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Chapter 21 - Chapter 30

159 Chapters

21화. 처리 완료된 신부

“처리 완료? 최무겸, 네 애가 택배였어?”이연희가 초음파 사진을 들어 올리자 최무겸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사진 뒷면에 적힌 네 글자는 그가 청혼 편지에 이름을 쓰던 필체와 똑같았다. 끝 획을 비스듬히 올리는 버릇까지. 한때는 그 글씨로 ‘우리 셋 오래오래’라고 적어 냉장고에 붙였던 남자가, 아이의 사진에는 물건을 폐기한 듯한 말을 남겼다. 연희는 사진 속 동그란 머리 윤곽을 엄지로 가리지 않으려고 가장자리만 쥐었다. 첫 초음파를 보던 날 무겸은 사진이 흐리다며 투덜거리다가도 지갑 제일 앞칸에 넣었다.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면서 혼자 있을 때마다 꺼내 입을 맞추던 사진이었다.“돌려줘. 그건 내부적으로 정리한 자료야.”“내 배 속에 있던 애가 언제부터 네 회사 자료였는데?”무겸은 문밖에 대기한 직원부터 살폈다. 연희는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았다. 자신이 울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누가 듣고 있는지, 어느 카메라에 잡히는지만 계산하고 있었다.세아는 드레스 자락을 걷어 의자에 앉더니 맨발을 흔들었다. 약혼반지를 낀 손으로 머리핀을 뽑으며 킥킥거렸다.“아유, 사진 한 장 가지고 또 장례식 분위기 만드네. 언니, 아니지. 연희야, 네가 그렇게 아끼는 사진이면 액자에 걸어. 우리 신혼집엔 안 어울려서 내가 버리려던 참이야.”“네 드레스 주머니에 내 애 사진이 왜 있었냐는 질문부터 답해.”“오빠가 줬겠지. 나한테 숨길 게 없으니까. 넌 아직도 특별한 사이인 줄 알아?”연희는 세아를 향해 한 발 내딛었다가 멈췄다. 드레스 끄트머리에 연희의 그림자가 걸쳤다. 지금 저 천을 잡아당기면 세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신부가 폭행당했다고 울 것이다. 대신 연희는 사진 앞뒤를 한 화면에 담아 촬영하고, 구겨진 모서리와 무겸의 글씨가 또렷한지 확인했다.“최무겸. 직접 쓴 거 맞아?”“그때는 필요한 절차였어. 감정적으로 표현할 일이 아니었고.”“필요? 내가 살려 달라고 빌던 애를 네 엄마랑 내 친구가 지워 놓고, 필요했다고?”무겸은 넥타이 매듭을 바로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Read more

22화. 꽃길 위의 환자 팔찌

“예식 당일 전광판 송출, 전부 중단해. 지금 당장.”최무겸의 명령이 신부대기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이연희는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초음파 사진 뒷면의 ‘처리 완료’를 두고 행정 절차였다고 떠들던 남자였다. 정작 자기 결혼식 화면이 문제 될 것 같자 행사 진행표부터 찢어 버릴 기세였다.“그래. 화면은 꺼. 입까지 다 꺼질지는 두고 보자.”연희는 무겸이 낙서하듯 지운 송출 항목을 사진으로 남긴 뒤 호텔을 나왔다. 가방 안에는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 있었고, 휴대폰에는 출입 제한 통보와 신부가 보낸 청첩장이 함께 저장돼 있었다. 하루가 지나도 그 종이들에 적힌 이름은 바뀌지 않을 터였다.밤새 초음파 사진을 펼쳐 놓고 앉아 있던 연희는 아침밥을 조금 일찍 달라고 했다. 정애는 이유를 캐묻지 않고 달걀 하나를 더 삶아 두었다. 싸우러 가는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거라는 듯했다.결혼식 당일, 호텔 입구는 흰 꽃으로 뒤덮였다. 세강의료재단 후원사 이름이 새겨진 화환이 벽처럼 늘어섰고, 꽃 사이마다 ‘새로운 생명을 향한 약속’이라는 문구가 꽂혀 있었다. 기자들은 신랑 쪽 인사가 도착할 때마다 플래시를 터뜨렸다. 수술 동의서를 덮고 웃던 무겸이 오늘은 생명을 후원하는 집안의 신랑으로 소개되고 있었다.홍보 전광판은 무겸의 지시대로 꺼져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카메라는 후원사 임원들이 악수할 때마다 번쩍였다. 안내 직원들이 하객 이름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명단을 대조하는 곳에서, 아이를 잃은 여자 이름만 정확히 지우려 들었다.연희는 로비 한쪽에서 가방 속 서류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환자번호와 생년월일을 가린 팔찌 사본, 병원이 ‘수술 기록 없음’이라고 통보한 회신문, 그리고 작은 질문 한 장. 원본 팔찌는 도율이 증거 봉투에 보관 중이었다. 연희는 종이 한 장을 반듯하게 접었다. 제 아이가 지워진 자리에 남은 건 숫자와 다른 여자의 이름뿐이었다.접수대에 이름을 말하자 직원의 눈동자가 급히 움직였다.“이연희 님은 출입증 발급 대상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Read more

