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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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숨겨진 암자

16.“분명 발자국이 여기서 끊겼다는 것이냐?”절벽 근처에서 흔적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은 한명회는 직접 현장을 찾아왔다.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땅에 남은 흔적을 살폈다.풀숲 사이로 이어진 발자국은 산길을 따라 한참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적어도 이십여 분은 족히 걸어 올라온 흔적이었다.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발자국이 끝나는 곳이 다름 아닌 절벽 끝자락이었던 것이다.한명회의 눈이 가늘어졌다.“설마 여기서 몸을 던졌다는 뜻은 아닐 터인데....”“저... 혹 김종서 대감께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신 것은 아니겠습니까?”현장 조사를 맡은 군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한명회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옆에 서 있던 심복에게 시선을 돌렸다.“너는 어찌 생각하느냐?”“예?”“저 말이 맞다고 보느냐?”심복은 잠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가능성은 있습니다.”“가능성?”“반 정도는 말입니다.”한명회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럼 나머지 반은?”심복의 시선이 발자국이 끊긴 지점에 머물렀다.“누군가 일부러 이곳까지 흔적을 남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계속해 보아라.”“절벽이 목적지가 아니라 유인책이었다면 말입니다.”“김종서 대감은 이미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순간 한명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나와 같은 생각을 했군.”한명회는 심복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리고 자신들이 올라온 풀숲 길을 다시 바라보았다.“이곳은 길이 아니라 풀밭에 가깝구나.”“예.”“그 말은 곧 흔적을 숨기기에도, 거짓 흔적을 만들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뜻이지.”심복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한명회는 천천히 풀숲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사람들은 발자국만 쫓는다.”“허나 발자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이 진짜라 단정할 수는 없지.”잠시 후 한명회가 손가락으로 주변 풀숲을 가리켰다.“베어 버려라.”“예?”“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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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불공이라는 이름의 덫

이른 아침, 수양대군은 보고할 일이 있다며 찾아온 한명회와 마주 앉아 있었다.간소한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지만 대화는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평소 같으면 용건부터 꺼냈을 한명회가 말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수양대군은 그런 한명회를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헛기침을 했다.“보고할 일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예. 김종서 대감이 숨어 있을 법한 장소를 발견하여 보고드리러 왔습니다.”한명회의 말에 수양대군은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순간 그의 눈빛에 반색이 스쳤다.“그래? 그건 반가운 소식이군. 어디인가?”“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한명회가 차분히 답했다.“직접 김종서 대감을 확인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허면?”“김종서 대감의 흔적이 끊긴 곳 인근의 풀숲을 모두 베어 내게 하였습니다.”“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작은 샛길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한명회의 말에 수양대군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절벽에서 사라진 흔적, 그리고 숨겨진 샛길.평범한 보고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그는 말없이 한명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 샛길 끝에서 승려 몇 명을 만났습니다.”한명회의 눈빛이 가라앉았다.“헌데 보통 승려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더군요.”“달랐다?”“예.”한명회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마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 배치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허면 그 자들이 김종서를 지키기 위해 배치된 승려들이라는 뜻인가?”수양대군의 물음에 한명회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허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점입니다.”수양대군의 눈이 가늘어졌다.“그래서?”한명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작은 암자 하나에 공양미를 보내는 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공양미?”“예. 수양대군마마의 선행으로 알려질 테니 승려들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잠시 뜸을 들인 한명회가 말을 이었다.“그리고 짐을 나를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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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불길한 행차

‘중전마마께서는 궁 밖으로 나서는 행차가 처음이시니 준비하실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중궁전으로 돌아온 뒤에도 지우의 머릿속에는 수양대군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했다.상대는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그리고 훗날 역사는 그를 왕이라 기록했다.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라면 누구든 가차 없이 제거한 왕.그 정적들 가운데에는 김종서도 있었고,단종도 있었다.그리고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정순왕후 역시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설마....’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이번 행차가 정말 단순한 불공 때문만은 아닐지도 몰라.’불안은 점점 짙어져 갔다.“마마, 첫 행차라 걱정이 되시는 것이옵니까?”소하의 물음에 지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창밖을 바라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설마 우연일 리 없어.’수양대군이 말한 암자.그리고 한명회가 발견한 암자.모든 것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잠시 후 지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하야.”“예, 마마.”“저번에 중궁전에 왔던 부원군 댁 하인 기억하느냐?”“예.”“당장 다녀오거라.”지우는 곧바로 책상 앞으로 가 붓을 들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서찰 한 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한 글자 한 글자에 조급함이 묻어났다.잠시 후 서찰을 접은 지우가 그것을 소하에게 내밀었다.“이 서찰을 그 하인에게 전해라.”“예, 마마.”“그리고 반드시 김종서 대감께 전하라 이르거라.”지우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수양대군이 머지않아 암자로 향할 것이다.”“그 전에 반드시 몸을 피하시라고.”“예 마마”소하가 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지켜본 지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의 시선은 내일 행차 때 입을 예복으로 향했다.화려하게 수놓아진 옷은 중전의 위엄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지우의 눈에는 그것이 지나치게 얇아 보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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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움직이기 시작한 반격

