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대군의 후회: Chapter 311 - Chapter 320

403 Chapters

[308화] 사지로 향하는 길, 껍데기의 동행(3)

 이헌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그는 들고 온 무거운 군장과 두꺼운 털옷을, 서연의 하얀 버선발치에 조심스레, 애원하듯 내밀었다.“이게 무엇인지, 어찌하여 제게 오셨는지 묻지도 않으십니까.”“…….”서연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허공만을 향한 완벽하고 숨 막히는 묵묵부답.“내일 새벽. 저는 북방의 국경을 넘은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납니다. 궐의 어명이, 외통수의 교지가 떨어졌습니다.”이헌이 피를 토하듯 쉰 목소리로 절망적인 상황을 고했다.“제가 한양 도성을 비우는 순간…… 전하와 훈구파 놈들은 반드시 이 텅 빈 대군저를 늑대처럼 습격할 것입니다. 부인을 대역죄인의 여식이라 다시 엮어 관노로 끌고 가 끔찍하게 유린하거나,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은밀히 자객을 보내 옥체를 해하려 들 것이 완벽하게 분명합니다.”이헌의 목소리가 극도의 공포와 다급함으로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이 한양 도성은 이제 부인에게 가장 위험한 죽음의 사지입니다. 제가 곁에 없으면, 놈들의 더러운 칼날을 결코 피하실 수 없습니다.”이헌은 피투성이가 된 붕대 감은 두 손으로, 서연의 얇은 옥색 치맛자락 끝을 간절하고 다급하게 꽉 부여잡았다.“그러니 제발…… 제발 저와 함께 북방으로 떠나 주십시오.”“…….”“전쟁터가 비록 화살이 비처럼 빗발치고 피가 튀는 험한 지옥이라 하나, 차라리 그곳이 여기 한양보다 안전합니다. 내 두 눈앞에, 내 품 안에 계신다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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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화] 핏빛 북행(北行), 얼어붙은 침묵(1)

 “전군, 출정(出征)하라!”이헌의 낮고 거친 짐승 같은 호령이, 한양 도성의 매서운 아침 공기를 가르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며칠 뒤.섭정 진안대군 이헌이 직접 이끄는 수만 명의 북방 토벌군이, 마침내 그 거대하고 억센 핏빛 진용을 드러내며 숭례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만조백관과 수많은 백성들이 길가에 숨죽여 도열하여 그 장엄하고 살벌한 출정식을 지켜보았다.하지만 그 수많은 두려운 시선 중, 이헌의 무사 귀환과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대부분의 훈구파 대신들은, 이헌의 등 뒤에다 대고 겉으로는 조아리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저 끔찍하고 무자비한 폭군이 북방 오랑캐의 칼날에 목이 잘려 돌아오지 않기를' 처절하고 비열하게 저주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 거대한 군대의 출정식 행렬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묘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그것은 바로 군대의 가장 안전한 정중앙, 흑위대 정예 병력 수백 명이 물 샐 틈 없이 겹겹이 호위하고 있는 위치에 세워진. 거대하고 튼튼한 참나무로 특수 제작된 한 대의 육중한 검은 마차였다.“…….”그 덜컹거리는 어두운 마차 안에는.인간의 생기라곤 단 1푼도 남아있지 않은, 핏기 하나 없이 파랗게 질린 얼굴의 서연이 미동조차 없이 웅크려 앉아 있었다.가녀린 여인, 그것도 섭정의 정실부인을 화살이 빗발치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가장 끔찍한 사지(死地)인 북방 최전선으로 데려간다는 소식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었다.완벽히 미친 짓이라며 대신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며 만류했으나, 이헌은 대전에서 자신의 시퍼런 칼을 뽑아 그들의 목을 직접 겨누며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한양 도성을 벗어난 토벌군의 행군 속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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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화] 핏빛 북행(北行), 얼어붙은 침묵(2)

