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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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이름 없는 경고

나디아는 다른 장부를 펼쳤다.폐기 예정 물품은 약제실 내부 창고에서 사라진 뒤, 세 곳으로 나뉘어 반출되어 있었다. 일부는 외곽 진료소, 일부는 성력 측정 시험장, 나머지는 군수품 보관소.마지막 항목을 읽던 세레나의 시선이 멈췄다.수령 기관에는 북부군 제3 야전의무대가 적혀 있었다.“칼베른 북부군에 보낼 물건입니까?”“그렇게 되어 있네요.”나디아가 장부를 가까이 당겼다.“수량은 백 상자. 안정 패치와 성력 증폭제가 함께 묶여 있어요.”“출고 예정일은요?”두 사람은 같은 줄의 끝을 확인했다.전날 새벽.이미 출고 완료 도장이 찍혀 있었다.세레나는 손끝으로 도장을 문지르지 않았다. 잉크가 완전히 마른 상태였다. 조작한 흔적도 당장 보이지 않았다.“칼베른 공작가의 보급대가 오늘 치료동에 들어왔습니다.”나디아가 말했다.“저 물건을 가져온 사람들이 아니라, 받으러 온 사람들일 수도 있겠네요.”“오늘 마차에 실려 있던 것은 천과 물통이었습니다. 약제 상자는 보이지 않았어요.”“그럼 다른 경로로 먼저 출발했거나, 아직 성전 군수 창고에 있을 수도 있고요.”세레나는 출고 담당자의 이름을 확인했다.서명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흘려 썼고, 성전 군수 인장만 선명했다.“장부 사본을 만들어야 합니다.”“원본을 들고 나가면 바로 들킬 거예요.”나디아가 말했다.“베끼는 동안 누가 들어올 수도 있고요.”세레나는 약제함에서 얇은 모사지와 흑연을 꺼냈다.“전체를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제조 번호, 수량, 반출처, 날짜, 인장만 남기면 됩니다.”나디아는 문가에 귀를 댔다.복도에서는 약제사들이 저녁 재고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세레나는 장부 위에 모사지를 놓고 필요한 줄만 빠르게 옮겼다. 힘을 너무 주면 원본에 흔적이 남을 수 있어 손가락을 일정하게 움직였다. 나디아는 그동안 세 시료를 각각 봉인해 다른 위치에 숨겼다.모사가 끝나자 세레나는 종이를 약제함 이중 바닥에 넣었다.“북부군에 알려야 합니다.”나디아가 물었다.“칼베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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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발신인 없는 경고

“칼베른 공작가에 무엇을 보내려 했는지, 이제 이야기해 봅시다.”마티아스의 목소리는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지나치게 온화했다.나디아는 탁자 위에 놓였던 분석 도구를 빠르게 정리하지 않았다. 물건을 감추면 무엇을 숨겼는지부터 알려 주는 셈이었다. 그녀는 가열용 등잔의 불을 끄고 유리판 세 장을 빈 약병 상자 아래로 옮겼을 뿐, 나머지는 원래 하던 작업을 중단한 사람처럼 그대로 두었다.세레나는 약제함의 잠금쇠를 닫았다.안쪽 이중 바닥에는 북부군 제3 야전의무대로 반출된 불량 약제의 제조 번호와 수량, 날짜를 옮겨 적은 모사지가 들어 있었다. 발신인을 비워 둔 경고문도 그 위에 놓여 있었다.아직 보내지는 않았다.그러니 마티아스의 질문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먼저 말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문을 열겠습니다.”세레나가 말하자 나디아가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잠금쇠를 풀자 검은 사제복을 입은 마티아스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붉은 띠를 두른 정식 치료사 베르트와 성전 경비 둘, 기록관 한 명이 서 있었다. 대신관이 직접 약제 분석실까지 내려왔다는 사실만으로 복도 끝의 약제사들이 작업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마티아스는 방 안에 들어오며 탁자부터 살폈다.“허가받지 않은 분석을 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환자에게 사용된 약제의 성분을 확인했습니다.”나디아가 대답했다.“로웬 수습에게는 재고 장부를 임의로 열람할 권한이 없습니다.”베르트가 날카롭게 말했다.나디아는 탁자 아래에 손을 감추지 않았다.“환자 손목에 붙어 있던 패치 제조 번호를 찾았습니다. 재고 기록을 확인하지 않고는 같은 제품을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그 판단은 정식 약제사가 한다.”“정식 약제사가 했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 제가 한 겁니다.”베르트가 한 걸음 들어오려 하자 마티아스가 손을 들어 막았다.그는 방 중앙에 서서 세레나를 바라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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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공개된 자리에서 열겠습니다

