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Chapter 11 - Chapter 20

56 Chapters

제11화. 세 개의 수술

병원은 내가 묻기도 전에, 나머지 두 건의 수술까지 알고 있었다.박도율이 화면의 세 날짜를 차례로 가리켰다.첫 번째는 내 수술 사흘 전.두 번째는 내 아이가 사라진 날.마지막은 내가 퇴원한 다음 날이었다.“세 번 다 수술실 입실 기록이에요?”“그렇습니다.”“한 사람이 사흘 동안 세 번이나요?”“진료과도 다릅니다.”첫 번째는 산부인과였다.두 번째도 산부인과.마지막은 외과였다.환자 나이 역시 스물넷, 스물아홉, 서른여섯으로 달랐다.“내 기록은 가운데겠네요.”“가능성은 높습니다.”“또 가능성이에요?”“이연희 씨가 그날 수술받았다는 기록부터 병원이 부정하고 있으니까요.”나는 가운데 날짜를 손으로 짚었다. “그럼 위아래 두 사람은 누구예요?”“현재 자료에는 이름이 가려져 있습니다.”“원본을 받으면 나오죠?”“병원이 없애기 전에 확보한다면요.”복도에서 발소리가 멈췄다.문이 세 번 울렸다.“박 변호사님. 법무실입니다.”도율은 내게 문 반대편을 가리켰다.“나가도 됩니다.”“저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내가 왜 나가요?”“만날지 피할지 정할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문 열어요.”회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병원 법무실장 민서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내 얼굴보다 노트북 화면부터 확인했다.“이연희 씨, 환자번호 문제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전산에는 내가 없다면서 이름은 빨리 찾았네요.”“민원인의 신원은 확인해야 하니까요.”서진은 서류철을 책상 위에 놓았다.“과거 전산 이관 중 동일 번호가 중복 사용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도율이 바로 물었다.“몇 건입니까?”“나머지 두 건은 이연희 씨와 무관합니다.”나는 서진을 바라봤다.“내가 몇 건인지 말했어요?”그의 손가락이 서류철 위에서 멈췄다.“박 변호사님이 이미 확인하신 것으로 보여서요.”“화면은 당신 쪽에서 안 보였어요.”도율이 노트북을 완전히 닫았다.“병원도 세 건을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기록하겠습니다.”서진은 대답 대신 서류철을 내 앞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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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서명보다 먼저 온 돈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병원은,내 계좌에 삼억 원부터 밀어 넣었다.300,000,000원.입금자명은 세강의료재단이었다.적요에는 네 글자가 찍혀 있었다.치료비 정산.나는 화면을 민서진 앞으로 내밀었다.“무슨 치료비죠?”“환자정보 관리 과정에서 불편을 겪으신 부분에 대한 선지급입니다.”“아이를 없앤 것도 불편이에요?”“의료행위와 행정상 오류를 섞어서 말씀하지 마십시오.”“내 몸에서는 한날에 일어났는데, 당신들은 서류마다 따로 사나 봐요.”서진이 합의서를 덮었다.“돈을 받았다고 합의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검토하신 뒤 연락주시죠.”“받은 적 없어요. 당신들이 넣은 거지.”“계좌에 들어간 이상 수령은 완료됐습니다.”박도율이 끼어들었다.“일방적으로 입금했다고 합의가 성립하지는 않습니다.”서진은 그를 보지 않았다.“다만 보상금이 지급됐다는 사실은 남겠죠.”저들은 내 동의를 얻으려는 게 아니었다.나중에 이렇게 말하기 위해 돈을 넣은 것이다.이연희 씨는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돌려줄게요.”내가 송금 화면을 열었다.서진이 처음으로 말을 서둘렀다.“지금 바로 처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왜요? 줄 때는 급하더니 받을 때는 여유가 생겼어요?”재단 명의 계좌를 입력했다.송금 버튼을 누르자 붉은 안내가 떴다.수취 제한 계좌입니다.다시 시도했다.결과는 같았다.“반환을 못 하게 막아 놨네요.”서진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회계상 지정된 지급 전용 계좌입니다.”“받을 수 없는 계좌에서 돈을 보냈다는 뜻이죠?”“공식 반환 절차를 안내하겠습니다.”“언제요?”“합의 검토가 끝난 뒤에요.”“입을 닫을지 결정하면 돈을 돌려받아 주겠다?”“왜곡하지 마십시오.”“당신들이 먼저 내 계좌를 문서처럼 만들었어요.”나는 입금 화면을 캡처해 도율에게 보냈다.서진은 더 말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도율이 말했다.“돈은 쓰지 마십시오.”“내 돈 아니에요.”“별도 계좌로 옮겨도 병원이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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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버지의 빚

