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폭군이 뻐꾸기 황녀에게 집착한다: Chapter 51 - Chapter 60

115 Chapters

49. 봄바람이 실어 온 소식

창밖으로 부서지던 따스한 봄볕이 집무실 바닥을 길게 늘어뜨릴 무렵. 평화로운 기류를 깨는 가벼운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똑, 똑, 똑. 방해받고 싶지 않은 오후였기에 칼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이 시간에 집무실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제국의 수석 비서관이자 그들의 오랜 심복인 세이렌이었다. “폐하, 황후 폐하. 실례를 무릅쓰고 아뢰옵니다.” 세이렌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상기되어 있었다. 엘로라는 칼리안의 품에서 살짝 몸을 일으키며 옷소매를 정돈했다. “무슨 일이지? 급한 보고라도 들어왔나?” 칼리안이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외교 회담이 끝난 지 하루 만에 다시 업무 모드로 돌아온 그의 눈빛에서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세이렌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었다. “급보라기보다는…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남부 항구 도시인 칼리아스에서 급행 편으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아르테 미 공작 영지의 상단 선단이 겨울을 나고 첫 항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르테 미 공작가의 선단?” 엘로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르테 미 공작가는 제국 남부의 거대한 해상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가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외교전에서 제국의 든든한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주기로 약속한 핵심 동맹이었다. 그들이 겨울 동안 묶여 있던 항구를 열고 첫 무역선을 출항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제국의 경제적 활력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 선단에 실린 물품들은 확인되었나?” “예, 폐하. 북방과의 협정으로 새로 확보한 광산에서 채굴된 희귀 광물들과 남부의 특산물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특히 이번 선단에는 지난번 수도 화재로 소실될 뻔했던 대륙 동맹국의 희귀 서적들도 함께 실려 있어, 학술계의 반응도 폭발적일 것이라 합니다.” 세이렌의 보고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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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정원에서 피어난 약속

황궁의 대정원. 그곳은 작년 겨울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낸 채, 완연한 생동감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햇살을 머금은 잔디는 유난히 초록빛이 짙었다. 또 굽이치는 산책로를 따라 만개한 영산홍과 튤립이 오색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흐흥~!” 엘로라가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살랑이는 봄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넘겼다. 그녀는 정원의 풍경을 눈에 담더니 입을 뗐다. “아, 공기가 정말 상쾌해요. 집무실 안에만 박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나와 보니 진짜 봄이 왔다는 게 실감 나네요.” “그러게 말이다. 네가 고생한 덕분에 황궁 안에도, 제국 전체에도 비로소 진짜 봄이 찾아왔어.” 칼리안은 그녀의 곁을 나란히 걸으며 다정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의 뒤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세이렌을 비롯한 몇 명의 근위병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랐다. 허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연인들의 산책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걷다 보니 정원 중앙에 위치한 하얀 대리석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엘로라는 분수대 난간에 가볍게 기대어 물소리를 들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폐하.” “응?” “생각해보면 참 신기해요.” “무엇이 말이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나란히 서서 평화로운 정원을 거닐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에요.” 엘로라의 목소리에 아련한 회포가 묻어났다. 칼리안 역시 그녀의 옆에 나란히 기대어 먼 과거를 떠올리듯 미소 지었다. “그땐 서로를 경계하기 바빴지. 너는 나를 의심하고, 나는 네 곧은 성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고.” “전전긍긍요? 폐하가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요.” “허세를 부린 거지. 제국의 황제가 얕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하지만…” 칼리안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엘로라의 눈을 깊게 응시했다. 그의 빨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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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특사가 파견되다

