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내 친구의 남자였던, 그에게 향하다.: Bab 151 - Bab 160

220 Bab

151화 : 별빛 아래의 성지(聖地) #1

충청남도 서천군 선도리. 도심의 소음이 완전히 소멸한 그곳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차갑게 다가오는 바닷바람의 서글픈 절규, 그리고 썰물에 밀려 나가는 바닷물의 낮은 흐느낌뿐이었다. 갯벌 위로 쏟아지는 별빛은 구원보다는 처형장의 조명처럼 날카로웠다. 상수는 폐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갯벌 끝으로 이어진 나무 데크를 달렸다. 구두 굽이 나무 틈새에 걸려 비틀거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저 차가운 진흙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나는 환각을 보았다."혜연 씨...! 제발, 혜연 씨!"목소리는 비명조차 되지 못하고 서늘한 바닷바람에 흩어졌다. 상수는 데크가 끝나는 지점, 해안가 끝 낡은 벤치 옆 바위에 주저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혜연이었다.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아침에 상수가 직접 골라주었던 그 화사한 베이지색 드레스는 이제 진흙과 먼지에 얼룩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밤의 깊은 어둠 속에서 그 드레스는 찬란한 예복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처참하게 버림받은 이가 슬픔으로 가득차 스스로에게 입힌 수의(壽衣)처럼 위태롭고 서글프게 보였다.상수는 그녀의 등 뒤 5미터 전방에서 멈춰 섰다. 차마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규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오열이라기보다 몸 안의 모든 생명력을 밖으로 밀어내려는 처절한 경련에 가까웠다. 상수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굽은 어깨에 조심스럽게 걸쳐주었다. 그 순간, 혜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상수 씨...?"그녀의 텅 빈 눈동자에 차가운 별빛이 맺혔다. 상수는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거나, 혹은 이 비참한 몰골을 보여주기 싫어 바다로 도망칠까 봐 숨을 멈췄다. 하지만 혜연은 떨리는 손을 뻗어 상수의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의 강한 힘이었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혹은 혼자 두지 말라는 마지막 생존 본능의 발현이었다."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알고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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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 별빛 아래의 성지(聖地) #2

새벽 4시가 다 되어갈 무룹, 차가 서울 시내에 진입했다. 상수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실 방향으로 차선을 바꾸려던 순간, 혜연이 나직하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상수 씨, 우리 집으로 가요."상수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가 홀로 그 외로운 공간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혜연 씨, 오늘은 너무 힘들었잖아요. 내 작업실에서 좀 쉬는 게... 거기 향기들도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해줄 거예요. 내가 옆에서 밤새 지켜줄게요.""아니요. 내 집으로 갈래요. 거기서 씻고, 내 침대에서 자고, 내일 아침의 햇살을 내 창가에서 맞이하고 싶어요. 상수 씨 덕분에 기운 차렸으니까, 이제는 나 혼자 내 발로 서야죠. 언제까지고 상수 씨 등 뒤에, 상수씨가 만들어준 요새 속에 숨어 있을 수는 없잖아요. 박혜연의 집으로 돌아가야, 박혜연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상수는 핸들을 잡은 손등에 핏대를 세웠다.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그녀가 다시 소셜 미디어의 비난이나 외로움의 무게에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혜연의 옆얼굴은 5월의 새벽 공기보다 서늘하고 단단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겪어야 할 지옥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그것을 회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독립 선언이었다.상수는 혜연의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껐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차에서 내리기 전, 혜연은 상수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오늘 나를 찾아와줘서, 그리고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요. 상수 씨가 없었다면 난 아마 저 갯벌 속으로 영영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나, 잘 이겨낼게요. 상수 씨가 사랑하는 박혜연이잖아요."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상수는 한참 동안 차를 움직이지 못했다. 혜연의 뒷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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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 익명의 단두대 #1

