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성녀의 침실에는 죄 많은 황제가 산다: Chapter 241 - Chapter 250

286 Chapters

241. 성녀 묘지

‘죽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열두 번째 마르셀의 검은 장부에 남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하겐은 그 말을 묘지 관리 규칙으로 받아들였다.엘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사람을 묻는 곳이라면 굳이 저 문장이 필요하지 않겠죠.”로스테 새 사무실의 창문에는 밤새 내린 눈이 얇게 붙어 있었다. 난로 가까이에 말리던 장갑에서는 아직 젖은 가죽 냄새가 났고, 책상 위에는 아델라이드 사후 표본 기록과 제17호 인증판 반출기록, 첫 번째 심장의 최근 탐색 로그가 세 줄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오스카가 검은 장부의 앞뒤 페이지를 다시 넘겼다.“별칭이 ‘성녀 묘지’인 건 확실합니다.”“정식 시설명은요?”“지워졌습니다.”“위치도.”“예.”“그런데 분류번호는 남았고.”엘리시아가 숫자를 가리켰다.아델라이드 사후 표본.성녀선발원 후보 원본.제17호 인증판.모두 같은 보관체계의 번호를 공유했다.열두 번째 마르셀이 입을 열었다.“마르셀 계열에서는 장소를 이름으로 남기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하겐이 물었다.“또 누가 훔쳐볼까 봐?”“그런 이유도 있었겠죠.”“다른 이유는?”열두 번째 마르셀은 잠시 검은 책을 내려다봤다.“이름이 사라져도 기능이 남는 곳이 있었으니까요.”엘리시아가 그녀를 보았다.“설명해주세요.”“왕실 창고가 폐쇄되면 창고 이름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보관권한이 다른 부서로 넘어가면 같은 상자는 다른 이름으로 계속 존재합니다.”죽은 사람의 검증키처럼.폐지된 성녀독립심사실처럼.사라진 마르셀 호프라는 이름처럼.기관은 죽었다고 기록하면서 기능은 살려두는 방식이었다.“그러면 ‘성녀 묘지’도 하나의 건물이 아닐 수 있겠군요.”오스카가 말했다.“예.”열두 번째 마르셀이 장부 하단을 가리켰다.“하지만 이 기록이 작성된 시점에는 실제 보관 장소 하나를 뜻했습니다.”“근거가 있습니까?”“운반 지침입니다.”그녀가 다음 장의 눌린 자국을 비스듬한 빛 아래 드러냈다.완전한 문장은 아니었다.‘북부로 보낼 것.’‘왕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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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소유자가 없어진 장소

칼릭스의 답은 예상보다 빨랐다.왕실 북부 격리묘역.공식 폐쇄 팔십일 년 전.폐쇄 당시 소유권은 황실 의무국.이후 세 차례 이관.황실 의무국에서 대신전 성유관리소.성유관리소에서 성녀선발원.성녀선발원 폐쇄 뒤 최종 관리기관.기록 없음.엘리시아가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소유자가 없어졌다는 뜻입니까?”통신판 속 칼릭스가 말했다.“기록상 그렇습니다.”“실제로는요?”“어느 기관도 현재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대신전은?”마티아스가 이미 확인해둔 회신을 옆에서 읽었다.“대신전 본부는 격리묘역 관리권을 육십칠 년 전에 황실로 반환했다고 주장합니다.”칼릭스가 다른 기록을 띄웠다.“황실에는 반환 인수서가 없습니다.”“성녀선발원은요?”“폐쇄 당시 자산목록에서 누락됐습니다.”하겐이 낮게 말했다.“누구 것도 아니니까 마음대로 썼겠군.”엘리시아는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아니면 다들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해야 편한 장소였거나요.”법무청은 임시 수색영장을 발부할 수 있었다.소유권 불명 시설.불법 보관 표본 존재 가능성.현재 첫 번째 심장의 제17호 탐색과 연결되는 긴급한 증거보존 필요.그러나 영장에는 범위가 붙었다.지상 시설과 비매장 보관함 수색 가능.묘표 아래 실제 매장부 개봉은 별도 영장 필요.인간 유골 확인 시 수색 중단 후 법의관 입회.성녀·후보 표본 발견 시 원위치 촬영과 이중 봉인.왕핵·신성력 반응이 있어도 엘리시아 또는 칼릭스의 신체 파장을 개방열쇠로 사용하지 않음.엘리시아가 마지막 조건을 읽고 물었다.“폐하께서 넣으셨습니까?”칼릭스는 고개를 저었다.“법무청이 넣었습니다.”“폐하께서는 현장에 오실 생각이 있습니까?”짧은 침묵 뒤 그가 되물었다.“그대는 제가 필요합니까?”엘리시아는 질문을 곧바로 돌려주지 않았다.“왕실 기계식 잠금이 있으면 폐하 개인이 있어야 합니까?”“아닙니다.”“황실 기록열쇠는요?”“법무청에 임시 대여할 수 있습니다.”“왕핵이 필요한 장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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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대신전의 가면을 벗겨내는 사각문

