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지운 결재 서류 이름이 ‘신부’라고? 최무겸, 넌 애를 지운 게 아니라 결혼식부터 준비했니?”이연희는 모니터에 뜬 BRIDE_01을 노려봤다. 전략기획실장 최무겸의 승인 표시 옆에 찍힌 그 코드는 예전에 홍보실 백업에서 발견한 관리 목록과 같았다. 누가 임신하고 누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됐는지를 ‘대외 위험’으로 분류하던 서류였다. 무겸은 잠깐 반대했다고 변명했지만, 끝에서 도장을 찍은 사람도 그였다.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포털의 속보 알림이었다.‘결혼식 파행 겪은 세강재단 전략기획실장 최무겸, 신부 한세아 임신 발표.’연희는 제목을 두 번 읽었다. 기사는 세아가 임신 20주째이며, 두 사람이 태어날 아이를 위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예식장에서 신부가 ‘그깟 애’라며 연희의 아이를 욕한 영상은 여전히 퍼지고 있었는데, 재단은 새 생명의 축복이라는 보도자료를 먼저 돌린 모양이었다.“와, 축하할 아이는 따로 있었네.”연희의 수술은 약 13주 전이었다. 임신 주수만으로 정확한 수정 날짜를 못 박을 수는 없었지만, 세아의 임신은 연희가 아직 무겸의 아이를 지키려고 애원하던 시기와 겹쳤다. 연희는 기사에 실린 두 사람의 여행 사진을 확대했다. 무겸이 연희에게 ‘일이 바빠 밤샘 회의한다’고 했던 날, 같은 장소에서 세아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었다. 창밖의 계절 장식까지 일치했다.연희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비명이 되기 직전의 웃음이었다. 세아가 첫 초음파 사진을 빼앗아 웨딩드레스 주머니에 넣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남의 아이 사진은 쓰레기라면서, 자기 아이의 사진은 축복 기사에 실었다. 두 사진을 고른 손이 같은 손이었다.기사에는 ‘세강가의 새로운 축복’이라는 표현까지 붙었다. 연희는 그 문장을 수술 당시 무겸이 했던 말 옆에 적었다. ‘우리 집안 아이를 아무렇게나 낳을 순 없다.’ 그때는 자기 아이가 축복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인지 몰랐다. 연희가 화난 건 세아의 임신 때문이 아니었다. 한 아이를
Last Updated : 2026-07-2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