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Chapter 21 - Chapter 30

56 Chapters

제21화. 훔친 축사

한세아는 내 일기장을 훔친 뒤,내가 어느 문장 앞에서 무너지는지 색인까지 만들어 두었다.박도율이 축사 파일의 정보 창을 열었다.작성자 한세아.최종 수정자 세강의료재단 전략홍보실.그 아래 ‘연결 문서’ 두 개가 붙어 있었다.YH_CHAT_BACKUP.NOTE_SCAN.“웨딩업체가 축사와 참고자료를 한 묶음으로 공유했습니다.”“열어도 돼요?”“이연희 씨에게 부여된 열람 권한 안에서만 확인하겠습니다.수정하거나 내려받지는 마십시오.”첫 번째 파일을 열자 내 메신저 대화가 연도별로 정리돼 있었다.세아가 집을 나왔던 밤.첫 직장에서 잘렸다고 울던 날.아버지 수술비가 부족하다며 돈을 빌렸던 날.내가 보낸 문장 일부에는 표시가 돼 있었다.위로 문장. 가족 표현.사과문 활용. 축사 후반 후보.“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너무 마음 아파.”청첩장을 보낸 뒤 세아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원래는 삼 년 전, 횡령 누명을 썼다며 울던 세아를 달래려고 내가 보낸 문장이었다.그 아래에도 익숙한 말이 이어졌다.“지금은 믿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문장 옆 메모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 연희에게 사과할 때 사용. ]세아는 내 말투를 닮은 게 아니었다.내가 약해지는 문장을 찾아 골랐다.파일 생성일은 내 수술 사흘 뒤였다.업로드 계정은 한세아.“이 날짜에 세아가 제 서울 집에 갔어요. 짐을 가져다준다고.”“메신저 백업 원본이 있던 기기는요?”“노트북이요. 잠긴 서랍 안에 있었어요.”서랍 열쇠는 서울 집 현관 열쇠와 한 고리에 달려 있었다.수술 뒤 세아는 무겸에게 열쇠를 받아 내 짐을 정리했다고 했다.그때는 내가 부탁하지 않은 일을 대신 해준 줄 알았다.지금 보니 세아는 옷만 챙긴 게 아니었다.내가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어느 문장으로 다시 나를 움직일 수 있는지까지 들고 나왔다.도율은 날짜와 계정, 공유 주소를 차례로 기록했다.나는 두 번째 파일을 열었다.빛이 비스듬히 들어간 종이. 접힌 모서리. 잉크가 번진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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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웨딩드레스의 주머니

내가 바꾼 문장은 가방 안에 숨겨져 있었고,한세아의 웨딩드레스 안에는 내 아이가 숨겨져 있었다.결혼식 리허설 날.신부대기실 문이 닫히자 세아는 인사보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원고 가져왔지?”나는 웨딩업체에서 받은 출력본을 건넸다.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검수용 원고였다.실제로 읽을 종이는 가방 안쪽 서류봉투에 따로 넣어 두었다.세아는 첫 장부터 끝까지 확인했다.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뒤에야 어깨에서 힘을 뺐다.“그대로네.”“뭘 확인한 거야? 문장?”“네가 약속 지키는지.”“내가 약속한 적 있었어?”“그대로 읽겠다고 했잖아.”“원문대로 읽겠다고 했지.”세아가 나를 바라봤다.“같은 말이잖아.”“너한테는 그랬으면 좋겠지.”세아는 원고를 다시 넘겼다.숨겨진 수정 흔적을 찾는 사람처럼 종이를 빛에 비춰 보기까지 했다.“리허설 때도 이걸로 읽어.”“왜?”“마이크 높이랑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내 목소리가 몇 초 동안 나오는지도 정해 놨어?”“결혼식에는 순서가 있어.”“내 수술에도 순서가 있었지.”세아의 손이 멈췄다.나는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문서 화면을 열었다.보호자 설명·동의 확인서.설명 시작 오후 2시 34분.서명 완료 오후 2시 49분.보호자 한세아.“13분 동안 무슨 설명을 들었어?”“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해?”“네가 내 축사를 검사할 시간은 있고, 내 수술 설명을 기억할 시간은 없어?”“여긴 병원이 아니야.”“병원에서는 내가 없었고, 여기서는 내 이름이 너무 많네.”가족석.사전 인터뷰.친구 대표 축사.세아는 자기 결혼식의 모든 순서에 내 이름을 넣어 놓았다.정작 내 몸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순서에는 나를 빼놓고.“정확히 뭘 들었어?”세아는 원고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아이한테 문제가 있다고 했어.”“병명.”“의학용어였어.”“태어나면 어떻게 된다고 했는데?”“오래 못 살 수도 있다고.”“가능성은 몇 퍼센트였어?”“그런 숫자까지 어떻게 기억해.”“수술 방법은?”대답이 없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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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완료라는 단어

