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대군의 후회: Chapter 381 - Chapter 390

403 Chapters

[377화] 백성의 피를 거부한 군주, 지략가의 맹세(1)

 “……들었는가. 진격이 멈췄다네.”상처 입은 충신들이 머물고 있는 후방의 임시 치료 막사 안.독한 약초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인 좁은 공간 속에서, 홍문관 수찬 김태윤이 넋이 나간 듯한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의 온몸에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상처들은 여전히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뿜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김태윤과 신진 실학파 관료들을 진정으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육신의 상처가 아니었다.“도원수 마마께서…… 무장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진군을 보류하셨다 들었네.”곁에 누워있던 다른 관료가 쩍쩍 갈라진 입술을 달싹이며, 눈시울을 붉혔다.“우리가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 궐을 치게 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전화(戰火)에 휘말려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 하셨다네. 권력을 되찾자고 백성의 피를 밟고 지나가면, 저 궐 안의 썩은 짐승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그리 자조하셨다 하네.”그 말을 전해 듣는 신진 관료들의 두 눈에서, 굵고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아아…… 전하……!”김태윤이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흐느꼈다.과거, 자신들이 모시던 섭정 이헌은 어떤 사내였던가.정적을 숙청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반대파의 목을 쳐서 사거리에 매다는 것을 주저하지 않던 가장 무자비한 폭군이었다.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권력과 율법의 잣대만을 들이밀던 그 차갑고 잔혹했던 사내가.이 험준한 북방의 사선에서 수만 명의 군사들과 생사를 넘나들더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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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화] 백성의 피를 거부한 군주, 지략가의 맹세(2)

 꽁꽁 얼어붙을 만큼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서연이 이헌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나직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이렇게 옥체를 돌보지 않고 몸을 축내시면, 십만 명의 군사들은 대체 누구를 믿고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간단 말입니까.”그것은 단순한 타박이 아니었다.홀로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려 발버둥 치는 이 미련하고 안쓰러운 남편을 향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깊은 위로의 손길이었다.이헌은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서연의 작고 하얀 두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겹쳐 꽉 쥐었다.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을 애틋하게 올려다보는 서연의 맑고 파란 눈동자를 깊숙이 마주 보았다.“서연아.”이헌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천하를 호령하고 오랑캐 수장을 벌벌 떨게 만들던 그 잔혹했던 폭군이, 오직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고통스러운 짐승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내가…… 내가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소.”이헌이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서연의 손을 부서질 듯 꽉 움켜쥐며, 갈라진 쇳소리로 피 토하듯 뼈저린 진심을 토로하기 시작했다.“저 썩어빠진 궐 안의 쥐새끼들을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어, 온몸의 핏물이 거꾸로 솟구치고 역류하는 듯하오.당신을 사지로 내몰고 내 충신들의 살점을 인두로 지진 그 개새끼들을 생각하면, 당장 오늘 밤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도성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싶소.”이헌의 목소리에 처절한 분노와 절망이 함께 뒤엉켜 흘렀다.“하지만…….”이헌이 붉어진 눈으로 허공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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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화] 뱀소굴을 삼킬 거대한 덫, 진정한 국모(國母)(1)

 깊고 고요한 새벽.수만 명의 숨소리만이 낮게 깔린 십만 토벌군의 거대한 마지막 야영지.중앙 지휘 막사 안에는, 무력 충돌과 내전에 대한 끔찍한 고뇌로 밤새 뜬눈을 지새우던 이헌이. 마침내 지독한 피로와 상처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깊고 무거운 수마(睡魔)에 빠져들어 있었다.“…….”서연은 두꺼운 털 이불을 끌어당겨,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이헌의 넓은 어깨 위로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잠든 와중에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거칠게 숨을 내쉬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서연의 파란 눈동자에, 애틋함과 동시에 서릿발 같은 냉혹한 결의가 스치고 지나갔다.‘당신은 백성을 위해 칼을 거두고, 온전히 맑고 깨끗한 성군(聖君)으로 남으십시오.’서연이 이헌의 굳은살 박인 커다란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이불속으로 넣어주며, 속으로 뼈를 깎듯 다짐했다.‘당신의 그 숭고한 짐을 대신하여…… 저 썩어빠진 한양의 쥐새끼들을 찢어 죽이고 피를 묻히는 더러운 모략은, 오직 내 몫입니다.’스르륵.서연은 행여나 이헌이 깰세라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아주 조용히,마치 어둠 속에 스며드는 뱀처럼 군막의 두꺼운 가죽 천을 걷어 올리고 밖으로 빠져나왔다.휘이잉-!막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늦봄의 서늘한 밤바람이 서연의 붉은 당의 자락을 세차게 흩날렸다.그녀의 앞에는, 피 묻은 대검을 쥐고 은밀하게 대기하고 있던 흑위대장 무영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부인 마마. 하명하신 대로 흑위대의 눈을 피해, 홍문관 수찬 김태윤을 비롯한 신진 실학파 관료들의 핵심 인물 다섯 명을. 마마의 개인 군막으로 아주 은밀하게 따로 호출하여 대령해 두었사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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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화] 뱀소굴을 삼킬 거대한 덫, 진정한 국모(國母)(2)

