳤고 미소를 머금었으며 한없이 넓은 포용력을 보였다.민윤서가 코웃음을 쳤다가 아무 말 없이 신태현을 빤히 쳐다봤다.‘이혼 소송 할 테니까 기다려.’딱 이번 한 번뿐이다. 이 연극을 마저 끝내고 나면 신태현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것이다.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결혼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신태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민윤서를 보며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3주년 연회 시간 맞춰서 와.”...며칠 뒤 저녁 7시.신씨 가문 본가의 연회장이 화려한 조명으로 찬란하게 빛났고 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재계 명사들과 친인척 어르신들이 모조리 참석한 가운데 다들 화려하게 차려입고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결혼 3주년 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민윤서가 홀로 먼저 도착했다.넓은 연회장, 민윤서가 구석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다른 세상 사람인 것처럼 겉돌았다.민윤서를 보는 하객들의 눈빛에 탐색과 호기심은 물론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저분이 사모님이에요? 왜 혼자 왔죠?”“신 국장님은 아직 얼굴도 안 보이는데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결혼 3주년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뜻이죠. 저 여자한테도 마음이 없고.”“들리는 말로는 결혼하고 3년 동안 신태현이 저 여자랑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던데. 오늘 제대로 망신당하게 생겼군요.”수군거리는 소리가 민윤서의 귓속을 파고들었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상석에 앉아 있던 노희숙이 애타는 표정으로 문 쪽을 흘끔거리다가 옆에 선 이에게 말했다.“태현이한테 다시 전화해봐. 왜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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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 한마디가 바늘처럼 가슴을 찔렀다.민윤서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런 상황이 그녀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신태현이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알면서도 기어이 이렇게 행동했다.민윤서가 자리를 떠나려 했다. 더 이상 이 한심한 연극에 장단을 맞춰줄 마음이 없었다.“민윤서, 와서 언니를 데려가.”신분을 정리해주는 한마디였지만 제대로 들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민윤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민윤아와 함께 들어온 것도 모자라 그녀더러 민윤아를 데려가라니. 도대체 그녀를 뭐로 보는 것일까?민윤서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유은영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민윤서, 멍하니 서서 뭐 해? 와서 앉아.”유은영이 가리킨 자리는 메인 테이블 근처도 아닌 연회장의 어느 구석진 자리였다.반면 민윤아는 이미 신태현의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것도 메인 테이블에.신씨 가문의 태도를 똑똑히 보여주는 좌석 배치였다.민윤서가 신씨 가문에 시집온 그날부터 시댁 식구들 그 누구도 그녀를 가족으로 인정해준 사람이 없었다.그녀가 멍하니 서 있자 유은영이 웃으며 말했다.“뭐 하고 서 있어? 자리로 모셔야 앉을 셈이야?”신태현이 민윤서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깊고 서늘한 눈빛 속에 말 없는 경고가 들어 있었다.일을 그르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말하는 듯했다.민윤서가 눈을 감고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온갖 감정들을 눌렀다. 여기서 판을 엎어 여태껏 공들인 탑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구석진 자리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등은 여전히 곧게 세우고 있었다.메인 테이블에서 신태현과 민윤아가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행동이 자연스럽고 싹싹하여 다들 민윤아야말로 신씨 가문의 진정한 안주인이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민윤아가 때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품에 안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노희숙에게 건넸다.“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노희숙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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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민윤서는 어이가 없었다.민윤아가 한창 기세를 올리며 비싸고 번듯한 선물을 내놓았으니 그 뒤에 누가 선물을 내밀든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애초에 유은영은 민윤아를 훨씬 더 마음에 들어 했다.당시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민윤서를 며느리로 맞았던 것이었다.남들 앞에서는 민윤서의 편을 들어 주는 척했지만 식구들 앞에서는 민윤서가 더러운 수단을 써서 민윤아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다.민윤서가 고개를 들어 유은영을 덤덤하게 쳐다봤다.“결혼기념일 연회에서 선물을 강요하기도 하나요?”“태현이 아내로서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민윤서가 피식 웃었다.“이럴 때만 저를 태현 씨 아내라 하시는군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기 서 있는 사람이 진짜 아내인 줄 알겠어요.”유은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얘가 언제부터 말을 이렇게 잘했지?’그녀도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준비하지 못했으면 못했다고 하지, 왜 변명하고 그래? 우리도 네 선물 따위 필요 없어.”옆에 있던 신태주가 코웃음을 쳤다.“선물조차 내놓지 못하는 주제에 우리 형 옆에 서 있으려고요?”민윤서가 모자의 억지스러운 트집을 무시한 채 신태현의 태도를 살폈다.신태현이 무심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민윤서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민윤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쓰러진다 해도 신태현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저랑 태현 씨가 부부이니 선물도 당연히 하나죠. 태현 씨가 올린 선물이 바로 저희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한 것입니다.”