도움을 받는다.사람까지 불러들이지는 않는다.둘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왕실 북부 격리묘역에는 비석이 거의 없었다.눈 위로 드러난 것은 낮은 돌기둥과 번호표뿐이었다.사람 이름 대신 일련번호.사망 날짜.오염 등급.그마저 눈과 이끼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현장팀은 아홉 명이었다.테사.로스테 법무관.시설 기술자 둘.기록관 한 명.대신전 감정인 한 명.경비병 셋.하겐은 오지 않았다.북벽 보조선 차단 뒤 방벽 압력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고,묘역 수색은 경비대장 본인이 꼭 있어야 할 임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엘리시아 역시 오지 않았다.그녀는 로스테 독립 사무실에서 원격 기록만 받았다.누군가 자기 표본이 있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고 해서 당사자가 반드시 현장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묘역 입구에는 낡은 철문이 있었다.왕실 문장은 긁혀 있었다.대신전 표식도 없었다.그러나 잠금장치는 세 개가 겹쳐 있었다.가장 오래된 것은 황실 의무국.그 위에 대신전.마지막은 성녀선발원.시설 기술자가 말했다.“세 기관이 순서대로 잠금을 덧붙였습니다.”법무관이 물었다.“다 열어야 합니까?”“기계적으로는 첫 번째만 풀어도 문은 열립니다. 나머지 둘은 기록잠금입니다.”“무슨 뜻이죠?”“누가 들어갔는지 남기는 장치입니다.”“현재 살아 있습니까?”“확인하겠습니다.”왕실 기록열쇠는 법무관이 들고 있었다.칼릭스가 쓰던 개인 열쇠가 아니었다.황실 기록고가 법무청 영장번호에 맞춰 만든 일회성 금속판.사용 뒤 두 조각으로 부러뜨려야 했다.열쇠를 넣기 전 테사가 외부 반응을 확인했다.왕핵 없음.미약한 신성 잔류.성녀 파장 요구 없음.“사용합니다.”법무관이 선언했다.첫 번째 잠금이 열렸다.대신전 기록잠금이 반응했다.‘소속?’법무관은 답하지 않았다.대신 감정인이 자신의 조사단 번호를 넣었다.개인 신관 인장이 아니라 현재 로스테 조사 사건번호였다.두 번째 해제.마지막 성녀선발원 잠금.‘후보 번호.’모두 멈췄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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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표본은 묻히지 않는다