23화. 축사는 내 목소리로

“보안팀장 불러요. 저 여자보다 먼저, 저 팔찌부터 없애.”최혜경의 손끝이 신부 가족석 위를 가리켰다. 이연희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만 들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떨리는 건 처음 봤다. 사람 하나 없는 기록으로 만드는 건 능숙하던 여자가 팔찌 사본 한 장 앞에서 보안팀부터 찾고 있었다.“이사장님, 종이가 그렇게 무서워요? 진짜 팔찌는 다른 데 있어요. 이건 복사본이고요.”보안팀장이 다가와 서류를 치우려 하자 연희가 그보다 먼저 이름표를 집었다. ‘신부 가족 이연희.’ 세아가 직접 마련해 둔 자리였다.“신부가 날 가족이라며 초대했다던데요. 가족석에서 가족 사진 좀 찍었어요. 제 물건은 제가 챙길게요.”직원이 흠칫한 사이 연희는 팔찌 사본과 질문지를 가방에 넣었다. 혜경은 주변 기자들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축하하는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아요. 당신한테도 남는 게 없을 테니까.”“남는 게 없다고요? 제 애 지울 때도 똑같이 말씀하셨죠. 그런데 어쩌나, 이젠 영수증도 팔찌도 남았네.”혜경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신랑 측 직원에게 행사 진행을 재촉했다. 전광판은 꺼져 있었다. 무겸이 겁먹고 송출을 막은 자리에서는 축하 음악만 흘렀다. 연희는 앞줄에 앉아 케이블이 뻗은 단상과 하객석 사이를 살폈다. 통로마다 꽃으로 몸을 가릴 수 있을 만큼 화환이 높았다. 세아가 마련한 신부 가족석은 단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전광판 아래에는 ‘두 사람이 걸어갈 꽃길을 축복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인 현수막이 길게 걸려 있었다. 꽃길 한가운데 서 있는 세아는 지금껏 연희의 생일, 첫 취직, 약혼식까지 빠짐없이 끼어든 사람이었다. 정작 연희가 자기 아이를 지켜 달라고 매달렸을 때는 제 이름으로 수술에 서명했다.곧 최무겸이 입장했다. 정장을 입은 그는 친척들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무대 앞에서 세아의 손을 잡았다. 세아는 연희의 약혼반지를 번쩍 들었다.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모습이 꼭 전리품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우리 애기 엄마, 결혼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Read more

