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Chapter 221 - Chapter 230

286 Chapters

221. 내가 알아본 건 역할이었다

“이 임명장은 그대로 둡니다.”법무관이 물었다.“문구 수정 청원을 하지 않습니까?”“나중에 하죠.”“왜요?”“오늘 당장 화가 난 상태에서 평생 쓸 경비대장 규정을 고치고 싶진 않습니다.”하겐이 종이를 내려놓았다.“삼십 일 써보고 뭐가 문제인지 보겠습니다.”과거 서약을 발견한 순간 폐기하지 않았다.현재의 거부가 생겼다고 이전의 직무까지 부정하지도 않았다.하나씩 분리했다.엘리시아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하겐 경.”“예.”“오늘 위험 정보를 먼저 공유하셨네요.”“그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전에는 혼자 확인하셨고요.”하겐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회색 잉크 장부를 혼자 본 뒤 사람들을 몰래 다른 근무지로 옮겼던 일.그는 변명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안 그랬습니다.”엘리시아도 ‘이제 믿는다’고 하지 않았다.“예.”그 한마디면 충분했다.사람이 달라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늘의 행동 하나가 전과 달랐다는 기록이었다.그 순간 문이 열렸다.도미니크 아렌이었다.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그는 오늘 현장 조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추가 증언 요청도 아직 보내지 않은 상태였다.로스테 공개 기록판에 올라온 현장 영상 일부를 보고 직접 시청으로 온 것이었다.“저 사람 어디 있습니까?”그가 숨도 고르지 않고 물었다.법무관이 일어났다.“누구를 말합니까?”“검은 갑옷 입은 사람.”“레나르트 바움 씨?”“이름은 모릅니다.”도미니크의 시선이 복도 끝으로 향했다.레나르트가 법무관 입회 아래 임시 숙소로 이동하고 있었다.검은 갑옷은 여전히 입고 있었다.갈비뼈 고정대 때문에 오른쪽 보폭이 왼쪽보다 아주 조금 짧았다.한 걸음.두 걸음.방향을 바꾸면서 그는 오른발을 반 박자 늦게 돌렸다.도미니크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멈춰요.”경비병들이 레나르트를 붙잡지 않았다.법무관이 먼저 물었다.“도미니크 씨가 당신 걸음걸이를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멈추시겠습니까?”레나르트가 걸음을 멈췄다.“예.”도미니크는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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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알아본 사람

‘착용자 식별 금지. 보행 통일.’갑주 7번의 무릎 안쪽에서 발견된 문장은 곧바로 증거의 의미를 바꿨다.도미니크 아렌이 십일 년 전 보았던 검은 갑옷의 걸음걸이와 레나르트 바움의 걸음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는 두 사람을 동일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반대 가능성이 생겼다.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걸음으로 보이도록 갑옷이 만들어져 있었다.로스테 법무관은 전날 작성했던 증언 분류를 수정했다.‘도미니크 아렌은 현재 갑주 7번 착용자의 보행과 과거 목격자의 보행이 유사하다고 증언함.’그 문장 아래에 새 줄이 붙었다.‘갑주 자체에 보행 통일 장치 존재 확인. 보행 유사성은 착용자 동일성 증거로 사용하지 않음.’레나르트는 자신의 이름 옆에 붙은 문장을 끝까지 읽었다.“그럼 저를 십일 년 전 착용자로 보는 의심은 없어지는 겁니까?”로스테 법무관이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왜죠?”“걸음걸이를 근거로 의심할 수 없게 된 것뿐입니다.”레나르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그 정도면 공평하군요.”“본인이 공개하지 않은 과거 이름과 수감 기록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습니다.”“압니다.”그는 불쾌하다고 조사를 중단하지 않았다.그렇다고 본명을 내놓지도 않았다.엘리시아는 탁자 한쪽에 놓인 갑주 구조도를 바라봤다.오른쪽 무릎 회전을 제한하는 축.보폭을 일정하게 만드는 발목판.몸을 돌 때 오른발을 늦추는 얇은 마찰쇠.흑갑 기사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다.그러나 멀리서 본 사람에게는 같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키가 조금 달라도 갑옷으로 어깨 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보폭도 통일된다.투구는 얼굴을 가린다.이름은 남지 않는다.그리고 검증판에는 사람 대신 갑주 번호가 찍혔다.1번.4번.7번.9번.11번.흑갑 기사는 이름이 아니라 계속 채워 넣을 수 있는 자리였다.이레나가 물었다.“걸음까지 같게 만들었다면 다른 것도 맞췄을 가능성이 있습니까?”테사가 구조도를 확대했다.“키는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어깨 안쪽에 높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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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새로 달린 가죽 고리