최무겸은 내 아이의 초음파 사진보다,그 사진이 내 손에 들어온 사실부터 두려워했다.“이걸 어디서 났어?”신부대기실로 들어온 무겸은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닫았다.나는 바닥에서 주운 사진을 투명 봉투에 넣었다.발견 장소와 시간을 적고, 앞뒤를 촬영해 박도율에게 전송했다.“네 신부 주머니에서 나왔어.”무겸의 시선이 세아에게 향했다.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당신이 줬잖아.”“보관하라고 했지.”“연희 건은 끝났다고 했잖아.”무겸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네 해석을 사실처럼 말하지 마.”나는 두 사람 사이에 봉투를 들어 보였다.“그럼 네가 사실을 말해.”사진 뒷면에는 네 글자가 남아 있었다.[ 처리 완료. ]“네 글씨 맞아?”“비슷하다고 내 필체가 되는 건 아니야.”“끝을 눌러 쓴 ‘처’, 짧게 꺾은 ‘리’. 네 결재 서류를 오 년 동안 검수했어.”“그 사진부터 줘. 원본인지 확인하겠다.”“내 물건을 왜 네가 확인해?”“진료자료니까.”“방금은 세아한테 보관시킨 개인 물품이라며.”무겸이 말을 고르는 동안 나는 봉투를 뒤집었다.“무엇을 처리했다는 뜻이야?”“수술 뒤 환자 소지품 인계가 끝났다는 표시일 수 있어.”“일 수 있다?”“당시 문서가 많았어. 정확한 용도는 확인해야 해.”“좋아. 확인하자.”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인계서. 수령 시각. 수령인 서명.”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셋 중 하나라도 보여 줘.”“병원 내부 자료야.”“내 초음파 사진을 누가 가져갔는지 적힌 서류가 왜 네 내부 자료야?”“환자정보가 포함돼 있으니까.”“환자는 나였어?”다시 침묵했다.병원 전산의 환자는 한세아였다.보호자도 한세아.내 약혼반지를 받은 사람도 한세아.초음파 사진을 보관한 사람도 한세아.내 몸만 빼고 모든 자리에 신부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환자 소지품 인계가 아니네.”나는 세아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봤다.“내 물건을 신부한테 넘기는 절차였지.”“그때 너는 직접 물건을 관리할 상태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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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결혼식 전야

