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심연의 군주는 로맨티스트: Chapter 111 - Chapter 120

183 Chapters

제111화

타나가 정성스레 만든 커피 반응은 절망적이었다. 칼데론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고, 로일드는 향만 좋고 쓰다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말했다.마지막으로 벨리오는 꾸역꾸역 반잔을 비우곤 풀이 죽은 타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직접 만들어 본 건 너도 처음이라며.”“너무 오래 볶았나? 아니면 처음이라 그런가?”하긴, 자신 역시 처음엔 아메리카노를 왜 먹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시럽을 타야 먹을만하다고 느껴졌던 첫 경험.아르바이트에 찌들어가며 점차 카페인 중독에 대해 지독하게 깨달았었다. “근데, 타나.”“응?”“어떻게 저 콩을 말려서 볶을 생각을 한 거야? 아르켈에선 거들떠보지도 않았었잖아.”약간의 의심스러운 질문에 타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내.. 내가 그랬나?”“응. 그랬어. 전이랑 말투도 달라진 것 같고, 겁도 없어지고.”차마 벨리오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솔직하게 털어놔야 조금은 편해질 것 같은데. 혹시라도 실망하면 어쩌지? 둠바스로 온 걸 후회라도 한다면, 내 마음이 더 힘들 것 같단 말이야.하지만 벨리오는 이미 하나뿐인 친구였다. 서로가 다치지 않길,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란 말이다. 진심을 고백하기로 결심한 타나가 벨리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벨리오. 사실 나는, 네가 알던 타나가 아니야.”벨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그저 둠바스에 오고 난 뒤 성격이 달라진 거겠지. 그냥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난이 심하잖아.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봐.”“아니, 장난 아니야.”“타나...”“나는 아르켈도, 둠바스도 아닌 다른 세계에서 왔어.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눈을 뜬 건 말라토 기둥 위였고.”맞다, 말라토 기둥.아르켈의 모두가 그 나무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타나가 그곳에서 낮잠을 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도무지 이해되질 않아 가슴이 답답했었다. 그리고.. 그날의 타나는 평소와 다르게 이상했었다.난데없이 쉬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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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벨리오의 닦달에, 타나는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떨궜다. “오해하지 마. 다른 사람한테 쓰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 이 끔찍한 흑사초를 네가 먹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야?”타나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나는... 시녀로 사는 생이 너무도 버거워. 혹시 모르잖아. 이번 생을 끝내면, 다음 생에는.. 세쟈르 아가씨처럼 귀한 인생을 누릴지.”그날, 벨리오와 타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밤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타나는 다행히 안정을 찾은 것 같았고, 흑사초는 아무도 모르게 불에 태워 없애겠다고 했는데.지금의 타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이 세계로 왔다고. 그럼 내가 알던 타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는 뜻인가? 기어코 그 흑사초를 먹고야 만 거야?벨리오의 말을 전해 들은 타나는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정말로 그 흑사초를 삼켰다면 죽었을 텐데...그럼 설미주로 살던 몸도 결국 죽어버린 거야? 아니면 타나의 영혼이 스며들어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게 사실이야? 타나가 스스로 죽으려고 했다고?”“응.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말라토 기둥 사건이 일어난 거야.”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답은 알 수 없었지만, 이왕이면 진짜 타나 역시 죽지 않길 바랐다.아르켈과는 다른 세계에서 설미주의 몸으로,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길 바랐다.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벨리오의 표정에는 분노도, 실망도 없었다. 그게 가장 다행이었다. “벨리오 너는 지금... 내 말을 온전히 믿어주고 있구나.”“당연하지, 우리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비록 짧지만, 적어도 나를 대하는 너는... 매 순간 진심이었어.”“고마워 벨리오. 너무너무 고맙고 미안해.”“미안하긴,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치지 뭐.”