문득, 칼리안의 품에 안겨 있던 엘로라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햇살을 받아 부서지는 그의 흑발과 깊은 눈동자가 눈에 담겼다.외교의 최전선에서 온갖 회유와 협박을 버텨내야 했던 그였다.비록 방금 전의 승리로 한숨을 돌리긴 했으나, 제국의 황제가 짊어진 무게는 여전히 무겁고 거대했다.그녀는 칼리안의 굵고 단단한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살포시 포갰다.“폐하, 이번 협정은 확실하겠죠?”“어느 쪽을 걱정하는 거지? 북방의 밀약인가, 아니면 남부 상단의 항로인가.”“둘 다요.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봄을 만끽하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음모가 꿈틀거리고 있을지 몰라요.”엘로라의 목소리에 은은한 긴장감이 실렸다.여제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경계심이자, 칼리안을 향한 깊은 염려였다.칼리안은 그녀의 손을 뒤집어 부드럽게 깍지를 끼우며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 북방의 영주들은 이미 네가 보여준 철혈의 수단에 뼛속까지 각인되었어. 당분간은 우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 못할 거다. 그리고 남부의 상단들도 이번에 우리가 베푼 관세 완화 덕분에 제국에 완전히 충성을 맹세했지.”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단순한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었다.철저한 계산과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에요. 제국은 넓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귀족들도 아직 수두룩하니까요.”“알고 있어. 하지만 잊지 마, 엘로라. 너에게는 내가 있고, 내게는 네가 있어. 이 제국에서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있는 이상,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칼리안의 단호한 선언은 집무실 안을 울리던 따스한 공기만큼이나 묵직한 신뢰를 주었다.엘로라는 그 단단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침내 마음 깊은 곳의 불안까지 완전히 지워낼 수 있었다.그녀는 피식 웃으며 칼리안의 품에 조금 더 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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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다가오는 위기

특사 실비안은 은색 머리칼을 반짝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품속에서 삼중으로 봉인된 은빛 서신을 꺼내 들었다.그 봉인 위에 찍힌 인장은 벨키아 왕실의 최상급 기밀 문서에만 쓰이는 왕의 직인이었다.서신을 건네받은 세이렌이 곧바로 밀봉을 해제했다.두루마리를 펼쳐 칼리안과 엘로라에게 정중히 바쳤다.“어떤 소식이지?”칼리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실비안이 창백해진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이었다.“벨키아 왕국의 북쪽 국경입니다.”칼리안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그러자 그가 설명했다.“인접한 에메랄드 산맥 일대에… 정체불명의 대규모 마수 떼가 출몰했습니다.”실비안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단순한 야생 마수의 무리가 아닙니다.”“누군가 고대의 흑마법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흔적이 완벽히 발견되었습니다.”특사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왔다.엘로라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가늘어졌다.“마수 떼를 조종한다고?”엘로라가 황급히 허리를 곧게 펴며 물었다.그녀의 목소리에 서늘한 긴장감이 배어났다.금지된 흑마법으로 마수를 부리는 행위였다.대륙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대죄였다.수백 년 전 대륙을 피로 물들였던 마왕전쟁 당시의 암흑 교단이 쓰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서신을 직접 눈으로 훑어 내려가던 칼리안의 콧날 위로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서신을 보니 대단히 급박하군.”칼리안이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서신을 책상 위에 던졌다.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실비안을 응시하며 이었다.“벨키아의 국왕이 직접 지원을 요청해 왔어?”“그렇습니다, 황제 폐하!”실비안이 파란 눈을 다급하게 깔았다.그리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최근 우리 제국이 북방의 영토 분쟁을 종결하고 외교적 승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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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재앙의 서막