-암자-김종서는 전날 밤 전달받은 서찰 한 장을 곱씹으며 암자 뒤편 동굴 안에 앉아 있었다.동굴 안은 고요했다.그는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하듯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그때—“어르신.”동굴 입구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말하거라.”“준비를 마쳤습니다.”김종서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행랑아범이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말씀하신 검은 도복과 두건도 준비해 두었습니다.”“명만 내려 주십시오.”잠시 침묵이 흘렀다.천천히 눈을 뜬 김종서가 몸을 돌렸다.그의 눈빛은 어젯밤보다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들어오라 하게.”“예?”“함께 온 내 사람 말일세.”김종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할 이야기가 있으니 안으로 들이라 하게.”“알겠습니다.”행랑아범이 고개를 숙였다.김종서는 그가 물러나려 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자네는 남게.”“예?”“이따가 자네에게 따로 맡길 일이 있다.”행랑아범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명을 받들겠습니다.”김종서는 천천히 동굴 밖을 바라보았다.오늘.수양대군이 움직인다.그렇다면 자신도 더는 숨어 있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그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가라앉았다.“부르셨습니까?”동굴 안으로 들어온 젊은 사내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김종서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옆에 놓여 있던 검은 도복과 두건을 집어 들었다.“오늘 밤 네게 맡길 일이 있다.”“명을 내리십시오.”김종서는 도복과 두건을 내밀었다.“오늘 밤 몰래 한명회의 집에 잠입하거라.”순간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한명회.지금 조정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하지만 사내는 곧 두 손으로 도복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습니다.”김종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헌데 어르신.”“말해 보아라.”“한명회의 집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양대군의 처소야말로 더 중요한 곳이 아니겠습니까?”“......”“그쪽은 어찌하실 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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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검은 상단의 비밀

18.“참기름이오!”“갓 짠 들기름이오!”“염장 고등어 사시오!”장이 서는 날이라 그런지 장터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상인들의 목청 높은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손님들은 물건을 살피며 바삐 오갔다.특히 오늘은 평소 쉽게 구할 수 없는 고등어 같은 생선과 각종 기름, 잡화까지 한데 모여 장이 섰다.그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장터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그곳을 삿갓을 쓴 노인이 종이를 바라보며 둘려보고 있었다.“여기가 맞는 곳 같은데....”노인은 북적이는 장터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오늘 장은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게야?”“혹시 이 장터는 처음 오셨수?”그때 혼잣말을 하던 노인 옆에서 좌판을 벌여 놓은 상인이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후덕한 체격에 인상 좋은 사내였다.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그렇소만.”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진한상단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아하, 진한상단 말이오?”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노인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그런데 보아하니 상단과 거래할 만한 분으로는 안 보이는데....”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어갔다.“무슨 일로 그곳을 찾으시는 거요?”“흠흠, 내가 모시는 어른께서 등유가 필요하다 하셔서 심부름을 왔소.”“아하, 등유 말이구려.”상인은 잠시 노인을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그 상단 물건이 좋긴 하지. 왜국 물건을 들여와 판다고 제법 이름이 났으니.”상인은 턱으로 시장 끝을 가리켰다.“저 끝으로 가 보시오. 제일 크고 번듯한 건물이 보일 텐데 그곳이 진한상단이오.”그러고는 좌판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저어, 혹시 그 상단의 평판이 좋지 않은 겁니까?”상인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그건 왜 묻소?”“모시는 어른께서 거래 상대의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셔서 그렇소.”노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괜히 평판 나쁜 곳과 거래했다가 꾸중이라도 들을까 염려가 되어 묻는 것이오.”“허허, 그런 거였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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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숨겨진 무기고

