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심연의 군주는 로맨티스트: Chapter 141 - Chapter 150

183 Chapters

제141화

“타나, 소식 들었어?”커피 열매를 잔뜩 따서 돌아온 타나가, 하버트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이곳에서 지낸 지 벌써 한 달째. 마을 어귀에서 만난 스물여섯 살의 청년 하버트는 이미 타나의 말동무였다.“응? 무슨 소식?”“더는 마족들이 인간들을 해치지 않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천족과 마족,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도 더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고!”바구니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게이트가 사라진 이후, 세상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은 존재했지만, 그보다 기뻐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분명 잘된 일인데, 기뻐해야 하는 일인데 타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그동안 칼데론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잘 됐다.”“응, 또 커피 만들게?”“마을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알바 인생으로 다져진 타나는 생활력이 강했다. 불을 피워 말린 원두를 볶고, 기름이 발린 종이에 커피를 내리고. 처음엔 제 발로 찾아다니며 맛을 보게 했더니, 채 2주도 지나지 않아 커피를 구매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나도 이따 마시러 갈게.”“일 끝내고 와, 꿀 듬뿍 타줄게.”돌아온 집 안은 어느새 타나만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커피값으로 돈 대신 받기 시작한 옷과 생활용품은 물론 식재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커피와 함께, 곱창밴드를 만들어 팔고 있다.색색의 천을 고무줄에 엮어 머리도 묶고, 팔목에 끼워 팔찌 대신 착용하고. 여자들은 예쁘고 편한 걸 좋아하니까.“됐다. 나 이러다가 부자 되는 거 아니야?”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타나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밝고 명랑한 성격도 한 몫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존재였다.군주의 여자였다가 버림을 받았다는 소문은 돌고 돌아 타나의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나는 씩씩했다.그동안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것, 그건 버려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확실한 증거였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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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크기랑 색 상관없이 전부 다 7냥입니다!”타나의 집 앞에 몰려든 여인들은 곱창밴드를 보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팔에도 끼워보고, 머리도 묶어보고. 이런 신박한 아이템은 모두에게 처음이었다.“저는 이거, 꽃무늬 패턴이요!”“두 개, 두 개 사야겠다.”“다 예쁜데 어떡하지...”다른 한쪽에는 커피 원액이 담긴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제는 커피까지 돈으로 받기 시작한 타나는 몹시도 신이 나 보였고, 담장 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데론의 기분은 오늘도 최악이었다.아르켈이 무너진 직후,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늘 대전에 갇혀 명령을 내리고, 보고를 받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바뀌길 수십 번. 그리고, 타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올 줄 알았다. 보고 싶었다고, 후회한다고. 엉엉 울며 제 이름을 부르면, 득달같이 나타나 안아주려고 했단 말이다.이따금씩 타나의 감정이 전해질 때면 가느다란 쇄골에 새겨진 표식을 떠올렸다. 특히나 지독한 슬픔이 느껴지면 부리나케 달려와 확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타나는 웃고 있었다.씩씩했고, 바빴으며 하루도 허투루 보내는 날이 없었다. 그 모든 조합으로 종합해 본 결과, 인간 마을에서의 생활은 성에서 보다 행복해 보였다.믿고 싶지 않았지만, 표식이 꼭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흠, 감히 나라는 존재를 잊은 건가.”요즘은 기운도 통 없는 게, 아무래도 단물을 빨아먹지 못해 기력이 쇠한 것만 같은데. 인간들은 수명이 짧은 만큼 기억력도 생선 대가리인 게 틀림없었다.그때,“타나, 언제 끝나?”젠장할, 또 저 자식이다. 요즘 들어 타나의 곁에서 얼쩡거리는 하버트 자식. 시장 구경을 가자며 낡아 빠진 마차를 끌고 올 때면 바퀴를 하나씩 뽑아놨는데. 오늘도 멀쩡해진 마차를 끌고 오다니. “금방! 마차는 고쳤어?”“응, 오늘은 문제없을 거야. 아주 단단하게 조여놨거든.”타나는 늘 살갑게 구는 하버트가 편했다. 남자로서의 매력보다도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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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마차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오갔고, 그럴수록 칼데론의 심기는 언짢아졌다. 