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20 فصول

11. 뽀뽀라도 해주면

“…” 이어진 질문에 칼리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그냥, 궁금해서요.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으시면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니, 그냥 그런 걸 묻는 저의가 궁금해서 나도 물어본 거야.”“그냥요.” “…아니, 전혀. 좀 흥미가 가는 거라면 몰라도.” 딱히 그에게서 사랑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역시 난 갖고 놀기 좋은 장난감일 뿐이야. 장난감한테 누가 마음을 주겠어.’ 칼리안의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 엘로라는 자신이 버려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때 칼리안이 물었다. “있잖아, 내가 사람을 죽이는 게 그렇게 싫어?” “적어도 제 눈앞에서 죽이지만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칼리안은 정말 몰랐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약속할게, 앞으로는 주의하지.” 그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덧붙였다. “혹시 몰라, 나한테 뽀뽀라도 해주면 안 죽일지.” 애초에 그가 제시한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엘로라는 자신의 비루한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칼리안의 품 안에서 엘로라는 자신이 개미지옥에 빠진 일개 개미처럼 느껴졌다. ‘칼리안은 이런 제 마음을 알고는 있을까.’ 엘로라가 픽 웃었다. ‘아마 모를 게 분명해.’ 어쩔 수 없이 엘로라는 칼리안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그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쪽- 고작해야 찰나의 접촉이었다. 그러자 칼리안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조금 더 커졌다. 정말 그녀가 할 줄은 몰랐다는 듯, 그는 자신의 볼을 손으로 가리고 토끼눈을 한 채 엘로라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닫혔다. “…진심이야? 진짜 할 줄은 몰랐는데.” 칼리안의 붉은 눈동자 속에는 기묘한 열기와 함께 파도치는 듯한 혼란이 일렁였다. 그는 방금 자신이 받은 짧은 입맞춤의 온기를 확인이라도 하듯, 천천히 손을 내려 볼을 쓸어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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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집착하는 이유는…

“네, 알겠어요.” 짧은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칼리안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마치 원하는 답을 끝내 받아낸 사람처럼,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러나 그 미소를 바라보는 엘로라의 가슴은 오히려 답답하게 조여들었다. 아무리 잘난 외모를 바라보아도 제 속은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 황궁은 그녀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위험한 감옥이었다. ‘내가 정말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탈출이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게 될까.’ 칼리안이 만들어 놓은 새장 안에서 조금씩 길들여진 끝내 그럴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창밖에서는 붉은 노을이 황궁의 첨탑을 천천히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하늘 전체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색은 칼리안의 붉은 눈동자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하아…” 엘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곳이 없어.’ 그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황궁 밖에서는 버림받은 황녀였고, 황궁 안에서는 황제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누군가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부럽다고 말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벗어나고 싶어했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기이한 집착의 굴레 속에서, 그녀의 하루는 오늘도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폐하, 주무세요?” “…” 답이 없었다. 잠든 줄 알고 엘로라는 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폐하가 제게 집착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 “…아마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이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그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부스럭- 침대 위의 하얀 침구가 움직였다. 잠든 줄 알았던 칼리안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낮게 입을 열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 목소리는 처음부터 자지 않았던 사람마냥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계심만큼은 또렷했다. 엘로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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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탁 좀 들어줘

엘로라는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말을 이었다. “제 앞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막 저를 위협하셨잖아요.” “으음, 그렇게 느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저한테는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 점 유의하지.” 오늘따라 칼리안은 유난히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듯 했다. 엘로라는 그 점이 이상했다. 어렸을 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던 적처럼 가려울 정도였다. 칼리안이 뒷머리를 털듯이 벅벅 긁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어,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하지.” 그 말에 엘로라가 두 눈을 토끼눈처럼 크게 뜨면서 칼리안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생각이 바뀐 거예요?” “네 말 잘 들을 테니까, 앞으로는 너도 내 말 좀 잘 들어달라고.” “하하, 그게 뭐예요.” 엘로라가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어이없는 이유였다. 그리 생각한 그녀가 슬며시 웃자, 칼리안이 엘로라의 기색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던 그가 여러 번 입을 뗐다가 붙이다 간신히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니까 나 절대 버리지 마.”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버려요.” “얼른 대답하기나 해.” 칼리안이 눈을 부릅뜨면서 하는 채근에 엘로라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흐음… 그거 부탁이에요, 명령이에요?” “물론 둘 다지.” 하여튼 간에, 칼리안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협박같은 부탁은 또 처음이야.’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데도 이상하게 측은지심이 드는 게 두려웠다. 원래 상대가 귀여워 보이면 이제 끝장난 듯이 위험한 거였다. 그런데 측은지심까지 들면 곧바로 도망치라고 그랬다. 다행히도 전자는 아직까지 아니었지만, 후자는 슬슬 아슬아슬해지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리게 될까 봐서.‘ 그렇지만 이미 엘로라도 모르는 사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칼리안이 엘로라의 상념을 깨고서 물었다. “그나저나 엘로라, 할 말은 이게 다인가?“ “네.” ”그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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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황제로 인간 마차 타기

