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대군의 후회: Chapter 301 - Chapter 310

403 Chapters

[298화] 그림자의 오열, 완벽히 부서진 낙원(2)

 이헌이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서연의 처소 문지방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았지만, 훈련된 수십 명의 흑위대 병사들의 완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그는 손톱이 무참히 부러지고 시뻘건 핏물이 배어 나올 때까지 문지방을 박박 긁어대며.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꼴사나운 모습으로 마당 흙바닥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조선의 무소불위 섭정이 한 여인의 처소에서 개처럼 쫓겨나는 순간이었다.쾅-!그리고.이헌이 밖으로 비참하게 내쫓기는 그 찰나의 순간.병풍 너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서연이 튀어나와, 덜덜 떨리는 파란 두 손으로 무거운 나무 문을 쾅, 하고 잔혹하게 닫아버리고.가장 굵고 육중한 빗장을 단호하고 매몰차게 걸어 잠갔다.철컥.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대군저를 울렸다.“서연아! 문 열어! 제발 문 열어다오! 서연아아아!”마당으로 내팽개쳐진 이헌이 밖에서 닫힌 문을 미친 듯이 주먹으로 두드리며 피 토하듯 절규했다. 손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멈추지 않았다.하지만 서연은 그 굳게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맹독의 독한 연기가 가라앉고 칠흑 같은 어둠만이 무겁게 남은 처소의 차가운 바닥으로.아주 천천히, 모든 생명력을 잃은 인형처럼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적막.문밖에서 들려오는 이헌의 피맺힌 짐승 같은 절규만이 귓가를 무자비하게 때릴 뿐, 방 안은 끔찍하리만치 고요하고 차가웠다.자신은 이겼다.그 오만하고 짐승 같은 권력자의 가슴에,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핏빛 비수를 정통으로 꽂아 넣었고.그가 평생토록 껍데기인 자신에게 병적으로 매달려 구걸했던, 그 알량하고 역겨운 대리 속죄의 제단을 내 손으로 완벽하게 부수고 산산조각 내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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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화] 동귀어진(同歸於盡), 핏빛 구원(1)

 며칠째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빛 한 줄기,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그 완벽한 칠흑 같은 어둠과 고립 속에서, 서연은 짐승처럼 웅크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그녀의 몸은 이미 생존의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물 한 모금, 미음 한 숟갈조차 제대로 넘기지 않고 거부한 탓에 하얀 피부는 핏기를 잃어 시체처럼 투명할 지경이었고, 바닥을 짚은 얇은 손목은 금방이라도 툭 부러져 바스러질 듯 위태로웠다.하지만 육신을 갉아먹는 그 끔찍한 물리적인 고통 따위는, 산산조각 나버린 영혼의 비참함과 수치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나는 그저 죽은 망령을 담기 위한 빈 껍데기일 뿐이었다.'서연의 텅 빈 죽은 눈동자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산하고 서늘하게 번뜩였다.십 년의 관노비 생활을 악착같이 버텨온 그 치열했던 생존의 의지와, 최근 형조 옥사에서 끝내 모든 희망을 놓아버렸던 절망까지.이헌이라는 오만한 권력자의 그 알량하고 구역질 나는 '대리 속죄' 놀음 앞에서는 완벽하게 부정당하고 철저하게 능멸당했다.그는 자신이 옥상 벼랑 끝까지 몰아붙여 죽음으로 내몬 '지안'이라는 여자의 환영을 내게 덧씌웠다. 나를 안고, 내 숨소리에 기대어 안도하며 그 죽은 망령에게 용서를 구걸했다.내가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바쳤던 그 숭고한 사랑과 맹목적인 믿음은, 오직 정신병자 살인마의 끔찍한 고통을 잊게 해줄 가짜 '진통제' 역할로 비참하게 전락해 버린 것이다.'이 역겨운 대군저 지옥에서 온전히 살아서 나갈 방법은 영원히 없다.'서연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서늘한 헛숨이 새어 나왔다.그녀는 직감했다. 자신이 이 대군저의 높은 담장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서 나갈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걸.이헌은 자신의 유일한 속죄 도구인 이 껍데기가 부서져 사라질까 봐 두려워 발악하며, 대군저 안채를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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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화] 동귀어진(同歸於盡), 핏빛 구원(2)

