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Chapter 31 - Chapter 40

115 Chapters

29. 사냥대회에 위기가 닥치다

한참 뒤 잠에서 깬 엘로라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저 얼마나 잤어요?” “한 시간쯤.” “왜 안 깨우셨어요.” “자는 얼굴이 보기 좋아서.” “그런 말은 진짜 갑자기 하지 마시라니까요.” “예고하면 재미없다니까.” 엘로라는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책을 챙겨 들었다. 귀족 파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회의장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그 과정에서 일부 귀족들이 엘로라를 노골적으로 눈엣가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황제가 국정을 소홀히 한다던 게 사실입니까?” 이런 근거 없는 말까지 퍼져나갔다. 물론 그 중심에 있는 건 바로 레이너드 후작이었다. 그는 조용히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 칼리안 앞에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보고를 받은 칼리안은 겉으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테, 귀족들의 움직임을 은밀히 감시하라.” 허나 기사단장에게는 이리 명령했다. 그걸 들은 엘로라가 핀잔을 주었다. “왜 저한테는 말씀 안 해주세요, 이런 일이요.” “괜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아서.” “걱정은 모르고 있을 때 더 커지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군.” 칼리안은 짧게 인정했지만, 여전히 모든 위험은 자신이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란 것도 모르고. * 어두운 밤, 인적 없는 골목. 황궁 서기관 로이가 낯선 자에게 작은 종이를 건넸다. “대공가 관련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상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로이는 식은땀을 닦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황궁으로 돌아갔다. 낮과 달리 그의 충직한 얼굴이 오늘 밤따라 어두워 보였다. 달빛에 그의 하얀 얼굴이 희미하게 빛났다. * 다음 날, 엘로라는 우연히 서고 앞을 지나다 로이와 마주쳤다. “서기관님, 요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아, 아닙니다, 황녀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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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다

“히이잉!” 공포에 질린 말이 절벽으로 향했다. 그걸 눈치챈 엘로라는 사색에 질렸다. 그녀가 몸을 돌려 말에게서 뛰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아앗!” 그때 말발굽이 바위를 밟고 미끄러졌다. “으아악!” 중심을 잃은 엘로라는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그리고는 거센 계곡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뭐라고?” “그러니까 그게, 황녀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뒤늦게 보고를 들은 칼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설명도 듣지 않은 채 말을 돌려 숲속으로 달려가며, 처음으로 공포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엘로라를 찾아!”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엘로라는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물결 사이로 어린 시절 로웰과 웃던 기억, 그리고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던 칼리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계곡 끝에서 옷자락을 발견한 칼리안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급류 속으로 몸을 던져 끝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차가운 강물 속에서 의식을 잃은 그녀에게 인공호흡을 하던 칼리안은, 비로소 자신의 집착이 단순한 소유욕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자각했다. 간신히 눈을 뜬 엘로라는 자신의 낙마가 계획된 사고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직감했다. 차갑게 식은 몸을 끌어올린 순간, 칼리안의 심장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으로 거칠게 흔들렸다. * 물 밖으로 끌어올린 뒤에도 한동안 그녀를 놓지 못하는 칼리안의 얼굴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는 황제도 폭군도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며 필사적으로 살려내려 했다. “엘로라, 정신 차려. 제발.” 흐릿한 시야 너머로 그의 눈빛에 담긴 순수한 두려움을 본 엘로라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도망치고 싶었던 이 사람이, 어쩌면 누구보다 자신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폐하.” “말하지 마, 지금은.” “괜찮아요, 저.” “괜찮다는 말, 지금은 안 믿어.”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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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고 조사