‘분명 서너 명의 장정들이 무언가 창고에 옮기고 있던 중인 것 같았는데...’지우는 지정된 방에 들어온 후부터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소하야 너도 혹시 봤니? 아까 상단에 들어오자마자 왠 장정들이 창고 같은 곳에 물건을 옮기고 있었잖아?”“글쎄요 전 마마 짐 챙기는라 잘 보질 못해서요 근데 그게 이상한 거에요여기 상단 물건들을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잖아요”소하의 말에 지우는 더욱 깊게 생각에 빠졌다.소하의 말에 지우는 더욱 깊게 생각에 빠졌다."그럴 수도 있지..."하지만 이상했다.상단에 도착했을 때 본 장정들의 표정은 단순히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의 그것이 아니었다.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주위를 살피고 있었고, 옮기던 짐 역시 천으로여러 겹 덮여 있어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내가 잘못 본 건가?'지우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상단의 모습은 아니었다.그때였다.창고가 있는 방향에서 둔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쿵.마치 무거운 무언가가 바닥에 내려놓아지는 소리였다.지우의 눈빛이 가늘어졌다.'저 안에 대체 무엇이 있는 거지?‘“마마, 식사는 하셔야지요.”“미안하지만 전하와 수양대군께는 내가 여독이 심해 쉬고 있다고 전해 다오.식사 생각도 없다고 말이야.”“예? 마마, 많이 피곤하신 겁니까?”“그런 것 같구나.”지우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누르며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지금은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그러니 너도 그만 물러가 보거라.”“예, 마마.”소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불을 정리해 주었다.“혹 몸이 더 편찮아지시면 바로 불러 주셔야 합니다.”“알겠다.”지우가 눈을 감자 소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방을 나섰다.방문이 닫히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지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이제 움직일 시간이야....”전개는 자연스러워. 지우가 일부러 식사를 거르고 쉬는 척한 뒤 밤에 몰래 움직인다는 흐름이 잘 이어져.다만 몇 군데만 다듬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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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미끼를 던진 사냥꾼

‘끄응....’진한상단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랑아범은 장정들에게 붙잡혀 작은 방 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었다.그는 손목을 주무르며 낮게 혀를 찼다.“허, 이것들은 애비도 없나. 사람을 어찌 이리 거칠게 다룬단 말이야.”행랑아범은 방문을 한 번 바라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큰일이로군.... 이대로 언제까지 갇혀 있게 될지도 모르겠어.”그는 귀를 문에 바짝 대고 바깥의 인기척을 살폈지만, 문밖에서는 장정들의 발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발소리를 들어 보니 아예 밖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군.”행랑아범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처음 진한상단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등유를 구하러 온 손님이라며 둘러보는 것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속으로 '생각보다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겠군.' 하고 안도했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석유를 누가 대량으로 사 갔는지, 최근 드나든 수상한 손님은 없었는지 몇 마디 떠보듯 질문을 던진 순간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상단 사람들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고, 어느새 장정들이 그의 앞뒤를 막아섰다.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이렇게 좁은 방 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었다.그때였다.갑자기 뚜벅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졌다.행랑아범은 순간 숨을 죽였다.'설마 아까 그 장정들인가...!'침이 바싹 마른 그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문틈에 귀를 바짝 대고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잠시 후 낯선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뒤뜰 같은데 조그마한 사랑채도 하나 있군요.""사랑채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데.""그러게요. 너무 허름합니다. 사람이 지내는 곳이라기보다 오래 방치한 창고처럼 보이는데요."잠시 침묵이 흘렀다.“여보시오! 거기 누구 있소? 계시면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행랑아범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까 자신을 붙잡았던 장정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깨닫자 서둘러 도움을 청했다.그러자 밖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이내 누군가 문을 살피는 듯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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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계략의 그물