살판났구나 타나. 근데 자꾸 이러면, 데려갈 이유가 점점 없어지잖아.나랑 있을 땐 뻑하면 울더니, 도대체 저 촌스럽고 멍청한 자식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 다른 건 다 참아도, 저 자식 앞에서 다리만 벌려 봐. 그땐, 이 칼데론의 분노가 그 코딱지만 한 마을을 불태울 것이니.도착한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족과 마족이 섞여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 하버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짜네. 진짜 천족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네.”“왜...? 설마 너도, 천족이 싫어?”“아니. 그냥 신기해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잖아.”타나는 안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열심히 번 돈으로 쇼핑을 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타나! 같이 가!”“나 급해! 얼른 와!”저러다가 또 자빠지기 일쑤지.칼데론의 생각이 막 끝나는 찰나, 타나의 발이 뒤엉켰다.“어...?”“타나!”딱 넘어지기 직전, 타나의 허리를 팔로 감아 지탱하는 하버트. 칼데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타나의 허리를 절단할 수는 없으니, 저 팔을 절단해야 하느니라.“고, 고마워 오빠!”“조심해. 뭐가 그렇게 급해.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응?”“으응.”커피를 담을 병은 물론, 예쁜 원피스와 모자도 구매했다. 하버트는 타나가 뭘 입던 하나같이 예쁘다며 뺨을 붉혔고, 두 사람의 모습은 칼데론에겐 당연히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내가 사준 드레스들이 훨씬 화려하고, 아름답고, 비싸고, 고급 지거늘.”그런 칼데론의 옆으로 다가온 로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엥? 또 그 자식이네요? 타나 아가씨, 설마 저 자식이랑 정사라도 나눈 겁니까?”“죽고 싶은 것이냐.”“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이제는 두 개의 그림자가 타나의 뒤를 따랐다. 아, 하버트까지 합치면 총 셋.한껏 신이 난 타나가 좁은 골목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양손 가득 짐을 든 하버트가 그 앞을 가로막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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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너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벨톤가는 몰락했고, 누군가는 원치 않는 아이를 품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니, 어울리는 삶을 살아. 보네타.”그날, 타나가 제 가슴에 칼을 꽂지 않았다면 세쟈르는 평소처럼 히나타 타를 챙겨 마셨을 것이다. 물론 사건의 원흉은 로일드와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보네타를 도와줄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군주님, 부탁드립니다. 부디 한 번만... 단 한 번만 도와주세요.”“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군주님께서도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타나가 오가는 시장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요.”서늘한 협박이 실린 말, 그건 칼데론의 귓가에 정통으로 꽂혀버렸다. 매일같이 타나의 뒤꽁무니를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자신이 없는 사이 보네타가 타나를 노리기라도 한다면?죽여야 하나, 차라리 그게 정답인가. 그러기엔 이미 자신의 손으로 법을 바꿔버렸다.아무리 군주라 한들, 제가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 자체가 박살 나는 일이다. “감히, 유일한 약점을 찌르는군.”“이곳에서 벗어나게만 해주신다면, 모든 걸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정 그렇다면 아르켈로 떠나거라.”보네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예..?”“너 따위 시녀는 필요 없다. 아르켈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다.”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아르켈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래도 지금보다야 낫겠지. 포셉 그 늙다리 자식도 역겹지만, 하루도 쉬질 않고 돈주머니를 내미는 사내들은 더 최악이다.“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로일드, 보네타를 데리고 아르켈에 다녀오거라.”지금? 당장? 그건 안 된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단 말이다. 보테나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잠, 잠시만... 요..”“뭐지?”“아르켈에서 정착하려면 그동안 모은 돈과 필요한 짐들을 챙겨야 합니다. 제게... 이틀의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로일드가 대신 대답했다.