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Chapter 91 - Chapter 100

319 Chapters

91. 문을 열어라

테오도르는 호흡이 고르게 돌아온 뒤 협약 문서를 다시 보았다.지하에 있는 수습생이 세레나인지 확인하지 않았다.그 이름을 찾아내지 않기로 한 결정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협약 위반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군 의료 감독관을 보내.”“병력도 동행시킬까요?”“호위 인원만 붙여. 치료동을 포위하지는 마라.”테오도르는 빈 명령서에 문장을 적었다.-지하 격리 치료실 근무자의 종료 시각과 귀환 여부를 즉시 확인한다.-출입 지연의 사유와 책임자의 이름을 기록한다.-환자 이송이 필요할 경우 성전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공동 의료 협약에 따라 외부 치료동으로 옮긴다.-수습생에게 신원 공개나 별도 진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마지막 문장까지 적은 뒤 서명했다.로이스가 명령서를 받아 들었다.“수습생들이 이미 밖으로 나왔다면요?”“출입 지연 기록만 받아 와.”“아직 안에 있다면요?”테오도르는 창밖을 바라보지 않았다.“문을 열어.”간단한 명령이었지만, 그 뒤에 다른 말은 붙이지 않았다.안에 있는 사람을 공작저로 데려오라는 지시도, 신원을 확인하라는 요구도 없었다. 문을 연 뒤 어디로 갈지는 당사자들이 선택할 일이었다.로이스가 나가려는 순간 테오도르가 다시 불렀다.“감독관에게 전해.”“말씀하십시오.”“문이 열렸더라도 먼저 들어가 끌어내지 말라고 해.”그는 조금 전 스쳐 간 차가운 감각을 지우듯 손가락을 펴 놓았다.“나오겠다는 사람에게 길만 내줘.”하론은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를 토했다.세레나는 그의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입안을 막은 피를 깨끗한 천으로 닦았다. 피에는 밝은 붉은색과 오래 고인 듯한 검은 덩어리가 함께 섞여 있었다. 단순히 입안이 터진 것이 아니라 폐나 위쪽에서 출혈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컸다.“숨을 들이마실 때 어디가 가장 아픕니까?”하론은 대답하지 못하고 오른쪽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세레나는 급히 성력을 넣지 않았다.호흡음과 흉곽 움직임부터 확인했다. 오른쪽이 왼쪽보다 늦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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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열일곱 번째 환자

제17침상에 관한 이송 기록은 한 장뿐이 아니었다.세레나와 나디아는 외부 치료동의 빈 처치실로 자리를 옮긴 뒤, 지하에서 받아 온 환자 이동 명부와 약제 투여 기록을 나란히 펼쳤다. 창밖에서는 밤새 내렸던 비가 처마 끝에서 느리게 떨어졌고, 복도를 오가는 사제들의 발소리는 문 앞에서 한 번씩 느려졌다가 다시 멀어졌다.두 사람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살피는 눈이 이미 붙은 것이다.세레나는 커튼을 완전히 치지 않았다. 문도 잠그지 않은 채 손바닥 하나가 들어갈 만큼 열어 두었다. 숨어서 기록을 확인했다는 말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다.나디아가 이송 명부의 마지막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지하 치료실에는 침상이 열여섯 개뿐이었어요.”“네.”“그런데 이 기록에는 제17침상 환자가 있었다고 되어 있고요.”“이송 시각은 우리가 문밖으로 나온 때와 같습니다.”세레나는 사건 확인서 사본을 옆에 놓았다.철문이 열린 시각은 저녁 여섯 시 사십 분. 제17침상 환자를 제2정제실로 옮겼다는 기록 역시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환자 이송에는 최소한 침상 준비와 이동 인원, 상태 확인이 필요했다. 같은 시각에 문도 열리지 않은 지하에서 존재하지 않는 환자를 꺼냈다는 기록은 성립할 수 없었다.나디아가 이송 명령자 이름을 다시 읽었다.“마티아스 로벤.”대신관의 서명은 다른 문서보다 선명했다. 흘려 쓴 이름 아래에는 검은 태양 인장이 찍혀 있었고, 제2정제실이라는 목적지는 나중에 덧붙인 것처럼 잉크 농도가 조금 달랐다.세레나는 맨손으로 문서를 만지지 않았다. 새 검은 장갑을 끼고 종이 가장자리를 빛에 비추자, 이송 목적지 아래에 지워진 글자 흔적이 드러났다.“처음부터 제2정제실로 적었던 건 아닙니다.”“밑에 다른 글자가 있었어요?”“종이를 얇게 긁어 낸 뒤 다시 썼어요.”나디아가 반응액 병을 집으려 하자 세레나가 고개를 저었다.“지금 약품을 쓰면 원본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그럼 어떻게 확인하죠?”“비껴오는 빛으로 눌린 자국을 먼저 보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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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의도를 추측해서 신뢰하지 않는다