선도리에서의 밤은 비현실적일 만큼 투명했다. 갯벌 끝에 닿아있던 상수의 온기, 어깨를 감싸 쥐던 그의 단단한 손등 위로 쏟아지던 별빛들. 혜연은 침대 머리맡까지 차오른 일요일 밤의 어둠 속에서 그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꺼내어 핥았다. 그것은 치명적인 상처 위에 덧바르는 연고이자, 내일이라는 거대한 절벽 앞에서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었다.'내가 당신의 세상이 되어줄게요.'그 밤, 상수가 읊조렸던 맹세가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혜연은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 잠시나마 얻어진 안락. 그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면의 기운이 혜연을 잠식하려던 찰나였다.하지만 정적은 이내 변질되었다.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눅눅해지더니, 잊으려 애썼던 기억들이 벽지의 무늬처럼 기어 나와 혜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결혼식장의 로비. 5월의 찬란한 태양 아래에서 펼쳐졌던 그 처절한 처형대.경은의 그 차갑고도 사무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연애하느라 바쁠 텐데 굳이 또 오고 그래." 배려를 가장한 그 예리한 칼날이 혜연의 가슴을 다시 한번 베어냈다. 뒤이어 소영의 비릿한 비웃음이 이명처럼 울렸다. 포식자의 여유로 자신을 훑어내리던 그 오만한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게 박힌 것은 선혜의 일갈이었다.'너희 어머니 시장도 못 다니신다더라. 그건 아니?'선혜의 목소리는 엄마가 휘둘렀던 손바닥보다 더 매섭게 혜연의 고막을 때렸다. 자신의 사랑이, 상수의 향기가, 누군가에겐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폭거였다는 사실이 실시간으로 혜연의 심장을 짓눌렀다.'미안해. 정말 미안해, 경은아.'혜연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 적어도 20년의 세월을 함께했던 친구에게, 자신의 진심이 한 줄이라도 닿기를 바랐다. 그것이 구걸이 될지라도, 혜연은 사죄의 언어를 찾아야만 했다.혜연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의 밝은 빛이 밤의 정적을 찢으며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메신저 앱을 켜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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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 익명의 단두대 #2

혜연은 소름이 돋았다. 그날 식장 로비, 자신을 에워싸고 비난하던 그 무리 중 누군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아니면 그 자리에 있던 '우리' 중 누군가가 혜연의 회사 동료에게 이 모든 것을 생중계하며 글을 사주했거나.댓글들은 더 가관이었다.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악의라는 살점이 붙어 괴물 같은 소문으로 변해 있었다.ㄴ 와, 평소에도 조향사랑 유난 떤다 싶더니 결국 상간녀 프레임?ㄴ 동네 엄마들끼리 20년 지기라는데 딸이 저러면 부모는 무슨 죄냐 진짜.ㄴ 저 여자 담당 프로젝트도 다 다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님? 유혹해서 딴 거 아냐?ㄴ 일 좀 잘한다고 유세 떨더니. 결국 그 실력이 그 실력이 아닌거네.추악했다. 혜연은 휴대폰을 바닥으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시각, 상수의 방.상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혜연을 선도리에서 데려온 뒤, 그는 그녀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에 젖어 있었지만 조향사 특유의 예민한 직관이 자꾸만 신경을 긁어댔다. 서랍 속에 넣어둔, 간직했던 그 '식어버린 날달걀 두 알'이 환상처럼 눈앞을 어른거렸다.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재현이었다."너 알고 있었어?"재현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밤 늦게 너무나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연락 온 민지. 그녀가 미친 듯이 쏟아낸 말들 그리고 그녀에게 받은 무언가를 재현이 휴대폰 화면을 상수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민지가 캡쳐하여 보낸 블라인드 게시물이었다. 상수는 화면 속 텍스트들이 혜연의 심장을 어떻게 난도질하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이거... 어떻게 이런…. 이건 사실이 아니잖아. 없는 말을 만들어내고 있어!! 내가 해결할게. 내가 가서 아니라고 하면 되. 형, 내가 가만히 안 둬."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재현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눌러 앉혔다."네가 뭘 할 건데? 가서 '내가 사랑한 여자니까 욕하지 마라'고 외칠 거야? 일할 땐 연인이 아니었어요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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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 침묵의 갑옷 #1