“어제 이미 본인이 다시 오고 싶으면 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결정했는지 기다리죠.”그녀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증인을 불러오지 않았다.정오 전에 도미니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추가 증언에 응하겠다.조건은 하나였다.“갑옷 가까이에는 안 갑니다.”법무관이 물었다.“거리를 얼마나 원하십니까?”“열 걸음.”“가능합니다.”레나르트에게도 별도로 확인했다.도미니크가 십일 년 전 착용자의 다른 습관을 확인하기 위해 현재 갑주와 자신의 동작을 관찰하려 한다.응할 의무는 없다.레나르트는 한동안 생각했다.“갑옷을 벗으라고 합니까?”“아닙니다.”“걷기 외에 무엇을 할지 먼저 알려주세요.”“그게 맞습니다.”도미니크가 직접 요구 목록을 적었다.서 있는 자세.검집 위치.투구를 벗는 동작.의자에 앉는 방식.뒤에서 이름을 불렀을 때 돌아보는 방향.로스테 법무관은 마지막 항목을 지웠다.“기습 반응을 시험하지 않습니다.”도미니크가 얼굴을 찌푸렸다.“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데.”“당사자가 언제 불릴지 모르게 해야 확인 가능한 항목 아닙니까?”“그렇죠.”“그러면 안 합니다.”레나르트의 무의식적 반응을 얻으려고 속이지 않았다.도미니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목록을 접었다.“그럼 남는 게 별로 없군요.”엘리시아가 말했다.“별로 없으면 별로 없는 대로 봐야죠.”사람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함정에 넣지는 않았다.도미니크가 먼저 알아본 것은 레나르트가 아니었다.검집이었다.레나르트의 검은 여전히 남문 증거보관함에 있었으므로 동일한 무게의 목검을 사용했다. 그는 먼저 원하는 위치에 검집을 달 수 있는지 물었다.“평소처럼 하십시오.”이레나가 말했다.레나르트는 허리띠의 왼쪽 고리에 검집을 걸었다.대부분의 기사보다 조금 뒤였다.손잡이가 골반 바로 옆이 아니라 왼쪽 허벅지 뒤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갔다.도미니크가 눈썹을 찌푸렸다.“그건 다릅니다.”법무관이 물었다.“십일 년 전 기사는요?”“더 앞이었습니다.”“어느 정도?”도미니크는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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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두 사람은 화해하지 않았다

