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회귀한 대군의 후회: Capítulo 71 - Capítul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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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금기를 벼리는 밤(1)

 대군저의 집무실, 취선당(聚仙堂)의 밤은 꺼지지 않는 촛불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책상 위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하여 『대명률(大明律)』, 그리고 형조의 해묵은 판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헌은 붕대가 감긴 오른손의 통증조차 잊은 채, 왼손으로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서늘한 눈빛을 번뜩였다.“자가, 벌써 사흘 밤낮을 한숨도 주무시지 않으셨사옵니다.”방구석에서 그림자처럼 대기하던 흑위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채 바닥에 흩어진 수많은 서신에 머물렀다.이헌은 대답 대신 붓을 들어 백지 위에 누군가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단순히 땅을 사주고, 사병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이헌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낮고 거칠었다.“그것은 결국 내가 살아있을 때만 유효한 임시방편일 뿐이지. 내가 만약 전하의 칼날에 쓰러지거나, 조정의 간신배들에게 목이 잘린다면…… 낭자는 다시 그 지옥 같은 관아의 옥사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이헌이 붓을 멈추고 흑위대장을 쏘아보았다.“내가 원하는 건, 내가 없어도 낭자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평생을 존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뿐이야.”“……그것이 무엇이옵니까.”이헌의 입술이 잔인한 호선을 그리며 비틀렸다.“조선의 법, 그 자체를 고치는 것.”흑위대장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자, 자가! 그것은 불가하옵니다! 『경국대전』은 선대왕마마께서 세우신 조선의 근간이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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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율법의 오물(1)

 서연은 어둠 속에서 주먹을 하얗게 쥐었다.‘또다시 나를 위해 세상을 부수겠다는 건가.’대군저에 들어온 뒤 쌓인 기억이 서늘한 파충류의 꼬리처럼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이헌이 ‘널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고, 법과 권력으로 도망칠 길을 막아오던 순간들.지금 이헌이 준비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비 면천? 법전 수정? 그것이 성공한다 한들, 그 결과는 무엇일까. 결국 조선이라는 거대한 감옥이 이헌이 설계한 더욱 정교하고 화려한 감옥으로 바뀌는 것뿐이지 않을까.이헌은 한참 동안 가림막 너머의 침묵을 지켜보다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편히 쉬십시오. 밖의 시끄러운 소음은 제가 다 막아둘 테니.”그가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서연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이헌이 취선당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밤새도록 입법 로비를 위한 협박 명단을 수정하고, 반대파들의 비리를 엮어낼 법적 그물을 촘촘히 짰다.그것은 광기 어린 헌신이자, 동시에 지독하게 계산적인 집착이었다.서연은 창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몸을 떨었다. 저 취선당의 불빛이 꺼질 때쯤이면, 이 조선 땅에 어떤 피바람이 불어닥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이라는 천민 계집 한 명을 위해 나라의 근간인 법전을 찢어발기려는 남자.서연은 이 거대한 권력 싸움의 도화선이 된 자신의 운명에 지독한 환멸을 느끼며, 다가올 폭풍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폭풍전야의 고요함이 대군저의 성벽을 타고 음산하게 흘러넘치고 있었다.한양 도성이 발칵 뒤집혔다.진안대군이 은밀히 준비 중이던 파격적인 입법안, 이른바 ‘노비 면천 특별법(奴婢 免賤 特別法)&r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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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화려한 감옥(1)

 사흘 밤낮을 불태우듯 끓어오르던 서연의 고열이 마침내 가라앉았다.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눈꺼풀이 서서히 들리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서늘할 정도로 텅 빈 안채의 공기였다.서연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머리는 여전히 깨질 듯이 아팠지만, 살갗을 태우던 불덩이 같은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그녀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굳게 닫힌 창호지 너머로 평소와는 다른 부산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흙을 파헤치는 소리, 거대한 돌이 부딪치는 둔탁한 마찰음, 그리고 수십 명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더 깊이 파라! 그깟 돌덩이 하나 옮기는 데 시간이 이리 지체되어서야 쓰겠느냐!”마당을 울리는 이헌의 거친 사자후였다.서연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틈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밀어 넣었다.대군저의 안채 앞마당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기존에 있던 평범한 마당의 흙은 모조리 파헤쳐졌고, 그 위로 도성 밖에서 통째로 뿌리째 뽑아온 진귀한 기화요초(奇花瑤草)들이 억지로 심어지고 있었다.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나무 수십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쳐졌고, 마당 한가운데로는 인공 수로를 끌어와 작은 연못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자, 자가! 공조(工曹)의 허가도 없이 사가의 담장을 임의로 허물고, 국유지인 밖의 수로를 강제로 끌어오는 것은 명백한 국법 위반이옵니다!”마당 한구석에서 흑위대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엎드려 부르짖고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유림들을 율법의 잣대로 도륙 내신 분께서 어찌 스스로 법을 어기시려 하옵니까! 대명률의 어느 판례를 뒤져도, 개인의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의 수로를 무단으로 변경하는 것을 합법이라 포장할 수는 없사옵니다!&r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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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율법의 오물(2)