내가 보낸 삼억은 아버지의 통장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십칠억짜리 빚의 입속으로 들어갔다.은행 문자를 다시 열었다.채권자 세강의료재단.청구금액 1,700,000,000원.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빠, 세강에서 십칠억 빌렸어?”“안 빌렸다.”대답은 바로 돌아왔다.“농지 담보 대출이래.”“그 돈 받았으면 내가 지금 복숭아를 따겠냐.”“장난할 때 아니야.”“나도 안 웃었다.”박도율이 내 휴대전화를 보며 물었다.“아버님 명의의 땅이 있습니까?”“과수원하고 집이요.”“은행에 가서 채무 원장과 담보계약서 사본을 받아야 합니다.”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지금 은행 갈 수 있어?”“통장이 왜 묶였는지는 알아야지.”“엄마랑 같이 가.”“은행 가는데 보호자까지 필요하냐?”옆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필요해. 당신은 서류 읽다 화나면 직원부터 혼내잖아.”“틀린 걸 틀렸다고 하는 게 혼내는 거냐.”“그 말 하면서 신발 신어.”통화가 끊겼다.나는 지급정지 문자를 확대했다.압류는 삼억이 들어와서 생긴 게 아니었다.내가 돈을 옮기기 전부터 아버지 통장은 채권 집행 대상이었다.누군가는 돈이 들어오기만 기다렸다.“세강은 왜 우리 아빠 통장을 알고 있었을까요?”“급여나 치료비 지급 기록을 통해 확보했을 수 있습니다.”“병원이 환자 가족 계좌까지 보관해요?”“정상적인 절차라면 동의가 필요합니다.”“정상적인 절차.”그 말이 너무 웃겼다.내 이름을 없앤 병원에서 정상이라는 단어만큼 쓸모없는 말도 없었다.삼십 분 뒤 어머니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은행 창구가 화면 뒤로 보였다.“직원이 계약서는 못 준대.”“왜?”어머니가 휴대전화를 창구 쪽으로 돌렸다.직원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채권자 측에서 원본 열람 제한을 요청했습니다.”“채무자가 자기 계약서를 못 봐요?”“사본 발급 과정에서 확인이 필요해서요.”아버지가 창구 앞으로 통장을 밀었다.“내 이름으로 십칠억 빚을 만들었으면 종이부터 보여 줘야지.”“채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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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복숭아나무의 도장

