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렌을 죽이지 마라.”검은 백합 봉인을 뜯자 라디온의 명령이 첫 줄에서 피처럼 번졌다.“유렌을 왕으로 세워 형제가 서로를 의심하게 해.”에이슬라는 편지를 내려놓지 않았다.지난 명령은 왕의 독살이었다.이번에는 왕을 살려 둔 채 왕실을 둘로 찢으라는 뜻이었다.편지 아래에는 왕궁 내부에서만 쓰는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유렌의 집무 시간.근위 교대 시각.바이렌이 혼자 검을 점검하는 새벽까지 적혀 있었다.“이 편지는 누구 손으로 들어왔죠?”메브라가 봉투 안쪽의 밀랍을 살폈다.“왕비궁 세탁물 사이에 끼워져 있었습니다.”“출입 명부에는요?”“새로 들어온 사람은 없습니다.”새 사람이 아니라 오래 있던 사람이 전달했다.에이슬라는 바이렌에게 편지를 숨기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읽은 뒤 유렌의 이름에서 손을 멈췄다.“동생을 미끼로 쓰려는군.”“미끼로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그럼 어떻게 답하지?”“전하께 먼저 물어야죠.”유렌은 호출을 받고도 의자보다 창문부터 확인했다.“도망칠 길을 찾는 겁니까?”“형수님이 저를 왕으로 만들겠다니, 창문 정도는 봐 둬야지요.”에이슬라는 편지를 탁자 위에 펼쳤다.“라디온은 전하가 폐하에게 버림받았다고 믿게 만들려 합니다.”“제가 버림받은 표정은 잘 짓습니다.”“이번에는 농담으로 결정하지 마세요.”유렌의 손가락에서 돌던 인장이 멎었다.에이슬라는 그가 편지를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전하의 이름을 역정보에 써도 됩니까?”“무엇을 흘릴 생각이십니까?”“전하가 왕위에 관심을 보였고, 국경 사절 둘이 전하 편으로 돌아섰다고요.”“반역자로 보이겠군요.”“그래서 허락을 묻는 겁니다.”유렌은 인장을 손바닥 안에 감췄다.“제가 거절하면요?”“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형은 뭐라고 했습니까?”바이렌이 대답했다.“네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유렌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웃음이 사라진 얼굴은 형과 더 닮아 있었다.“허락하겠습니다.”그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대신 제가 고른
آخر تحديث : 2026-07-21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