“이틀 뒤, 이 시간에 맞춰 시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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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아르켈 제국, 천계의 귀족들이 궁 앞에 모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전쟁 이후, 혈향루(血香樓)가 문을 닫자, 피해를 본 주인은 물론 그곳을 애용하던 자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것.“어찌 인간과 천족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말이 되질 않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맞서야 합니다!”인간들을 향해 함부로 신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그곳에서 자행되던 성 고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증오하던 마족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도 못 참겠는데, 가장 즐거웠던 낙이 사라졌으니.하나의 목소리가 여럿을 모으고, 여럿의 움직임은 꽤나 거세게 들끓었다.즉, 달라진 세상은 인간들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보고를 받은 칼데론은 즉시 아르켈로 향했다. 안 그래도 이기적인 천족 자식들,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는 인간들뿐이라니. 검은 연기가 궁 입구를 에워싸더니, 전쟁의 승리자이자 군주인 칼데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청을 높여 외치던 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은 많았지만, 죽고 싶진 않았으니까.모두가 우러러볼 높이로 떠올라 팔짱을 낀 칼데론. 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앞으로 아르켈이란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부터 바하른 섬을 제외한 모든 대륙은 신 둠바스 제국임을 선포한다.”모두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나 패국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인가.한 중년 남성이 무언가를 결심한듯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군주님께 고개를 바칩니다.”붉은 눈동자가 남자의 모습을 응시했다.딱 봐도 고급스러운 치장품에 비단옷. 그동안 모든 걸 누리며, 부족함 없이 살던 시간에 대한 확실한 증명.“할 말이 있어 보이는군.”“예, 아르켈은 완벽한 패국이니 명칭에 대해선 감수하겠습니다. 다만, 뒤바뀐 법도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힘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차이는 너무도 분명한데, 왜 손해를 보는 건 저희여야 합니까?”칼데론의 검은 망토와 머리칼이 바람에 일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볼 게 없는데? 그냥, 장난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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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왕좌에 앉은 칼데론의 앞, 베인이 나타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모든 일이 일사천리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제 말이 그 말입니다. 도대체 베인 님은 어찌 이런 충돌 하나 없이, 긴 세월 모두를 아우르셨단 말입니까.“바하족은 여전합니까.”“여전이라면, 어떤 부분을 뜻하시는지.”“여전히 인간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평범하게 살아가냔 말입니다.”베인이 고개를 저었다. 바하른 섬이든, 아르켈이든, 둠바스든 모든 이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건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분쟁은 어디서나 존재하지요,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칼데론 님, 여쭙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말씀하시죠.”잠시의 정적 후, “갑자기 왜 평등을 외치시는 겁니까? 긴 세월 품어온 복수가 비로소 끝났기 때문입니까?”“흠. 분노를 내려놓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을 뿐입니다.”“그런가요? 그 타나라는 인간을 만난 뒤 달라지신 게 아니시고요?”이 노친네는 도대체 모르는 게 없는 양반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가끔은 소름이 끼칠 정도라니까. 타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제 마음을 뒤흔들어놓더니 여전히 온 신경을 긁어대는 존재. 혹시 베인은, 타나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걸까.“베인 님은,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부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이토록 오래 살고도 모르는 게 천지인 세상이니.”지금 나보고 오래 살아도 멍청하다고 꼽주는 거야? 맞아. 나 멍청해. 그래서 타나도 떠나버렸다고!“그 여자는, 이곳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닌 거지요?”이제 좀 말이 통하네. 이 노친네는 역시나 눈치채고 있었구나.“타나가 살던 세상은, 오직 인간들만 존재하는 세상이라더군요. 