‘성녀 본인의 유해와 표본을 같은 함에 두지 않는다.’‘유해는 장례규정에 따른다.’‘표본은 국가보존물로 분리한다.’엘리시아는 원격으로 문장을 읽었다.왼손이 손목 안쪽으로 갔다.한 번.숨을 들이쉬었다.두 번째.세 번째.네 번째 호흡 뒤 손을 내렸다.“저 규정 작성 연도를 확인해주세요.”대신전 감정인이 뒷면을 봤다.칠십팔 년 전.아델라이드 사망 직후와 가까웠다.사람은 묻힌다.표본은 묻히지 않는다.사용이 끝났다고 분류돼도 다시 꺼낼 수 있도록 남긴다.그것이 이곳의 ‘묘지’였다.서쪽 철문은 다른 잠금장치를 가지고 있었다.황실도 대신전도 아니었다.마르셀 기록망에서 사용하던 얇은 은색 홈 세 개.열두 번째 마르셀에게 원격 영상을 연결했다.그녀는 한참 문을 보았다.“저건 제가 열 수 있습니다.”엘리시아가 물었다.“현재 마르셀 권한으로요?”“예.”“열면 당신 신원이 기록됩니까?”“마르셀이라는 권한만 남습니다.”“개인 이름은?”“남지 않습니다.”“그 방법을 원합니까?”열두 번째 마르셀의 얼굴이 굳었다.자기가 열 수 있다는 것과 자기가 열어야 한다는 것은 달랐다.“다른 방법이 있습니까?”시설 기술자가 조사했다.“시간은 걸리지만 가능합니다.”“그럼 우회해주세요.”열두 번째 마르셀이 말했다.“제가 마르셀 권한을 써서 열지 않겠습니다.”“이유를 기록하시겠습니까?”“예.”그녀의 목소리가 낮았다.“이 문이 마르셀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죽은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시스템.누가 현재 열두 번째인지 추적할 수 있는 잠금.열두 번째 마르셀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위험 때문에 거부한 것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죽은 직무권한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우회합니다.”법무관이 결정했다.세 사람이 한 시각 가까이 기계잠금을 분해했다.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문이 열렸다.서쪽 열에는 작은 함 여덟 개가 있었다.앞의 보관함과 달리 모두 이름이 있었다.아델라이드.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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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핏빛 흑막의 가면을 베어내는 진실

세 겹이었다.첫 번째 오래된 성녀선발원 봉인.두 번째 게르하르트 검증키.세 번째 훨씬 최근의 얇은 회색 봉인.마지막 봉인은 십 년 안쪽.제17호 인증판이 야간실에서 사라진 시기와 비슷했다.법무관은 별도 영장 범위를 확인했다.비매장 보관함.불법 표본 존재 가능성.개봉 가능.다만 이중 감정인이 동시에 입회해야 했다.로스테 감정인은 테사.대신전 감정인도 있었다.엘리시아가 물었다.“두 분 모두 개봉에 동의합니까?”테사가 먼저 대답했다.“예.”대신전 감정인은 잠시 생각했다.“동의합니다.”“반대 의견은 없습니까?”“현재 봉인 외부 감정만으로는 내용 확인이 불가능합니다.”“좋습니다.”함을 누가 열지 정했다.법무관.당사자 엘리시아는 현장에 없었다.대신전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황실도 참여하지 않았다.봉인의 압력과 순서를 모두 촬영한 뒤, 가장 최근의 회색 봉인부터 절단했다.첫 번째.두 번째.마지막 잠금.뚜껑이 천천히 열렸다.안에는 혈액병이 없었다.대신 은색 인증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제17호.성녀선발원에서 사라진 인증판과 번호가 같았다.그 옆에 작은 빈 받침대 두 개.혈액병이 들어갈 자리.둘 다 비어 있었다.오스카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인증판만 돌아왔군요.”테사가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내부를 측정했다.혈액 잔류 흔적.있음.과거에는 두 병이 실제로 들어 있었다.그러나 현재는 없다.“언제 빠졌는지 알 수 있습니까?”“봉인층을 더 봐야 합니다.”인증판 아래에서 접힌 종이 하나가 발견됐다.법무관은 먼저 촬영했다.그다음 핀셋으로 가장자리만 들어 올렸다.문장은 세 줄이었다.‘제17호 원표본 재분류.’‘결속 예정자의 생존 안정 필요에 따라 외부 이동.’마지막 줄.‘현재 성녀의 직접 의사 확인 불필요.’엘리시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오스카가 말했다.“십 년 전이라면 성녀님이 아직 현재 성녀로 확정되기 전일 수도 있습니다.”“작성일을 확인하세요.”종이 아래 날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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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그렇게 쓰지 마세요

