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후궁전으로 가는 회랑은 해가 지자 금세 어두워졌다. 벽을 따라 늘어선 촛대에는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창밖의 시든 장미 덩굴이 바람에 유리를 긁어,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마른 소리를 냈다. 에인젤의 검은 드레스가 그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멀어졌다. "어머니, 잠깐만요!" 엘로라는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뒤를 쫓았다. "제 어머니를 아세요?" "……." "진짜 어머니요. 빚이라니, 무슨 빚인데요." "……." "그분이랑 무슨 사이셨어요?" 폐후궁전 문 앞에서 에인젤이 멈췄다. 그리고 돌아섰다. 처음으로, 정면으로. "더 묻지 마라." "왜요." "묻는 순간, 오늘 대전에서 한 내 거짓말이 헛것이 된다." "그럼 거짓말인 건 맞네요." 에인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줏빛 눈이 엘로라의 얼굴을 더듬었다. 은발을, 푸른 눈을, 턱선을. 그 안에서 다른 누군가를 찾는 눈이었다. 선황이 그랬던 것처럼. "너는 그 여자를 너무 닮았다." "……." "그래서 나는 너를 볼 수가 없어." 문이 엘로라의 코앞에서 닫혔다. 빗장 걸리는 소리가 회랑 끝까지 길게 굴러갔다. 엘로라는 닫힌 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문짝에 박힌 놋쇠 장식이 손끝처럼 차가웠다. 식은 차.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던 다과회. 미움이라고만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다른 이름을 달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누군가가 떠올라서 고개를 돌린 거라면. 그건 미움보다 더 오래 아픈 것일지도 몰랐다. 돌아오는 길, 회랑 끝 창가에 칼리안이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창틀에 등을 기대고. 기다린 사람의 자세였다. "쫓겨났네." "……보셨어요?" "저 문은 원래 잘 안 열려. 나한테도." "폐하한테도요?" "나한텐 더 안 열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 옆에 걸음을 맞췄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텅 빈 회랑을 나란히 울렸다. 그의 보폭이 평소보다 반 뼘쯤 짧았다. "안 물어보세
Terakhir Diperbarui : 2026-07-23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