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못다 핀 사랑을 다시 피우리라 : Chapter 61 - Chapter 70

103 Chapters

61. 골목 끝의 초가집

단종의 갑작스러운 잠행 제안에 궁 밖으로 나온 지우는 자신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있는 단종의 손길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전하... 계속 제 손을 잡고 계실 생각이십니까?"지우가 조심스레 묻자 단종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이래야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 않겠소."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혹... 불편하오?”지우는 얼른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손끝으로 전해지는 단종의 온기가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아닙니다."겨우 한마디를 내뱉은 그녀는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흘낏 바라보다가 미소를 감춘 채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마침 저잣거리는 5 일장이라도 열렸는지 다른 때보다 시끌벅적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음 저잣거리가 이리 복잡한 곳인지 몰랐는데 좀 복잡구려”단종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기저기 둘려 보았다.마침 저잣거리는 오일장이라도 선 듯 다른 때보다 훨씬 시끌벅적했다.상인들의 목청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장을 보러 나온 백성들로 길은 발 디딜 틈조차없었다."음… 저잣거리가 이토록 붐비는 곳인 줄은 미처 몰랐구려."단종은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지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궁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풍경이옵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군요.“그때였다.지우와 단종의 눈앞에 작은 장신구를 펼쳐 놓고 파는 노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비녀와 노리개, 옥가락지, 은장도까지.하나같이 빛깔이 곱고 손때가 느껴지는 물건들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단종은 장신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지우를 힐끗 바라보았다."예뻐 보이오?""예?""아까부터 장신구만 바라보고 있지 않소."지우는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럼요. 저도 여인인걸요."그녀는 다시 한번 진열된 장신구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빙그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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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침묵하는 의원

초가집에 도착한 단종과 지우는 마당과 평상, 툇마루에까지 귀한 약재들이 널려 있는 모습을 보고 보통 의원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말린 산삼과 녹용,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희귀한 약초들이 가지런히 손질되어 있었고, 은은한 약재 향이 집 안팎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의원집은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했다.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손님은 물론 약을 짓는 사람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명의의 집이라기에는 너무도 고요한 풍경이었다.단종은 널려 있는 약재를 바라보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이 정도 명의라면 환자들이 줄을 서 있어야 할 터인데…."지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마치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거, 거기 누구시오?"단종과 지우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방 안에서 중년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소리는 몹시 낮았고, 작은 인기척에도 놀란 사람처럼 불안이 묻어 있었다.단종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 차분히 말했다."실례하오. 의원을 뵈러 왔습니다. 몇 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 찾아왔소."그러자 방 안은 잠시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이윽고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무, 무얼 물으려는 거요? ...아니, 됐소.난 아무것도 모르오.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돌아가시오.“"알겠습니다."지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돌아가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렇게 숨어만 계신다고 능사는 아닙니다."순간 방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능사?""내가... 내가 무엇을 봤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지우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역시.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러니 가겠다는 것입니다.그토록 두려움에 떠는 분이라면 저희도 믿고 부탁드릴 수는 없겠지요.전하, 이만 가시지요. 차라리 다른 의원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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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부원군의 진짜 사인

지우와 단종이 안방에 들어와 자리를 잡자 의원은 조심스레 방문을 걸어 잠근 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침을 삼킨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는 '단장초'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단장초?""예, 단장초입니다."의원의 물음에 지우와 단종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의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명나라 남부에서 주로 자라는 독초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요."단종의 표정이 굳어졌다."설마... 아버님께서 그 독초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이오?“”제 짐작이 맞다면요“의원의 말에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들거렸다.“어찌 그리 짐작하시는 겁니까?”지우의 물음에 의원은 말없이 서가에서 낡은 일지 한 권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일지에는 여러 독초의 성질과 독성, 그리고 법제법이 빼곡한 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소인은 젊은 시절 명나라에서 독초를 감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의원은 조용히 일지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그때 깨달았지요. 독초도 제대로 법제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실제로 제가 연구한 법제법으로 목숨을 건진 환자도 적지 않았습니다.”의원은 말끝을 흐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일지를 천천히 덮었다."헌데... 며칠 전 낯선 사내 하나가 저를 찾아왔습니다."의원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자신이 꼭 살려야 할 사람이 있는데, 단장초를 제대로 법제해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 약초를 구해 달라고 하더군요.“"그래서요?""제게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에는 의원들도 포기한 중병 환자를 살려 보겠다며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의원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저는 그 사내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막상 그가 가져가려 한 것은... 아직 법제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단장초였습니다."”그런데도 그 자에게 단장초를 판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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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달콤한 향의 함정