계약서에 찍힌 아버지의 인감은 진짜였다.문제는 그 진짜 인감이 복숭아나무 뿌리 밑에서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도장 어디 있어?”내가 묻자 아버지가 화면 밖을 확인했다.“집에 있다.”“서랍?”“아니다.”어머니가 옆에서 끼어들었다.“당신 아직도 거기 묻어 놨어?”“집 안에 두면 도둑이 찾아가지.”“지금은 땅속에 둬서 도둑이 가져갔을 판이야.”아버지가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화면이 흔들렸다.마당을 지나 과수원으로 들어가자 복숭아나무들이 차례로 스쳐 갔다.박도율이 물었다.“정확한 장소를 아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우리 가족.”대답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한 사람이 더 있었다.“세아도 알아요.”“어떻게 알았습니까?”“어릴 때 같이 봤어요.”열여섯 살 여름이었다.아버지가 집문서 사본과 인감을 작은 항아리에 넣어 묻는 걸 세아와 함께 훔쳐봤다.세아는 신기하다며 나무에 손을 얹었다.‘여기 묻어 두면 아무도 모르겠다.’그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다.“이 나무다.”아버지가 가장 오래된 복숭아나무 앞에서 멈췄다.둥치 한쪽에 오래전 못으로 낸 세모 표시가 남아 있었다.“잠깐만요.”도율이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주변부터 찍어 주십시오. 땅을 바로 파지 마시고요.”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받아 나무 주위를 비췄다.“뭐가 보여요?”“흙 색이 다릅니다.”나무 뒤쪽 땅만 주변보다 짙었다.잡초도 듬성듬성 끊겨 있었다.누군가 이미 그 자리를 팠다가 다시 덮었다.아버지가 창고에서 삽을 가져왔다.“경찰을 먼저 부르는 게 좋습니다.”도율이 말하자 아버지가 삽날을 땅에 꽂았다.“내 땅에 묻은 내 도장부터 본다.”“아빠, 잠깐만.”내가 불렀지만 삽은 이미 흙을 걷어 냈다.세 번째 삽이 들어갔을 때 깨지는 소리가 났다.아버지의 움직임이 멎었다.“항아리다.”어머니가 화면을 가까이 댔다.붉은 조각이 흙 사이에 박혀 있었다.항아리는 땅속에서 이미 깨져 있었다.아버지는 손으로 흙을 걷어 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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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우정반지의 흠집

한세아는 반지를 알아본 게 아니라, 반지가 나온 장소부터 확인하려 했다.“어디서 찾았어?”자기 것이 맞느냐는 말은 없었다.영상통화 속 아버지는 흙 묻은 반지를 투명 봉투에 넣었다.어머니가 손을 씻어야 하느냐고 묻자 박도율이 먼저 사진부터 남겨 달라고 했다.별무늬 옆에는 비스듬한 흠집이 있었다.열일곱 살 여름, 세아가 교실 창틀에 손을 부딪치며 만든 자국이었다.‘이제 우리 반지 안 헷갈리겠다.’내 반지 안쪽에는 Y.H.세아의 반지에는 S.A.아버지의 항아리에서 나온 것은 분명 세아의 것이었다.하지만 그곳에 넣은 손까지 세아의 것이라는 증거는 없었다.나는 통화 녹음을 켰다.도율은 발견 장소를 먼저 말하지 말라고 했다.“네 반지 맞아?”“사진이 흐려.”“별 옆에 비스듬한 흠집이 있어. 안쪽에는 S.A.”세아의 대답이 늦어졌다.어머니가 보내 준 옛 사진도 열었다.내 수술 나흘 전, 카페에 앉은 세아의 오른손 검지에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사진 원본의 날짜까지 따로 저장했다.“마지막으로 낀 게 언제야?”“오래돼서 기억 안 나.”“수술 나흘 전에는 끼고 있었어.”“그 뒤에 잃어버렸나 보지.”“어디서?”“그걸 어떻게 알아.”세아는 모른다고 하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내가 반지를 어디까지 추적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내 수술 뒤에 우리 집 왔었지?”“네 짐 가져다주러.”“누구 차 타고 갔어?”“택시.”“엄마는 표시 없는 검은 승용차였대.”“일 년 전 일이야. 어머니가 잘못 보셨겠지.”이번에도 자기 말보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먼저 흔들었다.“과수원에도 갔어?”“안 갔어.”“확실해?”“짐만 내려놓고 바로 왔어.”“아빠 도장도 그때 없어졌어.”세아가 곧바로 말했다.“항아리에서 내 반지가 나왔다고 내가 도장까지 훔쳤다는 거야?”나는 입을 다물었다.도율이 녹음 중인 화면을 가리켰다.“계속 말해.”“뭘.”“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누가 말했어?”통화 너머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났다.“네가 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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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기억의 빈칸