-저를 대할 때 표정이 많이 다르다 싶어서요. -그거야 너니까 그러는 거지. 지난 날들이 휘리릭 펼쳐졌다. 엘로라는 그의 제안에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으음, 그게 그러니까…” 오늘은 반드시 꼭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이어진 칼리안의 얼굴에 그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빨리 대답하지 그래, 응?” 그도 잠시, 엘로라는 카시안이 고개를 기울이면서 꽃이 만개하듯 핀 미소를 짓는 표정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얼굴 하나만큼은 참 잘생겼단 말이지…’ 엘로라가 자기도 모르게 수락하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럼…” 칼리안이 아까보다 더 활짝 웃었다. 그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 했다. 살기로 흉흉했던 지난 날과는 완전히 다르게 말이다.결국 엘로라는 쓸데없는 반항을 포기한 채 칼리안에게 얌전히 안겨갔다. 그것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인간마차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니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아, 알 것 없어요.” “무엄하군. 그 작은 머리통을 열어 확인해보기 전에 바른 대로 실토하지 그래.” “그냥 폐하를 이렇게 인간 마차처럼 이용해도 되나 하고요.” 평소보다 조금은 긴 듯한 그의 웃음 소리가 이어졌다. “아하하- 날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엘로라, 너밖에 없을 거야.” “무거우시면 내려놓아도 좋아요.” “그럴 리가. 이렇게 한 손으로 잡아도 거뜬한 걸.” 190이 넘는 장신에 비해 엘로라는 160도 넘지 않았다. 머리 두 개 차이는 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엘로라가 당황하며 작게 몸부림을 치자, 칼리안은 다시금 그녀를 단단하게 안아들었다. “너무 놀라지 마. 설마 내가 널 떨어뜨릴 리가 있겠어?”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근육이 촘촘하게 박힌 팔목이 지금도 엘로라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엘로라는 변명하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그래도요.” “하하, 나중에 목마라도 태우면 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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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서운 건 바로 당신

“하하. 무서운 게 이리도 많으니, 역시 내가 없으면 안되겠군. 안 그런가?” 얼얼한 볼이 붉그스름해진 엘로라를 보면서 그저 부끄러워 한다는 걸로 생각한 칼리안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제일 무서워…’ 어차피 답이 정해진 물음에 엘로라는 괜히 반발하고 싶다가도 뾰루퉁하게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했다. “폐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런 법이겠죠.” “난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생각이 궁금한 거야, 엘로라.” 그렇게 말하면서 칼리안이 엘로라에게 가까워졌다. 이러다가는 두 입술이 부딪힐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설마…!‘ 당황한 엘로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앗!’ 그러나 칼리안은 코를 잠깐 맞부딪히고 말 뿐이었다. 요새 이런 접촉이 늘었다. 전에는 엘로라가 싫다고 해도 거부하고 계속 했다. 이런 게 반복될수록 엘로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으음, 왜 그래.“ 잠시 고민하던 칼리안이 알았다는 듯이 물었다. ”아하, 설마 기대라도 한 건가. 설마 뽀뽀라도 하는 줄 알았나?” “아, 그런 거 아니거든요?!” “거짓말은, 맞잖아.” “자꾸 그렇게 놀릴 거예요?!“ “응, 그야 재밌으니까.” 그가 킥킥대며 웃고는 말을 덧붙였다. “하하, 아닌 척 하면서 응큼하기는.” 엘로라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모르고, 칼리안은 그저 즐겁다는 듯이 연신 웃고 말 뿐이었다. * 그렇게 황제의 침실에 도착했다. 칼리안이 엘로라를 침대에 고이 눕혀준후 그녀의 머리칼을 곱게 한올한올 정리해주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엘로라는 처음에는 낯간지럽기는 했지만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졌다.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계속되자 잠이 올 무렵이었다. 그때 칼리안이 말했다. “잘자, 엘로라.“ “폐하께서도요.” ”그게 다인가?“ ”…? 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칼리안은 서운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이 예전의 그와는 지독하게 안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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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칼리안의 탄신연회