“그건 기사 손이면 대부분 그렇지.”“아닙니다.”도미니크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검 잡아서 굳은살이 생긴 게 아니라, 손가락 두 개가 잘 안 굽혀졌습니다.”“어느 손가락?”“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레나가 레나르트를 바라봤다.그의 왼손은 멀쩡하게 움직였다.레나르트가 직접 손을 펴 보이지 않았다.법무관이 물었다.“현재 손 상태를 확인하는 데 동의합니까?”“이미 보셨잖습니까.”“공식 감정으로 확인한 적은 없습니다.”레나르트는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봤다.“보이는 범위는 괜찮습니다.”그는 장갑을 벗었다.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있었다.약지와 새끼손가락도 자연스럽게 굽혔다.십일 년 전 도미니크가 본 사람과 같은 손상은 없었다.그러나 법무관은 곧바로 ‘다른 사람’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부상이 회복됐을 수도 있다.도미니크의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다른 이유로 그날 손가락이 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현재 레나르트 왼손 기능 정상.과거 목격자, 십일 년 전 착용자의 왼손 약지·새끼손가락 굴곡 제한 기억.동일성 판단 불가.도미니크는 그 문장을 확인한 뒤 의자에 기대지 않았다.“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무엇입니까?”“저 사람이 그날 사람이라고는 이제 못 하겠습니다.”그 말은 레나르트의 결백을 확정하지 않았다.단지 도미니크 자신의 이전 의심을 낮췄다.레나르트는 감사하지 않았다.“처음부터 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당신 말만 믿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요.”“그건 맞습니다.”두 사람은 화해하지 않았다.그 편이 오히려 기록에는 깨끗했다.십일 년 전 착용자의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그 단서가 의외의 곳에서 사람 하나를 불러냈다.로스테 옛 군수공방 장부였다.흑철 갑주 7번은 공식적으로 왕실 북부 원정대 물품이었지만, 팔십 년 동안 여러 차례 로스테 주변에서 수리를 받았다.로스테 시청은 현재 남아 있는 옛 공방 직원 명단을 확인했다.대부분 사망했다.몇 명은 다른 도시로 떠났다.현재 로스테 안에 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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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왼손 손바닥의 화상 자국

마르타는 오래된 작업 장부를 꺼냈다.십일 년 전이었다.엘리시아가 열네 살에 후보 검사를 받은 해.작업 날짜는 검사일보다 열이틀 전.품목.흑철 외근갑.번호 7.수리 항목.오른쪽 무릎 회전 제한쇠 교체.목가리개 내부 공명판 점검.왼손 장갑 관절부 확대.테사의 시선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왼손 장갑 관절부를 왜 확대했습니까?”마르타는 기억을 더듬었다.“그때 입던 남자 손가락이 잘 안 접혔어요.”도미니크의 증언과 일치했다.“약지와 새끼손가락입니까?”마르타가 눈을 좁혔다.“그건 어떻게 알았어요?”“다른 증언이 있습니다.”그녀는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그래. 그 두 개.”“이름을 아십니까?”마르타가 고개를 저었다.“안 알려줬습니다.”“얼굴은 보셨습니까?”“봤죠.”테사의 손이 멈췄다.“정말입니까?”“갑옷 수리하려면 벗어야 하잖아요.”처음으로 흑갑 기사 착용자의 얼굴을 실제로 본 증인이 나왔다.“그 사람을 지금 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까?”“십일 년 됐어요.”“가능성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마르타는 잠시 생각했다.“얼굴만 보면 자신 없습니다.”“다른 특징은요?”“손.”“손가락 말고도 있습니까?”“왼손 손바닥에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모양은?”마르타가 자기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그렸다.검지 아래에서 손목 쪽으로 내려가는 길쭉한 화상.흔한 화상일 수 있었다.결정적인 신원표시는 아니었다.그러나 사람을 찾을 단서는 늘었다.법무관이 물었다.“그 사람의 소속을 짐작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까?”“말투는 황도 쪽이었습니다.”“성기사였습니까?”“몰라요.”“황실 기사?”“그것도 모르고.”마르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모른다는데 왜 자꾸 어느 편이냐고 물어요?”“확인했습니다.”법무관은 더 밀지 않았다.그녀가 알아본 사람은 이름 없는 남자였다.십일 년 전 갑주 7번을 입었던 사람.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았고, 손바닥에 긴 화상이 있었다.그리고 마르타는 한 가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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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짐승이 따라온다