 “마, 마마……! 저희의 썩은 목숨과 알량한 지혜 따위, 마마의 발밑에 기꺼이 모두 바치겠사옵니다!”김태윤을 비롯한 관료들은, 이 압도적인 지략가이자 진정한 안주인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짓눌려.이제 그녀를 단순한 대군의 부인이 아니라, 이 썩어빠진 조선을 구원할 ‘진정한 국모(國母)’로 대우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이마를 맞대기 시작했다.“좋다. 그렇다면 먼저 묻지.”서연이 탁자 위의 한양 도성 지도를 가리켰다.“왕 이도가 준비한 그 거짓 연회. 도성 밖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척하며 무장 해제를 시키려는 그 비열한 함정을 역이용할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한 관료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마마! 놈들은 철저히 민심을 기만하여, 백성들에게는 왕이 승전군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것처럼 꾸밀 것이옵니다.그렇다면…… 우리가 도성에 도착하기 전에, 한양의 저잣거리와 사대문 밖의 모든 백성들을 그 연회장 주변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게 만들어야 하옵니다!”김태윤이 맞장구를 치며 무릎을 탁, 쳤다.“그렇사옵니다! 무영 대장께서 파견한 흑위대 정보원들을 풀어!섭정 마마께서 오랑캐를 무릎 꿇리고, 수만 석의 구휼미와 은자를 가득 싣고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귀환하신다는 소문을 융단폭격하듯 퍼뜨리는 것이옵니다!굶주린 십만 명의 도성 백성들이 구휼미를 받겠다고 도성 밖 연회장으로 짐승처럼 몰려나와 인산인해를 이룬다면!”“왕 이도와 금군은 감히 십만 명의 백성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그 대낮의 백주 한가운데서, 승전군을 향해 화살을 쏘거나 함정을 발동시킬 수 없게 됩니다!”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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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화] 구밀복검(口蜜腹劍), 거대한 덫의 설계(1)

 은밀하게 소집된 서연의 개인 군막 안.바깥은 십만 명의 군사들이 며칠간의 강행군에 지쳐 곯아떨어진 채 깊은 적막에 잠겨 있었지만.작은 촛불 하나만이 위태롭게 일렁이는 이 좁고 어두운 천막 안의 공기는,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살인적인 활시위처럼 터질 듯한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마, 마마! 훈구파 놈들이 파놓은 그 무장 해제의 비열한 함정을 돌파하고, 궐을 피 한 방울 없이 장악할 방법이…… 정녕 있다는 말씀이시옵니까?”상처투성이인 홍문관 수찬 김태윤이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절박하게 물었다.그를 비롯한 네 명의 신진 실학파 핵심 관료들은, 방금 전 서연이 서늘하게 입에 올렸던 ‘거대한 정치적 덫’이라는 그 한마디에 완전히 홀린 듯. 숨소리마저 죽이고 오직 그녀의 파란 입술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렇다.”서연이 아주 짧고,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대답했다.그녀가 입고 있는 붉은 당의가 일렁이는 촛불에 비쳐, 마치 수만 명의 피를 뒤집어쓴 핏빛처럼 섬뜩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내가 이 깊은 새벽, 모두의 눈을 속이고 자네들만을 따로 부른 이유는 단 하나다.내일 도성 성문에 입성하는 그 찰나의 순간부터, 우리는 철저하게 겉으로는 무력하고 힘없는, 완벽하게 순종적인 사냥감의 모습을 연기할 것이다.그리하여 적들의 방심을 유도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등 뒤로 비수를 꽂아 퇴로를 끊는 치밀한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계략을 쓸 것이다.”“구밀복검…… 입에는 달콤한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시퍼런 칼을 품는다는 그 말씀이시옵니까.”김태윤이 바싹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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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화] 구밀복검(口蜜腹劍), 거대한 덫의 설계(2)