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로일드가 한숨을 내쉬었다.“또 웁니다. 인간들의 눈물샘은 성능이 별로인가 봅니다.”“너는 왜 놀라지 않지.”“예?”“타나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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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더 깊게 숙였다. 이제는 그 무엇도 거부할 수 없었으니까. 포셉의 손에 이끌려 침실로 향하는 길, 보네타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심장을 부여잡았다.침실 문이 열리고, 포셉의 명령이 떨어졌다. “바르기 좋은 자세를 취해.”요즘은 제 방보다 훨씬 더 넓고 고급스러운 침대에서 정사가 시작된다.보네타는 다리를 옭아맨 쇠고랑이 없어진 것보다,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걸쳐진 옷을 벗어내는 손길은 물론,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리고 앉는 모습은 오늘도 포셉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약병 뚜껑이 열렸다.은은한 꽃향기가 풍겨온 것도 잠시, 진득하고 투명한 액체가 핑크빛 골짜기로 후두둑 떨어졌다. “읏!”“보네타, 지금부터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솔직하게 내뱉어.”두터운 엄지가 액체를 퍼뜨리며 골짜기를 훑어내렸다.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 꼼꼼하게. 볼록 튀어나온 예민한 돌기까지 투명한 액체가 스며들었다.“아흣, 간, 간지럽습니다..”“그건 당연한 거고.”돌기를 느릿하게 굴리는 포셉의 눈동자는 탐스러운 젖가슴과 음부를 번갈아 응시했다. 조금씩 커지는 신음, 반응이 오듯 배배 꼬이는 허리. 작은 구멍 안쪽에서 흐르는 액체는 보네타의 것임이 틀림없었다.“벌써 천박해지기 시작한 건가?”“하앙, 앙, 뜨, 뜨겁습니다, 으응..”“기분은?”“손, 손가락을 더... 더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읏!”보송보송 귀엽게 난 음모를 위로 올리고, 엄지로 음핵을 빠르게 비볐다.질척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보네타의 엉덩이가 사정없이 들썩였다. 질질 흘러나오는 애액, 잔뜩 수축한 아랫배와 간드러지는 신음.솔직히 포셉의 눈에 비치는 보네타는 천박해 보이긴커녕,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장난감 같았다.“아으읏, 어, 어떡해, 읏, 하아..!”효과는 죽여줬다. 평소보다 빠르게 찾아온 절정은 짜릿했고, 그만큼 흥분의 액체 또한 가감없이 분출되었다. 가혹한 유린이 아랫도리를 지배한 지금, 뜨거운 물줄기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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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설화주를 꿀떡 넘긴 타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달다! 엄청 달아!”벨리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귀한 술을 맛 보다니, 이게 지금 꿈이야 생시야? 그러면서도 불안함은 가시질 않았다.“우리.. 이래도 되는 거겠지?”“몰라. 걱정은 접어두고, 로일드 님은 잘해주셔? 힘들지 않아?”“응? 으응... 근데... 바위 박쥐 뇌는 정말 못 먹겠어.”그건 정말 최악이었다.로일드는 하루도 빠짐없이 박쥐 시체를 손에 들고 주방에 내던졌고, 타나는 발작을 일으키는 연기를 한 덕에 벗어날 수 있었다. “우웩. 생각만 해도 역겨워.”“그래도 나를 위해 사냥하신 거라고 하니까...”“우웩. 나는 진짜 싫어!”벨리오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딱 봐도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부끄러움과 간질거림이 가득한 표정까지. 뭐야? 나도 물론 금사빠지만, 벨리오도 별반 다르지 않잖아?“역겨워도 참고 먹어. 보양 효과는 죽여주더라.”“타나 너는? 군주님이랑 지내는 거, 행복해?”“처음엔 엄청 무서웠거든? 근데... 지금은...”“지금은?”“귀여워!”벨리오가 황급히 타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어! 그런 말 하면 큰일 나.”타나가 고개를 저으며 벨리오의 손바닥에서 벗어났다.“진짜야, 완전 낮져밤이라니까!”“낮져밤이?”“낮에는 져 주고 밤에는 이긴다! 내가 살던 곳에서 유행했던 말이야.”“그러고 보니까 로일드 님도 그런 것 같아. 낮져밤이!”“푸하하하!”작은 오두막 안, 낄낄거리는 소리와 잔이 맞 부딪히는 소리가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지는 소리는 딸꾹. 또 딸꾹. 설화주의 도수는 웬만한 위스키와 맞먹었으니. 술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사람에겐 독주와도 다름없었다. “타나.. 나.. 네 얼굴이 두 개로 보여.. 아니, 세 개..”“딸꾹. 흐잇. 나아두.... 딸꾹.”오두막 너머 커다란 나무 위, 사고뭉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 저.... 감히 군주님께 귀엽다는 단어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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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저 나약한 육체로 독한 설화주를 계속해서 마셨다가는, 아마 삼일은 구역질을 하며 앓아누울 것이다.