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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나은이가 저 살렸잖아요

이준이 수호와 유림을 보며 물었다.유림이 맞다며 고갤 끄덕이자 옆에 앉은 수호가 대답했다."정확히 5년하고 20일""헐. 그걸 세고 있었어?"이준이 몸서리치며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결혼해야지?"동현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묻자, 수호가 웃으며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다.그러나, 애써 웃어 보이던 유림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 있었다.나은이, 테이블 아래로 옆자리에 앉은 유림의 손을 잡아주었다.그것이 나은의 위로임을 알았던 유림은 그런 나은을 향해 눈을 찡긋하고 웃었다.'오빠 집에서, 반대가 심하셔'고등학교 때부터 이준, 선우까지는 못되더라도, 얼천사 라고 불릴 만큼 훈훈한 외모에, 성적 또한 전교권에서 놀던 수호였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럴듯한 직장까지 갖게 된 수호는 그의 어머니의 자부심이었다.적어도 비등한 집안, 학력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수호가 데려온 유림은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 겨우 몇 평 짜리 꽃집이나 운영하는 아가씨라 영 눈에 차지 않았다.공부를 잘하던 첫째 언니의 유학과 앞날을 위해 있던 집도 팔아 유학 자금을 보태주시던 유림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내시는 분들이다.얼마 전 언니가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한국으로 돌아오신 부모님은 조금 허무한 생각이 드셨는지, 처음으로 유림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셨다고 했다. 언니를 신경 쓰느라 항상 옆에 있던 둘째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항상 밝은 유림이, 어느 날인가 나은에게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며 참 많이 울었었다.'오빠 어머니가 꽃 집으로 찾아 오셨는데.. 아직 오빠한테 말도 못했어'무례한 말들을 유림에게 쏟아 놓고 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수호가 알게 된다면, 그가 그의 어머니를 어떤 식으로 대할지 5년이나 사귄 유림이 모를 리 없었다.유림의 일이라면, 절대 양보가 없었던 수호였으니까.Rrrrr 그때, 선우의 휴대전화가 울려왔다."어머니 전화네?. 전화 좀 받고 올 게"나은에게 다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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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합의

오후에 나은과 선우 앞에서 제 엄마를 들켜 버린 온다예는 회사에 복귀하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전화로 팀장에게 조퇴 신청을 하고 욕을 한 바가지 얻어 먹은 탓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거절 버튼을 누르자 또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고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누구세요!"-온다예씨 되십니까?-수사기관이었다.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온다예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막상 전화를 받고 출석 요구를 받고 나니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이 온몸으로 전해졌다.정말, 이러다가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분노와 두려움과 억울함이 뒤섞여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띠릭.알림 소리에 휴대전화를 들었는데, 3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에 눈을 비볐다.순간 솟아날 구멍이 생긴 것처럼 온다예의 심장이 마구 뛰어 대기 시작했다.-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다. 이거 받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 모르는 사람처럼 살자-문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바로 은행 어플을 켜서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역시나, 오빠 다훈이 보낸 돈이었다.순간 온다예의 머릿속에, 좀 아까 카페에서의 일들이 영상처럼 재생되더니, 자신의 과한 행동으로 선우가 합의를 안 해 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그제야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지식인들과 AI를 통해 명예훼손, 고소, 구속, 합의 등의 키워드로 끊임 없이 질문을 했고,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는 글들을 찾아 읽기를 반복했다.배고픈 줄도 모르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아 씨.. 대가리 깨지겠네"노트북을 덮어 버렸다.구석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몸을 누이고 휴대전화를 들어 SNS를 열었다.비공개로 돌려놓은 자신의 SNS를 확인하는데 또다시 짜증이 솟구친다.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차례대로 읽어 내려가다 솔깃한 화장품 광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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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목격