'부원군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의원의 마지막 말이 지우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부원군은 이미 죽었다. 김종서 대감도 누명은 벗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명회?설마 자기 사람까지 없앨 생각인 건가? 아니면...지우는 걸음을 멈추고 단종을 바라보았다."전하.""무슨 일이오?""한명회 말입니다. 혹시 요즘 그에게 이상한 낌새는 없었습니까?"단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한명회라면 요즘 짐이 은밀히 회유하고 있는 중이오.""회유 중이라고요?"회유라니... 역사가 달라지고 있는 건가?원래라면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핵심 책사였다.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느 편에도 완전히 서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지우는 낮게 입을 열었다."전하. 그렇다면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모르니 한명회를 당분간 안전한 곳으로옮겨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설마 그자들이 한명회까지 노린다는 말이오?""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의원의 말대로라면 부원군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단종은 지우의 말에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꼬르르륵.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단종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지우는 피식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전하.""…….""모처럼 궁 밖에 나온 김에 주막에 들러 국밥 한 그릇 하고 가실까요?"단종은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중전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였구려."“배가 고픈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두 사람은 근처에 보이는 주막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헌데 전하, 국밥은 드셔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음식을 시켜도 됩니다."지우의 말에 단종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막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먹어 본 적은 있소."지우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예전에 전왕 폐하를 모시고 잠행을 나선 적이 있었소."단종의 눈빛에 옅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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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같은 마차에 실린 자들

그 시각, 한명회가 갇혀 있는 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평소라면 죄수들의 신음 소리와 간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참 이상하군……."한명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살 너머를 내다보았다."오늘따라 옥이 너무 조용해.“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한명회 앞에 옥졸 하나가 다가왔다.옥졸은 말없이 문틈 사이로 주먹밥 한 덩이를 밀어 넣었다."드시오. 사식이오.""사식?"한명회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주먹밥은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적당한 크기에 깨까지 솔솔 뿌려져 있어, 죄수에게 내어줄 음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부인이 보내온 것인가?""웬 부인이 직접 전해 달라 하고 갔소."그 말에 한명회는 비로소 안심한 듯 주먹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속에는 잘게 썬 오이장아찌가 들어 있어 제법 맛이 있었다.“역시 부인이 음식 솜씨가 좀 있군.”그러나 몇 입 더 먹었을 때였다.입안에 은은한 쓴맛이 번지기 시작했다.'이상하군.'오이장아찌의 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쓰고 떫었다.이내 혀끝이 저릿해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이, 이건……."한명회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결국 그는 바닥으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잠시 후.조금 전 주먹밥을 건네고 갔던 옥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쓰러진 한명회를 내려다보며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허리춤에서 열쇠를 꺼내 조심스레 옥문을 열었다."약효가 제대로 들었군."옥졸은 한명회의 숨결을 손등으로 확인한 뒤 피식 웃었다.이어 준비해 온 커다란 자루를 펼쳐 한명회의 몸을 그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옥졸은 다시 조용히 옥문을 닫았다.자루를 어깨에 둘러멘 그는 의금부 뒷마당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다른 사내 하나가 마차를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이내 자루를 마차 위에 조심스레 실은 뒤, 의금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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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배후의 그림자