24화. 신랑이 지웠습니다

휴대폰 수십 대가 이연희를 향해 들리는 순간, 최무겸은 웃었다. 자기 결혼식에서 옛 연인이 폭주한다는 그림이 완성됐다는 듯했다. 그는 신부의 허리에 두른 팔을 풀고 사회자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하객석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연희는 그의 손부터 보았다. 초음파 사진 뒷면에 ‘처리 완료’라고 적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하객 여러분, 잠시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분은 재단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입니다.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많이 다쳤고, 최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내 이름도 소개해. 전 직원 말고, 네 아이 엄마였던 이연희.”연희의 대답에 앞줄에서 누군가 헛기침했다. 무겸은 마이크를 쥔 채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도 그는 그렇게 웃었다. 배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공주님 둘, 이제 아빠 하나 잡아서 평생 부려 먹어’라며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아이가 사라진 날에는 그 입으로 ‘네 선택’이라 말하더니, 오늘은 그녀의 슬픔을 병명처럼 하객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연희야, 여기서 이러면 네게 좋을 게 없어. 무슨 말이든 따로 듣자.”“따로? 병원에선 내 대신 서명하고, 지금은 내 대신 정상인지 아닌지 발표해? 너희 집안은 남의 입 없애는 게 가업이냐?”하객 뒤편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둘이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연희는 보았다. 무겸이 마이크를 든 손으로 가볍게 손짓한 직후였다. 꽃 장식 아래 비상구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갈라졌고, 기자석 카메라도 방향을 틀었다. 연희는 쫓겨나는 모습이 기사 첫 장에 실릴 것을 알았다. 세아는 이미 그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다.“아, 진짜. 저 애 또 시작이네.”세아가 마이크 가까이 얼굴을 기울였다. 눈꼬리를 붉히는 솜씨가 대단했다. 금방이라도 울 듯 입술을 떨다가 무겸의 가슴에 기대며 하객들을 둘러봤다.“죄송해요, 여러분. 연희가 수술 뒤로 좀…… 제가 곁에서 챙겼는데도 자꾸 저를 원망해요. 오늘만큼은 제발 행복하고 싶었거든요.”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갖다 대고, 손등의 다이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25화. 네 발로 올라간 날

“네 발로 수술대 올라갔잖아.”최무겸의 말이 예식장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 6대에서 동시에 쏟아졌다. 축하받으려고 모인 하객들은 신랑을 바라봤고, 이연희는 그가 마이크를 쥔 손을 보았다. ‘우리 아이 심장 소리 들으러 가자’며 손바닥에 입을 맞추던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는 아이를 지운 일을 연희의 선택이라고 발표하고 있었다.“그래. 내 발로 들어갔지. 네가 병원에 데려다 놓고 검사만 받자고 했으니까.”“연희야, 또 기억을 제멋대로 바꾸지 마. 그날 넌 분명히…….”“수술하겠다고 했다고? 네 입으로 끝까지 말해 봐.”무겸의 입술이 닫혔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울 준비를 끝낸 한세아가 눈물을 훔치며 마이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얘 좀 말려 주세요. 저렇게 사람 많은 데서 거짓말하면 우리 오빠 인생은 어떻게 해요? 연희야, 넌 이미 끝난 사이잖아. 신부인 나 좀 살려 주면 안 돼?”“내 애는 네가 사인한 날 끝났어. 네 결혼이 내 애보다 중요해서 그랬냐?”세아가 손등의 약혼반지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연희에게 청혼하며 무겸이 끼워 준 반지가 카메라 앞에서 반짝였다. 연희는 그 반지를 쳐다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울면 세아는 승리한 신부가 되고, 무겸은 상처 입은 여자를 달래는 착한 남자가 될 터였다.그녀는 휴대폰의 녹음 폴더를 열었다. 오래전 병원에서 빠져나온 뒤 들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파일이었다. 수술 당일, 접수대 앞에서 무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휴대폰을 켜 두었다. 마이크가 옷깃에 쓸려 잡음이 많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만큼은 또렷했다. 무겸이 말을 돌릴 때마다 도망갈 길 하나 마련하고 싶어 눌렀던 녹음 버튼이었다.연희는 박도율에게 미리 정리해 둔 재생 구간을 다시 확인하는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짧았다. ‘사전에 검토한 00:41~00:56만. 제3자 의료정보는 절대 공개하지 마세요. 원본은 보존하세요.’“최무겸. 내 말을 안 믿어도 좋아. 그런데 그날 네 앞에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네 귀도 기억하겠지?”무겸의 눈이 연희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26화. 엄마까지 팔 거야?