 세금을 탈루하고 밀수를 저지른 자 역시 엄벌에 처한다! 그대들이 부르짖는 조선의 근간이, 이토록 추악한 탐욕과 위선 위에 세워진 것이었단 말이냐!”유림들의 얼굴에서 혈색이 완벽하게 사라졌다.도덕과 명분으로 무장했던 그들의 갑옷이, 이헌이 들이민 명백한 회계 장부와 물증 앞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자신들을 탄압하는 폭군을 상대로 목숨을 건 시위를 하려 했는데, 졸지에 파렴치한 경제 사범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흑위대는 들어라.”이헌이 쥔 장부를 대사성의 얼굴에 사정없이 내던지며 명을 내렸다.“저기 엎드려 있는 쥐새끼들 중, 내 장부에 이름이 적힌 탈세범과 토지 강탈범들을 모조리 포박하여 형조로 넘겨라! 반역이 아니라,파렴치한 횡령과 강탈의 죄목으로 그들의 가산을 적몰하고 율법의 오물을 뒤집어씌워 줄 것이다!”“예, 자가!!”흑위대 무사들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유림의 지도자들을 짓밟고 포박하기 시작했다.목숨을 버리겠다며 꼿꼿하게 목을 세우던 자들이, 횡령과 탈세라는 수치스러운 죄목 앞에서는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오직 치밀하게 수집된 자금의 흐름과 법적 물증만으로, 반대 세력의 가장 강력한 여론전 명분을 오물통에 처박아 완벽하게 짓밟아버린 압도적인 정치력이었다.그날 늦은 오후, 대군저의 안채.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유림들의 곡성과 포박당하는 비명 소리가 안채의 툇마루까지 고스란히 흘러들었다.가림막 안쪽, 얇은 이불을 꽉 쥔 서연의 두 손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을 떠돌며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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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핏빛 불꽃의 종막(1)

 쿵-!안채의 바닥을 울리는 육중한 파열음은 지독하게 정막했던 대군저의 공기를 단숨에 찢어발겼다.세상을 뒤흔드는 특별법의 발의, 그리고 문 밖에서 들려오던 유림들의 비명과 곡성들.그 모든 거대한 정치적 폭풍의 무게를 일개 사노비의 몸으로 오롯이 감당해 내던 서연의 가녀린 신형이 끝내 무참하게 바닥으로 꺾여 내린 것이다.“아, 아가씨!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아가씨!”방 밖에서 대기하던 상궁의 날카로운 비명이 안채의 마당을 가로질렀다.그 시각, 집무실인 취선당에서 조정 대신들의 목줄을 쥘 추가 장부를 검토하던 이헌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자가! 안채의 아가씨께서……!”검은 관복을 입은 흑위대원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채 말을 맺지도 못한 찰나였다.이헌은 쥐고 있던 황모필을 내던졌다.징두리탁자 위로 먹물이 검붉게 튀어 오르며 사흘 밤낮을 고쳐 쓰던 법전의 초안들이 사정없이 더럽혀졌으나, 이헌은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았다.그의 거대한 신형이 취선당의 문을 부술 듯이 열고 안채를 향해 폭풍처럼 내달렸다.평소의 그 냉혹하고 계산적인 대군의 기백은 온데간데없었다.오직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맹수의 처절한 헐떡임만이 겨울바람 속에 흩어질 뿐이었다.안방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이헌은 바닥에 쓰러진 서연을 발견하고 핏기가 가시도록 입술을 깨물었다.그녀의 하얀 얼굴은 펄펄 끓는 지독한 고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거친 숨결이 입술 사이로 위태롭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서연 아가씨…… 아가씨!”이헌은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품에 닿는 그녀의 몸은 마치 불덩이를 안은 것처럼 뜨거웠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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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핏빛 불꽃의 종막(2)