수많은 제국과 언어는 물론, 인간 수 백을 싣고 하늘 위를 나는 거대한 물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신기하군요, 헌데... 많이도 외롭고 슬프겠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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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그의 머릿속에 보네타의 마지막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 여자의 쇄골에는 칼데론의 표식이 새겨져 있대요. 들키지 않으시려면, 그 표식부터 도려내야 할 것입니다.”버려졌다는 소문이 돈 지는 이미 한 달도 넘게 지났고, 인간 마을에 정착까지 한 여자를 다시 찾을까? 굳이?그것도 지금, 누구보다 바쁜 칼데론이?하지만 혹시 모를 일, 재수 없게 걸리기라도 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마족과 천족도 인간을 해하지 못하는 시국인데, 인간이 인간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포셉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점을 나섰다. “당장 가자고!”***시끌벅적하던 마을에 말소리가 조금씩 사그라들 때 즈음, 마차에서 내린 포셉과 부하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여기서부턴 걸어서 가자고. 눈치라도 채면 골치 아파지니까.”“예!”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사내들이 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정찰을 도는 기사단이 묵던 집이라 그런지, 유난히 마을에서 동떨어진 집. 부하 중 하나가 걱정스러움을 내비쳤다.“근데, 이런 집까지 내어준 걸 보면 아직도 둠바스 성이랑 엮여 있다는 뜻 아닐까요?”포셉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뜩였다.“괜히 말 나오지 않도록 배려한 거겠지. 한참 중요한 시국이잖아?”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주변에 보초를 서는 이 하나 없는 모습은 온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으니까.미리 사전 답사를 끝낸 이가 반쯤 열린 창문을 향해 턱짓했다. “저쪽에서 향을 피우면 되겠습니다.”밧줄이 연결된 작은 주전자 안, 손가락만 한 향 수십 개에 불이 붙었다.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를 내뿜는 주전자의 모습이 너무도 불길했다. 조심스레 창문 안으로 밀어 넣고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창문을 닫는 사내의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다른 이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입구를 막듯 서 있었고, 포셉은 최대한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잠이 들었다면 일이 더 쉬워질 것이다.“문을 두드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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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히죽거리며 마차로 향하려던 그때, 때마침 마당으로 들어선 하버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난히 날이 서늘해 두꺼운 이불을 챙겨왔는데, 웬 처음 보는 남정네들이 타나를 납치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놀라움과 두려움, 분노가 뒤엉킨 눈빛이 살기를 띄었다.“당.. 당신을 뭐야!”“꺼져. 뒤지고 싶지 않으면.”“타나! 정신 차려 타나...!”애타는 목소리에도 타나의 몸에선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위태롭게 걸쳐진 옷에 그의 분노가 폭발했다. 맨손으로 달려들어 주먹질을 해대는 하버트의 모습에, 부하들은 기가 찬 듯 몰려들어 주먹질과 발길질을 시작했다.“타나를 놔줘! 놔달란 말이야!”“이 자식 봐라, 뒤지고 싶어서 안날 났지? 어?”“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대체 누구길래 이러는 거냐고...!” 아무리 악바리를 써도, 무기를 가진 이들 여럿을 상대하기엔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었다. 웅크린 몸이 바닥에 짓눌려 밟히면서도, 그는 끝까지 타나의 이름을 불렀다. “타나...! 윽, 타... 타나...!”포셉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뭐야? 그새 다른 인간이랑 정분이라도 난 거야?”“타나...! 으으윽...”입술이 터지고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얻어터진 하버트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참나, 어디서 같잖은 영웅 놀이야.”포셉과 부하들이 떠나고, 타나의 집 마당엔 걸레짝처럼 버려진 하버트만이 미약한 숨을 내뱉었다. ***성에서 한참이나 먼 여관에 몸을 숨긴 보네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지금쯤 포셉은 움직였을까? 타나는 만났을까? 설마, 칼데론에게 들켜 벌써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 포셉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순간, 아르켈로 떠날 생각은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하찮은 인간인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고 훔쳐온 돈이면 둠바스에서도 충분히 몸을 숨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이거 하나만큼은 바라고 또 바랐다.