민윤서는 진작부터 마음 써서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무엇을 주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그럴 바엔 차라리 신태현과 엮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신태현이 많은 사람 앞에서 부부 관계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기념일 연회를 난장판으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다.신태현 역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서에게 선물을 가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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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신태현의 시선이 그 이혼 합의서에 머물렀다.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고 섬뜩하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주변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했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유은영의 안색이 새파래졌고 신태주는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듯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곁에 서 있던 민윤아의 눈동자에 찰나의 놀라움이 스쳤으나 이내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신태현이 서류를 만지지도 않고 덤덤하게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치워.”비서가 즉시 다가와 이혼 합의서를 치워버렸다. 흉물을 치워내듯 신속한 손놀림이었다.신태현이 민윤서를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꼭 오늘 같은 기념일에 이렇게 억지를 부려야겠어?”민윤서는 가슴이 턱 막혔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분노가 솟구쳐 올라 손끝이 떨릴 지경이었다.당장이라도 판을 엎어버리려던 그때 신태현이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외할머니 잊지 마.”무심하게 던진 그 한마디가 족쇄처럼 민윤서의 모든 분노를 단숨에 억눌러버렸다.외할머니가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상태도 계속 불안정했다. 신씨 가문이 그녀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 너무나도 많았다.민윤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외할머니의 안위를 두고 충동적으로 행동해선 안 되었다.“연회 끝나고 제대로 설명할게.”신태현이 감정을 가늠하기 힘든 무덤덤한 말투로 한마디를 던졌다. 그 속에 엄청난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민윤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 살점을 파고드는 통증 덕분에 겨우 이성을 잃지 않고 버텼다.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지막하게 코웃음을 쳤다. 결국 터져 나오려던 분노를 억지로 눌러 담았다.현장의 모든 시선이 여전히 민윤서에게 쏠려 있었다. 동정이나 경멸이 섞인 시선, 또는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민윤서가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단정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신태현이 늘 이런 식으로 민윤서를 모욕했다.누구를 탓하겠는가? 나약한 그녀의 탓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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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민윤서가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오늘 밤 택시를 타고 왔다. 이런 험악한 날씨엔 도로 상황이 위험했다. 휴대폰을 꺼내 택시를 호출했지만 좀처럼 수락하는 기사가 없었다.그때 노희숙이 다가와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윤서야, 오늘 밤은 그냥 본가에서 자. 비도 많이 오고 시간도 늦어서 택시를 타든 직접 운전하든 너무 위험해.”민윤서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보며 빗속을 뚫고 가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다.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곁에 있던 신태현이 돌연 민윤서를 쳐다봤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담담한 말투였다.“여기 있어. 이따 이혼 얘기도 좀 하고.”민윤서는 순간 흠칫했다.이 결혼을 완전히 끝낼 작정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본가에 남은 민윤서가 얌전히 신태현을 기다렸다. 그가 돌아오면 이혼에 대해 확실히 얘기할 생각이었다.신태현이 그저 잠시 외출한 것이라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신태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우산을 쓰고 밖에서 들어오던 신다연이 복도에 서 있는 민윤서를 발견하고는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다가왔다.“민윤서, 아직도 오빠를 기다려?”민윤서가 무심한 눈길로 신다연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다연은 신태현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었고 이미 시집갔다.그녀의 비웃음이 한층 짙어졌다.“헛수고하는 것 같은데. 오빠 방금 나갔어. 민윤아를 집까지 직접 데려다주러.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도 민윤아가 가기 불편하다고 한마디 하니까 두말없이 따라나서는 거 있지? 너랑 한 약속은 안중에 두지도 않았어.”민윤서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번지며 호흡이 한층 무거워졌다.예전에 민윤서에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신태현을 움직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러나 민윤아에게만큼은 달랐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녀의 부름에는 언제나 기꺼이 응했다.지난 몇 년간 민윤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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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오늘 밤 민윤아를 바래다주러 간 신태현은 십중팔구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원래부터 본가에서 밤을 보내는 것을 싫어했으니까.민윤서는 최근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고 건강까지 나빠져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였다. 본가에서 잠을 설칠 거라 생각했는데 창밖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빗소리 덕분인지 뜻밖에도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비몽사몽간에 코끝으로 익숙하고 서늘한 우디 향이 훅 끼쳐왔다.