세아가 내가 복도를 걸었다고 주장한 시간대, 병원은 나를 다시 재웠다.박도율이 통화 녹음에서 세아의 목소리를 멈췄다.―수술 끝난 날, 회복실 앞에서.―네가 직접 내 손에 끼워 줬어.“이 장면이 가능하려면 회복실에 있던 시간 안이어야 합니다.”도율이 환자번호 0817-4439의 이동 기록을 열었다.수술실 퇴실 오후 3시 52분.회복실 입실 3시 57분.병실 이동 5시 18분.한 시간 이십일 분.세아는 그사이 내가 걸어서 복도로 나왔고,간호사의 부축을 받았으며, 자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줬다고 했다.“그런 기록은요?”“회복실 밖으로 이동한 기록은 없습니다.”“기록 없이 나갔을 수도 있잖아요.”“그럴 수 있습니다.”“세아가 전부 지어냈을 수도 있고요.”“그럴 수도 있습니다.”나는 종이를 밀어냈다.“둘 다 가능하다는 말 말고, 확인할 수 있는 걸 보여 줘요.”도율은 투약기록을 띄웠다.같은 날, 같은 환자번호로 진정제가 세 차례 들어갔다.병동에서 한 번.수술실 입실 직전 한 번.회복실에서 한 번.마지막 투여 시각은 오후 4시 06분이었다.“수술 끝난 뒤에 또 투여했네요.”“그렇습니다.”“이유는요?”“기록돼 있지 않습니다.”“불안해서였다고 병원은 말하겠죠.”“그렇게 설명할 가능성이 큽니다.”“내가 불안해했다는 기록도 있어요?”“없습니다.”도율은 약물명과 용량을 따로 적었다.“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당시 상태를 확정하려면 의료 감정이 필요합니다.”“그 시간에 걷고, 대화하고, 반지를 끼워 주는 것도요?”“같은 답입니다.”답답했지만 그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나는 수술 전날부터 기억나는 일을 시간순으로 말했다.세아가 건넨 흰 알약.글자가 흐려진 동의서.손가락 사이에 들어온 펜.수술실 문 앞에서 끊긴 장면.다음 기억은 병실 천장이었다.회복실은 없었다.복도도 없었다.세아에게 반지를 끼워 준 순간도 없었다.도율이 세 문장 옆에 적었다.기억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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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봉인된 처방

최혜경의 이름을 확인한 지 11분 만에,병원은 그 이름이 붙은 원본부터 잠갔다.박도율이 의료기록 보존 요청을 전송하자 병원 포털에 붉은 문장이 떴다.열람 제한. 병원장 승인 필요.내가 방금 본 투약 내역은 그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다.사라진 것은 원본과 수정 이력,처방 계정을 실제로 사용한 사람을 확인할 접속 기록이었다.“신청서를 낸 걸 벌써 알았어요?”“법원 신청은 아직 병원에 전달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왜 잠가요?”“환자번호 0817-4439 자체에 접근 알림이 걸렸을 가능성이 큽니다.”누군가는 이 번호를 찾는 사람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도율이 차단 전후 화면을 나란히 저장했다.“기존 사본은 남아 있습니다.병원이 막은 건 사본이 아니라 사본의 진위를 입증할 원본입니다.”“우리가 한발 늦은 거네요.”“아닙니다. 잠근 시각도 증거입니다.”휴대폰이 울렸다.세강의료재단 이사장실이었다.“최혜경 이사장님께서 통화를 요청하십니다.”“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죠?”“이연희 씨가 제출한 열람 요청서에 적혀 있습니다.”“그 요청서에는 변호사 연락처만 있어요.”비서는 대답하지 못했다.잠시 뒤 최혜경의 목소리가 들어왔다.“박도율도 옆에 있니?”인사도 없었다.“제 처방 기록도 보셨겠네요.”“내가 너를 진료한 적은 없다.”“아직 묻지 않았는데요.”“10월 17일 오후 4시 3분.회복실 진정제 승인자 최혜경. 이사장님이 승인했습니까?”“내 이름이 찍혔다고 내가 처방한 건 아니야.”“그럼 계정을 빌려줬습니까?”“병원에는 위임 절차가 있어.”“제 진료기록에는 위임자도, 협진 요청도 없습니다.”“전산 누락이겠지.”“환자 이름도 누락. 서명도 누락. 위임자도 누락.그런데 약은 정확히 제 몸에 들어왔네요.”혜경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네 아버지 땅은 아직 처분되지 않았어.”나는 통화 녹음 화면을 확인했다.“약을 물었는데 왜 과수원부터 말씀하세요?”“네가 멈출 이유를 알려 주는 거야.”“십칠억짜리 가짜 빚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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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신부 파일

