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가 저택을 박차고 나온 진성의 가슴속에는 서늘한 분노와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평생을 자신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서늘한 눈빛, 그리고 자신이 집에 가면 갑자기 어색해지는 듯 한 집안의 분위기. 평생 자신의 눈치를 보는 새엄마 고미혜 여사, 엄마를 잃고 의지하던 이모를 엄마라고 하라던 아버지, 지금은 친엄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진성이지만 고미혜와 주연이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로 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진심으로 위로받을 곳도 집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가운 밤바람을 가르며 진성이 향한 곳은 서울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였다. 그곳에는 성유진이 있었다. 유진은 진성이 태산 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접근한 여자였다. 1년 전, 청담동의 회원제 고급 바에서 일하던 시절 그녀는 수많은 재벌가 자제들과 사장들을 상대해 보았다. 십 대 후반부터 화려한 유흥업계의 바닥을 전전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에게 남자란 다루기 쉬운 유희의 대상이자,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확실한 수단이었다. 젊은 날 청춘을 바쳐가며 수많은 남자를 상대했지만, 그들 중 진정으로 그녀의 인생을 책임져 주거나 결혼을 약속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그녀의 화려한 육체와 밤의 향락만을 소비하고는 헐값에 버려두듯 떠나갔을 뿐이다. 그 씁쓸한 배신과 상처 속에서 유진이 터득한 처세술은 명확했다. '남자는 결국 마음을 주는 게 아니라, 지갑과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녀는 탁월한 외모 관리와 모델 같은 늘씬한 몸매, 그리고 타고난 눈썰미로 남자의 심리를 꿰뚫는 데 능숙했다. 그런 유진의 앞에 나타난 이진성은 좋은 먹잇감이면서도, 동시에 철저하게 길들여야 할 대상이었다.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Last Updated : 2026-08-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