“물론 나의 친위기사단과 마법사단도 출정 대기시키겠다.” 그가 이어서 단단히 일렀다. “이번 토벌전은 단순한 동맹 조율이 아니다.” “우리 제국의 절대적인 무력과 권위를 대륙 만방에 각인시킬 완벽한 무대로 만들 것이다.” 칼리안의 서슬 퍼런 명령이었다. 세이렌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황명에 절대 복종하겠습니다!” 세이렌이 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타악-! 닫혀 있던 무거운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비틀거리듯 뛰어 들어온 정찰병의 얼굴이 종이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에메랄드 산맥의 마수들이… 인간이 조종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뭐라고?” 정찰병이 온몸을 파르르 떨며 충격적인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 마수 떼의 선두에… 수백 년 전 봉인되었던 ‘재앙의 마왕수’가 직접 군세를 이끌고 우리 국경을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집무실의 유리를 통과해 들어오던 따스한 봄볕이 순식간에 차가운 암흑 속으로 파묻혔다. 정찰병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는 집무실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뜨렸다. ‘재앙의 마왕수라니…!’ 역사책의 가장 어두운 장에나 파묻혀 있던 그 이름이, 이 평화로운 봄날에 현실의 공포가 되어 되살아난 것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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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봄을 안겨줄게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황궁은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의 전야처럼 가라앉았다. 황실의 붉은 군기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각 영지에서 차출된 정예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수도 광장으로 쉴 새 없이 모여들었다. 철갑이 부딪치는 소리와 군마의 거친 숨소리가 뒤엉켜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짓눌렀다. “군대의 보급과 마법 탄약의 비축은 끝났나?” 칼리안이 전면 갑주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채 마차에 오르며 세이렌에게 물었다. 그의 은빛 갑옷 위로 서늘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예, 폐하. 국경으로 향하는 보급로는 이미 확보되었습니다.” 세이렌이 칼을 고쳐 잡으며 팽팽하게 긴장한 얼굴로 아뢰었다. “다만… 벨키아 왕국 측에서 보낸 추가 전령에 따르면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합니다.” “심각해?” “재앙의 마왕수가 이동하는 경로 주변의 대지가… 완전히 검게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수의 마기가 대지 전체를 오염시키며 진군하는 중이라, 평범한 군사들은 그 마기만 스쳐도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흑마법에 의한 대지 오염이라.” 엘로라가 마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낮게 읊조렸다. 그녀 역시 전투용으로 개량된 단정한 제복 차림이었고, 손목에는 최고 등급의 마력 증폭 팔찌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괴수 토벌이 아니에요. 이건 제국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저주에 가까워요.” “그렇기에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이다.” 칼리안이 엘로라의 손을 잡으며 마차 안쪽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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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드래곤과의 결투

쿵, 쿵-! 대지가 울릴 때마다 지면이 갈라지고 검붉은 용암 같은 불길이 사방으로 튀었다. 온몸이 시커먼 암석 갑옷으로 뒤덮인 괴수, 그 머리 위에는 뒤틀린 거대한 뿔이 사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백 년 전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재앙의 마왕수’가 마침내 그 거대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크으으… 인간의 냄새가 난다.” 괴수가 입을 열 때마다 지옥의 유황 냄새 같은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마왕수의 붉은 눈동자가 칼리안과 엘로라를 정확히 향했다. 그 압도적인 살기와 위압감에 주변의 정예 기사들조차 숨을 쉬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하지만 칼리안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허리춤에서 왕가의 보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찬란한 황금빛 마력이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사방을 환하게 밝히었다. “내 영토를 더럽히고, 내 백성을 위협하는 자에게 자비란 없다.” 칼리안의 목소리가 전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의 등 뒤로 황실 마법사단이 일제히 영창을 시작하며 푸른빛의 거대한 마법진을 전개했다. 엘로라 역시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얀 손끝에서 찬란한 결계의 빛이 피어올랐다. “엘로라.” “마음껏 베어버리세요, 폐하.” 두 사람의 눈빛이 마왕수를 향해 동시에 번뜩였다. 제국의 운명을 건 피의 격전이, 그 찬란하고도 잔혹한 서막을 열며 마왕수를 향해 폭발하듯 쏟아져 내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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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괴수 토벌 성공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비록 거대한 육신을 베어냈으나, 마왕수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다시 뭉치며 또 다른 형체를 만들어내려 꿈틀거리고 있었다. 완벽한 소멸을 위해서는 마왕수의 영혼의 핵을 부숴야 했다. “엘로라!” 칼리안의 외침에 엘로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알았어요!”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제국의 모든 기운을 끌어모으듯 온몸의 마력을 해방했다. 그녀의 등 뒤로 마법사의 위엄을 상징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 높이 찬란하게 떠올랐다. “이 제국의 대지에 발을 디딘 것을 후회해라.” 엘로라의 차가운 선언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수천 줄기의 정화의 빛이 마왕수의 남은 잔해를 완전히 감싸 안았다. 콰광-! 대지가 하얗게 타오르며 칠흑 같던 에메랄드 산맥의 어둠이 거짓말처럼 걷혀 나갔다. 휘이익-!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포효하던 검붉은 화염과 지독한 유황 연기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기괴한 회색빛 안개도 정화의 빛에 휩쓸려 씻겨 나간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메랄드 산맥을 짓누르던 죽음의 마기가 걷히자, 멀리 떠오르는 새벽녘의 여명이 칠흑 같던 어둠을 밀어내고 찬란한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해냈다.”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장의 적막을 깨웠다. 연이은 폭음에 휩싸여 숨을 죽이고 있던 정예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탄식 섞인 환호성이었다. 수백 년 전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재앙의 마왕수.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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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나에게 집이란