 “내 아버지를…… 돌려내……. 네놈들이…… 우리 가문을…… 물어뜯었잖아…….”“……아가씨.”“악마 같은 놈들…… 법을 앞세워…… 사람을 사지로 몰고 간…… 폭군…….”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증오와 뼛속까지 시린 한이 서려 있었다.가문을 몰락시키고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조선의 권력자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이 화려한 새장에 가두고 숨통을 조이는 이헌을 향한 저주였다.그녀는 열에 들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불덩이 같은 숨결로 악을 쓰고 있었다.이헌은 그 모든 저주와 욕설을 단 한 마디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었다.그녀의 입에서 자신을 향한 잔인한 활자가 튀어나올 때마다, 이헌은 가슴이 칼로 난도질당하는 듯한 끔찍한 난도질을 체감했다.하지만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수건을 찬물에 적셔 다시 그녀의 이마에 올리고, 또 올렸다.“예, 아가씨. 제 잘못입니다.”이헌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갈라지며 붉은 피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제가 악마입니다. 아가씨의 가문을 무너뜨린 자들과는 다르다 믿었으나, 결국 저 역시 억울한 진실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가씨를 사노비로 묶고 이 대군저라는 새장에 가두었습니다. 아가씨의 선택권을 빼앗고 숨통을 조인 죄는 제게 있사옵니다.”이헌은 덜덜 떨리는 왼손을 뻗어, 서연의 뜨겁고 가녀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녀의 손은 너무도 뜨거워 제 살갗이 타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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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화려한 감옥(1)

 사흘 밤낮을 불태우듯 끓어오르던 서연의 고열이 마침내 가라앉았다.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눈꺼풀이 서서히 들리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서늘할 정도로 텅 빈 안채의 공기였다.서연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머리는 여전히 깨질 듯이 아팠지만, 살갗을 태우던 불덩이 같은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그녀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굳게 닫힌 창호지 너머로 평소와는 다른 부산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흙을 파헤치는 소리, 거대한 돌이 부딪치는 둔탁한 마찰음, 그리고 수십 명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더 깊이 파라! 그깟 돌덩이 하나 옮기는 데 시간이 이리 지체되어서야 쓰겠느냐!”마당을 울리는 이헌의 거친 사자후였다.서연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틈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밀어 넣었다.대군저의 안채 앞마당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기존에 있던 평범한 마당의 흙은 모조리 파헤쳐졌고, 그 위로 도성 밖에서 통째로 뿌리째 뽑아온 진귀한 기화요초(奇花瑤草)들이 억지로 심어지고 있었다.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나무 수십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쳐졌고, 마당 한가운데로는 인공 수로를 끌어와 작은 연못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자, 자가! 공조(工曹)의 허가도 없이 사가의 담장을 임의로 허물고, 국유지인 밖의 수로를 강제로 끌어오는 것은 명백한 국법 위반이옵니다!”마당 한구석에서 흑위대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엎드려 부르짖고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유림들을 율법의 잣대로 도륙 내신 분께서 어찌 스스로 법을 어기시려 하옵니까! 대명률의 어느 판례를 뒤져도, 개인의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의 수로를 무단으로 변경하는 것을 합법이라 포장할 수는 없사옵니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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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화려한 감옥(2)

 저남자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저 남자가 조성한 인공의 공기를 마시며, 저 남자가 세운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숨을 쉬어야 하는 애완조(愛玩鳥).그 처절하고 비참한 자각이 서연의 심장을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난도질했다.서연의 뻗었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그녀의 텅 빈 눈동자에 고여 있던 마지막 한 줌의 생기마저 완벽하게 바스라져 내렸다.“……서연 아가씨.”그때, 등 뒤에서 조심스럽고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검은 철릭을 입은 이헌이 어느새 정원 입구에 서 있었다.그는 흑위대 무사들을 향해 손짓하여 멀리 물러서게 한 뒤, 서연을 향해 아주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겼다.그의 얼굴은 사흘간의 불면과 간호로 인해 여전히 반쪽이 되어 있었지만, 서연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만큼은 별빛을 머금은 듯 벅차오르는 환희로 반짝이고 있었다.이헌은 서연의 세 발자국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의 시선은 서연의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창백하지만 열이 내린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몸은…… 좀 어떠하시옵니까. 바람이 차오나, 볕이 따스하여 억지로 모시라 명하였사옵니다.”이헌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 다정했다.“꽃이 아름답지요. 아가씨께서 예전 가문에 계실 적, 후원의 동백을 즐겨 보셨다 들어 제가 남도에서 제일가는 나무들만 캐어왔사옵니다.”그는 마치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가파른 숨을 내쉬며 서연의 눈치를 살폈다.자신이 국법을 어겨가며 만들어낸 이 화려한 성역.이곳에서라면 그녀가 과거의 아픔을 잊고, 아주 잠깐이라도 미소를 지어주지 않을까 하는 맹목적이고 처절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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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반역의 서막(1)