지하철의 육중한 금속음이 멀어지고, 혜연은 텅 빈 회사 로비 한복판에 섰다. 시계는 이미 9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평소라면 인사고과를 걱정하며 사색이 되었을 시간이었지만,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자신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혜연이 느낀 감정은 기묘하게도 '안도'였다.수백 명의 직원이 출근 카드를 찍기 위해 파도처럼 밀려드는 8시 50분의 그 숨 막히는 응시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깨를 맞댄 채 누군가 등 뒤에서 "저 여자가 그 블라인드 주인공이야?"라고 수군거리는 환청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늦어버린 시각이 오히려 혜연에게는 세상으로부터 허락받은 짧은 유배지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가를 가리기 위해 평소보다 서너 배는 더 두껍게 덧바른 파운데이션이 조명 아래서 푸석하게 들떠 있었다. 혜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빳빳하게 다려진 재킷 깃을 바로 세웠다. 비틀거리는 영혼을 간신히 가둬둔 이 회색 정장은 오늘 그녀가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전투용 갑옷이었다.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혜연은 마치 물속으로 잠수하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평소라면 활기찼을 키보드 타건 소리가 그녀의 발소리에 맞춰 아주 미세하게 잦아들었다. 그것은 완벽한 정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낮은 데시벨로 속삭이는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의미 없는 헛기침 소리가 뒤섞인 불쾌한 소음의 숲이었다.파티션 너머로 몇몇 고개가 솟아올랐다가, 혜연과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닥으로 꺼졌다. 그 짧고도 예리한 정적. 그것은 익명의 숲에서 화살을 쏘아대던 이들이 목격한 '사냥감'의 실물에 보내는 비릿한 확인 절차였다. 혜연은 앞만 보고 걸었다. 자신의 자리에 도착하기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마치 수 킬로미터의 가시밭길처럼 느껴졌다."야! 박혜연! 너 왜 이제 와? 연락도 안 되고 사람 피를 말려!"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역시나 민지였다. 민지의 목소리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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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 침묵의 갑옷 #2

민지는 혜연의 굽은 등 위로 쏟아지는 동료들의 가시 돋친 시선들을 대신 맞고 있었다. 탕비실에서 들려오는 낄낄거림, 메신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혜연의 쪽을 힐끗거리는 눈길들. 민지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졌다. 10년차 공간 인터리어 전문가로 버텨온 저 여자가, 단 한 줄의 익명 글로 인해 평생 쌓아온 커리어마저 '유혹의 결과'로 치부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고문이었다.'혜연아, 제발... 그렇게 숨 막히게 하지 마.'민지는 혜연의 파티션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혜연은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심지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스스로를 마비시키려는 듯, 차가운 데이터의 바닷속으로 끝없이 잠영하고 있었다. 그 처절한 몰두는 열정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평소라면 활기찼을 공간이 순식간에 진공 상태처럼 변했다. 혜연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박혜연. 밥 안 먹어? 점심시간이라고."가지 않고 버티던 민지가 결국 혜연의 의자를 강제로 돌려버렸다. 혜연의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먹고 와, 민지야. 나 정말 입맛이 없어. 이거 오후 회의 전까지 다 봐야 해.""야! 박혜연!! 너 정말 이럴 거야? 죽고 싶어?"민지의 비명이 텅 빈 사무실 천장을 때리고 돌아왔다. 민지는 혜연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그 진동에 간신히 지탱해오던 혜연의 석고 가면이 마침내 바스라졌다."흐윽... 으아아..."혜연은 무너져 내렸다. 책상 위에 엎드려 터뜨린 울음은 통곡에 가까웠다.그녀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엄마에게 맞았던 뺨의 열기, 친구들이 던진 비수 같은 말들, 그리고 오늘 블라인드에 박제된 자신의 이름. 그 모든 것이 해일처럼 밀려와 그녀를 덮쳤다. 민지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를 깨달았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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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 폭풍의 발원지를 찾아서 #1