“내일 그 사진은 가방에서 꺼내지 마십시오.”박도율은 초음파 사진이 든 봉투를 내 쪽으로 밀었다.예식장 맞은편 카페였다.유리창 건너편에서는 세강의료재단 로고가 붙은 안내판이 세워지고 있었다.“최무겸 글씨가 맞아요.”“필체가 맞는 것과 ‘처리 완료’의 대상을 증명하는 건 다른 일입니다.”“본인은 설명도 못 했어요.”“그래서 더 묻는 겁니다. 대신 결론부터 말하지 말고.”도율은 내 축사 출력본을 펼쳤다.웨딩업체에 제출된 검수본과 다른 문장은 한 줄뿐이었다.그날 병원 보호자는 신부였습니다.“이 문장까지는 병원 서류로 확인됩니다.”“그다음에는 무겸에게 물을 거예요.”나는 축사 뒷면에 질문을 적었다.사진 뒤의 글씨가 당신 것이 맞습니까.사진을 한세아에게 넘긴 날짜는 언제입니까.‘처리 완료’와 함께 끝난 절차는 무엇입니까.도율은 세 문장을 읽고 종이를 접었다.“전부 묻겠다고 미리 정하지 마십시오.”“현장에서 겁먹으면 멈추라고요?”“아닙니다. 멈출 권리까지 오늘 넘기지 말라는 뜻입니다.”“마이크를 끄면요?”“직접 내려오십시오. 끌려 나가는 얼굴보다 누가 마이크를 껐는지가 먼저 남게.”나는 축사 원고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초음파 사진은 꺼내지 않는다.문서에 적힌 사실만 말한다.내가 멈출 때는 내 발로 내려온다.그 세 가지면 충분했다.그때 웨딩업체에서 최종 진행표가 도착했다.친구 대표 축사.신랑·신부 포옹 촬영.신부 측 가족 사진.세강의료재단 기록용 인터뷰.내가 거절했던 항목에도 확정 표시가 붙어 있었다.나는 업체와 세아가 함께 있는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겼다.촬영물의 재단 홍보 활용, 인터뷰, 가족 사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친구 대표 축사에만 참여합니다.세아의 개인 메시지가 바로 왔다.―결혼식 전날까지 꼭 이래야 해?―내 동의를 네 일정표에서 빼는 데 날짜는 상관없어.―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말 하지 마.―이상한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적어.읽음 표시만 남았다.세아는 내 입을 막아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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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하얀 꽃의 행렬

“최혜경 이사장님 도착하셨습니다.”직원의 외침이 로비에 퍼지는 동안, 나는 두 번째 안전핀을 눌렀다.접혀 있던 흰 리본이 화환 아래로 떨어졌다.환자명 한세아.옆에는 내 손목에 채워졌던 병원 팔찌의 확대 사진이 달려 있었다.생년월일과 연락처는 가리고, 환자번호는 마지막 네 자리만 남겼다.****-4439.수술일 10월 17일.내가 공개한 건 전체 번호가 아니었다.그 번호를 아는 사람만 완성할 수 있는 빈칸이었다.로비 벽에는 세강의료재단 이사와 협력병원장들이 보낸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축하 문구보다 직함이 컸고, 꽃마다 재단 로고가 붙어 있었다.내 작은 화환은 그 행렬 끝에 섰다.아버지가 화환 다리를 눌러 흔들림을 확인했다.“됐다. 이제 손 떼.”그는 내 선택을 칭찬하지도 말리지도 않았다.빈 배송 카트를 밀고 직원 통로로 사라졌다.재단 홍보팀 직원이 곧장 달려왔다.“등록되지 않은 문구입니다. 화환은 빼겠습니다.”나는 휴대전화 녹화를 켰다. 로비 시계와 화환이 한 화면에 들어왔다.오전 아홉 시 사십삼 분.“철거 지시자와 사유를 말씀해 주세요.”“환자정보가 노출돼 있습니다.”“제 손목에 채워졌던 팔찌입니다. 가린 항목도 보이시죠?”직원의 시선이 환자명에서 멈췄다.“그런데 다른 분 이름인데요.”“그래서 치울 겁니까, 확인할 겁니까?”직원이 화환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주변 하객들이 걸음을 늦췄다.누군가 휴대전화를 들자 홍보팀 직원 둘이 촬영선을 가로막았다.가릴수록 시선이 꽃으로 몰렸다.무겸이 로비 안쪽에서 나왔다.그는 리본보다 카메라 위치를 먼저 확인했다.“공식 촬영 방향 바꿔. 이쪽 벽은 프레임에서 빼.”“화환은요?”“지금 손대면 철거 장면부터 찍혀.”세아도 신부대기실 복도에서 나타났다. 아직 베일을 쓰지 않은 채였다.리본을 읽은 순간 걸음이 멎었다.“왜 내 이름을 달았어?”“병원이 먼저 내 손목에 달았어.”“치워.”세아는 ‘내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그녀가 리본으로 손을 뻗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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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축복의 문장