야심한 밤, 김종서는 검은 도포 위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양대군의 저택 담을 넘어섰다."나도 참... 이 나이에 별일을 다 하는군."김종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다행히 수양대군가 출타 중이었는지 저택 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하지만 이상한 점도 있었다.저택을 지키는 하인들이 하나같이 건장한 장정들이었던 것이다.'수양대군이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긴 있는 모양이군.'김종서는 몸을 숨긴 채 장정들을 유심히 살폈다.모두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져 있었으며, 걸음걸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평범한 하인들이 아니야. 군사 훈련이라도 받은 자들처럼걸음에 군기가 배어 있는 걸 보니 저들은 품팔이꾼이 아니라 훈련받은 자들이다.’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사람을 상대해 온 김종서의 눈에도 그들은 결코 만만한상대가 아니었다.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정체를 들킬 수 있단 판단에 김종서는 급습 대신조용히 저택 안을 살펴보기로 하고, 몸을 더욱 낮춘 채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김종서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저택 안을 살피던 중 서고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했다.'저곳이라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그는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뒤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서고 안은 예상대로 책장마다 서책과 각종 문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김종서는 서책들을 훑어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음...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그의 시선이 문서들이 쌓인 탁자로 향했다.“등유를 구입한 내역이나 거래 장부가 있다면 이곳에 있을 텐데....”김종서는 문서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다행히 문서들은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날짜순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어 원하는기록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찾았군.'그는 중궁전 화재가 일어난 날짜와 가까운 시기의 거래 장부를 꺼내 들었다.김종서는 숨을 죽인 채 장부를 한 장씩 천천히 넘겨 읽어 내려갔다.장부에는 수양대군 저택으로 반입된 물품의 품목과 수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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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피 묻은 장부

소하의 다급한 목소리에 지우는 곧장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눈앞에 선 소하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본 지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무슨 일이냐?”소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려 했지만, 놀란 탓인지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 그게....”소하의 다급한 기색 때문이었을까.맞은편 방에 있던 단종도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중전, 무슨 일입니까?”그와 거의 동시에 복도 끝에 있던 수양대군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입니까, 중전마마?”수양대군의 시선이 소하에게 향했다.“새벽부터 아랫것이 이리 소란을 피우니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생긴 듯합니다.”그의 목소리는 태연했지만, 지우는 그 평온한 얼굴이 오히려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그러게 말입니다.”지우는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소하를 바라보았다.“아마 이 아이가 제게 급히 전할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모두 염려하지 마시고들어가 쉬십시오. 상황은 제가 확인한 뒤 전하께 따로 아뢰겠습니다.”단종은 잠시 소하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소하의 떨리는 표정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이내 그는 시선을 수양대군에게 돌렸다.“숙부. 아무래도 저 아이가 중전에게만 전해야 할 급한 일이 있는 듯합니다.”“중요한 일이라면 중전이 확인한 뒤 곧바로 짐에게 알려 줄 것이니,오늘은 이만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시지요.”단종의 말에 수양대군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단종을 따라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마마, 전에 마마께서 심부름을 보내셨던 그 하인이 방금 마마를 찾아왔습니다.”“그런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상태가 좋지 않다니?”지우의 물음에 소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것 같습니다. 얼굴은 피멍으로 성한 곳이 거의 없고….”소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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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명회와 김종서의 대치

말이 끄는 수레 한 대가 비탈길을 따라 거칠게 달리고 있었다.그 뒤로는 수양대군의 저택을 지키던 장정들이 말에 올라 수레를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으음... 내가 너무 방심했군.'김종서는 속으로 낮게 혀를 찼다.뒤에서 기습을 당해 의식을 잃은 척했지만, 자신이 커다란 괴짝 안에 실려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지?'잠시 탈출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아니다.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 놈들의 목적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김종서는 숨소리마저 죽인 채 괴짝 안에 가만히 몸을 누였다.수레가 향하는 곳이야말로 수양대군의 진짜 비밀이 숨겨진 장소일지도 몰랐다.그렇게 얼마쯤 더 달렸을까.수레가 덜컥거리며 멈춰 섰다.잠시 후 괴짝의 뚜껑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허, 내가 살다 살다 김종서 같은 명장을 납치하게 될 줄이야.”한 장정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그런데도 그분은 이런 사람까지 납치하라 명하시니 참 대단하셔.”다른 장정이 낮게 웃으며 대꾸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업어.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신다.”“알았네.”장정들은 김종서를 조심스레 들쳐 업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그때,의식을 잃은 척하던 김종서는 눈을 아주 살짝 떴다.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곁눈질로 주변을 살핀 그의 눈에 산 아래쪽 풍경이 들어왔다.그곳에는 수십 개의 군막이 질서정연하게 세워져 있었고, 무장한 장정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그리고 그 군막 한가운데—두 손을 뒤로 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한명회...!'김종서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 순간, 축 늘어져 있던 김종서의 손이 번개처럼 치켜올라갔다.퍽!그의 주먹이 자신을 들쳐 업고 있던 장정의 명치를 정확히 가격했다."컥!"장정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뭐, 뭐야! 깨어 있었어?"놀란 장정이 다급히 소리쳤다.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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