두 번째.오른쪽 무릎 제한쇠.미량의 회색 금속분.세 번째.목가리개 안쪽 공명판 자리.금빛과 회색 사이의 아주 얇은 침전층.네 번째.왼쪽 허리판.없음.다섯 번째.등판 내부 환기구.같은 침전층.테사가 측정판을 내려놓았다.“왕핵 분말과 유사합니다.”“확정입니까?”법무관이 물었다.“아닙니다. 두 기관 감정이 필요합니다.”황실 왕핵 감정소와 로스테 독립 기술팀이 각각 사본 분석을 맡았다.원본 가루를 긁어내지 않았다.표면 파장과 미세 결정의 형상만 비교했다.두 감정은 비슷한 결과를 냈다.왕핵 정제분 계열.그러나 제국 왕핵실에서 직접 사용하는 농도보다 훨씬 낮음.회색 점토와 동물성 기름, 소금 성분이 함께 섞여 있음.“갑옷을 보호하기 위한 방청제입니까?”오스카가 물었다.테사가 고개를 저었다.“방청 효과는 오히려 나쁩니다.”“그럼 왜 바릅니까?”레나르트가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했다.“제가 얻었을 때부터 있던 흔적일 겁니다.”“당신도 새로 바른 적 없습니까?”“없습니다.”마르타의 비공개 증언 중 해당 부분이 읽혔다.십일 년 전 갑주 수리 후, 당시 착용자는 왕핵 정제분 4호를 동물성 기름에 섞어 목가리개와 무릎 제한쇠, 등판 통풍구 안쪽에 직접 발랐다.마르타가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길을 잃지 않게 하려고.’법무관이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누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요?”아무도 답하지 않았다.갑옷 착용자일 수도 있었다.왕핵 감응 장치일 수도 있었다.그를 찾는 다른 흑갑 기사일 수도 있었다.테사가 침전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목.등.무릎.공기를 타거나 바닥에 닿기 쉬운 곳이었다.갑옷 내부를 보호하려는 위치가 아니었다.흔적을 남기려는 위치에 가까웠다.“냄새를 남기는 것처럼 보입니다.”하겐이 말했다.레나르트의 표정이 굳었다.“그 말.”“뭐지?”“예전에 들은 적 있습니다.”“어디에서?”“갑주 7번 안에서 발견한 기록 중에.”“태웠다는 야간 관측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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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다시 협의하겠습니다

흰 뿔의 왕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다른 마물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왕핵 정제분이 묻은 갑옷과 대형 개체 추적 사이에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엘리시아는 즉시 갑옷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지 않았다.“현재 갑주에서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극미량입니다.”테사가 답했다.“지난 몇 년 동안 대부분 닳거나 씻겼을 겁니다.”“그래도 흰 뿔의 왕이 감지할 수 있는지는 모르는 거죠.”“모릅니다.”하겐이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이전 같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레나르트를 당장 성밖으로 내보냈을 수도 있었다.이번에는 먼저 선택지를 물었다.“갑주를 벗는 게 가능한가?”레나르트가 자신의 옆구리를 내려다봤다.“오래는 어렵습니다.”“다른 고정대를 만들면?”미하일이 의료기록을 확인했다.“일반 보조대로 대체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제작에 하루 정도 걸립니다.”“갑옷을 씻으면?”테사가 말했다.“증거가 사라집니다.”“그럼 씻으면 안 되나?”“아닙니다.”법무관이 끼어들었다.“현재 위험이 증거보존보다 크다고 판단되면 일부 세척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누가 판단합니까?”레나르트가 물었다.“당신도 포함됩니다.”법무관이 답했다.갑주가 레나르트의 몸에 붙어 있는 이상, 증거라고 해서 그의 치료장비까지 무조건 보존할 수는 없었다.레나르트는 잠시 생각했다.“오늘은 그대로 두겠습니다.”“위험 설명을 들으셨습니다.”“예.”“나중에 세척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알겠습니다.”하겐이 말했다.“도시가 위험해질 수 있다면?”레나르트가 그를 봤다.질문에는 가시가 있었다.하지만 하겐은 지난 회차의 선택을 다시 떠올렸다.도시냐 사람 하나냐.같은 방식의 저울을 또 만들지 않았다.“정정하죠.”하겐이 말했다.“도시 위험이 실제로 커지는 징후가 생기면 갑주 보관 방법을 다시 협의하겠습니다.”레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동의합니다.”칼릭스와의 저녁 통신은 예정된 시각보다 짧았다.그는 먼저 의료 상태부터 보냈다.오른손 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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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불완전하게 기억합니다