 자신들이 퍼뜨린 거짓 패전 소문이 진짜였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승리에 도취해 미친 듯이 술을 마시며 환호하겠지.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서연이 탁자를 향해 몸을 쑥 내밀며, 숨 막히는 팩트를 놈들의 뇌리에 꽂아 넣었다.“우리의 군대가 완벽하게 사라진다면, 십만 대군을 잃은 섭정은 더 이상 궐 안의 훈구파들에게 두려운 호랑이가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다.놈들은 완벽하게 안도하며, 자신들이 잔뜩 곤두세워두었던 무장 해제의 덫과 그 삼엄했던 경계망을 아주 스스로, 그리고 오만방자하게 스르륵 허물고 풀어버릴 것이다.”“……!!”관료들의 동공이 일순간 미친 듯이 지진이 난 것처럼 확장되었다.“적이 쳐놓은 가장 치명적인 함정을 무너뜨리는 최고의 방법은. 적 스스로 그 함정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완벽하게 오판하게 만드는 것이다.우리의 거대한 무력이 놈들의 눈앞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순간, 훈구파 놈들의 뇌릿속에는 ‘오만함’과 ‘방심’이라는 가장 끔찍하고 달콤한 독약이 서서히 퍼지게 될 것이지.”서연의 치밀하고도 소름 끼치는 핏빛 심리전.적의 공포를 오만함으로 뒤바꿔버리고, 스스로 함정을 거두어 무덤을 파게 만드는 그 잔혹한 발상의 전환에.반발하며 읍소하려던 관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입을 떡 벌리고 서연의 붉은 입술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하오나 마마.”김태윤이 바싹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을 담아 물었다.“마마의 그 놀라운 지략대로 적의 방심을 완벽하게 유도한다 치더라도……결국 한양 궐 안으로 직접 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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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화] 약자의 가장 서늘한 무기, 명분의 직조(1)

 서연의 그 파격적이고 소름 끼치는 선언."조선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껍데기만 남은 처참한 핏덩이 패잔병의 모습으로 도성에 기어 들어갈 것이다."그 단 한마디가 좁고 어두운 개인 군막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자.숨소리조차 죽이고 서연의 입술만을 바라보던 네 명의 신진 실학파 관료들은, 마치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아연실색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마, 마마! 그게 대체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이시옵니까……!”홍문관 수찬 김태윤이 덜덜 떨리는 피투성이 손으로 차가운 흙바닥을 짚으며, 사색이 되어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읍소했다.“저희가 이 안에서 아무리 치밀하고 영악한 덫을 짠다고 한들, 그것은 모두 도성 안의 수많은 백성들과 그들의 열광적인 여론을 등에 단단히 업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옵니다!하오나 방금 마마의 말씀대로, 십만 대군을 모조리 저 척박한 북방으로 돌려보내고.마마와 섭정 전하께서 십만의 호위 병력조차 없이, 그저 상처투성이 패잔병의 몰골로 도성에 입성하신다면……!그것은 우리가 덫을 놓아 놈들을 사냥하기도 전에, 오히려 놈들이 쳐놓은 뱀소굴 한가운데로 우리 스스로 목을 길게 빼고 무방비 상태로 기어 들어가는 꼴이 아니옵니까!”김태윤의 피 토하는 듯한 절규에, 곁에 엎드려 있던 다른 관료들 역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하나같이 피를 토하듯 서연의 끔찍한 결정을 극구 만류했다.“태윤의 말이 백번 천 번 지당하옵니다, 마마!우리가 아무리 훈구파 놈들의 방심을 교묘하게 유도한다 한들, 최소한 놈들의 갑작스러운 금군 기습을 막아낼 수천의 정예 병력은 전하 곁에 반드시 두어야만 하옵니다!어찌 그 끔찍한 뱀소굴에, 아무런 무력의 방패 하나 없이 맨몸으로 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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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화] 약자의 가장 서늘한 무기, 명분의 직조(2)