“그분이 더 설명할 수 없다면 장소의 출입 기록과 구조를 확보해야 합니다. 군 의료 감독관이 아직 치료동에 있으니 제2정제실이 군수품 출고 기록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알리고요.”“군인들을 데리고 들어갈 생각이에요?”“병력을 앞세우면 안에 있는 사람이나 기록을 먼저 옮길 겁니다.”“그럼요?”세레나는 문서들을 종류별로 나눴다.원본은 성전 기록관에게 반환해야 했고, 사본은 세 곳에 남길 생각이었다. 성 루치아 구호원, 칼베른 군 의료 감독관, 그리고 자신들의 약제 기록철.“검사단을 만듭니다.”“대신관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요.”“북부군으로 출고된 불량 약제가 제2정제실과 연결됐다는 근거가 생기면 성전 내부 조사만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세레나는 모사지에 드러난 지워진 목적지를 바라봤다.칼베른으로 시작하는 글자.이름이 완전히 읽히지 않았는데도 손끝이 가늘게 굳었다. 그녀는 장갑 끝을 한 번 당긴 뒤 기록지를 덮었다.“공작님께는 알릴 건가요?”나디아의 질문에 세레나는 의자를 뒤로 밀지 않았다.“공작님 개인이 아니라 북부군에 알립니다.”“그분이 보고를 받을 텐데요.”“받으시겠지요.”“신원도 확인할 수 있고요.”세레나는 금속 번호표를 약제함 안에 넣었다.“확인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나디아가 입을 다물었다.세레나는 지난 며칠 동안 테오도르가 남긴 서명을 떠올렸다. 치료동 출입을 보장한 협약, 환자 안전 신고자를 보호하는 조항, 잠긴 지하 문을 열라는 명령.그 어디에도 세레나를 찾아내라는 말은 없었다.그가 무엇을 위해 바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죄책감도, 호기심도,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불쾌감도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의도를 추측해서 신뢰할 생각은 없었다.그러나 지금까지 남은 결과만큼은 사용할 수 있었다.“경고를 전달하겠습니다.”세레나가 말했다.“그 뒤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칼베른에서 결정할 일입니다.”하론은 외부 치료동으로 옮겨진 뒤에도 의식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객혈은 줄었지만 오른쪽 폐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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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열일곱 번째 환자의 이름

하론의 손끝이 세레나의 목 아래를 향했다.감춰진 펜던트가 옷 속에서 미세하게 뜨거워졌다.“엘레노라 님이…… 명부를 바꿨습니다.”“무슨 명부입니까?”“열여섯까지…… 죽은 사람들.”하론의 목소리가 기침에 끊겼다.세레나는 천을 입 가까이에 대고 피가 섞였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는 밝은 피가 아주 조금 묻어났을 뿐, 출혈이 다시 크게 시작되지는 않았다.“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론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열일곱은…… 아직 오지 않은 환자.”그의 눈이 세레나에게 고정되었다.“칼베른…… 공작.”세레나의 손이 침상 난간 위에서 멈췄다.나디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군 의료 감독관이 낮게 물었다.“공작 각하를 말하는 겁니까?”하론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상처를 입으면…… 성전 약을 쓰게 한다고…….”그 뒤는 소리가 되지 못했다.세레나는 하론의 맥을 확인했다. 말하는 동안 다시 빨라졌고, 호흡도 얕아졌다. 더 캐묻는 것은 위험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세레나는 감독관에게 시선을 돌렸다.“방금 들은 내용을 기록해 주세요. 추측은 빼고, 하론 씨가 직접 말한 단어만요.”감독관은 즉시 기록판을 꺼냈다.칼베른 공작.상처.성전 약.열일곱 번째 환자.세레나는 네 단어 아래에 시간과 하론의 의식 상태를 덧붙였다. 환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장도 함께 적었다. 그가 진실을 말했을 가능성이 높아도, 의식이 불안정한 환자의 진술을 확정적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나디아가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뒤 낮게 물었다.“공작이 열일곱 번째 환자라는 뜻일까요?”“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칼베른의 상처에 성전 약을 쓴다는 말까지 했어요.”세레나는 장갑을 벗어 흐르는 물에 씻었다.테오도르는 현재 갈비뼈와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라울의 연고만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회복이 늦어지거나 열이 나면 성력 안정제와 백휘석 패치를 사용할 수 있었다.북부군 의무대로 출고된 불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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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본인이 선택한 이름으로 남게 둬

