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Chapter 141 - Chapter 150

177 Chapters

141화. 장부를 기다리는 자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박성규의 아내가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연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모님과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태성도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저희가 찾아온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안전한 거처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누구도 믿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은 카세트테이프와 수첩을 증거물 보관 봉투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원본은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록 전문 기관에 복원과 감정을 맡기겠습니다.” “복사본을 먼저 만들고, 원본은 사모님 동의 없이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박성규의 사진을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 “가져가요.” “그 사람도 이걸 숨기기만 하려고 남긴 건 아닐 테니까.” 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진실만 밝히는 게 아니라 박 상무님의 진실도 함께 밝힐게요.” 박성규의 아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남편이 잘못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마요.” 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사람도 돈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회사를 망가뜨리는 일에 가담했어요.”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겁을 먹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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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이민우의 덫

진혁에게서 CK 물류에 관한 보고가 도착한 것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박성규가 남긴 수첩 속 메모. M-17 / CK 물류 / 지하 보관실. 그 짧은 문장을 시작으로 진혁은 폐업 법인의 기록과 토지대장, 건물 소유권 변경 내역을 밤새 추적했다. CK 물류는 서류상으로 십 년 전에 폐업한 회사였다. 하지만 도심 외곽에 자리한 물류 터미널은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 소유자는 이창석이나 이민우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은 투자 법인이었다. 문제는 그 투자 법인의 대표가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대표자는 오랫동안 해외에 체류 중이었고, 국내에서 회사를 운영한 기록도 없었다. 그럼에도 세금과 건물 관리비, 화재보험료는 단 한 번도 연체되지 않았다. 누군가 건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혁이 마지막으로 찾아낸 기록은 더욱 수상했다. 정우 산업이 파산한 직후, 수십 개의 문서 상자가 CK 물류로 옮겨졌다는 운송 기록이었다. 운송 지시자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지만 도착지는 분명했다. 지하 보관실 M-17. 그리고 그날 이후 그 공간이 다시 열렸다는 공식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성은 진혁이 보내온 자료를 몇 번이고 살펴봤다. 모든 단서가 지나치게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의심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자신들이 그곳까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길을 닦아놓은 것 같았다. 태성은 옆에서 자료를 읽고 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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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놓지 않는 손

“거짓말.” 연수는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이민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당신도 이미 알아봤잖아.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보았던 아버지의 서명이니까. 연수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 말은 정확했다. 문서에 적힌 서명은 너무도 익숙했다. 아버지가 생일카드에 써주던 이름. 학교 준비물에 적어주던 글씨. 회사에서 돌아와 피곤한 얼굴로 자신이 내민 알림장에 서명하던 손끝까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민우는 연수의 침묵을 즐기는 듯했다. —왜 아무 말도 못 하지? 연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명만 진짜일 수도 있어.” —그래? “내용을 속이고 받은 서명일 수도 있고,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박성규가 남긴 유서도 거짓이라고 해야겠군. 태성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유서지?” —박성규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록. 박성규의 아내는 녹음테이프와 수첩을 건넸지만 유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성은 이민우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정말 그런 게 있다면 공개해.” —때가 되면. “존재하지 않으니까 보여주지 못하는 거겠지.” 태성의 도발에도 이민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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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불길 속에 갇히다

“우리는 같이 들어가고.” 연수가 태성의 말을 이었다. “같이 나가요.”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단단히 잡은 채 비밀 통로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진혁이 휴대전화의 불빛으로 앞을 비추며 먼저 좁은 통로를 살폈다. 벽과 천장은 모두 녹슨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오래된 먼지 위에는 누군가 최근에 오간 듯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태성은 한 손으로 연수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벽을 짚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답답해졌다. 오래된 기름과 금속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진혁이 앞쪽을 살피며 낮게 말했다. “통로 끝에 공간이 하나 더 있어.”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아직은 모르겠어.” 진혁이 바닥의 발자국을 비췄다. 안쪽으로 들어간 흔적뿐 아니라 밖으로 나온 흔적도 여러 개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 이 장소를 최근까지 드나들었다는 뜻이었다. 연수는 태성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태성이 곧바로 그녀를 돌아봤다. “괜찮아?” “네.” 연수는 짧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태성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 뒤에 있어.” “오빠도 혼자 앞에 나가지 마요.” “연수야.” “약속했잖아요.” 연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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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불길 속의 진실

