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은 한동안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자신이 이경환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절박했다. 박지민은 외동딸이었다. 아버지 박승찬은 평생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중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게 살았다. 촌지 한번 받지 않았고, 학교 물품 하나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지민에게도 늘 같은 말을 했다. “지민아, 사람이 돈보다 중요한 거다.” “네, 아빠.” “조금 부족하게 살아도 괜찮아. 대신 남한테 부끄럽게 살면 안 된다.” 어릴 때 지민은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가면서도 존경심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 성실하게 일했지만 아버지에게 남은 재산은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마저 잃을 위기가 찾아왔다. 오랜 친구의 부탁으로 선 보증 하나가 문제였다. 친구의 사업은 무너졌고, 당사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거액의 빚이 보증인인 박승찬에게 돌아왔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박승찬은 결국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그 돈의 주인이 이경환이었다. 지민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빠, 왜 그런 돈을 빌렸어!” 지민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큰소리를 냈다. 박승찬은 딸의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미안하다.” “미안한 게 문제가 아니잖아.” “집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민은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이 늙어서 자신이 살아온 집 하나를 지키
Last Updated : 2026-09-1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