평소 냉랭하기 짝이 없던 뾰족한 고양이같은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정말이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엘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앞으로도 저렇게 웃음만 지어줬으면 좋겠어.’ 어느덧 엘로라가 먼저 잠들었다. 칼리안은 그녀가 자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그녀의 숨소리에 맞추어 심장박동이 점점 느려졌다. 그들은 냉전을 했다는 게 언제였냐는 듯이 같이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새액새액- 엘로라의 잠꼬대와 칼리안의 숨소리가 한 데 모아서 섞여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밤잠이 달았다. 밤이라고 하기엔 새벽이고 어느덧 동이 뜰 시간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서 말이다. 그것도 폭풍전야처럼 그들에게 한 차례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 다음 날 아침, 동 뜰 무렵이었다. 황제의 침실에 시종들이 들어오더니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엘로라를 서둘러 모셔 가려고 했다. 엘로라는 갑작스레 자신을 깨워서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시녀들을 보고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칼리안이 보였다. 그는 이미 씻고 나와 간단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폐, 폐하. 이게 무슨…” 갑자기 처형대로 데려가려나 싶어서 엘로라는 몸을 덜덜 떨었다. ’설마 내가 그간 오만방자하게 굴어서 갑자기 질렸나?‘ 그동안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죽은 자들이 많았다. 이를 태연히 지켜보던 칼리안이 느긋하게 엘로라에게 말을 걸었다. “엘로라, 왜 무서워하는 거지?“ ”그, 그것이…“ 엘로라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때 눈치챘다는 듯이 그가 말했다. ”아하, 설마 내가 너를 죽이기라도 할까 봐서?“ ”…“ “죽이고 싶었으면 진작 죽였겠지 않겠어.” “……” 칼리안이 이럴 때마다 엘로라는 헷갈려졌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위로를 해주고 싶은 건지, 그도 아니면 언제라도 날 죽일 수 있다는 걸 알리듯 위협하는 건지...’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사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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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동상이몽

칼리안이 그리 말하고 난 뒤 시녀들이 그녀를 연행하듯이 데리고 갔다. 엘로라는 또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엘로라의 모든 행동에는 자신의 의지가 없었다. ‘허수아비 왕은 권력이라도 있는데 말이지.’ 자신은 그것마저도 없었다. 엘로라는 그 점 때문에 갑자기 조금 서러워졌다. ‘내가 원하는 건 진정한 내 삶 단 하나뿐이었는데.’ 잔잔하고 행복한 삶, 그것이 왜 이렇게 더없이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괜스레 자신을 억지로 이곳에 끌고 와 묶어 둔 칼리안이 밉게만 느껴졌다. ‘지금이야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다고 좋아하지. 근데 또 수틀리면 어느 날 갑자기 날 죽이려 들지 어떻게 알겠어?’ 분위기가 전보다는 확연하게 나아지기는 했지만 엘로라는 여전히 칼리안을 여전히 100%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한 칼부림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는 걸 봤으니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엘로라는 바로 씻겨졌다. 씻겨지기보다는 씻겨짐을 당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할 것이다. “으윽…” 욕조에 뿌려진 장미꽃잎과 진한 향유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엘로라가 중얼거렸다. “그, 저기 있지. 이제 그만 뿌려도 될 것 같은데…” 그러자 시녀가 말렸다. “조금만 참으세요, 예뻐지는 건 고통이 따르는 법이니까요.” “딱히 안 예뻐도 되는데, 난... 왜 내가 이렇게까지 꾸며야 하는데?” “그야 당연히 폐하의 총애를 받고 계시니까요. 아름다운 황녀님을 보시면 폐하께서 더 기뻐하시지 않겠어요?” 시녀가 재잘거리면서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꾸미는 이유는 단 하나, 칼리안을 위해서였다. 엘레나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러거나 말거나 시녀는 자기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뿐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 된 기분이야.’ 그것도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인형. 엘로라는 그리 생각하자 쓴 약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씁쓸해졌다. ’황후나 첩, 그도 아니면 그의 신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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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놀리는 것처럼 보이나?

