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정적. 민지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컵이 파르르 떨렸다."뭐? 야, 다시 말해봐. 너희 부모님이? 그 소영이네랑 절교할 각오 하시고? 진짜로?""어. 아침 식탁에서... 그냥 툭, 데려오라시더라. 어떤 놈인지 봐야겠다고. 나 지금 너무 떨려, 민지야. 이걸 상수 씨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혹시 상수 씨가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아니, 우리 아빠 무서운 거 알잖아. 면접 보듯 취조하면 어떡해?"걱정 섞인 질문이었지만 혜연의 목소리는 이미 옥상 난간 너머로 날아오를 듯 가벼웠다."악!!! 대박!!! 박혜연!!!"민지가 참지 못하고 옥상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도심의 빌딩 숲 사이로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민지는 혜연의 손을 잡고 방방 뛰며 난리를 피웠다."이건 그냥 허락이 아니야!! 야, 상수씨 이제 죽었다. 첫인상이 생명인데 슈트 뭐 입히지? 아, 내가 다 떨려!""나도 미치겠어. 상수 씨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혀. 그 사람, 분명히 '네?' 하고 바보처럼 되묻겠지? 아,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혜연은 민지의 손을 맞잡고 함께 제자리걸음을 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사무실의 비릿한 시선도, 사직서의 무게도 이 순간만큼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지독한 겨울 끝에, 혜연의 인생에 비로소 가장 뜨거운 '진짜 봄'이 도착하고 있었다.두 여자의 유쾌한 비명 소리가 옥상의 거친 콘크리트 위를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퇴근 후 해 질 녘의 도심은 타다 남은 연신철강의 불꽃처럼 붉고 눅눅하게 일렁였다. 혜연은 상수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뼘. 상수는 그 한 뼘의 공백조차 아깝다는 듯, 슬쩍 혜연의 손가락 끝을 건드렸다. 혜연이 피하지 않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투박하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손을 낚아채듯 맞잡았다. 거친 설계도를 만지던 그의 지문 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혜연의 심장 박동을 불규칙한 소음으로 바꾸어 놓았다."혜연 씨
Zuletzt aktualisiert : 2026-09-17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