“다음은 네 엄마 목소리야.”한세아의 속삭임에 이연희는 팔을 붙잡은 손부터 떼어 냈다. 하객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이제는 입술 끝에 웃음을 매달고 있었다. 무대 위 꽃장식에는 축복을 뜻하는 리본이 늘어졌고, 그 아래서 세아는 연희의 약혼반지로 연희의 살을 눌렀다. 반지는 연희의 손가락에 맞춰 만든 것이어서 세아에게는 조금 헐거웠다. 세아는 그걸 고쳐 끼우며 보란 듯이 웃었다.“우리 엄마한테도 네 드레스 입혀 놨어? 이번엔 무슨 역할인데?”“딸보다 사위 집안 형편 걱정하는 현명한 엄마? 아, 물론 너한테는 악역이겠지.”세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음향이 끊겨 어수선하던 단상에서 최무겸이 담당자에게 다가가 무언가 지시했다. 연희의 거절 녹음이 나올 때는 서둘러 꺼 버린 스피커가, 이번에는 멀쩡하게 살아났다.“하객 여러분, 오해를 풀 자료가 있습니다.”무겸은 마이크를 들고 연희 쪽을 보았다. 그 표정은 병원 복도에서 합의서에 서명하라며 웃던 때와 똑같았다. 조금 전까지는 녹음 일부를 틀면 안 된다더니, 자기들에게 유리한 녹음이라면 하객 수백 명 앞에 기꺼이 들려줄 셈이었다. 연희는 무겸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 모순을 하나씩 기억해 두었다.“연희의 가족도 당시 상황을 알고 있었어요. 상처받은 사람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을 바로잡아야겠습니다.”세아가 휴대폰을 음향 담당자에게 건넸다. 곧 스피커에서 김정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 아이는…… 안 돼. 그렇게 하는 게…… 차라리 낫겠지.’중간중간 뚝 끊기는 소리가 났지만 마지막 문장만은 유난히 선명했다. 연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엄마 목소리였다. 그러나 앞뒤가 달랐다. 정애는 아이를 낳겠다는 딸에게 밤새 미역국을 끓여 주던 사람이었다.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슬리퍼를 신고 뛰어나왔다가 발뒤꿈치가 까졌던 사람도 정애였다.객석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친엄마도 찬성한 거야?”“그럼 저 여자는 왜 신랑 신부한테 저래?”연희는 스피커를 바라봤다. 같은 말의 끝과 시작을 붙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27화. 결혼식 박살

“수술한 지 41일 뒤에 만든 파일로, 우리 엄마가 수술에 찬성했다고?”이연희의 말에 음향 담당자가 노트북을 움켜쥐었다. 예식장 벽을 채운 꽃보다 새하얗게 질린 건 한세아의 얼굴이었다. 김정애의 목소리를 틀 때만 해도 승리한 신부처럼 웃더니, 생성 날짜가 드러나자 드레스 허리를 움켜잡았다.“복사하면서 날짜 바뀔 수도 있잖아! 컴퓨터도 모르는 게 어디서 아는 척이야?”“그래, 바뀔 수 있지. 그래서 원본 내놓으라고 하잖아. 넌 왜 복사본만 들고 사람을 살인 공범으로 몰아?”정애가 동의했다는 녹음은 문장 사이마다 숨소리가 끊겼고, 재생에 사용된 파일명 뒤에는 ‘최종_수정’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그것만으로 조작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연희는 직원에게 파일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파일명과 생성 날짜를 한 화면에 촬영했다. 세아는 조금 전 연희가 짧은 녹음을 틀었다며 거짓말쟁이로 몰았지만 정작 자기 파일의 출처부터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아가 ‘수술 당일 엄마가 한 말’이라고 소개한 자료를 원본이라 믿을 근거도 없었다.“여기 계신 기자분들, 두 가지만 찍어 주세요. 이 파일 정보랑, 제가 초대받아 놓고 출입 금지당한 기록이요.”연희가 휴대폰 화면을 들자 주변 카메라가 돌아갔다. 청첩장 발송 내역, 초청 명단, 취소 지시가 남은 문자. 무겸이 자신을 불안정한 침입자라고 부른 순간부터 보여 줄 준비를 해 둔 자료였다. 기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생중계 화면을 켰고, 댓글이 빠르게 쌓였다.최무겸이 웃는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사적인 의료 문제를 결혼식에서 왜곡하고 있습니다. 무단 촬영과 명예훼손은 엄정 대응하겠습니다.”“내 수술을 사적인 문제로 만들고 싶으면, 네 엄마랑 네 신부가 내 몸에 손댄 일부터 사적으로 책임져. 왜 내 애는 재단 업무였으면서 네 결혼은 신성한 행사야?”그 말에 무겸의 입가가 굳었다. 하객석에서는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내려놓았고, 다른 누군가는 안내판에 적힌 무겸의 재단 직함을 찍었다. 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28화. 축하 대신 고소장