 서연의 모래처럼 건조하고 텅 빈 목소리가 열린 문틈을 타고 마당으로 흘러나왔다.그 한마디에, 이헌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은 완벽하게 끊어지고 말았다.세상의 모든 것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형수에게 갑작스레 쏟아져 내린 찬란한 구원의 빛처럼.자신을 살인마 쓰레기라 혐오하고 징그럽다며 발로 걷어차 내쳤던 그녀가, 기어이 다시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자신을 방 안으로 허락해 주었다는 사실에. 이헌은 극도의 미친 황홀경에 빠져버렸다.“아아……! 부인! 나의 서연아!”이헌은 짐승처럼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방 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허겁지겁 들어섰다.그의 맹목적인 눈에는 방 안의 서늘하고 죽어있는 공기도, 서연의 눈빛 깊은 곳 심연에 똬리를 틀고 가라앉은 독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오직 자신의 살인죄를 용서해 주고 다시 곁을 내어준, 천사 같은 아내의 눈부신 자비만이 가득 찰 뿐이었다.“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이 못난 살인마를, 이 더러운 쓰레기를 영영 버리지 않아 주어서……!”이헌은 덜덜 떨리는 두 무릎을 꿇고 서연의 하얀 버선발 발치로 다가가 짐승처럼 엎드렸다.“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 옥사에서의 내 시작이 더럽고 비겁했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내 눈앞에 지안은 없다! 오직 조선의 서연, 온전한 당신뿐이다!”이헌이 눈물범벅인 얼굴을 쳐들고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맹세했다.“내 평생 당신의 발닦개 개가 되겠다! 당신의 완벽한 그림자가 되어, 당신의 옥체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도록 내 남은 평생을 다 바쳐 지킬 것이다! 그러니 제발, 두 번 다시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나를 내치지 마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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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화] 동귀어진(同歸於盡), 핏빛 구원(3)

 자신이 고통에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면 그녀가 놀라 다칠까 봐.자신의 거대한 상체를 서연 쪽으로 더 바짝, 멍청하고 미련할 정도로 깊숙이 들이밀며 밀착시켰다.마치 기꺼이 그녀의 분노 어린 칼날을 자신의 온몸과 심장으로 전부 받아내려는 짐승처럼.“커흑…… 콜록…… 컥.”이헌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어리가 꿀럭거리며 쏟아져 나와 턱과 관복을 시커멓게 적셨다.가슴을 꿰뚫린 끔찍한 고통에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그의 짐승 같은 호흡은 찢어질 듯 가빠졌다.그런데.자신과 함께 죽기 위해 칼을 꽂아 넣은 서연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이헌의 그 저항 없는 무방비한 수용이 아니었다.“하아…… 하아…….”이헌이 끓어오르는 피 섞인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찌른 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극심한 살을 찢는 고통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지만.그의 찢어진 입술 끝은, 도무지 믿을 수 없게도.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도 애달픈, 소름 끼치는 미소를 기괴하게 짓고 있었다.“……미친놈.”서연이 경악에 차 파랗게 질린 입술로 중얼거렸다.이헌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커다란 두 손을 허공으로 천천히 들어 올렸다.그리고는 자신의 가슴팍에 꽂힌 은장도 손잡이를 꽉 쥐고 파르르 떨고 있는, 서연의 하얗고 얇은 두 손을.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운 보물을 감싸듯, 자신의 핏물 젖은 손으로 크고 따뜻하게 겹쳐 쥐었다.“서…… 연아.”“이거 놔! 징그러운 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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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화] 핏빛 절규, 완전히 닫힌 마음(1)

 “주저하지 마라…… 더 깊이 찔러라. 내 더러운 심장이 터져버리도록 더 깊숙이 찔러, 내 비참한 숨통을 당장 완벽하게 끊어주십시오…….”은장도의 서늘한 칼날이 가슴뼈를 긁고 심장을 향해 파고드는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이헌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며, 서연의 하얀 손을 자신의 커다란 두 손으로 겹쳐 쥐고 애달프게 미소 짓고 있었다.그의 핏발 선 시뻘건 눈동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자신을 찌른 서연을 향한 원망 따위는 단 1푼도 존재하지 않았다.오직 자신이 평생을 짊어져야 할 그 끔찍한 살인마의 죗값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의 손에 의해 직접 심판받고 있다는 비참한 안도감.그 지독하고 병적인 피학(被虐)의 쾌감만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기괴하게 채우고 있었다.“…….”서연은 자신의 손을 겹쳐 쥐고, 스스로 칼날을 더 깊이 쑤셔 넣으려 발악하는 이헌의 그 비틀린 광기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자신을 죽이려는 이 순간조차.자신의 심장에 칼이 박히는 이 처참한 찰나조차도.저 미치광이 사내는, 이것을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지안’에게 바치는 완벽한 속죄의 기회이자 달콤한 구원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미친놈.’서연의 파랗게 질린 입술이 파르르, 통제할 수 없이 떨려왔다.동귀어진을 결심했다. 내 손으로 저 살인마의 심장을 찢어발기고, 나 역시 이 구역질 나는 껍데기의 삶을 끝내려 했다.가장 잔혹한 복수를 위해 칼을 들었건만.저 사내는 내가 내리는 그 죽음의 형벌조차, 자신의 더러운 죄책감을 씻어낼 제단으로 비틀어 수용하고 있었다.내가 이대로 그의 심장을 찔러 숨통을 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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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화] 핏빛 절규, 완전히 닫힌 마음(2)