 서연이 두 손을 쫙 벌리며, 끔찍하고도 완벽한 정치적 무대 연출의 그림을 허공에 잔혹하게 그렸다.“아무것도 모르는 도성 백성들의 두 눈에는 그 끔찍한 몰골이 대체 어떻게 보이겠는가?백성들은 피투성이가 된 섭정이, 궐을 차지하기 위해 권력을 탐하는 잔혹한 역도(逆徒)로 보이겠는가?아니. 결코 아니다. 절대 그리 보지 않는다.그들의 눈에는 섭정이 북방의 짐승 같은 오랑캐들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목숨 걸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군대와 살과 뼈를 몽땅 갈아 넣고 비참하게 찢겨 돌아온.가장 불쌍하고 처절한 ‘조선의 위대한 영웅이자 억울한 희생양’으로 완벽하게 각인되어 보일 것이다!”“……!!”관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서연이 혀끝으로 짜놓은 이 끔찍하고도 완벽한 심리전의 덫.자신들의 무력을 버리고 스스로 가장 비참한 약자의 탈을 뒤집어써, 백성들의 연민과 숭고한 여론을 완벽한 방패로 삼겠다는 그 잔혹한 발상에.그들은 온몸에 닭살이 돋고 뼈가 시려오는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서연이 탁자 앞의 김태윤을 향해 홱 고개를 돌리며, 악귀처럼 잔혹하고도 뇌쇄적인 미소를 지었다.“우리가 상이군인들만 이끌고 비참하게 입성할 때, 저들이 칼을 들이대면 그것은 훈구파 스스로 명분을 찢어발기는 자충수가 될 것입니다.”서연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핏빛 용암처럼 뜨겁고 소름 돋게 막사 안을 울려 퍼졌다.“나라를 목숨 걸고 지키다 팔다리가 잘린 불쌍한 영웅들을 향해, 따뜻한 밥 대신 시퍼런 칼을 들이대는 썩어빠진 조정!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는 그 찰나의 순간, 한양 도성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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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화] 성군의 연기, 발밑에 스며드는 독(1)

 새벽의 찬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중앙 지휘 막사 안.이헌은 거친 숨을 내쉬며 상석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백성을 향한 거대한 책임감과, 훈구파를 향한 끓어오르는 복수심 사이에서 찢기듯 고뇌하던 그였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막사의 두꺼운 가죽 천이 스르륵 걷히며, 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붉은 당의를 입은 서연이 소리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서연아.”이헌이 핏발 선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딜 다녀오는 길이오. 당신이 곁에 없으니 이 끔찍한 고뇌가 다시 짐승처럼 내 목을 조르더군.”서연은 말없이 다가와, 굳어 있는 이헌의 맞은편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녀의 투명하고 파란 눈동자는 평소 그를 다정하게 위로하던 아내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감정을 차갑게 얼려버린, 가장 냉혹하고 날카로운 책사(策士)의 눈빛이었다.“전하.”서연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전하께서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고뇌하시는 동안, 저는 궐 안의 쥐새끼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릴 덫을 짜고 왔습니다.”“덫이라니?”“예. 무고한 백성의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면서도, 훈구파 놈들의 숨통을 가장 완벽하고 합법적으로 끊어버릴 치명적인 계략 말입니다.”이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시가전을 벌이지 않고 궐을 장악할 방법이 정녕 있단 말인가. 그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며 서연 쪽으로 상체를 훅 기울였다.“말해 보시오. 대체 무슨 계략이오.”서연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방금 전 신진 관료들과 은밀하게 수립했던 ‘구밀복검(口蜜腹劍)’의 핏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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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화] 성군의 연기, 발밑에 스며드는 독(2)

 자신이 평생을 정치판에서 구르고 피를 묻혀왔지만, 눈앞의 이 여인이 내뿜는 압도적인 정치적 식견과 통찰 앞에서는 그저 한낱 투박한 무장(武將)에 불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제가 다 짜놓았습니다, 전하.”서연이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굳어 있는 이헌의 거친 손을 꽉 맞잡았다.“전하께서는 그저 저 썩어빠진 도성에 들어가셔서, 딱 한 가지만 완벽하게 연기해 주시면 됩니다.”“연기라니…….”“예.”서연의 파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뇌쇄적으로 번뜩였다.“분노로 길길이 날뛰며 칼을 휘두르는 잔혹한 폭군의 모습은 잊으십시오.당신은 오직 백성들 앞에서, 나라를 위해 피와 뼈를 바쳤으나 역적들에게 내쳐지고 핍박받는…… 가장 불쌍하고, 가장 ‘자애롭고 억울한 성군’의 연기만 하시면 됩니다.”자애롭고 억울한 성군.그것이 서연이 이헌에게 씌워준 가장 날카롭고 완벽한 정치적 탈이었다.적들에게는 비참한 사냥감으로 보이되, 백성들에게는 지켜주어야 할 숭고한 영웅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만전술.“그 연기 하나로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신다면.놈들의 썩은 목줄에 올가미를 걸어 교수대로 끌어당기는 더러운 일은, 온전히 제가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서연의 그 핏빛 다독임에, 이헌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헛웃음 같은 탄성을 터뜨렸다.그것은 완벽한 항복이자, 자신의 아내에 대한 숨 막히는 감탄이었다.“하하…… 하하하하!”이헌은 짐승처럼 앓던 고뇌를 완전히 벗어던진 채, 서연의 가녀린 두 어깨를 큰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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