성녀 묘역의 서쪽 보관실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다시 봉인됐다.열려 있던 제17호 함은 닫았지만 원래 봉인을 복원하지 않았다. 누군가 새 봉인을 만들어 ‘처음부터 열리지 않았던 것’처럼 돌려놓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대신 로스테 법무관, 대신전 감정인, 주민 관찰인이 각자 다른 색의 임시 봉인 세 개를 걸었다.함 안의 인증판과 문서는 꺼내지 않았다.아델라이드의 보관함도 열지 않았다.죽은 성녀들의 표본이 실제로 무엇인지, 사람의 유해가 섞여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 확보’라는 이유로 전부 들고 나올 수는 없었다.현장팀이 철수한 뒤에도 묘역 외곽에는 로스테 경비병 네 명이 남았다.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묘역 입구에서 접근자만 기록했다.그리고 그날 밤부터 묘역으로 향하는 기존 산길은 주민 통행이 금지됐다.하겐은 통행금지 범위를 넓히자는 제안을 거절했다.“벌목길까지 닫으면 서쪽 마을이 사흘은 돌아갑니다.”한 평의원이 물었다.“흰 뿔의 왕이 움직일 수도 있는데?”“지금 확인된 건 묘역에서 북쪽으로 신호가 나갔다는 겁니다.”하겐은 지도 위에 손가락을 댔다.“마물이 왔다는 게 아닙니다.”“미리 막는 게 안전하지 않나?”“안전하다고 다 막기 시작하면 도시 밖으로 나갈 길이 없어집니다.”대신 묘역 주변 한 시각 거리의 산길에는 표식을 세웠다.‘왕핵·신성 잔류 조사 중.’‘경비선 안 진입 금지.’‘우회로 사용.’‘금지 기간 삼 일, 이후 재검토.’영구 봉쇄가 아니었다.사흘 뒤 다시 열지, 더 막을지 표결한다.엘리시아는 그 결정을 새 사무실에서 보고받았다.책상 위에는 성녀 묘역 현장기록이 여전히 펼쳐져 있었다.서쪽 열.아델라이드.여러 죽은 성녀의 이름.비어 있는 제17호 혈액 자리.그리고 북부 곳곳에서 동시에 반응한 왕핵 잔류점.오스카가 지도에 금빛 표시를 옮겼다.“열일곱 곳입니다.”“확실합니까?”“처음 잡힌 건 열둘이었는데, 야간 관측 자료를 다시 보니 다섯 곳이 더 있었습니다.”“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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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증거보다 사람이 먼저다

“일부는요.”엘리시아는 바로 승인하지 않았다.“사람이 들어가야 합니까?”“예.”“흰 뿔의 왕 관측 반경과 겹치는 곳은?”“다섯 곳.”“그 다섯 곳은 미룹니다.”하겐이 즉시 반응했다.“성녀님.”“네.”“그쪽이 제일 중요한 지점일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더 미룹니다.”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낮고 정확해졌다.“중요한 증거가 있는 곳이라고 사람을 먼저 넣지 않습니다.”하겐은 반박하려다가 멈췄다.지난 회차에 자신이 한 말과 같은 원칙이었다.증거보다 사람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그럼 나머지 열두 곳?”“주민 동선과 겹치지 않는 곳부터 두 군데만.”“두 군데로 충분합니까?”“첫 비교에는요.”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지점에서 층위가 다르면 조사 범위를 다시 정할 수 있습니다.”작게 시작한다.정보가 부족하다고 사람과 장비를 한꺼번에 북쪽으로 밀어넣지 않는다.첫 표본 채취는 다음 날 오전으로 정해졌다.아침 첫 번째 현장은 옛 왕실 관측소였다.지금은 무너진 돌탑의 기초만 남은 곳이었다.마을에서 한 시각 이상 떨어져 있었고, 최근 사람의 출입 흔적도 거의 없었다.현장팀은 다섯 명.테사.시설 기술자 둘.법무관 보조 한 명.경비병 한 명.하겐은 가지 않았다.엘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돌탑 기초의 동쪽 벽에서 희미한 왕핵 잔류가 잡혔다.표면만 보면 오래된 것이었다.테사는 석분을 크게 떼지 않았다.바늘 끝보다 작은 조각 세 개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채취했다.첫 번째 층.팔십 년 안팎.두 번째.약 삼십 년 전.세 번째.십 년에서 십이 년 전.같은 돌에 세 번 이상 다른 시기의 잔류가 덧입혀져 있었다.“아델라이드 생전 흔적만은 아닙니다.”테사의 보고가 로스테로 들어왔다.엘리시아가 물었다.“신성력 층도 같습니까?”“첫 번째에는 강합니다.”“두 번째?”“약합니다.”“세 번째는?”테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다시 강합니다.”팔십 년 전.아델라이드가 생존해 있던 시기.강한 신성력.삼십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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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대신전 소유라고 전제하지 마세요