순식간에 오두막 안으로 이동해 모습을 드러낸 두 남자. 로일드는 만취한 벨리오를 챙겨 자리를 떠났고, 칼데론의 붉은 눈동자가 타나를 응시했다.“잇? 기야운 궁주님이다앙! 딸꾹.”“고독한 싸움은 내가 끝내줘야겠는걸.”알코올에 절여진 뇌는 사고를 정지시켰다.뒤늦게 벨리오가 사라진 걸 깨달은 타나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울먹거렸다. “흐아아앙. 벨리오 오디가떠어 오디이!”“오늘은 포박해서 박는다던데.”“딸꾹. 뭬?”“이제는 하다 하다 군주의 술을 훔쳐 먹다니.”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타나가 칼데론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쪽! 입술을 훔쳤다. 그대로 굳어버린 칼데론과 쪽쪽쪽! 멈추지 않고 입술을 박아대는 타나.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코 끝에 풍기는 설화주의 향조차 꽃향기였다. “저눈 군주님이 조아용.”“안다.”“군주님도 저를 조아하지용?”목덜미를 부여잡긴 했는데, 두 다리가 비틀비틀거렸다. 게다가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 한층 탁해진 눈동자까지.그는 타나의 허리를 감싸며 짧은 대답을 내뱉었다.“아마도.”“아마도라니잉! 내가 조으니까눈 이케 막 데리러 오눈고자나아!”말이 짧아졌다. 당장 목을 비틀어 죽여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일이지만 취했으니까. 이번에도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지.“술 주정은 여기까지. 단물을 마실 시간이거든.”“흐아아앙! 제가 살던 세계에서눈요! 술치한 여자를 건두리믄 나쁜넘이에여!”?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쪽 세상엔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존재한다고? 하여간 못 살 동네네. 끔찍한 동네네.“여긴 둠바스다.”“오눌운 꼬옥 안아서 재워주문 앙대요? 머리아푸단 말이얌. 딸꾹.”그날 칼데론은 물론 로일드도. 타오르는 욕정을 꾹꾹 누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나약한 인간은 술에 취하면 더 한심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옷을 벗기긴커녕 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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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짜증을 이기지 못해 침실을 나선 칼데론의 곁, 로일드가 바짝 붙어 한숨을 내쉬었다.“구역질 소리를 듣다 보니, 저까지 구역질이 나려고 합니다.”“술창고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구나.”“전쟁도 두렵지 않은 저인데, 타나 아가씨와 벨리오의 조합은... 점점 두렵습니다.”그 마음은 칼데론 역시 매한가지였다.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거두고 있거늘. 이미... 어디도 보낼 생각이 없거늘.“아, 콩나물이 뭐지?”“예? 콩에서 나물이 납니까?”“타나가 찾던데. 콩나물 해장국이 먹고 싶다고.”“에일코 시장을 다녀오겠습니다.”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라 생각하며 시장으로 향한 로일드는, 듣도 보도 못한 콩나물 해장국 대신 숙취에 좋다는 장수지네 내장 즙을 열 병이나 사서 돌아왔다. 벨리오는 갸륵한 정성에 감동받아 꾸역꾸역 넘겼지만, 타나는 아니었다.정화실을 왔다 갔다 거리는 걸로도 모자라, 길길이 날뛰며 발작했다. “으아악..! 진짜 싫어어어....!”***로일드의 지휘 아래, 기사단의 훈련장은 여전히 바빴다. 칼데론의 생각은 여전했다.타나가 싫어한다고 해서 전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따스한 햇살을 선물하고 싶어 안달이었으니까.“아르켈을 다녀오거라. 슬슬 날짜를 잡아야겠으니.”“예.”게이트를 넘어 아르켈로 향한 로일드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성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오르테아스의 집무실이었고, 장군들의 보고를 받는 오르테아스의 표정은 서늘하게 굳어 있었다.“솔피온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가족들은 물론 누구도 목격한 자가 없다 합니다.”“갑자기 이렇게 증발해서는, 단서 하나 남기지 않았다고?”“이상합니다. 게이트 순찰을 맡은 것도 아니었는데.”병신들, 그 새끼는 이미 죽었어. 하여간 머저리들만 모여 가지곤 정답 근처에도 못 가는구나.“세쟈르는.”“똑같으십니다. 외출하실 때마다 뒤를 밟고 있긴 하나, 동굴만 오가는 게 다입니다.”동굴? 설마 헤릴드 장군이랑 진득한 정사를 나눴던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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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그날, 히나타 차를 마시지 않은 건가.”“마실 정신이나 있었고..?”“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치지. 그럼, 출산은 왜 이렇게 서두른 거지?”세쟈르의 눈이 아이에게 향했다. “죽이고 싶어서.”“...”“근데 그건, 당신 몫으로 남겨두려고.”“내 몫?”“로일드, 당신을 증오해. 그리고 경멸해. 그러니까 부디... 불행해 줘.”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 세쟈르의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껄떡였다.