“기록은 있습니다.”“어떤 기록이요?”“확인해서 보내겠습니다.”“지금은 모르십니까?”“불완전하게 기억합니다.”그는 기억을 완전한 답으로 포장하지 않았다.“과거 북부 왕핵국이 흰 뿔 계열 마물을 추적하거나 유도할 때 4호 정제분을 사용한 기록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하겐의 얼굴이 굳었다.“유도?”칼릭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정확한 목적은 원문을 확인해야 합니다.”엘리시아가 말했다.“그 기록부터 보내주세요.”“왕핵국 원본은 일부 폐쇄돼 있습니다.”“폐하가 여실 수 있습니까?”“열 수는 있습니다.”그 대답 뒤에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엘리시아는 기다렸다.칼릭스가 말했다.“하지만 제가 직접 개봉하면 황제 직무 사용 흔적이 남습니다.”네 번째 심장.회색 장부.흑갑 검증판.사람보다 직무를 읽는 장치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었다.“그럼 폐하가 열지 마세요.”엘리시아가 말했다.“법무청과 왕핵 기술관에게 권한을 나눠서 열 수 있습니까?”“가능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그렇게 하죠.”칼릭스는 바로 동의했다.자신이 가장 빠르다는 이유로 권한을 혼자 사용하지 않았다.통신을 종료하기 전 엘리시아가 물었다.“폐하.”“예.”“오늘 저녁 휴식도 있습니까?”“한 시각 뒤입니다.”“통신이 길어지면요?”“그 전에 끝냅니다.”이번에는 그녀가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엘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것으로 통신을 끊었다.사과도 없었다.고백도 없었다.그러나 칼릭스가 자신의 몸과 권한을 동시에 혼자 쓰지 않는 방법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은 남았다.엘리시아는 화면이 사라진 자리에서 잠시 손을 떼지 않았다.그런 다음 사건철을 닫았다.밤이 깊어진 뒤 북문 관측소에서 보고가 들어왔다.흰 뿔의 왕이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전날까지 북쪽으로 이어지던 큰 발자국도 없었다.대신 사냥꾼들이 묘한 흔적 하나를 발견했다.로스테 성벽에서 꽤 떨어진 북쪽 숲.흰 뿔의 왕이 마지막으로 지나간 자리 근처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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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왕핵의 맛