“요구하지 않겠습니다.”칼베른 공작가의 군수 창고는 정오가 지나기 전에 폐쇄됐다.성력 안정제와 백휘석 패치가 보관된 구역에는 검은 봉인이 걸렸고, 군 약제관들은 최근 한 달 동안 들어온 모든 제조 번호를 대조했다. 제3 야전의무대로 향하던 물자는 중간 수령소에서 멈췄으나,장부상 같은 번호의 약제 일부가 공작저 치료실로 반입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테오도르는 창고 검사를 직접 보러 나왔다.의원은 마차를 타는 것조차 반대했지만, 공작저 안의 짧은 이동이었고 상처 부위에는 새 붕대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평소보다 걸음이 느렸고, 몸을 돌릴 때마다 오른쪽 어깨가 아주 조금 늦게 따라왔다.로이스는 치료용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사흘 전 성전에서 보낸 물품입니다.”“누가 요청했지?”“공작가 의원은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북부군의 공로에 대한 무상 지원이라는 서신과 함께 보냈습니다.”테오도르는 상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겉면에는 최고급 정제 백휘석이라는 금빛 표식이 붙어 있었지만, 봉인 아래 제조 번호는 성전 치료동에서 문제 된 제품과 끝 세 자리가 같았다.“사용한 물건은?”“없습니다.”로이스가 답했다.“각하께서 베일런 영애의 소견을 따르라 명령하신 뒤, 의원이 외부 약제를 쓰지 않았습니다.”세레나가 직접 오지 않고 남긴 종이가 다시 그의 생명을 지켰다.테오도르는 상자 위에 붙은 성전의 축복 문구를 한 번 읽고 시선을 거뒀다.“전량 격리해.”“이미 조치했습니다.”“이걸 들여온 사람도 확인해.”“운반인은 성전 소속 하급 사제였고, 공작저 문서실에는 정상적인 무상 지원으로 등록했습니다.”로이스가 별도의 봉투를 내밀었다.“성전 치료동에서 긴급 보고가 도착했습니다.”봉투에는 공작가의 표식이 아니라 군 의료 감독관의 봉인이 찍혀 있었다. 테오도르는 봉랍을 뜯어 하론의 진술 기록부터 읽었다.칼베른 공작.상처.성전 약.열일곱 번째 환자.글자를 따라가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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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문이 닫힌 뒤에 확인하면 늦으니까요

테오도르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성전에 가면 세리스 베인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검은 장갑을 끼고 기록부터 요구하는 수습생이 세레나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부정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 이유로 움직여서는 안 됐다.테오도르는 경고문을 다른 군수 기록과 나란히 놓았다.“나는 표적이자 수령 기관의 책임자다. 조사에 참석할 명분은 충분해.”“세리스 베인을 만나실 겁니까?”로이스의 질문은 조심스러웠다.테오도르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그 사람이 증언을 선택하면 듣는다.”그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났다.“나를 피하면 쫓지 않는다.”성전 본당의 제2정제실은 공식 지도에 존재하지 않았다.군 의료 감독관이 가져온 오래된 건축 도면에는 동쪽 예배당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만 남아 있었고, 그 아래의 공간은 ‘폐쇄 저장고’라는 글자로 가려져 있었다. 마티아스는 제2정제실이 오래전에 폐쇄되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고 주장했지만, 최근 이송 기록과 군수품 출고 도장이 그곳을 목적지로 가리키고 있었다.공개 검사단은 오후 늦게 구성되었다.군 의료 감독관과 칼베른 군 약제관, 황실에서 파견된 하급 기록관, 루멘 성전의 베르트 치료사와 시설 담당 사제. 세레나와 나디아는 최초 발견자이자 환자 기록 참여자로 동행을 신청했다.마티아스는 허락하지 않았다.대신 세레나는 중앙 홀에 붙은 감사 방해 금지 조항과 자신의 수습 규정을 함께 제출했다.“제가 만든 시료와 기록을 검사단이 사용할 겁니다. 발견자가 출처를 설명하지 않으면 검사의 연속성이 끊깁니다.”마티아스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위험한 장소일 수 있습니다.”“그래서 출입 조건을 문서로 확인하겠습니다.”“당신은 매번 문부터 확인하는군요.”“문이 닫힌 뒤에 확인하면 늦으니까요.”결국 세레나와 나디아는 검사 참여자가 아니라 의료 관찰인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입장과 퇴장 시각을 따로 기록하고, 검사 중 철문을 닫지 않으며, 누구든 이상 증상을 보이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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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고