아무리 마력을 쏟아부어도 살릴 수 없는 생명. 스스로가 죽기를 택하고 신력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생명. 지금 이 순간, 로일드의 뇌리를 스친 건 다름 아닌 벨리오의 얼굴이었다.“세, 세쟈르...”“사과하지 마...”마지막까지 아이를 향하던 눈이 스르륵 감겼다.희미한 빛이 삐쩍 마른 육체 주변을 잠시 에워싸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부드럽게 흩어졌다. 정신이 반쯤 나간 로일드는 떨리는 손으로 하늘색 비단을 들어 올렸다. 말이 되지 않을 만큼 가벼운 무게. 천족과 마족의 피를 반반씩 나눠 가진 존재.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본 얼굴은 도무지 죽일 수 없는 형상이라, 가슴이 울컥거렸다.***식사를 마친 타나와 벨리오는 접견실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꿀을 섞으니 입맛에 딱이었다. 느끼함도 좀 가시는 것 같고. 유난히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이상해, 밥만 먹고 나면 생각난다니까.”벨리오의 말에 타나의 표정에 활기가 돌았다. 처음엔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더니. 요즘은 벨리오도 벨리오지만 군주님과 로일드도 가끔씩 커피를 찾는다.이게 바로 카페인 중독이지.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빠져드는 거라니까.“내 말이 맞지? 근데 많이 마시진 마. 특히 잠들기 전에는 더더욱.”“왜?”“커피에는 카페인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수면에 방해가 되거든.”“신기하다. 네가 살던 세계에서는 다들 커피를 마셔?”“그럼, 거의 영혼의 단짝과도 다름없어.”얼마 지나지 않아 귓가에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으아아아앙!”거리는 갓난아이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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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 이리 내. 어서!”아이를 감싸안은 로일드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단 한 번도 군주의 명령을 어긴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품에 안긴 생명이 너무 작아서, 너무도 세차게 울어서. 보다 못한 칼데론이 비단 천을 움켜쥐자, 지켜보던 타나가 달려와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떼어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보내긴 어딜 보내요!”“비켜라.”“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요? 잘못은 로일드님이 했는데, 왜 이 아이가 죽어야 하냐고요...!”“타나,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평소와는 다르게 호통을 치는 모습에 타나는 움찔했지만, 결코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세쟈르도 죽었다며.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아이를 죽이기까지 해야겠냐고.“그렇게 따지면, 군주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이건 로일드님이 책임지셔야 할 문제라고요.”로일드는 팔에 힘만 잔뜩 줬을 뿐, 잠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군주님도, 벨리오도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이 더러운 피가 흐르는 생명을 품기라도 하겠단 뜻인가?”“더러운 피라니요! 세상에 그런 피는 없습니다!”“타나!”그때였다. 벨리오가 터벅터벅 걸어와, 로일드의 품에 안긴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세요.”“벨리오...”“어서요, 로일드 님.”아이를 전해주는 로일드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품 안에 아이를 안아든 벨리오가 로일드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순간, 칼데론의 서늘한 눈동자가 벨리오를 향했다.“뭣들 하는 짓이지.”“압니다. 천족과 마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인간보다 더 비천한 존재라는 것을요. 하지만 군주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시작부터 비천하다는 단어가 붙는 삶. 불행이 정해진 삶. 거기에 죽음까지 더해진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겁니다.”타나 역시 가만있지 못했다. 벨리오의 옆에 무릎을 꿇고는, 물기가 가득한 눈망울로 칼데론을 올려다보았다. “군주님. 이 아이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다른 종족의 피를 가져서라면, 저 또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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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하루 종일 칼데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타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성 안의 이곳저곳을 쏘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매번 사고는 본인이 쳤는데, 이번에는 유일하게 믿는 부하인 로일드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으니.