 서연이 경악하며 칼자루를 쥔 손을 비틀어 빼내려 했지만, 이헌의 악력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집요했다.그녀가 칼을 빼내려 힘을 줄수록, 이헌의 손바닥에서는 끔찍하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서어억, 서걱.칼날이 이헌의 두꺼운 손바닥 살점을 무자비하게 파고들며 썰어버리는 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찢었다.맨손으로 시퍼런 칼날을 틀어쥔 탓에, 그의 손바닥 피부와 근육이 끔찍하게 찢어지고 갈라졌다.“아아…… 미친놈아…… 당장 놓으란 말이다……!”서연의 파란 입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이헌의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시뻘건 핏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며, 은장도의 칼자루를 타고 서연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칼날이 너무도 깊숙이 살을 파고든 나머지, 벌어진 붉은 살점 사이로 그의 하얀 손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지경이었다.그야말로 뼈가 깎이고 살이 도려내 지는 극도의 참혹한 고통.하지만.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이헌은 결코 칼날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뼈가 부서져라 더욱 꽉 틀어쥐며, 서연의 칼끝이 그녀의 목덜미로 단 1촌도 다가가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하아…… 하아…… 안 됩니다…… 부인…… 제발…….”이헌의 핏발 선 시뻘건 눈동자에서 굵은 공포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그는 뼈가 드러난 손으로 칼날을 틀어쥔 채, 그대로 서연의 발밑에 털썩, 비참하게 무릎을 꿇었다.“제발…… 제발 이것만은 아니 됩니다…&hellip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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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화] 완벽한 단절, 사지로 내모는 교지(1)

 은장도 사건의 그 끔찍하고 참혹했던 핏빛 밤이 지난 이후.대군저 안채는 사람의 온기라곤 단 1푼도, 단 한 점도 느낄 수 없는. 마치 살아있는 자들의 거대한 무덤처럼, 완벽한 죽음의 고요와 뼈 시린 적막 속에 끝없이 잠겨들었다.서연은 스스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굳게 닫아걸어 버렸다.그녀는 이헌과의 일말의 소통조차 잔인하고 철저하게 끊어냈다.이헌이 덜덜 떨리는 핏물 젖은 손으로 문밖에서 밤새도록 애원하며 건네는 따뜻한 밥상도, 지밀상궁이 눈물을 훔치며 조심스레 밀어 넣는 맑은 미음과 탕약도. 서연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단 한 방울의 물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를 거부했다.“…….”그녀는 그저 아무런 장식도 없는 텅 빈 벽에 등을 기댄 채.창호지 너머로 아주 느리게 비치는 흐릿한 햇살의 이동만을, 마치 혼백이 빠져나간 몽유병자처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자살하는 것조차 미치광이 사내에게 철저히 감시받고 통제당하는 이 숨 막히는 대군저 감옥 안에서. 그녀가 저 살인마 사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끔찍한 복수는, 스스로 곡기를 완전히 끊어 자신의 육신을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말려 죽이는 것뿐이었다.분노도, 원망도, 슬픔도, 심지어 절망감조차 모두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살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얇은 육신으로, 그녀는 마치 생명력을 완전히 잃고 그저 기계적으로 맥박만 뛰는 비참한 ‘목각인형’처럼. 자신의 영혼과 모든 인간의 감정을 완벽히 지워버렸다.“부, 부인…… 서연아…… 제발 식사를 조금이라도…….”그날 밤.안채 마당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있었다.이헌은 굳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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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화] 완벽한 단절, 사지로 내모는 교지(2)

 “전하! 당장 대규모 토벌군을 파병하여 북방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섬멸해야 하옵니다!”“적의 기세가 너무도 흉흉하고 심상치 않사옵니다! 훈련된 정예병과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도원수(초정 사령관)를 파견하지 않으면, 평양성마저 순식간에 불타 함락될 것이옵니다!”대신들이 핏대를 세우며 피를 토하듯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최근 이헌의 무자비한 권력 탄압에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리며 웅크려 있던 훈구파 잔당들의 우두머리, 좌의정의 두 눈동자에 소름 끼치고 예리한 맹독사가 번뜩이기 시작했다.‘거대한 북방의 전쟁이라…… 참으로 하늘이 내게 내린 완벽하고 절호의 기회로구나.’좌의정은 속으로 기괴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용상에 앉아 사색이 된 왕 이도와 은밀하게 뱀 같은 시선을 교환했다.왕 이도 역시, 바들바들 떨던 손을 멈추고 좌의정의 그 서늘한 눈빛이 담은 숨은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지금 조선 조정을 공포로 장악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섭정, 진안대군 이헌.그를 이 궐 안에서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의 흑위대는 너무도 강력했고, 그의 권력은 왕인 자신조차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자비하고 압도적이었으니까.하지만.그를 저 멀리, 피가 튀고 칼날이 난무하는 가장 위험한 최전선의 전쟁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지(死地)의 한가운데로 합법적으로 내몰아버린다면 어찌 되겠는가?그가 전장에서 눈먼 적의 화살에 맞아 뒈지든, 오랑캐의 칼에 베여 죽든, 그것은 섭정을 합법적이고 명분 있게 제거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가장 완벽하고 절호의 기회였다.“전하.”좌의정이 아주 무겁고 엄숙한 충신의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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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화] 사지로 향하는 길, 껍데기의 동행(1)