 물이라도 한 모금 넘겨야 합니다…… 제가 무영을 시켜 따뜻한 탕약을 정성껏 달여오라 하였으니, 제발 문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열어주십시오…… 제발 나를 피 말려 죽이지 마십시오…….”이헌이 마차 창살에 피투성이가 된 붕대 감은 두 손을 대고,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애원했다.하지만 마차의 두꺼운 빗장은 굳게 걸려 있었고, 서연은 벽을 향해 웅크려 돌아누운 채 단 한 치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 숨 막히고 뼈가 시리도록 잔혹한 완벽한 무시와 단절.이헌은 굳게 닫힌 마차 문밖에서 흑마의 고삐를 쥔 채, 자신의 썩어빠진 심장이 산 채로 뜯겨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다.자신을 향한 그녀의 그 싸늘하고 얼음장 같은 텅 빈 무관심이, 수만 개의 독화살이 되어 자신의 전신에 박혀 피투성이로 만드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는 감히 마차 문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갈 용기조차 없었다.자신이 억지로 문을 부수고 억압하는 순간, 그녀가 언제 치맛자락에서 은장도를 다시 꺼내 자신의 하얀 목을 무자비하게 찔러버릴지 모른다는 극도의 끔찍한 공포가. 이헌의 뇌수를 밧줄처럼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결국 이헌은 입술을 꽉 깨물어 피눈물을 꾹 삼키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선두로 말머리를 돌렸다.“행군을 계속하라…….”이헌은 찢어진 입술을 깨물며 묵묵히, 서연이 내리는 이 지옥 같은 침묵의 형벌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견뎌내면서 북쪽을 향해 핏빛 전진을 이어갔다.가혹한 행군이 칠 일째 접어들며, 평안도를 지나 북방의 험준하고 척박한 산악 지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겨울이 한양보다 훨씬 일찍, 그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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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화] 핏빛 북행(北行), 얼어붙은 침묵(3)

 그리고는 혹여라도 그 찰나에 매서운 찬 바람이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갈세라, 서둘러 문을 닫고 마차 문지방 앞의 차가운 눈밭에 그대로 짐승처럼 웅크려 앉았다.가장 매서운 칼날 같은 북풍 눈보라를, 자신의 거대한 등짝으로 전부 맞으며 완벽하게 막아내기 시작한 것이다.“서연아…… 나의 서연아.”이헌이 덜덜 떨리는 몸으로 마차 벽에 피투성이 얼굴을 파묻은 채 웅얼거렸다.“이제 따뜻합니까…… 부디 오늘 밤 얼어 죽지만 마십시오…… 내가 내 끓는 피를 태워서라도 널 완벽하게 지킬 것이니…… 제발 곁에 살아서 숨만 쉬어 주십시오…….”화로의 쇳덩이를 안느라 터져버린 그의 붕대 감은 두 손바닥의 깊은 자상.그리고 급하게 움직이느라 다시 터져버린 왼쪽 가슴팍의 깊은 칼자국 상처에서, 뜨거운 열기를 안은 탓에 다시금 시뻘건 핏물이 꿀럭거리며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핏물이 그의 옷을 적시고, 꽁꽁 얼어붙은 하얀 눈밭 흙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끔찍하게 적셨다.그 시각.칠흑처럼 캄캄하고 적막한 마차 안.서연은 겹겹이 쌓인 최고급 솜털 요 위에 짐승처럼 웅크린 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두 손을 부여잡고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뼛속까지 스며드는 북방의 무자비한 추위에 손발의 감각이 완벽하게 마비되어 가는 중이었다.이대로 조용히 숨이 끊어지고 얼어붙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가장 완벽한 복수이자 허무한 결말이라 생각하며 눈을 스르르 감으려던 찰나.덜컹.아주 좁게 열린 마차 문틈 사이로, 붉고 뜨거운 참숯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무거운 쇳덩이 화로 하나가 아주 조심스럽게 쑥, 들어왔다.화로에서 뿜어져 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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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화] 사냥개의 출정, 폭주의 시작(1)