단종과 지우는 사내의 섬뜩한 미소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사내는 두 사람의 반응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보란 듯이 마차 안으로 손을 뻗더니,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한명회를 거칠게 끌어내렸다.“그자를 데려가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단종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한명회를 옆에 있던 동료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종을 바라보았다.“곧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지요.”사내는 단종의 질문에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말투와몸짓에서는, 마주한 이를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게 만드는 기괴한 기운이 느껴졌다.“혹시 수양대군이 시킨 일이냐?”단종의 곁에 서 있던 지우가 조용히 물었다.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다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긴 채 마차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부정하지 않았어…. 그럼 정말 수양대군이 배후라는 건가?'지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아니면…….'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역사가 이미 달라지고 있는 거라면?'원래 역사에서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가장 뛰어난 책사였다.하지만 자신의 개입으로 한명회를 끌어들이기 어려워졌다면?수양대군은 새로운 책사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방금 마주한 그 사내는, 어쩌면 한명회를 대신할 또 다른 책사일 수도 있었다."중전, 무슨 생각을 하시오?""예?""방금부터 계속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여 물은 것이오.""아까 그 사내가 풍기던 기운이 너무 섬뜩해서…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단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은 내 추측일 뿐이야.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전하께 말씀드리지 말자.'그때 밖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리더니 아까 그 사내가 다시 와 이번엔 지우와 단종에게내리라는 듯한 행동을 했다.마차에서 내린 단종과 지우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높은 산들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좁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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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명분과 야심

이른 아침부터 조정은 잠행에 나섰던 단종 내외가 아직 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으로 술렁이고 있었다.그러나 이 논의는 결코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수양대군이 새벽부터 대신들을 불러모아 단종 내외의 행방을 화두로 꺼내며 대책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정녕 전하를 걱정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신 것이오?”김종서가 특유의 묵직한 저음으로 묻자, 수양대군은 천천히 수염을 쓸어내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어찌 대신들을 이리 불러 모아 대책을 논하자 하겠소.”김종서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전하께서 궁을 비우신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오. 그런데 벌써 대신들을 모아대책을 논하자는 것은 너무 성급한 처사가 아니겠소?”“성급한 처사라…. 그럼 김종서 대감은 이 나라의 왕과 중전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조금도 걱정되지않으시오?”수양대군은 김종서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히 되물었다.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하지만 김종서만은 알 수 있었다.그 무표정 뒤에 감춰진 것은 평온함이 아니었다.'그렇다 한들, 나를 어찌할 셈이오?'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오만한 자신감이 그의 눈빛 깊숙이 서려 있었다.김종서는 말없이 수양대군을 응시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히자, 대신들 사이를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좋소. 수양대군, 그대가 생각하는 대책이 무엇이오?”“대책이라… 간단한 일이오.”수양대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우선 김종서 대감께서 직접 전하와 중전마마를 찾아 나서시는 것이 좋겠소.”“그리고 그동안은 조정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도록 우리 대신들이 각자의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소.전하께서 무사히 돌아오셨을 때, 아무런 근심 없이 정사를 이어 가실 수 있도록 말이오.”김종서는 수양대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전하를 찾겠다면서 정작 조정을 장악하려 드는군.'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아, 그리고 김종서 대감.”수양대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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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판을 뒤흔드는 자들

다급해 보이는 내관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수양대군이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내관은 숨을 고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그... 그것이 한명회라는 자 말씀이옵니다.” “한명회?” “예. 어젯밤 의금부 옥에서 탈출한 뒤 자취를 감췄사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대전 안이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종서는 눈썹을 치켜올린 채 내관을 노려보았다. “뭐라 하였느냐? 한명회가 옥에서 탈출해 자취를 감췄다고?” “송구하옵니다.” 내관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의금부에서도 철저히 감시하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간밤에 감쪽같이 사라졌사옵니다. 오늘 새벽 순라를 돌던 수문군이 이를 발견하고 급히 보고하였사옵니다.” 대신들 사이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명회는 단순한 죄인이 아니었다. 그의 탈옥은 조정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명회는 본디 대군의 책사로 알려진 자가 아니었소.” “그런 자가 의금부를 탈출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니…. 너무도 공교롭지 않소?” 순간 대전 안의 시선이 모두 수양대군에게 쏠렸다. 수양대군의 눈빛이 아주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는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표정을 되찾고 김종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김종서 대감께서는 내가 한명회를 의금부에서 빼돌렸다고 말씀하고 싶은 것이오?” 그럼 아니요?” 김종서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되물었다. 수양대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니라고 하면… 믿겠소?”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입을 다물었다. “…….”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수양대군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그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도 없었다. 김종서는 이를 악문 채 말없이 수양대군을 노려보았다. 수양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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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드러나는 음모의 흔적

