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주연의 아파트 거실은 불이 꺼진 채 고요했다.하지만 지혜의 방에서는 좀처럼 잠이 찾아오지 않았다.침대에 누운 지혜는 벌써 몇 번째 몸을 뒤척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눈을 감으면 낮의 일이 떠올랐다.차 안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민성.그리고 목적지를 알아차린 순간 느꼈던 당혹감과 분노.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사실이 가장 아팠다.이불속에서 지혜는 복잡하게 얽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원망했다.그동안 민성과 보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주연과 함께 넷이서 만났던 시간들 외에도, 민성은 불쑥불쑥 보육원 앞이나 센터로 찾아와 짓궂은 농담을 건네곤 했다. 겉으로는 늘 건들거리고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람둥이처럼 보였지만, 지혜의 눈에는 그 거친 태도 밑에 깊이 묻어 있는 외로움이 훤히 보였다.재혁이 가진 단단하고 반듯한 품격과는 또 다른, 세상의 모진풍파를 맨몸으로 맞으며 깎여나간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은 위태로움.이상하게도 민성을 볼 때마다 지혜의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어떤 감정들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평생을 보육원 이라는 울타리와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욕망과 외로움이, 그의 삐딱한 눈빛 앞에서 유독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곤 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다가올 줄이야.’슬픔을 넘어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로 아팠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하룻밤의 유흥 상대로 여겼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상처로 남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지혜의 가슴 한구석은 덜컥 내려앉았고, 당장이라도
Last Updated : 2026-08-2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