프롬프터에는 ‘가족’이 떠 있었고,내 손의 종이에는 ‘보호자’가 적혀 있었다.마이크의 초록 불이 켜졌다.“안녕하세요. 신부 한세아의 오랜 친구 이연희입니다.”첫 문장은 검수본 그대로였다.세아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무겸은 예복 소매를 바로잡았고,최혜경은 앞줄에 앉아 로비의 화환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저와 세아는 열다섯 살부터 함께 자랐습니다.세아는 제 집에서 밥을 먹었고,저는 세아가 돌아갈 곳이 없던 밤마다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스크린에 교복을 입은 우리 사진이 나타났다.친구보다 가까운 가족.박수가 번졌다.공식 촬영팀은 세아의 미소를 확대했다. 재단 기록용 카메라의 붉은 불도 켜져 있었다.내가 거절 의사를 남긴 영상이, 내가 하지 않은 축복을 담기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화면 아래에는 이미 ‘오랜 우정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자막까지 준비돼 있었다.내 목소리가 나오기 전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프롬프터에는 세아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지켰다고 적혀 있었다.내가 읽은 것은 다른 한 줄이었다.“10월 17일. 그날 병원 보호자는 신부였습니다.”박수가 멎었다.세아의 손이 부케를 눌렀다. 무겸은 내 얼굴보다 음향석을 먼저 봤다.담당자가 조정판으로 손을 옮겼지만, 혜경이 손가락을 들어 막았다.'지금 끊으면 방금 말만 남는다.'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문단을 읽었다.“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존중했고, 상대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며 자랐습니다.”객석 앞줄의 재단 이사들이 다시 자세를 풀었다.혜경은 내가 준비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믿었다.“세아는 제가 잊은 순간에도 제 말을 기억해 준 친구입니다.”여기까지도 세아가 만든 원고였다.나는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제가 잊은 줄 알았던 물건까지 가지고 있을 만큼요.”세아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무겸이 세아를 돌아봤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시선이 오갔다.일기장과 메신저 백업을 누가 먼저 열었는지,어느 쪽이 재단에 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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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신랑의 침묵

“그 문장 쓴 날, 네 남편 아이를 품고 있던 건 나였어.”최무겸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그는 단상으로 올라와 내 손에서 마이크를 가져갔다.“예식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사과는 하객들에게 했다.아이에게도, 내게도 아니었다.무겸은 예복 깃에 달린 세강의료재단 배지를 바로 세웠다.조금 전까지 신부 옆에 있던 신랑은 사라지고,사고를 수습하는 전략본부장이 서 있었다.“이연희 씨는 과거 재단 홍보팀에서 근무했습니다.최근 큰 충격을 겪었고 아직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방금 발언은 개인적인 기억에 따른 것으로 확인된 내용이 아닙니다.”하객들의 시선이 내 배에서 얼굴로 옮겨 왔다.손이 떨리는지.숨이 가쁜지.눈빛이 제정신인지.무겸은 내 말을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다.나를 믿기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그럼 여기서 확인해요.”내 목소리가 그의 마이크에 함께 실렸다.“제가 최무겸 씨 아이를 임신한 적 없습니까?”무겸의 손가락이 마이크 몸통을 눌렀다.“개인의 의료정보를 공개된 자리에서 논할 이유는 없어.”“없었다고 말하면 끝나요.”객석이 조용해졌다.세아는 부케를 끌어안은 채 무겸만 봤다.최혜경의 흰 장갑이 의자 팔걸이를 한 번 눌렀다.무겸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내 가방을 가리켰다.“이연희 씨는 퇴사한 뒤에도 재단 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했습니다.오늘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료를 행사장에 가져왔습니다.”“무슨 자료요?”“지금 중요한 건 네 행동이야.”“내 손목에 채워졌던 병원 팔찌?”“내 아이 초음파 사진?”이번에도 가짜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둘 다 재단 것입니까?”“연희야.”“아니면 세아 것이에요?”세아의 얼굴에서 색이 빠졌다.무겸은 어느 쪽도 고르지 못했다.병원 팔찌가 내 것이라고 인정하면 환자명이 틀렸다는 사실이 남는다.초음파 사진이 내 것이라고 인정하면 왜 신부가 갖고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지금 네 기억은 검증되지 않았어.”그 말이 예식장 전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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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네 발로 올라간 거잖아