통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정오의 빛은 피부를 따갑게 찌를 정도로 예리했다. 점심시간의 막바지, 카페 안은 직장인들의 고조된 수다와 에스프레소 머신의 신경질적인 스팀 소리가 뒤섞여 소란스러웠으나, 구석진 창가 자리만큼은 진공 상태에 놓인 듯 서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테이블 위에는 한 모금도 줄지 않은 채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눈물처럼 흘러내려 하얀 테이블 위에 볼품없는 웅덩이를 만들었다.상수는 맞은편에 앉은 소영을 무겁게 응시했다. 지난 토요일, 예식장에서 포식자처럼 군림하며 하객들의 시선을 지배하던 그녀는 이제 세련된 오피스룩을 입은 차가운 도시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향사인 상수의 예민한 후각에 소영이 뿌린 진한 머스크 향수가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것은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잔향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상대의 영역을 강압적으로 침범하려는 '무기'의 냄새였다. 상수는 타들어 가는 목소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먼저 입을 뗐다."소영아, 어디까지 할 거니? 네가 원하는 게 정말 이런 거야?"소영이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챙'하고 날카롭게 울렸다. 그녀가 비스듬히 고개를 까딱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짙은 레드 립스틱이 발린 그녀의 입술이 경멸을 담아 비틀렸다."혜연이가 오빠보고 시키디? 가서 좀 말려달라고, 무섭다고 징징대기라도 한 거야? 그래서 점심시간에 여기까지 쪼르르 달려온 거냐고. 대단한 사랑이네, 정말.""그런 거 아니라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혜연 씨는 지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야."상수의 단호한 대답에 소영의 미소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늘한 독기가 서렸다. 8년을 함께했던 연인이었기에 상수는 안다. 저 눈빛은 상대에 대한 증오이기 이전에, 상처받은 짐승이 막다른 길에서 내뱉는 마지막 비명이라는 것을."내가 뭘 알아? 내 20년 절친이랑, 나랑 8년이나 만났던 사람이 내 뒤에서 사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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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 폭풍의 발원지를 찾아서 #2

"너... 정말 아니야? 네가 쓴 게 아니라고?""나 아니야! 정신 차려, 강상수!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망치고 있는 게 누군지 똑똑히 보라고!"소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서 상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마지막 일갈은 태양보다 더 뜨겁게 상수의 정수리를 내리쳤다."오빠야말로 잘 생각해. 지금 혜연이가 힘든 게 누구 때문인지. 나? 아니. 강상수, 바로 너야. 오빠가 등장하기 전에 박혜연의 삶은 아주 평화로웠어.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함뿐이었다고. 그런 애가 왜 지금 폭풍우 속에서 휘청거릴까? 잘 생각해 봐. 그 애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진짜 악마가 누군지."딸랑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소영이 사라졌다. 상수는 홀로 남겨진 테이블 위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소영이 남기고 간 말은 상수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몰아쳤다. 그는 조향사로서 늘 향기의 '발원지(Note)'를 찾는 훈련을 해왔다. 어떤 향료가 전체의 균형을 깨트리는지, 어떤 불순물이 순수한 에센스를 변질시키는지 찾아내는 것이 그의 업이었다. 하지만 지금, 혜연을 뒤덮은 이 악취 나는 비극의 발원지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 비수처럼 꽂혔다.상수는 자신의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블루밍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서히 생겨난 혜연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미친 듯이 도망쳤었다. 혜연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발각되는 순간, 그녀가 평생 일궈온 20년의 우정이, 평온했던 일상이, 가족과의 화목함이 산산조각 날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며 멀어졌다.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혜연의 집 앞에서 재회했을 때, 그는 다시는 그녀를 놓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내가 괴물이 되어 당신을 지키겠다"고, "당신의 세상이 되어주겠다"고 오만하게 선언했다. 선도리의 별빛 아래서 그녀를 품에 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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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 태풍의 눈, 그리고 자발적 유배 #1