 한양 도성의 가장 높은 곳, 경회루의 궐루 위.조선의 앳된 왕 이도는, 겹겹이 두른 붉은 곤룡포 자락을 매서운 겨울바람에 펄럭이며 성벽 너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저 멀리 숭례문을 빠져나간 수만 명의 북방 토벌군.그들이 일으킨 거대한 흙먼지가 한양의 흐린 겨울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갔는가.”이도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아주 느릿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예, 전하. 섭정 진안대군을 필두로 한 토벌군의 본대가, 방금 전 도성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갔사옵니다.”이도의 등 뒤에 바짝 엎드려 있던 훈구파의 영수, 좌의정이 음흉한 미소를 감추며 대답했다.그 순간.“크흐…… 흐흐흐…… 하하하하!”이도의 입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기괴하고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궐루의 적막을 찢고 터져 나왔다.그것은 오랫동안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꼭두각시 왕의 억눌린 광기이자, 끔찍한 해방감의 표출이었다.“드디어…… 드디어 그 괴물 같은 아우 놈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구나!”이도는 궐루의 난간을 꽉 움켜쥐며 미친 듯이 실소했다.자신을 용상에 앉혀두고, 뒤에서는 조선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왕인 자신을 철저하게 능멸하고 짓밟았던 무소불위의 섭정, 이헌.그의 숨 막히는 권력 아래서, 이도는 매일 밤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 벌벌 떨어야만 했다.하지만 이제 그 괴물은 자신이 파놓은 완벽한 외통수의 함정에 빠져, 제 발로 그 끔찍한 북방의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갔다.“좌상. 그 오만하고 역겨운 아우 놈이, 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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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화] 사냥개의 출정, 폭주의 시작(2)

 이헌은 갑자기 자신의 두꺼운 가죽 갑옷의 끈을 신경질적으로 풀어 헤치고, 눈밭 위로 거칠게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저, 전하! 지금 이 눈보라 속에서 무얼 하시는 것이옵니까!”곁을 따르던 무영과 병사들이 경악하며 말렸다.하지만 이헌은 가죽 갑옷에 이어, 매서운 추위를 막아주던 두꺼운 호랑이 털옷과 명주 비단 겉옷마저 미친 듯이 벗어 내던졌다.펄럭.그의 몸에는 오직, 피투성이가 된 얇은 하얀 적삼 단 한 벌만이 남았다.살이 터지고 뼈가 시린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겉옷을 모두 벗어 던진다는 것은 스스로 얼어 죽기를 자처하는 미친 짓이었다.“전하! 그리하시면 반나절도 못 가 옥체가 얼어붙어 붕어하시옵니다! 제발 옷을 입으시옵소서!”무영이 피눈물을 흘리며 말의 고삐를 잡고 엎드렸지만, 이헌은 발길질로 그를 무자비하게 걷어찼다.“닥쳐라! 내 목숨보다 귀한 부인이 얼음장 같은 마차 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나 혼자 짐승처럼 따뜻한 털옷을 입고 살아서 대체 무엇하겠느냐!”이헌은 덜덜 떨리는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이 방금 전까지 입고 있던 그 두꺼운 호랑이 털옷과 겉옷들을 뭉쳐 꽉 안았다.그리고는 굳게 닫힌 마차의 작은 문틈을 아주 살짝, 부서질까 두렵다는 듯 정말 조심스럽게 열었다.“서연아…….”이헌이 덜덜 떨리는 몸으로 마차 문틈 사이를 향해 처절하게 웅얼거렸다.“이거라도 덮으십시오…… 내 체온이 남아있으니 따뜻할 것입니다…… 제발, 제발 내 눈앞에서 얼어 죽지만 마십시오…….”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자신의 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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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화] 매복과 기습, 핏빛 절규(1)