세강에서 BRIDE는 신부를 관리하는 파일이 아니었다.누군가의 결혼에 방해되는 임신을 지우는 파일이었다.박도율은 화면에 뜬BRIDE_01을 누르지 않았다.“현재 서버의 파일입니다. 권한 없이 열면 우리가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그럼 이름만 보고 끝내요?”“아닙니다. 파일을 열지 않고도 분류 규칙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가 이전 의료분쟁 사건에서 확보한 법원 제출 목록을 열었다.환자 이름과 본문은 가려져 있었지만 파일명, 생성일, 첨부문서 제목은 남아 있었다.“현재 파일의 생성번호와 과거 색인을 대조하겠습니다.같은 번호가 나오면 적어도 병원이 오래전부터 BRIDE라는 분류를 썼다는 뜻입니다.”검색창에 BRIDE를 입력했다.결과는 열두 건이었다.BRIDE_A.BRIDE_00.BRIDE_01.BRIDE_02.“신부 관리 파일이면 예식 날짜나 호텔명이 붙어야 해요.”나는 생성일을 확인했다.“전부 산부인과 수술일이에요.”세강 홍보팀은 파일명을 짧게 붙였다.VIP는 재단 관계자.PRESS는 언론.DONOR는 기부자.이름이 아니라 병원이 보호해야 할 대상을 앞에 세웠다.그 규칙대로라면 BRIDE는 환자의 이름이 아니었다.사건의 목적이었다.가장 오래된 파일은 칠 년 전이었다.관계자 칸에는 재단 임원의 가족이라고 적혀 있었고, 대상자 이름은 삭제돼 있었다.첨부 목록은 남아 있었다.임신확인서.진정제 투약기록.보호자 확인서.비밀유지 합의서.마지막 문서는 의료서류가 아니었다.언론 문의 예상답변.“수술 전에 해명문부터 만들었네요.”“생성 시각상 그렇습니다.”다른 파일도 순서는 같았다.임신 확인.관계자 보고.보호자 지정.시술.합의.언론 대응.어떤 파일은 수술보다 합의서가 먼저 만들어졌다.또 다른 파일은 진료기록이 작성되기도 전에 ‘민원 종결’로 표시돼 있었다.열두 건 가운데 아홉 건은 수술 뒤 일주일 안에 종결됐다.나머지 세 건에는 ‘분쟁 이관’이 찍혀 있었다.사건번호는 남았지만 피해자의 이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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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보호자의 서명

