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가 다 되어갈 무룹, 차가 서울 시내에 진입했다. 상수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실 방향으로 차선을 바꾸려던 순간, 혜연이 나직하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상수 씨, 우리 집으로 가요." 상수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가 홀로 그 외로운 공간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혜연 씨, 오늘은 너무 힘들었잖아요. 내 작업실에서 좀 쉬는 게... 거기 향기들도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해줄 거예요. 내가 옆에서 밤새 지켜줄게요." "아니요. 내 집으로 갈래요. 거기서 씻고, 내 침대에서 자고, 내일 아침의 햇살을 내 창가에서 맞이하고 싶어요. 상수 씨 덕분에 기운 차렸으니까, 이제는 나 혼자 내 발로 서야죠. 언제까지고 상수 씨 등 뒤에, 상수씨가 만들어준 요새 속에 숨어 있을 수는 없잖아요. 박혜연의 집으로 돌아가야, 박혜연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상수는 핸들을 잡은 손등에 핏대를 세웠다.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그녀가 다시 소셜 미디어의 비난이나 외로움의 무게에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혜연의 옆얼굴은 5월의 새벽 공기보다 서늘하고 단단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겪어야 할 지옥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그것을 회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독립 선언이었다. 상수는 혜연의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Last Updated : 2026-08-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