선우의 팔을 잡는 온다예의 손을 사납게 쳐내 버렸다."어디다 손을 대 더럽게“***선우의 날 선 말투에도 온다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오빠 그게 정말이에요?"도대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온다예를 보며 선우는 질린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온다예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감돌았으나, 선우는 눈치채지 못했다."방금 그랬잖아요. 나은이 엄마가 나은이 옆에 있어 달라고 했다면서요. 미국에도 직접 찾아가고 계속 연락해서 나은이 걱정하셨다면서요? 나은이가 오빠 살렸어요?. 나은이한테 빚진 거죠? 그래서 나은이 엄마 부탁받고 지금 나은이 옆에 있는 거잖아요 그쵸? 제 말 맞죠 오빠?""뭐?"소름이 돋았다. 정말 미친 건가?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좀 전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을 들은 것 같은데, 그걸 저 머리통으로 그렇게 해석을 하고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는 온다예와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벌레 보듯 온다예를 내려다보며 몸을 돌리려던 찰라,온다예가 돌아서지 못하도록 막으며 선우에게 안겨들었다.기겁하듯 몸을 쳐낸 선우가 급기야 욕을 뱉었다."이런 미친 새끼가.""흐흑. 나한테 욕해도 돼요. 근데 나은이 때문에 오빠 인생 버리지 마요. 희생하지 마요"쓱~탁!뒤쪽에서 들려오는 문 소리에 선우가 급하게 뒤돌아보았다.하지만 출입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삐딱하게 서서 온다예를 사납게 쳐다본 선우가 또박 또박 말을 이었다."생각 같아서는 네 입을 확 찢어 버리고 싶은데, 네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참는 거야. 너 병원 가봐.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나은이 없으면 못 살아.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고 그 마음은 변치 않을 거다. 마지막 경고다. 직접 찾아오지 마라. 내 변호사 통해서 대화해"선우가 뒤돌아서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다시 룸으로 돌아 왔을 때, 나은은 샐러드 속에 있는 과일들을 쏙쏙 골라 먹고 있었다.그 모습이 귀여워 제 포크로 과일을 집어 나은이 입에 넣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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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굳건한 마음과는 달리

'방금 그랬잖아요. 나은이 엄마가 나은이 옆에 있어 달라고 했다면서요. 미국에도 직접 찾아가고 계속 연락해서 나은이 걱정하셨다면서요? 나은이가 오빠 살렸어요?. 나은이한테 빚진 거죠? 그래서 나은이 엄마 부탁받고 지금 나은이 옆에 있는 거잖아요 그쵸? 제 말 맞죠 오빠?'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 저도 모르게 숨이 멈췄다.그런데...온다예가 선우를 끌어안았다.그 순간 나은은 몸을 돌려 버렸다.다시 출입문을 향해 다시 걸었다.'이런 미친 새끼가.''흐흑. 나한테 욕해도 돼요. 근데 나은이 때문에 오빠 인생 버리지 마요. 희생하지 마요'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은은 출입문을 열고 힘 조절에 실패하여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닫아버렸다.몸이 떨려왔지만, 울지 않으려 애썼다.후들거리는 다리를 천천히 옮겨 놓으며 룸으로 향하는데,퍽! 챙그랑~!물잔이 든 트레이를 들고 급하게 몸을 돌리던 직원과 부딪혀 버렸다.물이 쏟아지고 컵 2개가 산산조각 났다.밖으로 나가기 위해 다시 입었던 재킷이 물로 흠뻑 젖었고, 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 사과를 했다.나은은 오히려 직원을 걱정하며 함께 깨진 컵을 치우려 들었지만 직원의 만류에 결국 룸으로 복귀했다.젖은 재킷을 다시 옷걸이 걸어 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앉았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자꾸만 눈물이 나려했다.여기서 울면 일이 커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눈앞에 보이는 샐러드에 과일들을 집어 입속에 억지로 집어넣기 시작했다.곧, 룸으로 돌아온 선우가 나은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제 포크로 과일을 집어 나은의 입에 가져다 주는데, 나은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행동하려 노력했다."흐흐흑....."'오빠가 만약에 잘못 됐으면.. 난 정말 못 버텼을 것 같아.. 그걸 상상하니까.. 다시는 오빠를 놓치고 싶지 않아졌어'온다예의 SNS 사건이 터진 날. 나은이 선우에게 했던 고백이었다.'오빠,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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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했어

