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상하게 혜연 씨랑 있으면 자꾸 손이 가네요. 혜연 씨가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싶고, 내가 만든 향기든 내가 구운 고기든 혜연 씨가 좋게 평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요. 조향사로서의 새로운 직업병이 생긴건지, 아니면 다른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기교를 섞은 유혹의 말 같지는 않았다. 그냥 떠오르는 감상을 필터 없이 내뱉은 말 같은데, 그게 혜연의 심장을 둔기로 때리듯 묵직하게 건드리고 지나갔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이 사람은. 왜 소영이한테는 한 번도 안 보여준 얼굴을 나한테만 자꾸 내미는 건데. 왜 나를 이렇게 나쁜 친구로 만드느냐고.’혜연은 소영이 느꼈을 무색무취함을 생각했다. 소영이 그토록 원했을 상수의 '온도'와 '색채'를, 지금 자신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20년 우정에 대한 배신감과, 이름 모를 우월감, 그리고 거대한 죄책감이 뒤섞여 목구멍을 꽉 막았다. 혜연은 억지로 고기를 씹어 삼켰지만, 맛은 이미 느껴지지 않았다. “상수 씨. 저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저 소영이랑 20년 지기예요. 상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소영이한테 이미 다 들었다고요. 당신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무관심한 사람이라면서요.” 상수의 집게질이 멈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혜연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식당의 소음이 멀어지고, 불판 위에서 고기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 선명해졌다.
Last Updated : 2026-07-1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