 대군저의 집무실, 취선당(聚仙堂)의 밤은 무겁고도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최고급 밀랍 초가 타들어 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 이헌은 넓은 서안(書案) 위에 흩어진 수십 장의 서류들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며칠 밤낮을 꼬박 새우며 벼려낸, ‘노비 면천 특별법(奴婢 免賤 特別法)’의 초안과 조정 대신들을 옭아맬 협박 명단들이었다.“…….”이헌의 온전한 왼손이 붉은 붓을 쥔 채 허공에 멈춰 있었다.그의 짙은 눈동자는 완벽하게 짜인 법안의 조항들을 훑어 내렸지만, 그 안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함 대신 뼈저린 한계에 부딪힌 자의 차가운 냉소가 서려 있었다.이 법안을 강행한다면, 훈구파 대신들의 숨통을 끊어놓고 유림의 반발을 짓밟을 수는 있다.자신이 쥔 율법의 칼날과 압도적인 정보력이라면, 그 어떤 반대 여론도 합법적인 피바람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하지만, 그 모든 치밀한 계산의 끝에는 결코 법리로 뚫을 수 없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벽이 존재했다.‘전하(殿下).’이헌의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조용한 파열음이 샜다.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그 자체로 최고의 권력이자 신앙이었다.하지만 이 비틀린 조선 땅에서, 율법은 결국 왕좌에 앉은 단 한 사람의 입술에서 발원하는 부속물에 불과했다.자신이 아무리 교묘하게 경국대전을 뜯어고치고 특별법을 제정한다 한들.용상에 앉은 국왕 이도가 옥새를 찍기를 거부하거나, 어느 날 갑자기 어명을 내려 그 법을 폐기해 버린다면?만약 자신이 과로로 쓰러지거나, 정적들의 암살에 목숨을 잃어 서연의 곁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내가 만들어준 신분과 자유는, 결국 왕의 변심 한 번에 언제든 다시 휴지 조각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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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반역의 서막(2)

 그는늘 안채의 문이 보이기 무섭게 바닥으로 기어들어 와 무릎을 꿇고 애원을 쏟아내던 사내였다.하지만 지금 정원에 선 이헌은 무릎을 굽히지도, 어깨를 구부리지도 않았다.오히려 하늘을 뚫을 듯이 꼿꼿하게 선 채, 뒷짐을 지고 안채를 응시하고 있었다.서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시선을 위로 끌어올렸다.창틈 너머로 마주친 이헌의 두 눈동자.그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안광을 본 순간, 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온몸의 솜털이 비명처럼 곤두섰다.‘저 눈빛은…….’애정을 갈구하는 찌질한 맹견의 눈빛이 아니었다.상처받아 오열하던 비참한 사내의 눈빛도 아니었다.그것은 오직, 사람의 사정 따위는 돌아보지 않은 채 법과 권력으로 목표를 짓밟아버리는 그 완전무결한 괴물의 눈빛.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자신이 설정한 거대한 목표를 향해 세상을 도륙 낼 준비를 마친 가장 잔혹한 정복자의 안광이었다.서연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거친 호흡이 터져 나왔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저 미치광이가, 드디어 율법이라는 알량한 목줄마저 스스로 끊어버리고 가장 끔찍한 선을 넘으려 한다는 것을.‘반역.’그 두 글자가 뇌리를 강타하자, 서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간신히 창틀을 부여잡고 버틴 그녀의 두 손등 위로 시퍼런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자신을 면천시키겠다는 그 미친 집착이 기어이 왕조차 적으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저 남자는 이제 법을 교묘하게 피하는 방어전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근원을 모조리 파괴하려는 거대한 피바람을 준비하고 있었다.조선 팔도의 모든 강물이 핏빛으로 물들고, 수만 명의 목이 창끝에 매달릴 끔찍한 반정(反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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