 행군 보름째.이헌이 이끄는 수만 명의 토벌군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정면으로 온몸에 맞으며, 함경도의 가장 험준하고 가파른 산맥 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시계(視界)를 완벽하게 가리는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좁고 위험한 협곡의 산길을, 꽁꽁 얼어붙은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그리고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었다.“전하…… 횃불을 더 밝혀야 하옵니다. 산세가 너무도 험하고 눈보라가 심하여, 선두의 병사들이 자꾸만 낭떠러지로 발을 헛디디고 있사옵니다. 이대로면 전투도 하기 전에 낙사하는 자가 부지기수일 것이옵니다.”눈보라에 수염이 하얗게 꽁꽁 얼어붙은 흑위대장 무영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말을 몰아 이헌의 곁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보고했다.이헌은 가장 얇고 차가운 하얀 적삼 단 한 벌만 걸친 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몸으로 거대한 검은 흑마 위에서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서연을 위해 모든 방한구를 마차에 던져넣은 탓에 그의 입술은 이미 시체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하지만 그의 퀭하게 파이고 시뻘겋게 핏발 선 두 눈동자가, 시커먼 어둠이 짙게 내린 협곡의 양옆 능선을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예리하고 불길하게 훑어보았다. 무언가 직감한 짐승의 본능이었다.“아니. 당장 전군의 횃불을 모두 꺼라.”이헌의 서늘하고 낮은, 살기 어린 목소리가 매서운 칼바람을 날카롭게 갈랐다.“전하?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횃불마저 꺼버리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행군이 완벽하게 불가능하옵니다…….”“매복이다.”이헌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맹독을 가득 품은 독사처럼 무섭게 번뜩였다.“산짐승의 작은 숨소리나 발자국 소리조차 단 하나도 들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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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화] 매복과 기습, 핏빛 절규(2)

 가장얇은 하얀 적삼 하나만 걸친 그의 넓은 어깨와 팔뚝,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예리한 화살들이 살점을 푹푹 찢고 붉은 피를 사방으로 튀겼지만, 그에게는 육신의 고통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오직, 이 끔찍한 지옥 불 속에서 또다시 나를 구원해 준 유일한 그녀를 눈앞에서 잃을 수 없다는.송지안을 잃은 뒤 서연마저 잃을 수 없다는 뼈저린 공포와 살인마의 끔찍한 트라우마만이 그의 육신을 기괴한 괴력으로 짐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서연아! 서연아!”이헌은 이미 시뻘건 불기둥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마차의 굳게 닫힌 문을. 은장도에 썰려 뼈가 흉측하게 드러난 피투성이가 된 맨손으로 무자비하게 우악스럽게 뜯어내고, 짐승처럼 그 불타는 마차 안으로 자신의 거대한 몸을 훅, 던져 넣었다.그 시각, 맹렬하게 불타는 마차 안.서연은 며칠 동안 곡기를 완전히 끊은 탓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덜컹거리는 마차 바닥 구석에 짐승처럼 웅크려 있었다.갑작스럽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끔찍한 파공음과 병사들의 처절한 비명, 그리고 마차 외벽에 불화살이 수십 개가 박히며 뿜어져 나오는 매캐하고 시뻘건 연기에, 숨통이 조여와 질식할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이렇게…… 나의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서연은 숨이 턱턱 막혀오는 매캐한 핏빛 연기 속에서도, 살기 위해 밖으로 도망치려거나 발버둥 치려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차라리 이 뜨거운 전쟁터의 지옥 불길 속에서 이름 없는 시체가 되어 뼈도 남지 않고 재가 되어버린다면. 죽은 지안의 역겨운 대용품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이 수치스럽고 끔찍한 껍데기의 삶도 완벽하게 끝이 날 터였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될 터였다.그녀가 지독한 허무와 뼛속까지 시린 체념 속에서 아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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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화] 갈라진 진형, 사지로 뛰어든 뒷모습(1)