휴대 등잔을 긴 막대 끝에 걸어 문 안으로 밀었다.불꽃은 꺼지지 않았지만 가장자리가 푸르게 변했다. 독성 가스가 즉시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어도, 백휘석 분진이 공기 중에 많이 떠 있다는 뜻이었다.검사단은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짧은 시간만 들어가기로 했다.철문 안쪽에는 정제 도구가 없었다.대신 의자 하나와 낮은 침상, 성력 주입관이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열여섯 개의 유리함이 줄지어 있었고, 각 함에는 환자 번호와 투여 기록이 붙어 있었다.1번부터 16번까지.모두 사망으로 처리된 기록이었다.세레나는 가장 가까운 유리함부터 살폈다.정제소 노동자, 광산 인부, 치료사 견습생. 환자들의 직업과 나이는 달랐지만, 모두 불량 백휘석 노출 뒤 과도한 성력 주입을 받았다. 사망 원인은 신앙 부적합에 따른 성맥 붕괴라고 적혀 있었다.실제로는 독성 노출과 장기 손상, 반복된 고위 성력 사용의 결과였다.나디아가 열여섯 번째 함 앞에서 멈췄다.“여기는 기록이 비어 있어요.”환자 번호만 있었고 이름도, 처치 내용도 없었다.그 옆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은 열일곱 번째 유리함이 놓여 있었다.빈 줄은 아니었다.세레나는 유리 표면의 얇은 종이를 읽었다.환자 17.신분: 북부군 최고 지휘권자.기저 상태: 전투 중 늑골 골절 및 내부 출혈 의심.투여 목적: 고농도 성력 안정제와 정제석 혼합물의 귀족 혈통 반응 확인.예정 대상자의 이름은 마지막 줄에 적혀 있었다.테오도르 칼베른.세레나는 유리함을 붙잡지 않았다.장갑 낀 손은 몸 옆에 그대로 내려 둔 채, 종이의 제조 번호와 투여 예정 시간을 확인했다.오늘 자정.군 약제관이 낮게 욕설을 삼켰다.“공작저로 보낸 상자가 이 물건이군.”세레나는 열일곱 번째 유리함 옆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상자 안에는 테오도르에게 투여할 예정이었던 백휘석 주입액과 안정 패치, 그리고 환자 반응 기록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결과 항목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증상들이 미리 적혀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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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문을 여는 쪽

철문이 완전히 닫히자 제2정제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벽 안쪽에서 여러 개의 걸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차례로 울렸고, 천장에 박힌 백휘석 등잔들이 일제히 푸른빛을 토해 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사를 위해 열어 둔 환기구에서는 낮은 마찰음이 났다.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안쪽의 공기를 더 깊은 곳으로 빨아들이는 소리였다.군 약제관이 젖은 천을 입과 코에 단단히 눌렀다.“등불의 색이 짙어지고 있습니다.”세레나는 철문으로 달려가지 않았다.검사단 인원을 먼저 확인했다. 군 의료 감독관과 군 약제관, 황실 기록관, 성전의 베르트 치료사와 시설 담당자 오스틴, 나디아, 그리고 자신까지 일곱 명이었다. 모두 서 있었고 즉시 눈에 띄는 부상자는 없었다.“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세레나는 열일곱 번째 유리함과 철문 사이의 거리를 눈으로 잰 뒤 말했다.“문이 닫히면서 환기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안쪽에 남은 분진이 퍼질 수 있어요. 입과 코를 가리고, 각자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호흡이 불편한지 먼저 확인해 주세요.”베르트가 철문 손잡이를 거칠게 당겼다.“밖에서 잠근 거라면 소리를 내야 한다.”“문을 두드리지 마십시오.”“사람을 불러야 하지 않나?”“진동으로 유리함이 깨지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노출됩니다.”세레나는 그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베르트 치료사님께서 계속 문을 흔드시면 그 책임도 사건 기록에 남기겠습니다.”손잡이를 잡고 있던 베르트의 팔이 굳었다.황실 기록관은 이미 작은 수첩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는 손을 떨면서도 세레나의 말에 맞춰 철문이 닫힌 시각과 등불 색이 변한 사실을 적기 시작했다.나디아는 열일곱 번째 유리함 아래에 놓인 투여용 상자를 닫았다.“발신인 칸에 세리스 베인이라고 적힌 이유부터 확인해야겠어요.”“지금은 출구가 먼저입니다.”세레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장이 들어간 증거 봉투를 황실 기록관에게 건넸다.“이 문서는 몸에 지니지 말고 방 가운데의 빈 금속 상자에 넣으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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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안에서 개방하겠습니다