사냥대회 사고를 조사하던 기사단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누군가 일부러 엘로라의 말을 놀라게 했고, 위험한 장소로 유도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보고를 받은 칼리안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가 감히 내 손에서 그녀를 빼앗으려 했지.” 그의 조용한 분노가 황궁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자신이 다시 문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 엘로라는, 조심스럽게 칼리안을 찾아가 이번만큼은 잔혹한 선택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답했다.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겠다.” 그 작은 변화가 엘로라에게는 가장 크게 다가왔다. 최종 판결에서 칼리안은 관련자들의 작위를 박탈하고 국외로 추방하라 명령했다. 예전 같았다면 피로 끝났을 일이, 이번엔 제국의 법에 따른 처벌로 마무리되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솔직한 말에 엘로라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 사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겨울이 다가오며 궁 안은 채비로 분주해졌다. “곧 첫눈이 오겠네요.” 엘로라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눈 좋아하나.” “네, 어릴 때부터요.” “그럼 눈 오는 날, 정원에 나가지.” “…감시 없이요?” “감시는 있어야지. 그래도 나만 붙으면 되잖아.” “그게 감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적어도 덜 답답하지 않나.” 엘로라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로웰이 그녀의 방을 찾아와 작은 상자를 건넸다. “아가씨, 이건 겨울 준비물이에요.” 상자 안에는 목도리와 함께, 낯익은 흰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엘로라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 방문을 잠근 뒤, 엘로라는 촛불에 그 종이를 비춰보았다. 희미한 글씨가 천천히 떠올랐다. “아가씨, 레이너드 후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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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눈밭에서의 고백

“…후작님이 여긴 어쩐 일로.” 로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저 안부가 궁금해서 들렀을 뿐입니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사이 아닙니까.” “그런 사이였던 적 없습니다.” “그런가요. 제 기억은 조금 다른데.” 레이너드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로웰의 품속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방금 감추신 그것, 혹시 오래된 유품입니까?” 로웰은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냥 낡은 손수건입니다.” “그런가요.” 레이너드는 더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지요.” 그가 방을 나선 뒤에야 로웰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위험해. 생각보다 훨씬 더.’ 그녀는 그 밤 안으로, 촛불 편지를 써 엘로라에게 전할 준비를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엘로라는 로웰이 몰래 건넨 종이를 받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촛불에 비추자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레이너드 후작이 어젯밤 제 방까지 찾아왔어요. 위험해요, 아가씨. 당분간 저와 거리를 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엘로라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거리를 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는 곧장 로웰을 찾아갔다. “유모, 거리를 두라니. 나 유모 없이 못 지내.” “아가씨, 지금은 제 걱정보다 아가씨 안전이 먼저예요.” “그렇게 말하지 마. 우리 같이 견디기로 했잖아.” 로웰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네, 알겠어요. 그래도 조심은 하기로 해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감시도 위협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 그날 저녁, 엘로라는 결국 칼리안에게 이 일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레이너드 후작이 로웰을 찾아갔대요.” 칼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언제.” “어젯밤이요.”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유모가 너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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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엘로라의 정체

며칠이 지나도록 칼리안은 그날 정원에서 하려던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엘로라는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그의 표정이 너무 무거워 보여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대신 궁 안의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기사단장 단테가 은밀히 올린 보고서에는, 레이너드 후작과 접촉한 인물들의 명단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그중에 서기관 로이도 있습니다.” 칼리안의 눈빛이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로이가.”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계속 감시해.” 칼리안은 짧게 지시를 내렸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로이는 어릴 적부터 궁에서 함께 자란, 몇 안 되는 신뢰하던 인물이었다. * 그날 저녁, 칼리안은 평소와 다르게 말수가 줄어 있었다. 엘로라는 그런 그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요.” 칼리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아?” “…힘드시겠죠.” “힘든 정도가 아니야. 스스로가 바보 같아져.” “누구도 배신을 미리 알아챌 수는 없어요. 그건 폐하 잘못이 아니에요.” 칼리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런 말, 위로가 되는군.” “위로하려고 한 말이에요.” “알아.” 그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는 아니라는 거야.” 엘로라는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 같은 시각, 로웰의 방에서는 은밀한 손길이 오래된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레이너드가 심어둔 하녀 하나가, 로웰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들어온 것이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그녀는 낯익은 은빛 펜던트와, 반쯤 타다 남은 종이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종이에는 희미하게 “대공가”라는 글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녀는 그것을 재빨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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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황녀의 어머니