흑갑 기사들이 성녀 표본을 운반했다.왕핵 정제분을 갑옷에 발랐다.북부 길에도 같은 정제분과 성녀 잔류가 섞여 있다.한 번 더 선이 이어졌다.그런데 이번에는 레나르트가 먼저 요청했다.“저 시료를 볼 수 있습니까?”로스테 법무관이 물었다.“이유는요?”“저런 혼합물을 본 적 있습니다.”“어디서?”레나르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갑주 7번을 처음 발견한 지하방에서.”회의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왜 지금 말합니까?”하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레나르트가 불편한 듯 턱을 눌렀다.“그땐 그냥 기름때인 줄 알았습니다.”“지금은?”“냄새를 기억합니다.”“냄새?”“동물성 기름과 오래된 철.”하겐이 코웃음을 치려 했지만 레나르트는 말을 이었다.“그리고 약간 단 냄새가 났습니다.”대신전 감정인이 얼굴을 들었다.“성유 보존제일 수 있습니다.”“무슨 보존제?”“옛 신성 표본을 금속에 고정할 때 쓰던 수지입니다.”엘리시아의 표정이 굳었다.“현재도 씁니까?”“아닙니다.”“언제 폐기됐습니까?”“대략 이십 년 전.”“왜요?”감정인이 잠시 망설였다.“표본과 금속을 분리하기 어려워집니다.”“그게 문제였습니까?”“더 큰 문제는 장비가 표본 잔류를 계속 가진다는 점이었습니다.”성녀의 피를 바른 검.성녀의 파장이 밴 갑옷.한 번 처리하면 씻어도 완전히 빠지지 않는다.“사람이 바뀌어도?”엘리시아가 물었다.“장비에는 남습니다.”답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가 갑주 7번을 떠올렸다.착용자는 바뀐다.걸음걸이도 통일된다.검증권도 이어진다.그리고 갑옷 자체에는 죽은 성녀의 파장까지 남길 수 있다.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역할.그 역할에 왕핵과 성녀의 흔적을 함께 먹였다.오후 공개 심리에서 가장 먼저 다툰 것은 ‘성녀 표본’의 소유권이었다.대신전 본부는 아델라이드 보관함과 옛 성녀 표본에 대해 종교유산 관리권을 주장했다.황실 옛 의무국 기록에는 국가재난 대응용 보존물로 적혀 있었다.성녀선발원 옛 규정에는 후보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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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당사자보다 먼저 결정할 수 없다