대전을 나온 김종서는 곧바로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전하와 중전마마를 찾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 한양은 물론 성 밖까지 샅샅이 뒤져조금이라도 수상한 흔적이 있으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라.”“명을 받들겠습니다!”부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 뒤 서둘러 흩어졌다.김종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조금 전 대전에서 들은 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한명회의 탈옥...'그는 걸음을 멈춘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분명 수양대군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증좌가 없다.'김종서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문득 한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잠깐...'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한명회가 의금부를 빠져나간 시각이 어젯밤이라 했지.'그렇다면 그것은 단종과 중전이 궁에서 자취를 감춘 때와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우연일 리 없다.'김종서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한명회의 탈옥과 전하 내외의 실종... 두 사건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문제는 그 연결고리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수양대군... 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어 놓은 것이냐.'김종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지금 중요한 것은 의심이 아니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단종과 중전을 먼저 찾아내는 것.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임무였다.그때 김종서 앞에 부하 한 명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대감마님!"한 부하가 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대감마님."한 부하가 급히 달려와 예를 올렸다."수색대를 한양 전역은 물론 성 밖까지 모두 풀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숭례문 인근에서 수상한 두 사내를 보았다는 자가 있습니다."김종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래?"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그자를 이리 데려오너라. 어쩌면 전하와 중전마마의 행방을 찾을 중요한 단서를 보았을지도 모른다.""예, 대감마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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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거짓 시신, 진짜 의심

오랜 서책과 낡은 탁자, 그리고 은은한 등불이 어우러진 석실 안에는 족장과 쿠란, 그리고 금성대군이 두 구의 시신 앞에 서 있었다."모화관에 이런 곳도 있었군."족장이 낮게 감탄하듯 말하자 금성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족장께서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원하신다 하여 이곳을 안내해 드렸습니다."금성대군은 낡은 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옅은 그리움이 스쳤다."이곳은 예전에 세종대왕께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실 때마다 대신들과 국사를 논하시던 석실입니다."그는 잠시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들을 바라보았다."당시 세자였던 선왕께서도 늘 이 자리에 함께하셨지요. 두 분 모두 깊이 생각하실 일이 있을 때면 서책을 펼쳐 들고 밤이 새도록 의견을 나누곤 하셨습니다.““보아하니 추억이 꽤 쌓여있는 곳 같은데 내가 이리 써도 되는가?”족장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예, 괘념치 마십시오. 선왕께서 병환이 깊어지신 뒤로는 발길이 끊긴 곳입니다.”“그럼 그리 알고 잘 쓰도록 하지. 쿠란 백의원은?”“백 의원께서는 지금 안에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곧 나오시라 전하겠습니다.”족장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성대군을 바라보았다.“금성대군, 자네는 사람 하나를 속여 본 적이 있나?”“예? 속여 본 적이요?”“수양대군을 속일 연기를 해야 하네.”족장의 말에 금성대군은 잠시 표정을 굳혔다.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어차피 족장님의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반드시 해야 할 연기 아닙니까. 해 보겠습니다."금성대군의 대답에 만족한 듯 족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때 족장의 뒤로 긴 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사내가 조용히 걸어왔다.고운 이목구비 때문인지 얼핏 보면 남녀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중성적인 인상이었다.그는 두 구의 시신을 차례로 바라보다 족장에게 물었다."제가 살펴봐야 할 시신이 어느 쪽입니까?"족장은 고개를 살짝 돌려 앞에 놓인 시신을 가리켰다."자네 바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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