종소리는 외부 침입을 알리는 비상 신호였다. 칼리안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마저 듣지. 지금은 가봐야겠어.” “폐하, 위험한 거 아니에요?” “모르겠어. 확인해보지.” 그는 로웰과 엘로라를 향해 짧게 지시했다. “둘 다 이 방에서 나가지 마. 기사들을 붙여두겠다.” 칼리안이 서둘러 방을 나선 뒤, 두 사람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유모, 방금 하려던 말, 마저 해줘.” “…지금은 너무 위험해요, 아가씨.” “그래도.” 로웰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요. 이 소란이 가라앉으면, 반드시 다 말씀드릴게요.” 바깥에서는 기사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엘로라는 창밖을 내다보며, 오늘 이 소란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 궁 외곽 성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칼리안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기사들이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누구의 짓이지.” “복면을 쓰고 있어 신원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다만 뭐.” “그들 중 하나가 도주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레이스의 핏줄을 되찾으러 왔다’고요.” 칼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레이스라니.’ 그것은 로웰이 말하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철저히 수색해. 한 놈도 놓치지 마.” 밤새 이어진 수색에도, 침입자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 새벽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칼리안은, 지친 얼굴로 엘로라의 방을 찾았다. “괜찮으세요?” “…그럭저럭.”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칼리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침입자들이, 그레이스의 핏줄을 되찾으러 왔다고 했어.” 엘로라의 숨이 순간 멎었다. “…그게, 저를 말하는 건가요?” “…아직은, 나도 확신할 수 없어.” “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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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좁혀오는 위협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똑똑. 낮은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 “로웰 님, 안에 계십니까.” 경비를 서던 기사의 목소리였다. 로웰은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순찰 중 불빛이 꺼진 게 이상해서 확인차 왔습니다. 별일 없으십니까.” “네, 그냥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어요.”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발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세 사람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칼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오늘 밤은 여기까지 하지.” “하지만 폐하…”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 다음엔 더 안전한 곳에서, 확실하게 듣겠다.” 엘로라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인데.’ 그 진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녀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 세 사람은 다음 날 밤, 좀 더 안전한 장소에서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칼리안은 황제의 개인 서고, 오직 그만이 열쇠를 가진 곳을 장소로 정했다. “그곳이라면 아무도 엿들을 수 없어.” “…내일 밤이라는 거죠.” “그래.” 엘로라는 그날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정무를 도왔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 이름으로 가득했다. ‘이자벨라 그레이스.’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름들이었다. 로웰 역시 그날 하루 종일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몇 번이고 창밖을 살피며,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유모, 괜찮아?” “…네, 아가씨. 그냥 조금 긴장돼서요.” “나도 그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옅게 웃었다. * 다음 날 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은밀히 황제의 서고로 향했다. 엘로라가 가장 먼저 도착해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칼리안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웰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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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황녀의 핏줄