연희의 엄지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네가 선택한 일이야.’무겸의 목소리가 그랜드홀 천장 스피커에서 쏟아졌다.‘그날 설명 들었잖아. 위험 가능성도 들었고.’곧이어 연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기억이 안 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 끝나 있었어.’‘기억이 안 난다고 절차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동의서에 네 이름이 있고, 네가 직접 올라갔어.’샹들리에 아래의 얼굴들이 무겸에게 돌아갔다.무겸은 단상 계단을 건너뛰며 내려왔다.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넸지만 받지 않았다.휴대전화를 쥔 연희의 손목부터 잡으려 했다.“꺼.”연희가 뒤로 물러났다.“아직 당신이 말한 부분이에요.”스피커에서는 통화가 계속됐다.‘직접 올라갔다고?’‘네 발로 수술실 올라간 거잖아.이제 와서 누가 끌고 간 것처럼 말하지 마.’아버지의 손에서 화환차 장갑이 떨어졌다.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어머니가 손등을 눌렀다.“끝까지 듣자.”녹음 속 연희가 물었다.‘아이한테 정말 문제가 있었어?’잡음이 잠깐 끼었다.‘그건 이미 정리된 사안이야.’‘정리한 사람이 누구냐고.’‘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네가 제일 불리해.진료 기록, 상담 기록, 당시 상태까지 다 확인될 거야.네 손실을 줄이려면 여기서 끝내.’하객석 뒤편에서 휴대전화가 올라왔다.곧 수십 개의 화면이 무겸을 향했다.혜경이 행사 진행요원을 불렀다.“외부 음원입니다. 즉시 종료하세요.”그 말까지 마이크에 잡혔다.연희는 휴대전화 화면을 객석 쪽으로 돌렸다.[ 최무겸_수술후_통화_보존사본.m4a ]재생 시간은 1분 17초를 지나고 있었다.도율은 단상 아래에서 촬영 화면을 확인했다.연희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 두개를 들어 보였다.휴대전화 두대가 동시에 녹화 중이었다.무겸이 연희 앞을 가로막았다.“편집된 통화야. 네가 선택했다고 인정한 앞의 34초는 잘랐잖아.”연희가 재생을 멈췄다.“재생하기 전부터 잘렸다고 했죠.”무겸의 입이 닫혔다.“34초라는 건 어디서 알았어요?”객석에서 짧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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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엄마의 목소리