세레나는 열여섯 개 유리함에 남은 사망 기록을 돌아봤다.“사망자에게 반복적으로 약물을 투여했고, 체액을 별도 관으로 모았습니다. 환자 치료실이라고 부르려면 치료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성맥 반응을 연구한 장소였을 수 있다.”“동의 기록은 어디 있습니까?”베르트는 대답하지 못했다.천장 등잔 하나가 불규칙하게 깜박였다.나디아가 받아 둔 천 위로 푸른 가루가 더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환기구가 막히고 있어요.”군 약제관이 반응지를 확인했다.“즉시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이 안에 한 시간 이상 머무르면 위험합니다.”세레나는 철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은 버렸다.“안에서 개방하겠습니다.”오스틴이 곧장 말했다.“불가능합니다.”세레나는 그를 바라봤다.“내부 장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단정하시는군요.”“이 문은 외부 잠금식입니다.”“조금 전에는 자동 격리 장치라고 하셨습니다.”오스틴의 입이 굳었다.세레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시설관님께서는 문이 어떤 방식으로 닫혔는지 이미 알고 계신 듯합니다.”“그런 뜻이 아닙니다.”“그렇다면 저희가 확인하는 동안 열일곱 번째 유리함에서 떨어져 계세요.”군 의료 감독관이 오스틴과 장치 사이에 섰다.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그가 더 가까이 오면 막겠다는 의사는 분명했다.세레나는 금속 번호표 17을 꺼냈다.철문을 열 때 사용한 번호표는 외부 출입 표식이 아니라 이 방의 장치 전체를 활성화하는 물건일 수 있었다.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열일곱 번째 자리를 작동시키는 부품이었다.번호표를 유리함 아래의 빈 홈에 가져가자 펜던트가 옷 안쪽에서 희미하게 뜨거워졌다.세레나는 그 반응을 장치의 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루멘 성전이 ‘생명인장’이라고 부르는 말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분류명일 뿐이었다. 펜던트가 무엇인지, 번호표와 왜 함께 반응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힘을 밀어 넣으면 장치 전체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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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해제해도 되겠습니까

“압력이 계속 올라갑니다. 유리함 안에 사람이 들어가야 무게가 맞는 구조 같아요.”“누구도 들어가지 않습니다.”세레나는 유리함 내부를 확인했다.바닥 전체가 무게판이라면 사람 대신 같은 하중을 만들 수 있었다. 방 안에는 백휘석 원석 상자와 금속 도구, 비어 있는 성수통이 있었다.“내용물을 확인한 상자만 사용합니다.”검사단이 가져온 물과 장비를 합쳐 무게를 분산했다. 한쪽에 몰아넣으면 유리 바닥이 깨질 수 있으므로, 나디아가 상자 무게를 장부에서 확인했고 군 약제관이 네 방향으로 나누어 올렸다.바닥이 조금 더 내려갔다.두 번째 잠금쇠가 풀렸다.그러나 세 번째는 움직이지 않았다.철문 밖에서 무거운 충격음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유리함들이 동시에 떨렸다.세레나는 즉시 목소리를 높였다.“문을 치지 마십시오!”두꺼운 철문 너머로 말이 전달될지 알 수 없었지만, 충격음은 한 번 더 이어졌다.세레나는 열일곱 번째 유리함 옆의 가는 음성관을 발견했다. 환자에게 질문을 전달하거나 반응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관이었다. 입구를 덮은 금속판을 열자 바깥의 목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내부에 사람이 있다면 대답하십시오!”낮고 단정한 남자의 목소리였다.세레나의 손이 금속판 위에서 멈췄다.테오도르였다.“문을 더 치지 마십시오.”음성관을 통해 전달된 목소리는 금속에 울려 본래보다 낮고 낯설게 들렸다.그런데도 테오도르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제2정제실 철문 앞에는 칼베른 기사들과 성전 경비, 황실 의료 감독관이 뒤섞여 있었다. 공개 검사단이 예정된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았고, 바깥 경비가 잠금쇠가 저절로 걸렸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테오도르는 부상 때문에 직접 계단을 내려오지 말라는 의원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계단은 천천히 내려왔다.다만 끝까지 내려왔을 뿐이었다.철문을 강제로 열기 위해 기사들이 망치와 지렛대를 준비하자, 옆구리 깊숙한 곳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그는 벽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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