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꿇어라.”매서운 북풍이 잦아들고, 흐린 구름 사이로 한 줄기 창백한 겨울 햇살이 쏟아져 내리던 압록강 이남의 거대한 토벌군 본영.수만 명의 조선군과 수만 명의 여진족 병사들이 둥그렇게 에워싼 그 살얼음판 같은 진영의 한가운데서, 이헌의 묵직하고도 지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털썩-!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불과 며칠 전까지 조선의 심장부를 향해 시퍼런 칼을 겨누었던 여진족의 최고 수장 야루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눈밭 위로 두 무릎을 꿇었다.그의 등 뒤로 도열해 있던 수천 명의 여진족 장수들과 전사들 역시, 자신들의 수장을 따라 일제히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야루.”이헌이 칠흑 같은 갑옷을 입고 단상 위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 야루의 눈앞에 섰다.그의 손에는 낡고 거친 오랑캐의 시미터가 아니라, 조선 무관을 상징하는 시퍼렇고 정교하게 벼려진 환도(環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네놈이 피로써 바친 항복의 맹세와, 이 조선에 영구히 귀속하겠다는 그 약조를 내 섭정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겠다.”이헌이 환도를 야루의 어깨 위로 툭, 하고 가볍게 얹으며 선언했다.“오늘 이 시간부로 너는 더 이상 국경 밖을 떠도는 야만적인 오랑캐의 수장이 아니다.위대한 대명천지 조선의 무관(武官)이자, 나 도원수 이헌의 명을 받드는 직속 부장(副將)이다! 내 너에게 조선의 관직과 이 검을 하사할 것이니, 평생토록 압록강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짖어라!”“망극하옵니다……! 대군 마마의 하해와 같은 은혜, 뼛속 깊이 새기겠사옵니다!”야루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치켜들어, 이헌이 하사한 조선의 환
Last Updated : 2026-10-1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