 “서연아! 고개 숙여라! 제발 눈 감아! 제발 내 품에서 살아만 다오!”시뻘건 불길이 미친 듯이 치솟아 오르는 좁은 참나무 마차 안.이헌의 피 토하는 핏빛 절규가, 폭음처럼 서연의 굳게 닫힌 귓가에 쾅쾅 무자비하게 울려 퍼졌다.그의 거대한 몸집이 서연의 가녀리고 파랗게 질린 체구를 완벽하게 덮어 외부로부터 완전히 보호하고 있었기에. 마차 밖에서 맹우(猛雨)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여진족의 시뻘건 불화살들은, 얇은 적삼 하나만 걸친 이헌의 넓은 어깨와 등짝에 쉴 새 없이, 무자비하게 푹푹 박히고 있었다.푹-! 퍼억! 서걱!“으윽……! 커헉!”또다시 날카로운 화살촉이 살을 뚫고 뼈에 끔찍하게 박히는 파공음이 들릴 때마다. 이헌의 찢어진 입에서는 뜨거운 검붉은 핏물이 왈칵왈칵 짐승처럼 쏟아져 나와, 서연의 하얀 옥색 치맛자락을 시뻘겋고 처참하게 적시고 있었다.“이헌…… 너…… 대체…….”기절 직전의 서연의 눈동자가, 극도의 혼란으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자신을 그저 살인마의 더러운 속죄 껍데기로 삼았던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내.그가 대체 왜 지금, 자신의 목숨을 한낱 짚신짝처럼 던져가며 이 끔찍한 지옥 불 속에서 나를 살리려 이토록 발악하는가.‘지안’이라는 자신이 죽인 망령의 이름이 결코 아니었다.이헌은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서연의 이름을 또렷이 부르며 목숨을 걸고 절규하고 있었다.단단하게, 영원히 굳게 닫혀있다고 믿었던. 완벽히 잿더미로 얼어붙었다고 믿었던 서연의 심장 벽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듯한 뜨겁고 맹렬한 균열이 빠지직, 하고 가기 시작했다.&ldqu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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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화] 갈라진 진형, 사지로 뛰어든 뒷모습(2)

 이헌은 쏟아지는 불화살을 검으로 쳐내며, 덜덜 떨며 막아서는 무영의 멱살을 피투성이 손으로 거칠게 틀어쥐었다.“똑똑히 들어라, 무영.”이헌의 쉰 목소리에는, 조선의 권력자로서의 오만함이나 위엄 따위는 전혀 없었다.오직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한 여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사내의 가장 처절하고 핏빛 어린 각오만이 서늘하게 서려 있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내 남은 목숨을 갈기갈기 찢어 바쳐서라도. 적들의 모든 시선과 불화살을 내가 이 앞으로 몽땅 끌어당길 것이다. 네놈들은 그 찰나의 틈을 타서 부인을 무조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무조건 살려서 후방으로 빼내라!”“전하……!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이리 뛰쳐나가시면 적들에게 포위되어 죽사옵니다!”“내 부인을 무사히 살려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본영으로 모시지 못하면!”이헌의 핏발 선 시뻘건 눈동자에서, 뜨거운 피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려 눈밭을 적셨다.“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놈의 목을 단칼에 쳐버릴 것이다! 알겠느냐!”그것은 지엄한 어명이나 명령이 결코 아니었다.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상의 유일한 빛인 여인을 제발 살려달라는. 한 사내의 피 끓는 유언이자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애원이었다.“전하아아악!”무영이 피눈물을 쏟으며 무릎 꿇고 절규했지만, 이헌은 매몰차게 마차를 등지고 몸을 홱 돌렸다.그는 바닥에 떨어져 타오르던 적군의 거대한 횃불 하나를 거칠게 집어 들고, 자신의 머리 위로 미친 듯이 빙빙 크게 휘두르기 시작했다.“이 오랑캐 버러지 새끼들아! 내 목을 원하느냐! 내가 바로 조선의 섭정이자 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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