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도성의 가장 높은 곳, 경회루의 궐루 위.조선의 앳된 왕 이도는, 겹겹이 두른 붉은 곤룡포 자락을 매서운 겨울바람에 펄럭이며 성벽 너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저 멀리 숭례문을 빠져나간 수만 명의 북방 토벌군.그들이 일으킨 거대한 흙먼지가 한양의 흐린 겨울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갔는가.”이도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아주 느릿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예, 전하. 섭정 진안대군을 필두로 한 토벌군의 본대가, 방금 전 도성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갔사옵니다.”이도의 등 뒤에 바짝 엎드려 있던 훈구파의 영수, 좌의정이 음흉한 미소를 감추며 대답했다.그 순간.“크흐…… 흐흐흐…… 하하하하!”이도의 입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기괴하고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궐루의 적막을 찢고 터져 나왔다.그것은 오랫동안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꼭두각시 왕의 억눌린 광기이자, 끔찍한 해방감의 표출이었다.“드디어…… 드디어 그 괴물 같은 아우 놈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구나!”이도는 궐루의 난간을 꽉 움켜쥐며 미친 듯이 실소했다.자신을 용상에 앉혀두고, 뒤에서는 조선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왕인 자신을 철저하게 능멸하고 짓밟았던 무소불위의 섭정, 이헌.그의 숨 막히는 권력 아래서, 이도는 매일 밤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 벌벌 떨어야만 했다.하지만 이제 그 괴물은 자신이 파놓은 완벽한 외통수의 함정에 빠져, 제 발로 그 끔찍한 북방의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갔다.“좌상. 그 오만하고 역겨운 아우 놈이, 살
Last Updated : 2026-10-0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