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AGAPE : 우리는 그랬다: Chapter 31 - Chapter 40

48 Chapters

31. 해보자.

 ⁠⁠⁠아마 나를 부른 이유는 ‘홍시혁’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것밖에 없다. 홍시혁은 형은 유명세로 함께 유명해진 홍지혁의 SNS로 방송 복귀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아무래도 이 신생 엔터는 핵심 멤버였던 청호의 복귀로 함께 시작하고 싶은 듯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홍시혁을 설득하기 위해, 나를 이용하기 위해 부른 것이 분명했다.뭐, 전에 최 작곡가가 한 번 말하기는 했지만… 홍시혁의 스타성을 생각하면 활동을 하지 않는 게 매우 아쉽기는 했다. 솔직히 성격이 좀 그래서 그렇지, 천상 연예인이니까.⁠“아니, 정말 미안. 이 녀석… 한 시간 전에 있었거든? 그런데 네가 온다니까 급하게 나가버리더라고.”⁠설마, 그때 울었던 것이 부끄러워서… 도망간 건가?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부분을 부끄러워하네.그 철판에….⁠“그 녀석을 계속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 아니, 부탁할게.”“네… 네?”⁠꽤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그 녀석을 정식으로 복귀시키고 싶어. 그 자식… 마지막에 엄청나게 사고를 치기는 했는데… 당시 소속사가 언론 플레이는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거든. 그래서 나름 영웅이 된 부분도 있어서… 정식 복귀에 큰 잡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사고요…?”“아,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하여간… 이번 OST나 싱글도 반쯤 성공이잖아.”“그런데… 홍시는 복귀 생각 전혀… 없어 보이던데요…?”“그래서 부탁하고 싶어서.”⁠쓰던 안경을 내려놓고, 정중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으로 말하는 모습은 내가 알던 쾌남의 모습과 많이 달라 낯설었다.⁠“설득 좀 해주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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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유니콘.

⁠⁠⁠<이도진>⁠“어쭈, 좋아 보인다?”⁠영웅이의 물음에 대체 어디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지, 거울로 몰골을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닌데.⁠“나는 내 배우가 파업 선언해서, 원치 않게 여친이랑 휴가를 잔뜩 즐기고 있는데!”“그래. 그래 보여.”⁠좋아 보인다는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건지, 피부가 새까맣게 타서 돌아온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자기 집처럼 들어와서 익숙하게 사 온 선물을 펼쳐 놓고, 제대로 살고 있었는지 확인하듯 집안을 힐끗 둘러봤다. 그리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는?”⁠‘네가 혼자 밖으로 보낼 리가 없잖아.’라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영웅아.”“왜…? 나는 네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긴장돼.”“홍시혁.”“홍시혁?”⁠죄 없는 손등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아무리 새빨갛게 물든 손등이라고 한들, 지금 자기 심장만큼 물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걔… 다시 활동할 건가 봐.”“아? 뭐야! 너도 이미 들었어!? 아쉽긴 하잖아. 이번에 노래 낸 것도 좋더만~ 여친이 이번에 여행 가서 그것만 주야장천 듣더라. 옛날에 걔 팬이었다더라. 사인받아 달라고 어찌나 난리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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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빠른 템포.

 ⁠⁠⁠⁠당시 시준이의 여친이었던 스타일리스트의 고급 정보로 MV 촬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보 촬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마침, 촬영은 쉬고 있고, 감시하는 형들은 잠들어 있다. 이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었다. 무엇보다 HH엔터에서 이도진을 신비주의로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함구하고 노력하던데, 그 스타일리스트는 깡이 큰 건지, 이 바닥을 잘 모르는 건지 혀를 쯧쯧 차면서도 내가 알 바는 아니기에 발은 정직하게 시준이의 뒤를 따라 화보 촬영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렇다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스텝들에게 인사를 꾸벅하며 몰래 들여 본 촬영장, 수없이 많은 카메라 속에서 특출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카메라에 잡아먹히지도 않고 은은하게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 현장을 바라봤다. ⁠‘역시, 유니콘은 다르지? 대본도 한 번도 틀린 적 없다더라?’⁠당시 연기에 관심이 많던 시준이가, 제 인맥을 총동원해 미친 듯이 정보를 입수할 때니 틀릴 리가 없을 거다. 확실히 곱상한 얼굴과 달리, 완벽주의자 같은 모습이 로봇처럼 보이기는 했다.⁠‘그 정도면 HH엔터 대표가 만든 어디의 무슨 로봇 아니냐?’‘제발 개소리 좀 작작 해라.’‘야…! 너희…! 진짜…!!!’⁠뒤늦게 온 정훈이 형의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처음 본 이도진의 모습에 분했다. 은율이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서 더욱, 분했다. ⁠‘그래도 세트장은 우리가 더 커!’‘갑자기 무슨 소리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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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좋지 않아?