세아의 엄지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아이 상태도 좋지 않다고 들었고요.더 늦기 전에 수술하는 게 연희한테 낫다고 생각해요.’정애의 목소리였다.말을 재촉할 때 문장 끝이 조금 올라가는 버릇까지 같았다.‘나중에 연희가 원망해도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은 우리가 결정해야죠.’세아가 재생을 멈췄다.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들었지? 네 가족도 알고 있었어.”연희는 그를 보지 않았다.“언제 받은 전화야?”“수술 전날.”“몇 시.”“밤 9시쯤.”“어디서 받았어?”“병원 3층 보호자 상담실.”“엄마가 병원에 있었어?”세아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아니. 나한테 전화했어.”연희가 손을 내밀었다.“파일 정보 보여줘.”세아는 휴대전화를 몸 쪽으로 당겼다.“지금 그게 중요해?”“날짜를 물으면 중요하지 않다고 했고,기록을 달라면 사람 마음부터 말했지.”“연희야.”“보여줘.”혜경이 끼어들었다.“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음성입니다. 공개부터 중단하는 게 맞아요.”“방금 전에는 우리 엄마가 동의한 증거처럼 틀었잖아요.”“검증되지 않은 자료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에요.”“판단은 당신들이 먼저 했고, 검증은 내가 하려니까 막네요.”비상 조명이 들어왔다.무대 한쪽 스피커에서 짧은 잡음이 터졌다가 사라졌다.객석에 켜져 있던 휴대전화들이 하나씩 정애의 빈자리로 향했다.재문만 통로에 서 있었다.그가 음향 조정실 쪽을 가리켰다.“네 엄마, 저기 갔다.”정애는 진행요원에게 마이크를 요구하고 있었다.직원은 마이크를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행사 중단 지시가 내려왔습니다.”“누가 내렸는데요?”직원의 시선이 혜경에게 향했다.정애는 그 방향을 한 번 보고는 사회자석으로 걸어갔다.연희가 세아에게 물었다.“엄마가 왜 너한테 전화했어?”“병원에서 보호자 연락을 받으라고 했으니까.”“누가 네 번호를 넣었는데?”세아의 시선이 무겸에게 갔다가 돌아왔다.무겸이 말을 잘랐다.“당시 네 상태로는 직접 연락받기 어려웠어.가장 가까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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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첫 번째 거짓말의 끝

“오늘 받은 건 맞아.”세아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누가 보냈어?”“예식 준비 공유폴더에 올라왔어. 발신자 정보는 없었고.”“보낸 사람도 모르는 파일을 내 엄마 목소리라고 틀었네.”“네가 먼저 녹음을 틀었잖아.”“그래서 엄마를 내 앞에 세웠어?”세아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무겸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기기부터 보존해야 해. 계속 만지면 확인할 수 있는 기록까지 사라져.”연희가 그를 바라봤다.“당신은 뭔가 없어질 때마다 보존부터 말하네.”도율이 세아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전원을 끄지 마십시오. 파일 상세 정보와 폴더 활동 내역부터 촬영하겠습니다.”세아는 혜경을 봤다.혜경은 진행요원에게 지시했다.“하객들을 안내하세요. 촬영도 중단시키고요.”객석 곳곳에서 항의가 터졌다. 직원들이 출구를 열었지만사람들은 나가기보다 휴대전화를 더 높이 들었다.정애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내 목소리를 가져다 썼으면 내 말도 끝까지 들으라고 해요.”“김정애 씨.”혜경이 정애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지금은 따님의 상태부터 살피는 게 좋겠습니다.”“우리 딸 상태는 당신들이 7년 동안 마음대로 적었잖아요.”정애가 마이크를 사회자석 위에 내려놓았다.“오늘은 내가 내 입으로 말할게요.”스피커가 다시 꺼졌다.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떠 있던 대형 화면도 검게 변했다.사회자는 대본을 덮었고, 축가팀은 악보를 챙겼다.주례석의 명패와 꽃장식이 치워졌다.예식은 끝났다는 선언도 없이 중단됐다.하객들이 빠져나간 홀에는 구겨진 식순지와 깨진 잔,병원 팔찌를 매단 화환만 남았다.정애가 생수병을 연희 손에 쥐여줬다.“아까 아빠한테 물었지.”“미안해.”“다음에는 살아 있는 사람한테 먼저 물어. 대답은 우리가 할 테니까.”재문은 바닥에 떨어진 화환차 장갑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무겸의 통화와 정애의 음성 파일 화면은 두대의 휴대전화에 남았다.하지만 세아는 자신의 기기를 넘기지 않았다.“사본만 줄게.”“사본을 만드는 동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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