민윤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몸을 뒤척여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눈을 뜬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신태현의 품에 누워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와 달리 단단한 팔로 그녀를 끌어안고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민윤서가 본능적으로 신태현을 밀어내려 했다.그러나 깊은 잠에 빠진 그는 미간만 살짝 찌푸릴 뿐 무의식적으로 다시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잠기운이 묻어나는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착하지. 가만히 있어...”다정한 말투에 민윤서는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결혼 3년 동안 신태현이 그녀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답은 너무나도 명백했다. 품에 안긴 여자가 민윤아라고 착각한 게 분명했다.가슴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민윤아에게는 늘 이토록 다정하고 너그러웠다.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의 차이가 무의식적인 행동에서조차 이토록 하늘과 땅 차이였다.민윤서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다시 한번 그를 힘껏 밀쳐냈다.“신태현, 내가 누군지 똑바로 봐!”신태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민윤서를 본 순간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조금 전 다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듯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즉각 거두어들였다.이성이 돌아온 직후의 그 서늘함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민윤서가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신태현과 거리를 두었다. 얼굴에 역겨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다른 여자로 착각해서 그녀를 안았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불쾌했다.신태현이 상체를 일으키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변명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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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아래층 주방에 이미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노희숙이 계단을 내려오는 민윤서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윤서야, 이리 와서 아침 먹어. 네가 요즘 너무 야윈 것 같아서 특별히 몸에 좋은 전복죽을 좀 쑤라고 했단다.”민윤서가 심호흡하며 감정을 억누른 뒤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감사해요, 할머니.”노희숙은 늘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 신태현을 향한 화를 애먼 노희숙에게 쏟아선 안 되었다.민윤서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본 노희숙이 죽을 떠주다가 이렇게 말했다.“어젯밤에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 태현이가 윤아를 바래다준다고 나가길래 내가 마음이 안 놓여서 일부러 전화해서 오라고 했어.”“네 손도 불편하고 차도 안 가져왔는데 남편이 집에 없어서야 하겠어? 이따 밥 다 먹으면 태현이더러 널 데려다주라고 할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옷을 갈아입은 신태현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이리 와서 밥 먹어.”노희숙이 부르자 곧장 다가와 민윤서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그릇에 죽밖에 없는 것을 힐끗 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만두 하나를 집어 접시에 올려주었다.“이거 좋아하잖아. 많이 먹어. 할머니도 네가 살 빠졌다고 걱정하고 계셔.”노희숙의 앞에서는 언제나 세심하고 다정한 남편 행세를 완벽하게 해냈다.민윤서가 접시 위의 만두를 내려다보았다. 헛웃음이 날 정도로 가소로웠다.결혼 3년 동안 그녀는 만두를 좋아한 적이 없었고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다. 신태현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신경을 썼다면 알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몰랐다. 만두는 민윤아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남편 행세조차 이토록 어설프고 성의가 없었다.민윤서는 만두에 손도 대지 않고 묵묵히 죽만 먹었다.노희숙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주방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민윤서가 수저를 내려놓고 신태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앞으로 이런 어설픈 남편 행세는 그만둬. 당신은 안 피곤한지 몰라도 보는 나는 역겨우니까.”신태현이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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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 아래에 신태주가 남긴 댓글도 있었다.[형 너무 다정한 거 아니야? 부럽다 부러워.]머리 위로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민윤서의 손이 차갑게 식어갔고 얼굴도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어젯밤 기념일 연회에서 거짓된 얼굴로 민윤서를 대하더니 돌아서자마자 민윤아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이토록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을 수가... 실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강지우가 민윤서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 황급히 위로했다.“마음에 담아두지 마. 일부러 도발하는 거잖아.”민윤서가 울컥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나 괜찮아.”“괜찮을 리가 없지. 아주 대놓고 네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기세등등하게 구는데.”강지우가 분통을 터뜨렸다.“지금 당장 신태현한테 전화해서 따져.”민윤서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려던 그때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가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예의 발랐지만 차가웠다.“민윤서 씨? 