그날 저녁, 로웰이 창백한 얼굴로 엘로라를 찾아왔다. “아가씨, 아무래도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뜻이야?”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말씀드릴게요. 더 늦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엘로라는 그 각오에 담긴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각오할게, 유모.” 칼리안에게도 이 사실이 전해졌다. “오늘 밤, 침실에서 하지. 그곳이 가장 안전해.” “…네.” 밤이 깊어지자,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은밀히 모였다. 이번엔 침실 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기사 두 명을 문 앞에 세워두었다. 로웰이 떨리는 손으로 낡은 펜던트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촛불이 그 은빛 표면 위로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 “아가씨, 이제 정말 다 말씀드릴게요.” 로웰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의 망설임이 없었다. “아가씨의 친모님, 이자벨라 그레이스 님은…” 엘로라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칼리안 역시 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그러나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국 최고의 대마법사이자, 오래전 사라진 그레이스 대공가의 유일한 후계자셨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엘로라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대마법사, 대공가의 후계자.’ “그럼 저는…” 로웰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사생아가 아니라, 그레이스 대공가의 정당한 핏줄이십니다.” 바로 그때, 창밖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 하나가 로웰이 서 있던 자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엎드려!” 칼리안이 재빨리 엘로라를 끌어당겨 바닥에 몸을 낮췄다. 깨진 창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들이 담을 넘어오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을 불러!” 문밖에 있던 경비병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뛰어들었다. 로웰은 겁에 질린 얼굴로 펜던트를 꽉 움켜쥐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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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유모의 전언

“유모!” 엘로라는 참지 못하고 벽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가씨, 안 돼요!” 로웰이 비명처럼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사내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순간, 문밖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칼리안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사내의 검을 쳐내며 그 앞을 가로막아 섰다. “내 사람에게 손대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는다.” 서늘한 그 목소리에 사내는 주춤 물러섰지만, 곧바로 창문을 통해 몸을 던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칼리안이 곧장 엘로라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괜찮아요, 저는.” 그는 그제야 안도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로웰이 힘없이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엘로라가 놀라 돌아보자, 로웰의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 “유모!” 엘로라가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요, 아가씨… 그냥 스친 것뿐이에요.” 로웰의 목소리는 애써 태연했지만, 손끝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칼리안이 즉시 의원을 부르라 소리쳤다. 로웰은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엘로라의 손을 꼭 붙잡았다. “아가씨, 아까 말씀드리려던 게 있었죠.” “지금은 그런 얘기 하지 마, 유모. 우선 치료부터…” “아니요, 지금 꼭 말씀드려야 해요.” 로웰은 힘겹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 펜던트 안쪽에, 작은 걸쇠가 있어요. 그걸 열면…”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열면, 뭐가 있는데.” “…그 안에, 진짜 중요한 게…” 로웰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유모! 유모, 정신 차려!” 엘로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밤의 침실 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원들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 의원은 서둘러 로웰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급소는 피했습니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서, 당분간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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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깨어나다

엘로라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며 로웰을 돌아보았다. “유모! 깨어난 거야?” 로웰이 힘겹게 눈을 떴다. “…네, 아가씨. 정신이 좀 드네요.” 엘로라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그런 말 하지 마. 유모가 무사한 게 제일 중요해.” 로웰은 힘없이 웃으며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아직, 그건 열면 안 돼요.” “왜, 왜 안 되는데.” “그 안에 담긴 진실은, 아가씨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클지도 몰라요. 제가 다 나으면, 그때 폐하와 함께 열어요.” “…알겠어. 유모 말대로 할게.” 칼리안이 조용히 다가와 로웰의 곁에 앉았다. “정말 다행이야. 로웰이 무사해서.” “…폐하, 감사합니다. 아가씨를 지켜주셔서.”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니까.” 세 사람 사이에는 이전과는 다른, 단단한 유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로웰이 다시 눈을 감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레이너드 후작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 거예요. 아가씨, 앞으로가 더 위험할지도 몰라요.” 엘로라는 그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시작인 거야.’ 창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와 함께,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 궁 밖, 몸을 숨긴 레이너드는 낯선 흑발의 사내를 마주한 채 낮게 속삭였다. “이제 진짜 시작이오. 그레이스의 마지막 후계자를, 반드시 우리 손에 넣어야 하니까.” 흑발의 사내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한편 황궁의 침실에서는, 엘로라가 잠든 로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리안이 그녀의 어깨에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너도 좀 쉬어. 밤새 한숨도 못 잤잖아.” “…폐하는요?” “나는 네 곁에 있을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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