황실 혼인국.대신전 성녀관리관.결속 예정자 측 책임자.상황마다 보호책임자가 달라졌다.결국 성녀가 살아 있어도 다른 사람이 대신 동의할 길이 있었다.엘리시아는 입술을 다물었다.같은 문장을 너무 여러 번 보고 있었다.거부하지 않았으니 동의.과거에 한 번 서명했으니 현재도 동의.보호자가 동의했으니 본인도 동의.죽었으니 더 이상 동의가 필요 없음.장치는 사람의 현재 의사를 피할 길을 언제나 하나씩 마련해두었다.“폐하께서는 저 규정을 알고 계셨습니까?”엘리시아가 통신판을 바라봤다.칼릭스는 오늘도 같은 높이에 있었다.“일부만 알고 있었습니다.”“어느 부분요?”“국가위기 시 성녀 표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당사자가 거부해도 가능한 부분은?”“확인하지 못했습니다.”“폐하 재위 중 사용된 적 있습니까?”짧은 침묵.“확인 중입니다.”“모르시는군요.”“예.”엘리시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확인되면 제게 먼저 말씀하지 마세요.”칼릭스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어디에 먼저?”“법무청 기록에 먼저 올리세요.”“알겠습니다.”“그 뒤 제가 봅니다.”그녀는 칼릭스의 죄책감을 직접 전달받는 자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사실은 공적 기록을 먼저 거쳐야 했다.칼릭스가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으로 그 사이를 채우지 않게.그도 받아들였다.“그렇게 하겠습니다.”“그리고 폐하.”“예.”“오늘 의료기록은 받았습니다.”칼릭스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침에 미리 전송된 기록.오른손 감각 변화 없음.왕핵 사용 없음.휴식 첫 회 완료.그녀가 묻기 전 보내온 자료였다.“두 번째 휴식은?”“회의 뒤 삼십 분.”“그럼 회의가 늘어나면?”“제가 끝냅니다.”엘리시아는 더 묻지 않았다.그날 저녁 로스테 평의회는 ‘성녀 묘역’에 관한 임시 관리안을 표결했다.어느 기관의 소유권도 인정하지 않는다.현재는 증거보존 시설로만 취급.사람의 유해가 확인되면 묘역법 적용.표본은 별도 증거로 취급하되 사용 금지.원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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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밑바닥에 새겨진 숫자 17

레나르트가 자기 목 쪽을 만지려다 손을 내렸다.“오늘 성녀 묘역 사진을 보고 기억났습니다.”“무엇이요?”“병 밑바닥.”서쪽 보관함 안 빈 받침대.두 병이 들어갔던 자리.당시 표본병은 일반 혈액병과 달리 밑면에 후보 번호를 새겼다.“번호를 봤습니까?”“17이었던 것 같습니다.”“확실합니까?”“아닙니다.”그는 그 말을 먼저 붙였다.“7은 확실합니다. 앞 숫자는 1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병은 어떻게 했습니까?”“두고 왔습니다.”“두 달 뒤 다시 갔을 때는?”“시신과 같이 없어졌습니다.”엘리시아에게 이 진술을 전달할지 묻자 레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전달하십시오.”“직접 말하지 않겠습니까?”“제가 빠뜨린 이야기입니다.”그의 얼굴이 굳었다.“성녀님이 제 얼굴을 보면서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법무관은 그 판단을 대신 따르지 않았다.“그건 성녀님이 결정할 일입니다.”레나르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맞군요.”“직접 들을지 기록으로 받을지 선택하게 하겠습니다.”엘리시아는 기록으로 받는 쪽을 택했다.레나르트를 다시 불러 세워 같은 말을 반복시키지 않았다.“위치가 옛 기사 주둔지였죠.”“예.”오스카가 지도를 펼쳤다.칠 년 전 레나르트가 시신을 발견한 지하방.현재 조사 중인 갑주 창고와는 다른 위치였다.건물 서쪽 아래.지난번에는 천장 붕괴 위험 때문에 들어가지 않은 구간.하겐이 말했다.“내일 가보겠습니다.”엘리시아가 그를 봤다.“하겐 경이 꼭 가야 합니까?”하겐이 입을 다물었다.최근 며칠 동안 익숙해진 질문이었다.그는 지도와 인원표를 확인했다.“아닙니다.”“그럼?”“테사랑 시설팀이 먼저 구조 확인하면 됩니다.”“경비는요?”“외곽만.”하겐은 자신이 빠지는 것을 무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내일 북벽 보조선 조정이 있습니다. 난 그쪽에 있는 게 낫습니다.”“좋습니다.”결정은 빨랐다.옛 기사 주둔지 서쪽 지하방.구조 확인 우선.시신 흔적이 있다면 법의관 호출.표본병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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