이랬다 저랬다 날씨처럼 바뀌는 변덕스러운 칼리안의 기분 맞추기는 죽도록 어려웠다. ‘그럼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때 콧방귀를 뀐 칼리안이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어제 말해줄 걸 그랬나 보군, 너무 잘 자길래 깨우기가 좀 그랬지.” 큰 일이 연속으로 벌어져 그만 여태껏 까먹고 있었다. ’황제 즉위식 이후에 바로 도망쳐서 몰랐어. 그리고 쫓겨와서는 황제의 탄신연회라니.‘ 지난 겨울, 지병을 앓고 있던 전 황제의 죽음에 칼리안은 난데없이 갑자기 황위에 올랐다. 그리고 엘로라는 지금까지 자신을 길러준 유모와 함께 도망쳤다. 이어서 봄이 오기도 전에 잡히고, 이제는 벌써 후덥지근한 여름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났네…‘ 지난 생각에 눈빛이 침잠한 파도처럼 짙어졌다. 그때 칼리안이 잡념을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뜨렸다. “어쨌든 가봐, 당장 널 단두대 위에 올리는 것도 아닐 테니까.” 엘로라는 칼리안이 말할 때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구분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칼리안은 알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할 때마다 고양이같은 웃음을 짓는 걸 보면, 지금 죽는 건 아니겠지.’ 칼리안과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그와 함께 보내는 날들은 조마조마하고 불안불안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간신히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칼리안이 그리 말하고 난 뒤 시녀들이 그녀를 연행하듯이 데리고 갔다. 엘로라는 또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엘로라의 모든 행동에는 자신의 의지가 없었다. ‘허수아비 왕은 권력이라도 있는데 말이지.’ 자신은 그것마저도 없었다. 엘로라는 그 점 때문에 갑자기 조금 서러워졌다. ‘내가 원하는 건 진정한 내 삶 단 하나뿐이었는데…’ 잔잔하고 행복한 삶, 그것이 왜 이렇게 더없이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괜스레 자신을 억지로 이곳에 끌고 와 묶어 둔 칼리안이 밉게만 느껴졌다. ‘지금이야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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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말 아름답군

그럼에도 칼리안은 오래간만에 느끼는 넘치는 행복감 때문에 지금 당장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를 못했다. 평소였더라면 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터인데 지금 당장은 그게 잘 안됐다. 칼리안이 자기 신하에게 물었다. “이제 일도 슬슬 거의 끝나가는군. 그나저나 엘로라는 들어가기 전에 어땠지?” “처음에는 반항하는 듯 하다가 이내 얌전히 들어갔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군.” 그는 엘로라가 싫어하건 말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뜻대로 되게 되있으니까.’ 칼리안은 전 황제가 서거하고 권력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원하는 것은 못 가져본 적이 없었다. 딱 하나 못 가진 것은 엘로라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 제일 가지고 싶은 것은 당연하게도 엘로라였다. 칼리안은 콧노래까지 연신 부르면서 진심으로 좋아 보이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의 신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폐하, 요즘 행복해 보이십니다.” “이게 다 엘로라가 내 말을 잘 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 그 말처럼 예전과는 달리, 평화로운 생활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그저 엘로라가 칼리안에게 입 안의 혀처럼 굴면서 그의 말을 잘 듣는 덕분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폭풍전야나 마찬가지였다. 칼리안은 그들의 사이가 삐걱거리는지도 모른 채 치장을 마치고 돌아올 엘로라가 얼마나 아름다울지만 기대하고 있었다. * 그렇게 엘로라가 치장을 마치고 나온 후였다. 그렇게 다 꾸며져서 나온 뒤, 엘로라를 본 칼리안이 입을 살짝 벌렸다. ”…“ “폐하?“ 엘로라의 물음에도 그는 한참동안이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저기, 폐하…?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 “……” 엘로라는 이렇게 잔뜩 꾸며놨는데 별로 예쁘지도 않다면서 핀잔을 줄 줄 알았다. 그래서 다음에 칼리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칼리안이 입을 뗐다. “엘로라...” “네, 폐하. 말씀하시지요.” “…정말 아름답군, 그래.” 말을 마친 그가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이리 와.“ 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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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결혼도 내 허락맡고 해

“그렇지, 너무 귀여워서 콱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야.” 칼리안은 엘로라의 부드러운 실타래같이 곱슬거리는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리 말했다. 그러자 엘로라가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에, 에이~ 과찬이세요. 폐하께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에요.“ ”그게 더 좋군. 이렇게 어여쁜 모습을 나만 볼 수 있다면야.“ 그러면서 잡은 제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이러는 칼리안의 행동은 꼭 제게 콩깍지라도 씌인 것 같았다. ”낯부끄러운 말 좀 하지 마세요. 지금 저 놀리려고 이러시는 거죠?“ 엘로라가 볼을 붉히며 묻자, 칼리안이 자신의 고개를 기울이며 무표정으로 물었다. ”흐음, 이게 겨우 놀리는 것처럼 보이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묻는 눈빛은 탁하고 날 서 있던 평소와는 달리, 정말로 궁금한 눈치였다. ”그럼 아니에요?“ “어차피 황제인 내 허락 없이는 결혼하지 못할 거야.” “…어차피 허락 안 해주실 거잖아요.” 칼리안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래보이나.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요...” 나중에 가서 진실을 알게 되면 지금 이러는 것보다 더 하면 더했지 이것보다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복동생인 줄 알고 있는 지금도 집착이 이렇게나 심한데…’ 엘로라는 절대 들키지 말아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엘로라가 자조하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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