나은은 역시 말이 없었다.이상했다.평소의 나은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서, 선우의 심장이 쿵쿵쿵쿵 뛰어 대기 시작했다.마치 겁을 집어삼킨 사람처럼..선우는 양손으로 나은의 어깨를 잡았다.동작을 멈춘 채 고갤 숙이고 있는 나은은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싫.어?"나은이 꾹꾹 눌러 뱉어낸 두 글자에 선우는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그녀가 울고 있다."나은아, 고개 들어 봐.""나 취했나 봐. 싫으면 안 해도 돼."나은은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래쪽으로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벗어난 후 욕실로 들어갔다.선우가 급하게 일어나 따라가 봤지만 빠르게 움직인 나은은 욕실 안에서 문을 잠갔다.-오빠 나 반신욕 조금 하고 들어갈 게 먼저 자~-욕실 안에서 들리는 나은의 목소리에 선우는 가만히 욕실 문에 이마를 붙였다.혹시.. 혹시.. 하는 생각을 하며 제발 아니길 바랐다."나은아. 오빠 안 자고 기다릴 게."욕실 물을 받는 소리에 선우의 목소리가 묻힌 걸까. 아니면, 들었지만 대답을 안 하는 걸까.선우는 잠옷을 다시 갖춰 입고 침대에 앉았다.띠릭.늦은 시간 메세지는 친구 녀석들이나 동생 유리일 확률이 높았다.알림 소리에 휴대전화를 들고 메세지를 확인했다.-나은이 괜찮대? 아까 나오는데, 사장이 괜찮냐고 물어보더라-이해 되지 않는 내용에 선우가 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게 무슨 말이야? 나은이한테 무슨 일 있었어?"-뭐야, 너도 몰랐어? 아까 너 통화 할 때 나은이가 고운 이모랑 통화하고 싶다고 너 찾아 나갔잖아. 들어오면서 직원이랑 부딪혔나 보더라고-"... 나은이가.. 나 찾으러 나왔었다고?"-못 봤어? 어쩐지 혼자 먼저 들어오더라-"......."-뭐야?.. 분위기 왜 이래?"선우의 반응이 이상했는지 이준이 그제야 심각하게 물었다.선우는, 온다예가 찾아 왔다는 이야기를 해 주며, 온다예가 헛소리를 한 내용과 자신을 안으려 했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말문이 막힌 이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선우가 다음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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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해독