흰 뿔의 왕이 남긴 흔적은 로스테 북문에서 반나절 떨어진 숲에서 멈춰 있었다.발자국은 없었다.큰 나무가 부러진 흔적도, 땅을 갈아엎은 발굽 자국도 없었다. 사냥꾼들이 찾아낸 것은 검은 돌 세 조각과 그 주변의 눈이 유난히 얇게 녹아 있는 자리뿐이었다.테사는 접근선을 두 겹으로 잡았다.첫 번째 선 안에는 로스테 기술자 둘과 사냥꾼 한 명만 들어갔다. 두 번째 선에는 하겐과 경비병들이 남았다. 엘리시아는 현장에 가지 않았다. 왕핵 잔류를 구별하는 마물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된 이상, 성흔을 가진 사람이 직접 가까이 가서 확인할 이유가 없었다.“돌을 가져오지 않습니다.”로스테 시청의 작은 회의실에서 엘리시아가 말했다.원격 관측판 너머로 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현장 측정만 합니다.”“긁어서 시료를 채취하는 것도요?”“현재는 하지 않습니다.”하겐이 끼어들었다.“눈이 다시 오면 흔적이 사라질 텐데.”테사가 돌 옆에 세운 측정판 수치를 확인했다.“그래도 바로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왕핵 잔류가 마물을 끌어오는 표식이라면, 그걸 도시 안으로 운반하는 쪽이 더 위험합니다.”하겐은 더 재촉하지 않았다.사냥꾼이 긴 나무막대를 이용해 돌 주변의 눈 두께를 쟀다.첫 번째 돌은 거의 반쯤 묻혀 있었다.두 번째는 표면 한쪽이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세 번째는 깨진 면 안쪽에서 희미한 회금색 결이 보였다.테사가 물었다.“세 돌의 왕핵 잔류 농도는?”기술자가 차례로 숫자를 읽었다.첫 번째가 가장 높았다.두 번째는 절반 이하.세 번째는 거의 검출 한계였다.하겐이 말했다.“그럼 첫 번째를 골랐어야 하는 것 아닌가?”문제는 닳은 흔적이 두 번째 돌에만 있다는 점이었다.왕핵 농도가 가장 높은 돌은 건드리지 않았다.가장 약한 세 번째 역시 그대로였다.흰 뿔의 왕으로 추정되는 개체는 중간 농도의 돌만 입에 댄 흔적을 남겼다.엘리시아가 전날 칼릭스에게 받은 옛 실험 기록을 펼쳤다.‘대상은 가장 강한 왕핵 잔류를 선택하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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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사람을 먼저 내려보내지 않는다

엘리시아의 시선이 구조도에 멈췄다.첫 번째 심장은 이미 균열이 있었다.지난번 시장 하수로 붕괴 때 잠시 왕핵 보조출력을 쓰면서 더 이상 직접 가동하지 않기로 했던 장치였다.하지만 ‘직접 가동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를 수 있었다.“누가 내려갑니까?”베른하르트가 물었다.테사가 답했다.“기술자 둘과 법무관 한 명이면 됩니다.”“왕핵 기술관은?”“황실에서 사람을 부르면 더 오래 걸립니다.”엘리시아가 말했다.“자료부터 받죠.”모두 그녀를 봤다.“폐하께 첫 번째 심장과 같은 세대의 장치가 재고 반출을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을 먼저 내려보내지 말고요.”하겐이 의자를 뒤로 기대지 않은 채 물었다.“황제가 직접 왕핵을 봐야 알 수 있는 정보면?”“그럼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칼릭스의 몸을 가장 빠른 측정기처럼 쓰지 않는다.그 원칙은 이제 별도의 설명 없이 적용됐다.통신 요청은 짧았다.첫 번째 심장과 동시대 왕핵 보조장치의 재고 승인 해석 방식.권한번호 0.저장된 승인.황제·성녀 부재 시 자동 절차 여부.칼릭스의 답은 한 시각 안에 왔다.그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왕핵관리국 폐쇄 문서 사본이었다.엘리시아가 첫 문장을 읽었다.‘권한번호 0은 현 황제와 성녀의 직접 명령을 요구하지 않는다.’다음 줄.‘기존 국가계획과 현재 의사가 충돌하거나, 생존 승인책임자가 부재하는 경우 이전 승인·후보 원본·저장 서명·저장 파장을 참조해 절차를 계속한다.’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하겐이 욕설을 삼켰다.“죽은 사람 서명하고 오래된 파장으로 현재 명령을 만든다는 건가.”오스카가 문서 끝을 읽었다.종료 조건.‘새 황제와 성녀의 결속 완료.’엘리시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결속이 끝날 때까지.그 전에는 과거의 승인과 저장된 권한을 이용해 절차를 계속한다.현재 황제가 거부해도.현재 성녀가 거부해도.장치는 그 거부를 절차 종료로 보지 않는다.오히려 ‘아직 결속이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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