납치에 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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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대자, 힘겹게 눈을 뜬 하버트가 중얼거렸다.“타... 타나가...”“아가씨는 어디 있느냐?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이냐!”“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타나를.. 제발 타나를 구해주십시오...”젠장할,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는데. “움직일 수 있겠느냐.”“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타나를....”생명이 위험한 상태는 아닌 것 같으니, 일단은 보고가 우선이었다. 세상에서 타나를 가장 귀히 여기는 단 한 사람, 칼데론.정신없이 대전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혈각들의 보고들이었다. 하지만 기다릴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감히 군주의 곁으로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타나가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혈각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칼데론과 로일드, 텅 비어버린 왕좌를 보았기 때문. 그곳에 남은 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비단 옷을 걸친 자들뿐이었다.***타나의 집을 살펴본 칼데론과 로일드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바닥에 마구잡이로 얼룩진 커다란 발자국은 물론 창문 아래, 독초로 만든 향을 피운 흔적까지.무엇보다도 타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미쳐버릴 것 같은 요소였다.“대체 누구 짓이란 말이냐. 그동안 이상한 낌새는 없었는데.”“예, 그게 제일 이상합니다. 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셨고, 모두가 타나를 챙겼습니다.”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제 하루뿐이다. 평소와 다르게 에일코 시장을 다녀왔다는 것.“또 보네타인가.”“예...? 보네타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내일이면 포셉 모르게 아르켈로 떠나야 하는 처지라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정신없을 겁니다.”칼데론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타나를 미워하는 유일한 존재. 분명 거기서부터 시작된 일일 것이다.”그때, 집 안으로 거의 기어 들어온 하버트가 목격한 상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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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비록 고운 살결이 주는 상품성은 떨어졌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한 다른 곳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 생각으로 원피스를 쭈욱 내려 벗겨버렸다. “하, 이런...”짧은 탄식과 함께 탱글 거리는 젖가슴으로 향하는 입. 유륜까지 전부 삼키듯 크게 벌어진 모습이 그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손 역시 가만두질 못했다. 반대쪽 가슴을 반죽처럼 주무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눈 좀 떠, 얼마나 야한 소리를 뱉을지 궁금하단 말이야.”실로 황홀한 순간이었다. 처녀였던 보네타를 탐하던 순간보다 더더욱 흥분이 되는 이유는 대체 뭐 때문일까. 군주가 갈망하던 여자라서? 말랑한 젖가슴이 미친 듯이 보드라워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끈적한 침을 줄줄 흘리며 타나의 젖꼭지를 사탕처럼 물고 핥았다. 그러다 한 손이 허리선을 지나, 새하얀 팬티 끈을 풀어내려던 찰나.!말도 안 되는 악력이 머리통을 휘어잡더니,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몸은 구석으로 내팽개쳐졌고, 비명도 지르기 전 마주한 건 거구의 두 남자. 칼데론과 로일드였다. “로일드.”고작 이름 하나에 로일드가 움직였다.포셉의 몸을 포박하고는, 개처럼 질질 끌어 저택 밖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이 붙잡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두의 눈빛이 똑같았다. 원망과 두려움 반. “군주님의 분노만큼 너희들의 죽음은 고통스러울 것이다.”한편, 타나의 모습을 확인한 칼데론의 몸이 위태롭게 비틀거렸다. 망토부터 벗어 벌거벗은 몸을 감싸려던 중, 쇄골 부근에 번져 있는 화상 자국을 보고야 말아버린 것. “타, 타나...”이래서 아무런 감정이 전해지지 않은 거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죽이고 싶은 건 보네타와 포셉이 아니었다.아무것도 아닌 일로 타나를 인간 마을로 내쫓은 걸로도 모자라, 제 옆에 있을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거두지 않은 자신이었다. 발목을 옥죈 쇠고랑을 박살 내고, 검은 망토 천으로 타나의 몸을 둘러 감쌌다. 그 순간, 타나의 얼굴이 고통스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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