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소영의 원룸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했다.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이끼처럼 스며들었지만, 소영은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침대 맡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엎어진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지은과의 통화가 남긴 잔상은 치명적인 독약처럼 소영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야, 윤소영. 너 박혜연이랑 요즘 연락 안 해? 나 방금 서촌에서 걔 봤거든? 근데 옆에 있는 남자가... 야, 아무리 봐도 강상수더라고. 둘이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 지은의 목소리는 흥분과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영은 그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순간, 심장이 발끝까지 추락하는 기표를 경험했다. 혜연이 누구인가. 소영이 강상수와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귀는 내내 소영의 연애 상담을 도맡아 주던 친구였다. 20살 풋풋한 새내기 시절의 설렘부터 서른을 앞둔 권태로운 연인이 되기까지, 상수의 무심함에 소영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같이 상수를 욕해주던 20년 지기 분신이었다. 무엇보다 5년 전, 소영이 참다못해 던진 이별 통보에 상수가 눈 하나 깜짝 않고 "알았어"라고 대답하던 그 잔인한 순간에, 소영의 곁에서 같이 밤을 새우며 상수를 저주해준 사람도 혜연이었다. 소영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8년의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상수가 처음 고백하던 날의 수줍음,
Last Updated : 2026-07-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