 “전하의 지엄하신 교지이옵니다! 섭정이신 진안대군께서는 당장 어명을 받드시오!”한밤중, 죽은 듯이 고요하던 대군저의 적막을 날카롭게 찢고 당도한 궐의 다급한 파발.시뻘건 옥새가 무겁게 찍힌 누런 교지를 두 손에 치켜들고 온 승지의 앙칼진 목소리가, 차가운 마당의 공기를 매섭게 울렸다.은장도의 시퍼런 칼날을 맨손으로 미친 듯이 꽉 쥐었던 탓에 하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손.피투성이가 된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 문밖 흙바닥에 짐승처럼 엎드려 밤새 피눈물로 오열하던 이헌이. 승지의 부름에 비틀거리며 처참한 몰골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그의 퀭하게 파이고 시뻘겋게 핏발 선 두 눈이, 승지가 내민 교지를 향해 독사처럼 서늘하게 향했다.“이 야심한 밤중에, 내게 교지라.”이헌은 찢어진 입술을 달싹이며 갈라진 쇳소리를 내며 뚜벅뚜벅 걸어가, 승지의 떨리는 손에서 그 교지를 거칠고 무자비하게 낚아채어 홱 펼쳤다.『북방의 오랑캐 여진족이 압록강을 무참히 넘어 도성과 사직을 위협하고 있으니.조선의 안위와 군사를 책임지는 섭정, 진안대군 이헌을 당장 북방 토벌군의 최고 도원수로 임명하노라.섭정은 당장 내일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정예군을 이끌고 최전선 사지로 출정하여 오랑캐의 목을 베어 백성을 구하라.』교지에 적힌 그 끔찍하고 기만적인, 얄팍한 명분이 덕지덕지 발린 문장들을 차가운 눈으로 읽어 내려가던 이헌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기괴하고 잔혹하게 비틀려 올라갔다.“하, 하하…… 참으로 얄팍하고 역겨운 수작이로군. 감히 내게 이런 얕은 함정을 파다니.”“저, 전하……! 어찌 지엄하신 어명 앞에서 이리 불경한 실소를&hell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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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화] 사지로 향하는 길, 껍데기의 동행(2)

 어느 쪽을 선택하든 완벽한 파멸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피할 수 없고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끔찍한 ‘외통수’의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흐으…… 하하하! 아하하하!”이헌은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친 사람처럼 기괴하게 실소를 터뜨렸다.자신의 그 오만하고 비겁했던 과거의 더러운 업보들이, 이제는 완벽한 살인마의 덫이 되어 하나둘씩 자신의 목통을 끔찍하게 조여오고 있었다.“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출정할 것이다. 흑위대는 당장 전군 출정 준비를 서둘러라.”“저, 전하……! 진정 피바람 부는 그 사지로 들어가시려 하옵니까!”이헌은 무영의 만류에 대답하는 대신, 몸을 홱 돌려 서연의 처소가 있는 고요한 안채 쪽을 핏발 선 눈으로 짐승처럼 바라보았다.그의 눈동자 속에는 전장에서 오랑캐의 칼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는 단 1푼, 단 한 조각도 없었다.대신, 뼈를 녹여버릴 듯한 극도의 끔찍한 공포가 시퍼렇게 번뜩이고 있었다.그 거대한 공포의 근원은 오직 하나였다.‘내가 이 한양을 비우는 순간.’이헌의 심장이 덜컥, 하고 천 길 낭떠러지 발밑으로 처참하게 곤두박질쳤다.‘왕과 훈구파 놈들은 당장 이 텅 빈 대군저를 굶주린 짐승처럼 습격할 것이다.’그들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진짜 숨은 이유.자신이 전장에서 오랑캐들과 피를 흘리며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자신의 가장 치명적이고 유일한 약점인 안채의 서연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자신이 평생을 걸고 미치도록 집착했던 고결한 여자.자신이 대역죄인의 여식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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