⁠⁠⁠“죄, 죄송해요.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홍시혁의 옷자락을 잡고, 한 번만 더 끼어들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 눈빛을 용케도 읽은 건지 착석하고는 구시렁거리며 뒤로 홱 돌아버린 덕분에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렇게 이리저리 피드백하고, 구상하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이 빠진 채로 의자에 앉아 있다 무심코 나는 예정에도 없던 홍시혁의 앨범에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해 옆을 홱 돌아봤다. 이번 회의 최고 빌런인 홍시혁은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자기 잘못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 그래, 네 놈이 성장했을 거로 생각한 내 잘못이야. 내 잘못.”“효재 형, 너무 그러지 말고… 한 대 태우러 가자.”“현우야, 나 이번 앨범 준비하다가 죽는 건 아닐까? 나,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또, 또, 그런 소리 하지.”⁠울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나가버린 둘을 바라보다, 텅 비어버린 회의실에 남아 지쳐 새하얀 천장만 바라보던 내 옆에서는 나의 완성되지 않은 멜로디를 반복해서 틀며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효재 형도 귀가 맛이 갔나?”“아니야, 일리 있어.”“뭐라고~?”“전부 비슷비슷한 건 사실이잖아.”⁠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지가 꽤 있는 작곡가에게서 그런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드물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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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너와 나는.

⁠⁠‘그 녀석이랑 어떻게 친해졌어?’⁠촬영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이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와 학생의 임무를 수행하던 도진이가, 학교라는 것을 잊고 나를 불러내 물었다. 며칠 동안 부루퉁한 얼굴이더니, 겨우 화가 풀린 건가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혹여나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까 봐 무서웠다.   초조하게 주위를 살피며 대답을 아끼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난 건지, 재차 묻는 물음에 홍시혁이 도진이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닐까, 혹은 내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아무리 헤집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니, 없는 게 당연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음악실에서… 노래… 부르면서.’⁠일단, 그 물음에 대답하자… 조금 미묘한 표정을 하면서도 홍시혁이 아이돌이라는 건 아는지 이해한 듯했지만, 표정은 이해한 그만큼 더 굳어서는 그대로 홱 가버리는 모습에 붙잡지도 못하고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느라 입술을 꾹꾹 깨물어 숨을 참기도 했고, 가슴팍을 꾹꾹 눌러 보기도 했다.  집, 차, 혹은 아빠의 병실이 아닌 바깥에서 도진이와의 대화는 없던 터라 괜히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배덕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명문 사립고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 크고 넓은 만큼 은밀한 공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진이도 바보가 아니고, 그 누구보다 내가 세상 밖에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기에 다 계산하고 불렀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 믿었는데.⁠‘율아! 너 이도진이랑 어떻게 아는 사– 읍!’⁠홍시혁의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질질 끌고 사람이 없는 쓰레기 청소장으로 왔다. 그리고 그대로 쓰레기에 파묻을 기세로 홍시혁을 바라보자, 내가 자신을 태워버릴 것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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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대신 미안해.

 ⁠몸이 묵직하게 눌리는 고통에 눈을 뜨자, 소파에서 나를 꾹 누르며 잠든 도진이의 얼굴과 숨결이 바로 코앞에서 느껴졌다. 아까 한참을 놓지 않기에 달래주면서 함께 잠이 든 모양이었다. ⁠“무거워….”⁠여전히 나의 손을 꽉 잡고 잠든 도진이를 보니 착잡했다. 이 넓은 거실에서 가장 좁은 소파에 두 사람이 구겨져 있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이 공간에 도진이의 숨 쉬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하고 조용했다. 아래에서 꼼짝없이 장기를 짓눌린 고통을 참는 나는 새까맣게 잊은 듯이 곤히 자는 얼굴을 보니, 또 깨울 수가 없었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넘기자,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말끔한 얼굴이 드러났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는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다 함께 잠든 적이 많았다. 그때에도 이렇게 새벽에 홀로 깨서 잠든 도진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거나 손가락으로 말랑말랑하던 볼을 만지거나 했던 것 같다. 심장이 찌릿찌릿하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이 몸에 얽혀 저 숨을 고르고 있는 붉은 입술을 물어뜯고 싶다가도, 마음이 차갑게 식어 이 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감정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린 날의 나는 그것을 놓지 못했고, 그랬기에 지금 그에 합당한 벌을 아직도 받고 있는 거다.    불쌍하게도.  이 벌은 얼마나 더 지나야 끝이 날까. ⁠⁠***⁠⁠<홍시혁>⁠“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그러는 넌, 별로야?” “잠을 못 자서.”⁠평소보다 퀭한 눈을 비비며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반면, 나는 눈앞의 율이에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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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어리광 아니면 소유욕.