그 말에 놀란 나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팅팅 부어있는 눈을 보는데, 선우의 심장이 찌릿해짐을 느꼈다."당해?""응. 나 성추행 당했어. 그래서 욕했어""......"온다예가 선우를 끌어안았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걸, 성추행 당했다고 표현하는 선우는 보는데, 나은은 할 말을 잃었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그러니까, 나은아. 나 해독 좀 해줘"해독이라니.. 온다예를 지금 독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야?"해독은.. 어떻게 하는 건데?"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쳐 보이는 선우를 보고 나은이 입을 삐쭉거리며 울먹거렸다."다 봤어 나..""이런.."나은이 찰방찰방 물소리를 내며 앉은 채로 선우에게 다가갔다.제 앞까지 온 나은을 품에 가둔 선우가 나은의 뒷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내가 분명하게 말했어. 난 나은이 없으면 못산다고, 나은이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고 그 마음은 변치 않을거라고""....오빠를 믿지 못한 건 아니야...""알아.. 알지...""흑...""불안할 때마다, 속상할 때마다 나한테 확인시켜 달라고 얘기해. 얼마든지 내 마음 증명해 보일 테니까.. 응?""응..""혼자 울지 말고.. 오빠 마음 아파""응"흠뻑 젖은 잠옷 바람으로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은 그제야 서로를 가까이서 마주 볼 수 있었다.부은 눈이 귀여워 선우가 나은의 두 눈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같이 씻을까?"나은의 잠옷 단추 하나를 톡! 하고 풀어 놓으며 선우가 속삭이듯 말했다.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해지는 기분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나은이 입술을 말아 쥐었다."응?"부끄러워 답을 못하는 나은을 빤히 쳐다보며 또다시 단추 하나를 톡! 하고 풀었다.나은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 대신 선우의 단추 하나를 제 손으로 풀어냈다.선우의 농염한 눈빛을 마주한 나은은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나은의 눈을 바라보며, 세 번째 단추를 풀어낸 선우가, 천천히 얼굴을 내려 나은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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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지난달, 꽃집으로 직접 찾아오신 수호의 어머니는 유림에게 모질고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 놓고 가셨다.한 달 안에 헤어질 것을 강요했고, 본인은 모른 척 할 테니, 절 만났다는 얘기는 말고 알아서 잘 헤어지라 일렀다.하지만, 유림은 차마 수호에게 어떠한 말도 꺼내질 못했다.-너 내가 한 달 준다고 했어 안 했어? 내 말이 우습니?-"아닙니다"-너도 너희 집에서는 귀한 딸이겠지. 모르는 거 아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거야. 어디 고졸 밖에 안되는 애가 우리 수호 같은 애를.. 허! 참나 기가 막혀서..-"대학교를 안 간 건 아니고요. 저에게 더 맞는 일을.."-시끄럽다. 어찌 됐든 자퇴하고 고졸은 맞잖니? 그렇다고 집안이 번듯한 것도 아니고.. 너희 부모님은 그 나이 먹도록 어떻게 20평 짜리 집 한 채가 다래니? 그러면서 어딜 내 아들을 넘 봐 넘보긴!-부모님의 이야기에 유림의 인내의 끈이 허무하게 끊어져 버렸다.".....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저희 집 뒷조사 하셨어요?"-뭐야? 못 배운 티를 내는구나. 버르장머리 없는 것. 일주일 안에 우리 수호하고 끝내. 다음 주에 내 아들 중요한 선 자리 잡혀 있다. 너 때문에 더는 망치게 두지 않아 알아 들었니?-벌벌 떨리는 두 손과, 힘을 잃고 주저앉은 다리.그리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애써 모른 체 하며 유림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헤어지겠습니다. 더는 연락도 찾아오지도 마세요. 먼저 끊겠습니다"유림은 종료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버렸다.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서럽게 울었다.***새벽 늦게까지 서로를 놓지 못했던 나은과 선우는 꼭 끌어안은 채 지쳐 잠이 들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점심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다.평일이고 주말이고 항상 집으로 왔던 사용인들은 이제 평일 날만 출근하는 것으로 바뀐 터라, 토요일 낮 집안은 조용했다.눈은 떴지만, 둘 다 눈만 껌뻑이며 서로를 안고 있을 뿐,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러다 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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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아니라고 말해

마지막 예약자 방문 시간이 오후 5시였고, 유림은 수호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해둔 상황이었다.5시가 조금 넘은 시간.유림을 데리러 온 수호가 꽃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자기야. 일 다 마쳤어?""응. 정리만 하면 돼""내가 뭐 도와줄까?""아니 앉아 있어"평소와 다른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와 표정.그랬기에 수호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정리를 마치고, 백을 어깨에 메는 유림을 보며 자연스럽게 전등불을 하나 하나 끄기 시작하는 수호였다.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자, 유림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차량으로 이끄는 수호를 유림은 그저 말없이 따랐다."자기 좋아하는 오리고기 먹으러 갈까?""아니, 간단히 먹고 좀 걷자""그럴까?"유림에게는 한결같이 다정한 남자였다.개그 코드와 대화의 결도 잘 맞아 함께 있으면 즐겁고, 지루할 틈이 없는, 유림에겐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다.21살, 결혼보다는 연애만 생각할 수 있는 나이.그때는 그저 수호 하나만 보고, 서로의 마음만 통하면 된다 여기며 사귀기 시작했지만, 이제 수호는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고, 유림은 그런 수호와 더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사귀는 건 둘의 감정만으로 가능했지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얽히는 것이므로..유림은, 오늘 그녀가 뱉은 말들에 대해 책임을 다할 생각이다.한때는 그의 세상이었고, 28년 동안 그를 짝사랑 중인 그의 어머니와 등을 지게 할 수는 없으니.여전히 그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그의 어머니일 테니. 자신이 놓아주는 것이 그를 위한 최선임을 모르지 않았다.*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다.곧 3월을 맞이할 2월 말의 날씨는 걷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카페 근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들을 하는 중이지만, 유림의 속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바윗덩어리를 품고 있는 듯 숨이 막혀 왔다.차오르는 숨에 오래 걷기가 버거웠다.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유림의 손을 잡으려 하는 수호를 피해 쪼로록 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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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진심

