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프터에는 ‘가족’이 떠 있었고,내 손의 종이에는 ‘보호자’가 적혀 있었다.마이크의 초록 불이 켜졌다.“안녕하세요. 신부 한세아의 오랜 친구 이연희입니다.”첫 문장은 검수본 그대로였다.세아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무겸은 예복 소매를 바로잡았고,최혜경은 앞줄에 앉아 로비의 화환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저와 세아는 열다섯 살부터 함께 자랐습니다.세아는 제 집에서 밥을 먹었고,저는 세아가 돌아갈 곳이 없던 밤마다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스크린에 교복을 입은 우리 사진이 나타났다.친구보다 가까운 가족.박수가 번졌다.공식 촬영팀은 세아의 미소를 확대했다. 재단 기록용 카메라의 붉은 불도 켜져 있었다.내가 거절 의사를 남긴 영상이, 내가 하지 않은 축복을 담기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화면 아래에는 이미 ‘오랜 우정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자막까지 준비돼 있었다.내 목소리가 나오기 전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프롬프터에는 세아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지켰다고 적혀 있었다.내가 읽은 것은 다른 한 줄이었다.“10월 17일. 그날 병원 보호자는 신부였습니다.”박수가 멎었다.세아의 손이 부케를 눌렀다. 무겸은 내 얼굴보다 음향석을 먼저 봤다.담당자가 조정판으로 손을 옮겼지만, 혜경이 손가락을 들어 막았다.'지금 끊으면 방금 말만 남는다.'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문단을 읽었다.“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했고, 상대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며 자랐습니다.”객석 앞줄의 재단 이사들이 다시 자세를 풀었다.혜경은 내가 준비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믿었다.“세아는 제가 잊은 순간에도 제 말을 기억해 준 친구입니다.”여기까지도 세아가 만든 원고였다.나는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제가 잊은 줄 알았던 물건까지 가지고 있을 만큼요.”세아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무겸이 세아를 돌아봤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시선이 오갔다.일기장과 메신저 백업을 누가 먼저 열었는지,어느 쪽이 재단에 넘
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