 ⁠“싫어할 수밖에 없지.” “왜?” “그 녀석, 시끄럽고… 성격도 나쁘고… 네게 너무 거리낌없어.”⁠너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야.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삼키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이도진도 여전히 어린 애 같다.⁠“그 녀석이랑 하지 마.” “하기 싫다고 때려치울 수 있는 상태도, 떼쓸 수 있는 나이도 아니라는 거… 네가 제일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해? 나를 책임감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작정이야?” “내가 대표님께….” “그냥 둬! 할 거야!” “하지 마.” “할 거야.” “율아.”⁠끝이 보이지 않는 말꼬리 물기에 결국 울컥했다.⁠“그만 좀 해! 걱정 안 해도 되니까!” “걱정하는 거 아니야.” “뭐?”⁠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정하게 말하는 도진이의 말에 섬찟 놀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불쑥 다가온 도진이는 나를 꼭 끌어안았고, 뜨거운 열이 차가운 나의 몸을 데워주는 듯이 온몸을 감싸고 노크도 없이 코로 훅 들어온 가장 좋아하는 향에 절로 힘이 풀릴 것 같은 다리를, 안간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 정말로 이상하다.⁠“내가 싫어.”⁠이런 도진이는 익숙하지 않다.⁠“네가… 그 녀석이랑 있는 거… 진짜 싫어.” “어째서?” “홍시혁이 너를 좋아하니까.”⁠정신이 번쩍 드는 말에 도진이를 살짝 밀치자, 눈썹을 한껏 추켜 올리고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설마,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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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진짜 싫어.

⁠⁠⁠‘도진아, 연기는 재미있어?’⁠나의 말에 좋아하는 젤리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네가 귀여워. ⁠‘같이 연기하는 사람, 진짜 이쁘더라.’ ‘그래?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데.’⁠무심한 너의 말이 기뻤다.⁠‘너무 예쁜 여자들만 봐서, 눈이 너무 높아진 거 아니야? 이러다가 여자 친구는 제대로 만들겠어?’ ‘굳이? 필요 없어.’ ‘내가 너의 상대 배우였다면, 최선을 다해서 꼬셨을 거야.’ ‘왜…?’⁠조금 놀란 눈으로, 젤리를 입술에 물고서 묻는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한 것은 아직도 한이 됐다. ⁠‘잘생겼으니까! 한국 최고 미남! 얼굴 천재!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 ‘응…? 표정이 왜 그래?’ ‘단지… 그것뿐이야?’⁠내 딴에는, 당시 내 어휘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는데…. 너는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만약 내가 너의 가족이 되지 않았다면, 누나가 되지 않았다면 ‘너를 좋아하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아서 그런 말은 죽어도 못 해. ⁠‘꺅!! 이도진-!’ ‘정말로 좋아해-!!’ ‘이도진!! 사랑해!!’⁠다른 사람들은 쉽게 말하는 그 ‘좋아해’라는 말을, ⁠‘아~ 이도진이랑 결혼하고 싶다.’ ‘뭐래, 이도진은 내 남자거든?’ ‘넌 너네 오빠 있잖아. 호랑이 오빠랑 결혼해.’ ‘걔는 걔고, 이도진은 이도진이야.’⁠내가 저 사람들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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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그때와 같아.

  ⁠<서은율>⁠홍시혁과 어떻게 친해졌냐고 다그치듯 물은 이후, 도진이는 뚱한 표정을 하더니, 또 대놓고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풀리겠지.’ 혹은 ‘이해해 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내가 너를 이해하는 만큼, 처음 내게 생긴 친구를 너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쉬이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점점 굳어가는 도진이의 표정에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아빠에게 연락했지만, 아빠도 몰랐다. 결국 저 이도진은 내게 화가 난 것이다. 그 와중에 착실하게 오디션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노래들도, 늘 듣는 ‘수고하셨습니다.’ 혹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신물이 났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던 서은율의 19살 인생에 슬럼프가 온 건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늘 보던 악보가 제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검은색 연필은 빨간색이 되었다가 보라색이 되기 일쑤고,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는 노이즈처럼 들렸다. 당연히 음악실에는 갈 수 없었다. 바닥이 파도처럼 웨이브 쳤고, 눈앞의 색감이 제멋대로였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밥은 먹지 못했고 안과 밖에서 나를 강하게 조이는 압박감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율아!!!’⁠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인 시야가 핑 돌면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몸의 퓨즈가 끊겼다. ⁠⁠*****⁠⁠‘헉’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새파랗게 질린 홍시혁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당황스러움에 ‘너 괜찮아?’라고 묻자, 홍시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누가 할 소린데!’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은 보건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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