‘세강병원 강제 수술 의혹’이 검색어 맨 위에 오른 지 10분 만에, 최무겸은 이연희의 입을 돈으로 사러 왔다.연희는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어머니의 외투 단추를 잠가 주다가 검은 승용차가 길을 막는 것을 봤다. 기자들을 피하라고 안내받은 출입구였다. 차에서 내린 무겸의 넥타이는 삐뚤어져 있었고, 손목에는 아직 신랑용 꽃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평생 한 번뿐이라는 결혼식을 망쳤다는 사람치고는 너무 빨리 계산기를 두드린 얼굴이었다. 예식장을 빠져나온 하객들의 차가 출구로 향했다. 차창마다 휴대폰 불빛이 번쩍였다. 무겸은 그 시선이 무서워 지하까지 따라온 것이었다.“연희야. 여기서 끝내자. 원하는 금액 말해.”“신혼여행은? 나 때문에 못 가서 어쩌니. 항공권 환불도 안 될 텐데.”“장난할 상황 아니야. 네 아버지 과수원 문제도 정리해 줄게. 대신 오늘 녹음은 더 이상 공개하지 마.”그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상호 비방 금지 및 비밀 유지 합의서.’ 종이 아래에는 치료비 정산, 위로금, 언론 대응 협조라는 항목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수술 뒤 연희 명의의 가짜 서명이 찍힌 합의서를 보냈던 남자였다. 이번엔 서명란을 비워 두었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연희가 종이 위로 눈을 굴리자 무겸이 유난히 한 항목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기존 의료 분쟁 관련 일체의 이의 제기 포기.’ 입을 막는 대가로 사건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조항이었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연희가 직장에서 몇 년을 모아야 할 돈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면 사 주었을 신발 한 켤레의 색깔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된 삶과 바꿀 수는 없었다.연희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과수원 담보를 들먹이며 아버지까지 겁박하던 일을 돈 한 봉투로 없애겠다는 태도가 지독하게 익숙했다. 비싼 양복의 소매를 걷던 무겸은 예전에 태어날 아이의 방을 꾸미자고 말할 때도 저렇게 여유로웠다.“최무겸. 내 애한테도 입막음 값 매겼어? 아니면 지운 비용만 병원 장부에 남겼니?”“네가 계속 이러면 너도 다쳐. 인터넷에 영상 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29화. 새 신부의 보험금