“해냈어.” 에메랄드 산맥. 칠흑 같은 마기가 걷히고 그 자리에 새벽의 여명이 내려앉았다. 마왕수의 거대한 육신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게요. 정말… 해냈네요.” “다치기만 해봐. 제국을 통째로 불태워 버리려고 했으니까.” “거참, 과격하시기도 하지요. 폐하께서 나라를 태우시면 누가 수습하려고요?” “네가 말렸겠지. 자, 업혀.” “사방에 기사들이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요, 폐하.” “보라고 해. 내 여자가 제국을 구했는데, 이 정도 호위도 못 해?” 칼리안은 아랑곳않고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온 함성과 환호성이 산맥을 뒤흔들었다. 군사들은 이제 똑같이 목도했을 것이다. 제국의 폭군이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반려를 얻어 더욱 견고해졌음을. *보름 뒤, 황궁.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전쟁의 흔적이 말끔히 씻겨 나간 정원. 창가 소파에 기대어 산더미 같은 축전을 뒤적이는 엘로라의 뒤로 다정한 온도가 다가왔다. 과거 이곳은 단단히 채워진 또 하나의 감옥에 불과했다. “예전에 폐하께서 이 정원에 저를 가두고 괴롭히던 일이요. 그때는 여기가 참 살벌한 감옥이었는데.” “과거 청산은 휴전협정 때 진작 끝났잖아.” “기억이 생생한걸요. 국경까지 폐쇄하면서 저를 잡으러 오셨으면서요.” “널 잃을까 봐 미쳐 돌았던 거 맞으니까 놀리지 마. 그래서, 지금은?” “지금은요?” “여기가 감옥 같아, 아니면 내 품이 감옥 같아?” 엘로라는 피식 웃으며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감옥은 무슨요. 둥지지요.” “둥지?” “응…… 아니요, 유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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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다시 찾아온 위기

그날 저녁, 황궁의 대연회장. 그곳은 대륙 전역에서 몰려든 귀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백 개의 마정석 샹들리에가 천장 가득 매달려 은은한 빛을 흩뿌렸고, 붉은 카펫 위로는 각국 사절단의 예복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왕수 토벌의 승전보는 이미 전 대륙에 퍼진 뒤였다. 오늘 밤은 그 축하연이었다. 엘로라는 새하얀 드레스 자락을 매만지며 연회장 입구에 섰다. 가슴이 살짝 조여 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자리는 그저 견뎌내야 할 형벌에 불과했다. 사생아라는 낙인을 목에 걸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시선을 감내하며. 그저 웃는 얼굴로 버텨야 했던 자리. “긴장돼?” “네…… 조금요.” “왜.” “다들 저를 보고 있잖아요.” 칼리안이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감쌌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보라고 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너야.” “제가요?” “전쟁을 끝낸 게 누군데.” “폐하께서 끝내신 거잖아요.” “널 지키려고 끝낸 거니까, 결국 네가 끝낸 거지.” 그의 말투는 여전히 능청스러웠지만, 붉은 눈동자만은 진지했다. 엘로라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매번 넘어가는 자신이 우스웠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순간 모든 소음이 잦아들었다.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꽂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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