외할머니께서 쓰시던 VIP 병실을 다른 분께 배정하게 되어서 병실을 비우셔야 해요. 최대한 빨리 오셔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절차를 밟아주세요.”민윤서가 그대로 굳어버렸다.“갑자기 병실을 옮기라니요? 병원비 꼬박꼬박 내고 있잖아요.”“신태현 씨가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민윤아 산모님의 출산 대기용으로 쓰시겠다고 하셔서요. 저희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그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민윤아의 산부인과 검진에 동행한 것도 모자라 외할머니가 요양하던 VIP 병실까지 빼앗았다.대체 그녀는 무엇을 위해 타협하고 또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민윤서가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걸 본 강지우가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민윤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소용돌이치는 절망감과 분노를 짓누르며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외할머니... VIP 병실에서 쫓겨나셨어. 민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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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다만 민윤서가 업계를 떠나 있던 시간이 긴데 복귀하자마자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게 영 마음 편치 않았다.민윤서가 입술을 깨물었다.“연봉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배당금은...”“사양하지 마.”강지우가 다가와 자연스럽게 민윤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청림바이오는 원래부터 네 몫이 있었어. 네가 그놈의 결혼에 발목 잡혀서 몇 년을 허비한 것뿐이지.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모든 게 예전 그대로 된 거라고 생각하면 돼.”“대주주인 나랑 서 대표님은 아무 의견 없으니까 제발 사양하지 말고 받아.”민윤서가 계약서를 들고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이토록 묵직한 믿음을 더는 저버릴 수 없었다.민윤서가 펜을 들어 아주 정중하게 계약서에 서명했다.“잘했어, 아주.”강지우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앞으로는 우리 셋이 뭉치는 거야. 누구도 우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민윤서가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결혼생활에 갇혀 있던 긴 세월 동안 그녀를 변함없이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민윤서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신태현은 연락이 없었다. 다시 걸어보았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민윤서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가방을 챙겨 들고 곧장 밖으로 나섰다.밤 8시, 민윤서가 신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했다.초인종을 눌렀더니 문을 열어준 사람은 도우미 안미숙이었다. 민윤서를 본 안미숙이 흠칫했다가 이내 반갑게 웃었다.“사모님, 돌아오셨어요? 왜 비밀번호를 안 누르시고.”민윤서가 속으로 싸늘하게 웃었다.비밀번호가 진작에 바뀌어 있었다.아직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이 집에서 초인종을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남이 되었다.“그냥요.”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민윤서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태현 씨 들어왔나요?”“아직이요. 오늘 밤 접대가 있으셔서 안 들어오실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민윤서가 현관에 서서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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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민윤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신태현이 비틀거리지 않고 제대로 서 있는지 확인한 뒤 민윤서에게 지시했다.“잠깐 오빠 좀 보고 있어.”그러고는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가버렸다.민윤서가 헛웃음을 지으며 눈을 치켜떴다. 그녀의 말대로 할 생각이 없었던 민윤서가 곧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런데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하고 걸음조차 가누지 못하던 신태현이 민윤서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비틀비틀 다가오더니 무거운 체구로 그녀를 확 덮쳤다.코를 찌르는 술 냄새와 민윤아의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민윤서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신태현을 밀었지만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를 악물고 어깨에 얹힌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그런데 신태현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민윤서를 꽉 끌어안고는 취기가 잔뜩 묻어나는 나른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만히 있어... 잠깐만 안고 있자. 나 힘들어...”말도 안 되게 다정하고 달콤한 말투였다.민윤서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날 또 민윤아로 착각했어.’이런 애틋한 속삭임과 다정함이 민윤서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이를 꽉 깨물고 신태현을 힘껏 밀었다.“신태현, 내가 누군지 똑바로 봐.”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귀에 박히자 신태현의 풀려 있던 눈이 조금 맑아졌다.팔을 풀고 민윤서를 내려다본 순간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목소리에 불청객을 마주한 듯한 노골적인 실망감과 짜증이 묻어났다.“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민윤서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빤히 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외할머니 VIP 병실 당신이 민윤아한테 넘겨주라고 시켰어?”신태현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병원에서 알아서 한 일이야. 무슨 문제 있어?”“알아서?”민윤서가 소리 내어 웃었지만 눈빛에는 일말의 웃음기도 없었다.“당신이 우리 외할머니를 내쫓고 민윤서한테 주라고 지시했다면서. 아니야?”침묵이 곧 무언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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