내가 잠든 사이,한세아는 내 아이를 지우는 설명을 열다섯 분 동안 듣고 자기 이름으로 서명했다.병원은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세아도 기다리지 않았다.박도율이 BRIDE_01의 문서 색인을 확대했다.보호자 설명·동의 확인서.설명 시작 오후 2시 34분.종료 오후 2시 47분.서명 완료 오후 2시 49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17분 전이었다.“보호자 이름 보여 주세요.”화면 아래에 세 글자가 나타났다.한세아.관계란에는 가족도, 법정대리인도 아닌 단어가 적혀 있었다.지인.“병원도 세아가 가족이 아니라는 걸 알았네요.”“그렇습니다.”“그런데 지인이 내 수술 설명을 대신 들었어요?”도율이 다음 항목을 열었다.환자 본인 직접 설명 미실시.사유는 한 줄이었다.진정 상태로 의사 확인 곤란. 보호자 우선 설명.나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나를 재운 다음, 내가 대답할 수 없다고 적었네요.”“기록의 순서상 그렇습니다.”“그리고 세아한테 물었고요.”“보호자 확인 절차를 진행했습니다.”그 아래에는 환자 질문 여부를 기록하는 칸이 있었다.해당 없음.“나는 질문할 사람으로도 없었네요.”“문서상으로는 그렇습니다.”병원은 내 대답만 빼앗은 게 아니었다.내가 물을 수 있었다는 사실까지 지워 놓았다.본문은 가려져 있었지만 확인 항목은 남아 있었다.태아 상태 설명.시술 방법과 부작용.출혈 및 추가 처치 가능성.임신 종결에 관한 확인.네 항목 모두 체크돼 있었다.마지막에는 세아의 서명이 붙어 있었다.끝을 짧게 끊은 ‘한’.마지막 획을 아래로 길게 내린 ‘아’.생일 카드와 편지에서 수없이 본 글씨였다.“세아 필체예요.”“유사합니다.”“저는 알아요.”“알아보는 것과 입증하는 것은 다릅니다.”“이번에도 정황이라고 할 거예요?”도율은 문서 아래를 가리켰다.“한세아 명의의 보호자 등록, 한세아 휴대전화 인증, 한세아 필체와 유사한 서명.셋을 묶으면 직접 참여 가능성은 높습니다.”인증번호가 전송된 휴대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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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신부 가족석

한세아는 나를 가족석에 앉힌 뒤,내가 읽을 축사까지 대신 써 두었다.웨딩업체 직원은 내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말했다.“신부 가족 대표 이연희 님 맞으시죠?”“아닙니다. 저는 신부 가족이 아니에요.”“한세아 신부님께서 가족 같은 친구라고 전달하셨어요.좌석 표기만 친구로 바꿔 드릴까요?”“표기 말고 또 정해진 게 있습니까?”직원이 일정표를 확인했다.가족 단체 촬영.신부 측 사전 인터뷰.친구 대표 축사.세 항목 모두 내 이름으로 등록돼 있었다.“저는 어느 것도 동의한 적 없습니다.”“신부님께서는 협의가 끝난 것으로 알고 계셨어요. 축사 원고도 직접 보내 주셨고요.”병원에서는 내 수술 동의를 먼저 만들었다.결혼식에서는 내 축복을 먼저 만들어 놓았다.“원고 보내 주세요.”통화가 끝나자 모바일 입장권에 파일이 첨부됐다.친구 대표 축사_최종.첫 문장은 내가 하지 않은 말이었다.[ 세아는 제게 친구보다 가까운 가족입니다.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누구보다 존중했고, 가장 힘든 순간에도 상대의 행복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다음 문장에는 내가 병원에서 무너졌을 때 세아가 곁을 지켰다고 적혀 있었다.내 아이를 지운 날은 친구가 친구를 지킨 시간이 됐다.무겸과 세아가 나 몰래 시작한 관계는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한 사랑으로 바뀌었다.나는 두 사람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고 축복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원고 오른쪽에는 낭독 지시도 붙어 있었다.신부를 보며 미소.마지막 문장 전 잠시 멈출 것.낭독 후 신랑·신부와 함께 촬영.사진 위치도 정해져 있었다.신부는 가운데.무겸은 오른쪽.나는 세아의 왼쪽.세아는 내가 어디에 서고, 누구를 보고, 언제 웃을지까지 골라 놓았다.파일 아래에는 촬영물 활용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예식 영상과 사진은 신랑 측 공식 기록 및 세강의료재단 사내 홍보자료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환자였던 저는 없애고, 친구였던 제 얼굴은 쓰겠다는 거네요.”박도율이 수신 시각과 파일 원본을 따로 저장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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