거기에 나까지 합세해 화가 많이 난 건가..? ‘대체 어딜 가신 거야..’머릿속에 복잡했던 칼데론은 성 꼭대기에 올라, 허공을 응시했다. “혹시라도 제가 군주님의 아이를 품게 된다면. 그때도 저와 아이를 죽이실 건가요?”타나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아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히나타 차를 꼬박꼬박 먹여야 하나? 감정을 배제한 논리론 그게 맞는데, 쓸데없이 그 사이를 끼어드는 감정의 정체를 몰라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이었다.언제부턴가 확연하게 달라진 성 분위기. 그 모든 건 자신이 타나라는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서로 다른 종족의 만남, 그것부터가 잘못된 것인가. 한 번도 타나를 데려온 순간을 후회했던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긴 세월을 사는 동안 요즘처럼 마음이 들뜨고,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군주님.”평소보다 먼발치에서 무릎을 꿇은 로일드는 목소리마저 기어 들어갔다. 안 그대로 지독한 상념에 빠져있던 칼데론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오직 그의 긴 머리칼만이 바람에 일렁였다.“화가 풀리실 때까지 뭐든 해주십시오. 고문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고문이라.”“예, 사지를 자르신대도 할 말이 없습니다.”지금의 상황이 고문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미간이 구겨졌다.복수심에 불타 세쟈르의 신력을 빼앗고 기억을 지웠던 건 꽤나 멍청하고, 최악인 선택이었다.“그날인가. 타나가 보네타의 농간에 놀아났던 날.”“맞습니다. 아무래도 그날은... 히나타 차를 마실 겨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평화롭던 일상이 깨진 것만 같은데, 또 불행이라는 단어는 차마 붙일 수 없는 이질적인 상황.어차피 벌어진 일, 지금 와서 되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벨리오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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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별자리가 뭔지는 몰랐지만, 리온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었다. 부르기도 쉽고, 딱히 튀지도 않고.“그래, 그게 좋겠다.”“너무 예쁘고 순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로일드는 리온을 침대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벨리오를 꼭 품에 안았다.벨리오 역시 그런 로일드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마음 쓰지 마셔요. 로일드 님은 인간이 아니시잖아요.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잖아요.”“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근데, 아까 했던 말은 조금 바꿔야겠다.”아까 했던 말? 무슨 대화들을 나눴더라? 도무지 정신이 없던 하루라. “예?”“생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에서 가장 귀히 여기겠다고 했었는데...”“그런데요?”“가장은 아니고 두 번째로 귀하게 여기겠다.”허리를 감싸던 팔에 스르륵 힘이 풀렸다.“두 번째요?”“그래. 감히 군주님을 잊고 있었지 뭐야.”“그러니까, 로일드 님에게 일 순위는 군주님이란 말씀이시죠?”“당연하지.”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오천 년이나 살아놓고는 유도리라곤 전혀 없고. 충성심과 애정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에휴, 내 선택이 그렇지 뭐.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거둬주신 칼데론 님도 솔직히 너무너무 감사하고.“예, 이 순위도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타나가 둘의 대화를 들었다면, 아마 발작을 하며 로일드를 노려봤을 것이다. ***침실로 돌아온 칼데론은 자신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타나의 발소리에 눈썹이 꿈틀거렸다.얌전한 척 두 손까지 공손히 모으곤,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거야.“뭐지.”“군주님, 제가 커피 타 드릴까요?”“그러던지.”“꿀을 넣어 마시면 엄청나게 맛있습니다.”“어.”세상 얌전히 테이블로 걸어가더니,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주전자를 칼데론을 향해 내미는 타나.“얼른 끓여주십시오.”“하, 이러면 내가 타 마시는 거랑 뭐가 다르지?”“주방이 멉니다. 군주님께서 끓여주시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입니다.”하여간 저놈의 조동아리 질에는 늘 그럴싸한 이유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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