하정우는 중요한 서류를 구분할 때 문서 모서리에 작은 점 두 개와 선 하나를 남기곤 했다. 남들은 의미 없는 낙서라고 생각했지만 연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만의 표시였다. “잠깐만요.” 연수가 태성의 팔을 조심스럽게 벽에 기대게 했다. “연수야, 어디 가?” “아빠 표시가 있어요.” 연수는 연기가 자욱한 바닥을 기어 서류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위험해! 돌아와!” 태성이 따라가려 했지만 상처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연수는 불길이 번지기 직전 상자 안에서 얇은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서류철 겉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 아래에 아버지의 표시가 있었다. 연수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철을 펼쳤다. 대부분 비어 있는 종이들이었다. 그 가운데 한 장의 뒷면에 작고 흐릿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연수는 소매로 먼지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을 멈췄다. 서명하지 않은 장부를 믿지 마라. 숫자는 M-17에서 다시 시작된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연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잉크가 흐려졌지만 글자의 기울기와 마지막 획을 올리는 습관은 분명 하정우의 것이었다. 연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아빠…….” 태성이 힘겹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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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강제된 이별

“강태성 대표님! 폐쇄된 물류 창고에 불법 침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연수 씨! 하정우 대표가 불법 자금 이동에 가담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강태성 대표가 증거를 없애려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정우 산업의 기밀 자료를 훔치려 했다는 의혹을 인정하십니까?”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질문이 쏟아졌다. 연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걸음을 멈췄다. 태성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감춘 채 즉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 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화재는 계획된 범죄야. 우리는 안에서 죽을 뻔했어.” 그러나 기자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태성의 상처와 연수의 그을린 얼굴을 더욱 가까이 촬영했다. “계획된 범죄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누가 불을 질렀습니까?” “건물 안에서 가져온 자료를 공개할 수 있습니까?” 태성은 연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쌌다. “연수야, 아무 말도 하지 마.” “하지만 오빠…….”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전부 편집돼서 이용될 거야.” 그때 경찰들이 기자들 사이를 가르며 다가왔다. 선두에 선 형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강태성 씨 맞습니까?” 태성은 연수를 등 뒤에 둔 채 형사를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CK 물류 소유 법인으로부터 불법 침입 및 기밀문서 절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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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무너진 태성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경찰청 지하 취조실을 희게 물들이고 있었다. 태성은 금속 의자에 앉아 다친 어깨를 감싼 붕대 위로 피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시간도 없이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은 채 곧바로 조사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맞은편에 앉은 형사는 두꺼운 서류철을 펼쳤다. “강태성 씨가 CK 물류 터미널에 들어간 이유부터 다시 말씀해주시죠.” “이미 말했습니다.” 태성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20년 전 정우 산업 사건과 관련된 원본 자료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들어갔습니다.” “정식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직접 들어갔군요.” “자료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유지에 무단 침입하고 금고까지 열었다는 겁니까?” 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형사는 탁자 위에 사진 몇 장을 내려놓았다. CCTV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태성이 금고 앞에 서 있는 장면. 진혁이 주변을 살피는 장면. 연수가 금고 안의 문서를 꺼내는 장면. 그러나 문이 닫히고 불길이 번지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상이 편집됐습니다.” 태성이 차갑게 말했다. “우리가 안에 갇힌 뒤의 기록은 없군요.” “원본 여부는 분석 중입니다.” “발화 장치와 통신 차단 장치를 찾으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형사는 태성을 잠시 바라봤다. “현장은 화재로 상당 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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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시각 진혁은 태성의 전담 변호사와 함께 경찰청 복도를 빠르게 걷고 있었다. “구속영장 청구 전에 막아야 합니다.” 변호사가 낮게 말했다. “불법 침입 정황은 명확하지만, 방화 혐의를 뒤집을 증거가 필요합니다.” “현장에 발화 촉진제 분사 장치가 있었어요.” “소방 감식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화재 전에 통신 차단 장치도 작동했습니다.” “그것도 잔해에서 찾아야 증거가 됩니다.”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민우는 불길로 현장을 지웠고, 언론으로 사람들의 판단을 먼저 움직였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태성은 이미 유죄가 된 것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진혁은 휴대전화를 꺼내 보안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CK 물류 주변 사설 CCTV 전부 확보해.” —건물 내부 영상은 이미 경찰이 가져갔습니다. “내부 말고 외부.” 진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화재 전에 들어간 차량, 발화 장치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 기자들이 도착한 시간까지 전부 확인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신고자 신원도 추적해. 경찰 신고보다 먼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가 뿌려졌다면 발신 기록이 남아 있을 거야.” 통화를 끊은 진혁은 다시 다른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태성그룹 내부 감사팀이었다. “이사회에 넘어간 자료 전부 복사해 보내십시오.” —어떤 자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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