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의 손에 들린 몇 장의 서류.그것은 대사간이 피눈물을 흘리며 써 내려간, 서상서 가문 모함 사건의 끔찍한 전말이자 우의정 김윤합의 목을 칠 수 있는 완벽한 단두대의 칼날이었다.집무실 취선당에 홀로 앉은 이헌은 그 자백서를 서안 위에 펼쳐놓고 턱을 괴었다.촛불에 비친 그의 눈동자는 깊고 서늘한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당장 내일 아침, 어전에 이 자백서를 던지고 우의정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증거는 명백했고, 자백은 완벽했다.의금부 도사를 풀어 김윤합의 사가를 포위하고 그 늙은 목을 베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이헌은 서류의 가장 밑바닥, 대사간의 떨리는 지장(指章)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아니. 너무 빠르다.’자본주의 정글에서 수조 원대 기업의 사냥꾼으로 군림했던 이헌은, 사냥감을 단숨에 물어 죽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권력의 정점에 있는 적의 목통을 단번에 끊으려 들면, 상대는 죽기 살기로 저항하며 조선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반정(反正)의 빌미를 만들 수 있었다.적을 가장 완벽하게 파멸시키는 방법은, 그가 발을 딛고 있는 땅부터 하나씩 무너뜨려 스스로 벼랑 끝에 몰렸다는 공포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몸통을 치기 전에, 수족(手足)부터 완벽하게 말려 죽여주마.’이헌은 붓을 들어 대사간의 자백서 내용 중, 서상서 모함과 우의정의 이름이 들어간 핵심 부분에 붉은 먹줄을 죽 그어 가렸다.대신, 그 아래에 적힌 또 다른 추악한 명단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그것은 삼사(三司)의 관료들이 지난 십 년간 지방 수령들에게 뜯어낸 집단 뇌물 수수 내역과, 횡령한 국고를 나누어 먹은 수십 명의 하급 관료 명단이었다.서연의 아버지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06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