수호의 팔을 억지로 풀어낸 유림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이러다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수호가 달려가 유림을 붙잡았다."안돼..안돼 유림아. 결혼 안 해도 돼. 지금처럼 평생 연애만 하자 응? 가지 마 제발"눈물로 번들거리는 수호의 얼굴을 본 유림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그러나, 수호 모친과의 통화를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솔직히 말할 게. 나 그만하고 싶어. 5년 동안 만나다 보니 더 이상 설레지가 않아. 그냥 좀.. 지겨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반복된 연애. 앞으로도 이렇게 쳇바퀴 돌 듯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숨이 막혀""....진심이야?""어. 진심이야""너.. 이런 사람이었어? 내가 널 그동안 너무 몰랐던 거야?""사람은, 한 평생 함께해도 모르는 거야. 나 좀 놔 줘... 갈게"유림은 잔인하게 돌아섰다.점점 빨라지던 발걸음이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큰 도로로 나와 택시를 잡고 꽃집으로 향했다.집으로 가 부모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불을 켜지 않은 꽃집 안에서 유림은 서럽게 울었다.다 거짓말이었다. 설레지 않는다는 말도, 지겹다는 말도, 숨이 막힌다는 말도 모두 다.아직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수호를, 다른 이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했던 수호를, 함께 할수록 더욱 좋아져만 갔던 수호를 붙잡을 수 없어 아팠다.처음 본 자신에게 잔인한 말들을 쏟아내고, 처음 통화한 자신에게 부모까지 욕보인 수호의 모친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수호와 끝까지 가겠다고 하면, 아마 그보다 더 한 말들을 견뎌야 할 테고, 결국 제 부모님께도 상처를 입힐 것이다.수호는 제 어머니와 관계가 불편해질 테고, 결국 모두가 상처받게 되는 결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밤 11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꽃집 앞에 급하게 주차를 한 차량에서 나은이 내렸다.캄캄한 꽃집은 안에서 잠궜는지 굳게 닫혀 있었고, 나은은 유림을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유리문이 열리며 눈이 퉁퉁 부은 유림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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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분노

"몰라. 하... 말을 해 줘야 알지 말을! 나는 안돼 선우야.. 유림이 없는 미래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하... ""나은이 지금 유림이한테 가 있어. 나은이가 급하게 나가는 거 보고 유림이 한테 무슨 일 생겼나 해서 너한테 연락 한 건데..""뭐?....""내 생각엔, 지금 유림이도 많이 힘들어 하는 중인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고갤 숙인 수호의 눈에서 눈물이 투두둑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넷 중에 제일 눈물이 없는 수호였기에, 선우는 지금 수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무너져 내리는지 알 것 같았다."선우야. 내일 나 나은이 좀 만나게 해 주라"나은이라면 알고 있겠지.가장 마음을 터 놓는 친구이니..알아야겠다. 유림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유림이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다음 날. 나은의 집으로 수호가 찾아왔다.선우에게 미리 얘기를 듣고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솔직히 나은은 아직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유림은, 수호에게 말하길 두려워했다.분명히 그의 어머니와 관계가 틀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여전히 수호를 사랑하는 유림의 마음을 알았지만, 유림은 꽤 단호했다.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굳건히 믿었다.나은은 무엇이 유림을 위한 방법인지 답을 찾지 못했다.그래서 선우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고민에 고민만 거듭했다.집으로 들어온 수호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그 얼굴을 보고나니 나은의 마음도 복잡했다."나은아. 넌 알지? 유림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넌 알잖아 그치?"금세 눈두덩이 붉게 변한 수호의 모습을 보며 나은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나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결국 눈물을 툭 하고 떨어뜨린 수호가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제발 나은아....말 좀 해주라..""오빠 왜 이래요? 앉아요 어서"나은과 선우가 수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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