며칠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만큼 무미건조한 시간이었겠지만, 혜연에게 그 시간은 1분 1초가 살점을 에이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박 과장'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10년의 성실함은 익명의 글 몇 줄에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사무실의 공기는 정체되어 있었고, 그녀의 등 뒤로 꽂히는 시선들은 이제 무관심을 가장한 예리한 칼날이 되어 혜연의 일상을 도려내고 있었다. 혜연은 모니터 화면 속 도면의 선 하나를 긋는 것조차 버거웠다. 누군가 내 모니터를 훔쳐보며 '불륜녀가 그린 도면'이라 비웃지는 않을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조차 가시 돋친 수군거림으로 들려 혜연은 자꾸만 어깨를 움츠렸다."박 과장, 잠깐 회의실로 오지."평소라면 "박 과장님, 커피 한잔할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을 김진우 팀장이었다. 팀 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며 코믹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였지만,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는 물기 하나 없이 메말라 있었다. 혜연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놓았다."왜 그래? 팀장이 왜 저래?"옆자리 민지의 걱정스러운 속삭임에도 혜연은 대답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지의 눈동자에 어린 연민조차 지금의 혜연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회의실의 육중한 문이 닫히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기계적으로 울릴 뿐,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 팀장은 창밖의 무채색 도심을 응시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울 수도 없는 금연 빌딩의 폐쇄성이 그의 답답함을 부채질하는 듯,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러 내렸다."박 과장. 나도 참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위에서 압박이 상상 이상이야. 블라인드 글이 외부 커뮤니티로 퍼졌어. 홍보팀은 지금 이 일 덮느라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하고, 윤리 경영실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것 같고."김 팀장이 내민 태블릿 PC에는 혜연의 과거 프로젝트 이력과 함께 입에 담기 힘든 낙인이 찍힌 댓글 캡처본들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10년 동안 밤을 새우며 그려온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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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 태풍의 눈, 그리고 자발적 유배 #2

혜연이 공들여 쌓아온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자신이라는 존재 때문에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상수는 자신이 혜연의 곁에 머무는 한, 이 폭풍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랑하기에 곁에 있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부재'였다.상수는 결심한 듯 차에 올라타 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혜연 씨... 나예요."안도와 피로가 뒤섞인, 그러나 끝내 울음을 참으려 애써 담담한 척하는 혜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상수 씨... 나, 방금 팀장님 만났어요. 울산 지사로 가야 할지도 몰라요. 아니면 회사를 쉬거나... 내가 공들여온 시간들이 다 가짜가 된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상수는 눈을 감았다. 수화기를 쥔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당신 잘못이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달려가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가십의 불씨가 될 것임을 상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혜연 씨, 진정해요. 박혜연이라는 사람이 쌓아온 10년은 그깟 글 몇 줄로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내가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도면을 그리고, 현장을 지켰는지... 내가 다 봤잖아요.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제발..."상수의 나직한 위로에 혜연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목소리 하나에 곤두섰던 신경이 잠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고마워요, 상수 씨... 그래도 너무 심란해서..."상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이제 그녀를 위해 가장 아픈 말을 뱉어야 할 차례였다. 위로를 건네면서도 그녀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그의 심장을 난도질했다."혜연 씨, 그런데 어쩌죠... 나, 갑자기 지방 출장이 잡혔어요. 클라이언트 요청이 너무 까다로워서 향료 추출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해서... 시골마을이나 산속 깊은 곳도 들어가야해서 며칠은 연락이 좀 힘들 것 같아요. 지금 바로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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