“신혼집 장만한 돈이 병원 보험계정에서 나왔어? 한세아, 너 결혼한 게 아니라 보험금 수령했니?”이연희가 휴대폰을 들어 보이자 세아의 손에서 흰 구두가 떨어졌다. 주차장 바닥에 구두 굽이 튀었지만 세아는 줍지도 못했다. 방금 전까지 결혼식 손해액을 청구하겠다며 발을 구르던 신부였다. 입금 내역의 발신 계정을 다시 읽은 순간, 드레스에 달린 진주 장식만 요란하게 흔들렸다.“그게 뭐! 병원에서 우리 결혼 축하한다고 준 거야. 재단 식구끼리 경조사비도 못 줘?”“경조사비는 보통 복지비에서 주지, 보험금 주는 통장에서 주나? 네 혼인신고서에 진단명이라도 적었어?”무겸이 세아의 앞을 막았다.“내부 회계 분류일 뿐이야. 외부인이 알 필요 없어.”“내 아이 지운 병원에서 내 친구 결혼 자금을 댔는데, 내가 외부인이라고? 참 편한 가족이네. 배는 내 거였고 돈은 네 신부 거야?”그의 얼굴에 짧은 경련이 스쳤다. 무겸은 세아에게 휴대폰을 넣으라고 속삭였지만, 이미 전송한 캡처는 연희의 기기에 남아 있었다. 세아는 한동안 화면만 노려보다가 드레스 자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구겨진 치맛단 아래로 맨발이 드러났다.“내 돈이야. 오빠가 나 고생했다고 챙겨 준 거라고! 넌 남자한테 버림받고도 남의 지갑까지 뒤져?”“그렇게 떳떳하면 지급 근거 보여 줘. 받은 건 네 계좌고, 보낸 건 병원인데 왜 설명은 오빠가 해?”세아가 입을 벌렸다 닫았다. 영수증을 내밀겠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김정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뒤에 있던 차 문을 조용히 닫았다.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아이를 지우는 데 찬성한 것처럼 꾸며진 녹음을 듣고도 버틴 여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세아의 드레스보다 그 아이 손이 먼저 보였다. 어린 시절 식탁에서 밥그릇을 두 손으로 받던 바로 그 손이었다.“세아야. 네가 사인한 날, 밥은 먹었냐?”“아주머니, 또 무슨 소리세요?”“우리 연희는 물도 못 넘겼어. 병실에서 깨어나 아이부터 찾는데, 넌 그날 뭘 먹고 버텼니? 밥이 넘어가던?”세아의 얼굴이 뒤틀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Read more

30화. 돈 받은 손

“내 아이의 의료사고 보상금으로 네 웨딩드레스를 샀다고?”이연희가 지급 확인서를 읽자 박도율의 사무실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까지 멎었다. 한세아가 제 손으로 보내 온 PDF였다. 수취인은 한세아, 지급 사유에는 이연희 태아 관련 의료사고 보상금. 아이를 잃은 여자에게는 병원이 수술 기록조차 보여 주지 않으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붙인 돈은 신부 계좌로 보냈다. 연희는 모니터 구석에 남아 있는 세아의 웨딩 사진을 내려다봤다. 자기 약혼반지를 낀 손으로 꽃다발을 들어 올린 모습이었다. 수술 뒤 연희가 병원비 영수증을 달라고 했을 때, 접수 직원은 담당 부서가 바뀌었다며 사흘을 기다리게 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설명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급 사유를 적은 사람만은 또박또박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이런 지급이 실제로 이뤄졌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도율이 문서 속성을 살폈다. “세아 씨가 보낸 서류라고 모두 진짜라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저쪽이 스스로 설명해야 할 자료를 넘긴 건 맞습니다.”“그럼 직접 설명하라고 하죠. 신부가 남의 아이 장례비로 꽃값 냈는지.”연희는 세아에게 지급 사유가 보이도록 화면을 찍어 보냈다. 답장은 금세 왔다. ‘와, 너 아직도 내 결혼식 생각해? 집착도 병이다.’ 연희가 전화하자 세아는 받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뒤에서는 드레스 포장 비닐이 바스락거렸다.“야, 한세아. 이 돈 뭐야?”“위자료 비슷한 거지. 나도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병원 들락거리며 네 보호자 노릇한 인건비라고 생각해.”“위자료는 피해자한테 주는 거야. 수술에 사인한 네가 왜 피해자야?”“아이고, 또 서명 타령. 너 진짜 아직도 그 종이 믿어? 그 동의서, 누가 위조했는지 알 게 뭐야.”연희는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뗐다. 세아는 며칠 전만 해도 ‘네가 아무것도 못 하니까 내가 대신 들었다’고 자랑했다. 결혼식장에서는 직접 도와줬다며 울었다. 돈 얘기가 나오자 그토록 자랑하던 서명부터 남의 짓으로 돌렸다. 세아가 자신을 끌어안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Read more
PREV
123456
...
1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