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는 생각보다 오래 타지 않았다.불길은 종이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말아 올린 뒤, 잉크가 마르지 않은 문장을 차례로 삼켰다. ‘테오도르 공작님께’라는 첫 줄이 검게 무너지자 세레나는 벽난로 앞에 선 채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처형 승인서에 남아 있던 서명과 같은 이름이었다. 한쪽은 자신이 사랑을 고백하려 적은 것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 사랑의 끝에 놓인 죽음을 허락한 것이었다.문밖의 하인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아가씨, 공작가에서 급히 오신 분입니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세레나는 대답 대신 불쏘시개를 집어 남은 종이를 안쪽으로 밀었다. 편지 귀퉁이에 묻어 있던 붉은 밀랍이 열을 받아 녹으면서 칼베른의 검은 늑대 문양이 일그러졌다.전생에는 저 문양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테오도르의 전령이 도착하면 식사를 하던 중에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잠옷 위에 망토만 걸친 채 마차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다쳐 있었고, 세레나는 자신이 아니면 그를 살릴 수 없다고 믿었다. 공작가에서 보낸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순간, 그 믿음은 의심할 틈도 없이 의무가 되었다.지금도 몸은 그때의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약제함을 챙기고, 머리를 묶고, 오른손에 얇은 장갑을 낀 뒤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공작저까지 마차로 한 시간 반. 사냥터에서 입은 상처라면 오염 가능성이 높으니 봉합 바늘보다 세정용 술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세레나의 손이 탁자 위 약제함을 향해 움직이다 멈췄다.죽기 직전의 기억은 머리에 남았지만, 열아홉 살의 몸은 아직 테오도르의 부름에 복종하고 있었다.그녀는 약제함이 아니라 촛불 옆에 놓인 은제 목걸이를 집었다.목걸이는 처형대에서 빛을 터뜨리기 전과 같은 형태였다. 타원형 펜던트 표면에 작은 덩굴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베일런 가문의 오래된 꽃 문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다만 가장자리 한쪽에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균열이 생겨 있었다.세레나는 손톱으로 금을 더듬었다.전생에는
Last Updated : 2026-07-2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