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Chapter 111 - Chapter 120

126 Chapters

113화. 그녀의 집 앞에서

사고가 난 지 사흘째. 민성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 병원 로비를 빠져나왔다. 머리의 상처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아 이마 한쪽에는 작은 거즈가 붙어 있었다. "당분간 운전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팔도 그렇지만 뇌진탕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니까 무리하시면 안 돼요." 퇴원 수속을 마치면서도 의사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강조했다. 민성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병원 정문을 나서자 회사에서 보낸 검은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가 민성을 발견하고 서둘러 뒷좌석 문을 열었다. "대표님,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민성은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가 병원을 빠져나왔다. 창밖으로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서울 풍경이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민성의 시선은 무릎 위에 놓인 휴대전화에 머물러 있었다. 김지혜. 지난 사흘 동안 수도 없이 들여다본 이름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지혜는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문자 한 통도 없었다. 당연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오히려 연락을 기다리는 자신이 뻔뻔했다. 그런데도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민성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간호사가 들어와도, 의사가 들어와도, 재혁이 찾아왔을 때도 잠깐씩 실망했다. 혹시 지혜가 아닐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성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메시지 창에는 지난 사흘 동안 썼다 지웠던 말들이 아무 흔적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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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다시, 당신에게

이창수 회장의 집을 다녀온 뒤 며칠 동안 재혁은 주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민성의 사고와 회사 일정이 겹치기는 했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전화 한 통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주연의 가족사진을 본 순간부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몇 달 동안 찾아다니던 법적인 아내. 결혼식 날 자신의 손으로 반지를 끼워주었던 여자. 그리고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써 밀어냈던 여자. 그 모든 사람이 결국 한 사람이었다. 이주연.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놀라움도 있었고, 당혹스러움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서운했다. 주연은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선을 긋고 있을 때도.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억누를 때도. 주연은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혁은 자신의 서운함보다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법적인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2년이나 결혼한 아내를.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주연은 자신을 얼마나 어이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상처받았을까. 재혁은 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기다리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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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먼저 잡은 손

며칠 만이었다. 주연이 아파트 앞에 내려오자, 재혁은 차에서 내려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주연을 발견한 순간 재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밝은 색 니트에 단정한 스커트, 어깨 아래로 부드럽게 흘러내린 긴 머리.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더 예뻐 보였다. 아니. 이제는 자신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굳이 부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연도 재혁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재혁 씨.”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재혁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방금 왔습니다.” 이번에도 사실은 아니었다. 재혁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이나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차에 오를 수 있도록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타세요.” “감사합니다.” 주연이 차에 올라타자 재혁도 운전석에 앉았다. 차는 천천히 도심을 향해 출발했다. 목적지는 두 사람이 예전에 한번 갔던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하나둘 밝아지고 있었다. 주연은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민성 씨는 좀 괜찮대요?” “퇴원은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다만.” 재혁이 피식 웃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것 같더군요.” 주연도 금세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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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당신의 집, 우리의 집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레스토랑을 나와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편안한 대화 때문인지, 둘 사이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재혁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주연을 바라보았다. “주연 씨.” “네?” “예전에…”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제 집에 한번 와보고 싶다고 하셨던 거 기억합니까?” 주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던 날, 조금 더 재혁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이 먼저 꺼냈던 말이었다. “기억해요.” 재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가보시겠습니까?” 주연은 순간 대답을 잊었다. “오늘요?” “네.” 재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부담스러우시면 다음에 가도 되고요.” 주연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조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럼 커피랑 디저트는 재혁 씨 집에서 먹을까요?” 재혁도 웃었다. “좋습니다.” 잠시 후. 재혁이 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재혁이 먼저 나섰다. 주연은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괜히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여기가…’ ‘재혁 씨가 사는 곳이구나.’ 그리고 동시에 다른 생각이 스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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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가까워진 만큼 두려워졌다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수많은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주연에게는 그 모든 풍경보다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재혁의 존재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보며 주연이 잔소리를 했고, 재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평소보다 많이 웃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끊겼다. 주연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재혁과 눈이 마주쳤다. 부드러운 조명이 감싸는 공간 속,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더 이상 서로에게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재혁의 눈빛은 깊고 뜨거웠다. 재혁의 시선이 주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천천히 그녀의 입술로 떨어졌다. 이성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재혁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주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 예상치 못한 밀착에 주연의 눈이 커다랗게 커졌다. 닿아온 입술 사이로 은은한 커피 향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입맞춤이었다. 처음에는 놀람에 굳어 있던 주연의 입술이, 재혁의 조심스러우면서도 다정한 터치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동안 차갑게 벽을 치던 재혁이 먼저 다가와 마음을 열어준다는 사실이 가슴 벅찬 감동으로 밀려와, 주연은 눈을 감은 채 그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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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사랑해서 더 아픈 마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주연은 불도 켜지 않은 채 한동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재혁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재혁이 철저하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둘 때, 그녀는 어떻게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먼저 다가가고 마음을 열려고 부단히 애를 썼었다. 하지만 막상 재혁이 그 선을 넘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주연이 느낀 것은 기쁨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싶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었다.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싫어서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혁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주연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조금 전 재혁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자신에게 다가오던 모습. 그리고 자신이 그를 밀어낸 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재혁에게 지금의 자신은 누구일까.’ 행복나무에서 만난 여자.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 여자.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여자. 주연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아내를 두고도 마음대로 선을 넘으려 하는 그의 모습은, 주연에게 깊은 자괴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 재혁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만약 지금처럼 마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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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복지센터 건너편 도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한 시간 가까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민성은 창밖으로 복지센터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팔에는 아직 단단한 깁스가 감겨 있었다 민성은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사과의 말을 연습했다. ‘그날은 내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딱딱했다. ‘당신을 무시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변명처럼 들렸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 말을 지혜가 믿어줄까. 민성은 답답한 듯 머리를 좌석에 기대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대는 게 아니었어. 미안하다고, 내 섣부른 행동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진심으로 사과하자. 마음을 다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머릿속으로는 백 번도 더 완벽하고 진중한 사과 문장을 완성했다. 하지만 막상 복지센터 유리문이 열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혜의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민성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고 입술은 바짝 말라붙었다. 준비했던 말들은 증발해 버린 것처럼 단 한 마디도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민성은 옆자리에 놓인 작은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꽃집 앞을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산 것이었다. 그런데 사고 나서 보니 이것마저 우스웠다. ‘이런 거 받는다고 풀릴 여자가 아닌데.’ 그는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때 복지센터의 자동문이 열렸다. 지혜는 센터 앞을 서성이는 민성을 발견하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빛에는 놀람 대신 차갑고 단호한 경계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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