마티아스가 말했다.세레나는 잠금쇠를 풀지 않았다.“압수 명령이 있습니까?”“성전 소속 수습생의 물품을 확인하는 데 별도의 명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제가 서명한 일반 수습 규정에는 개인 물품을 임의로 수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습니다.”“도난당한 기록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원본 장부는 제자리에 있습니다.”나디아가 끼어들었다.“훼손하지도 않았어요.”베르트가 나디아의 앞을 막아섰다.“사본을 만들었는지는 확인해야겠지.”세레나는 복도 쪽을 한 번 바라봤다.분석실 밖에는 약제사와 수습생들이 모여 있었고, 중앙 홀 방향에서는 물자 상자를 옮기는 칼베른 보급대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마티아스가 문을 닫고 안에서 물건을 빼앗으려 한다면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군수품과 관련된 증거를 압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열겠습니다.”세레나의 대답에 나디아가 눈을 좁혔다.마티아스는 한쪽으로 비켜섰다.세레나는 약제함의 가죽 손잡이를 잡았으나 뚜껑을 올리지는 않았다.“다만 중앙 홀에서 열겠습니다.”“이 방과 무엇이 다릅니까?”“북부군으로 출고된 물자의 기록이 문제라면 수령 기관의 입회가 필요합니다. 성전 기록관도 함께 있어야 하고요.”베르트가 헛웃음을 쳤다.“수습생의 상자를 여는 데 군수관을 부르겠다고?”“제 상자 안에 성전의 비밀이 있다는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일 아닙니까?”세레나는 그의 이름과 직책을 정확히 불렀다.“베르트 치료사님께서 기록관이나 수령인 없이 제 물건을 가져가시면, 이후에 무엇이 어디서 나왔는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마티아스의 미소가 아주 조금 옅어졌다.방 안에서 세레나의 물건을 빼앗으면 증거의 출처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었다. 공개된 자리에서는 그 일이 어려워진다.그는 복도에 모인 사람들과 중앙 홀 쪽을 차례로 바라봤다.“좋습니다.”마티아스가 먼저 몸을 돌렸다.“그렇게까지 기록을 중시한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인하지요.”중앙 홀에는 성전 물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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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며칠이면 검사할 시간은 생깁니다

“각각 다른 장소에서 나왔고, 같은 반응액에 유사한 회색 침전물을 만들었습니다.”마티아스의 눈이 시료병에 닿았다.“성전 내부 물품을 허가 없이 반출했군요.”“분석실 밖으로 가져온 건 지금이 처음입니다.”나디아가 답했다.“환자에게 사용된 물건을 폐기 전에 보관한 거고요.”엘리아스는 장갑을 낀 뒤 병을 직접 만지지 않고 봉인 상태부터 확인했다.“제조 번호가 있습니까?”세레나는 모사지 사본을 꺼냈다.이중 바닥 안에 감춘 전체 기록은 그대로 두고, 중앙 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미리 작성한 한 장만 보여 주었다. 제조 번호 끝 세 자리, 수량, 출고 날짜, 북부군 제3 야전의무대라는 수령처가 적혀 있었다.베르트가 종이를 낚아채려 하자 엘리아스의 부관이 먼저 손으로 막았다.“군수 물자와 관련된 기록입니다.”“성전 장부를 베껴 간 불법 사본이오.”엘리아스는 모사지를 집지 않고 탁자 위에서 읽었다.“불법인지 판단하기 전에 우리 병사들에게 들어갈 물건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마티아스가 부드럽게 말했다.“군수관께서 불안해하시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다만 수습생들의 미숙한 검사만으로 정상 물자를 막는다면 북부 부상자들의 치료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그래서 무작위 검사를 하겠습니다.”엘리아스가 대답했다.“성전 측 공식 검사관과 우리 군 약제관이 함께 참여하면 되겠군요.”“물건이 이미 출고됐다면 지금 확인할 상자가 없습니다.”“본당 군수 창고에 같은 제조 번호의 잔여분이 있을 겁니다.”세레나가 말했다.마티아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왔다.“확신합니까?”“서부 병동에서 환자에게 사용한 패치가 같은 번호였습니다. 치료동에도 배정됐다면 전체 물량이 한 번에 출고된 것은 아닙니다.”나디아가 재고 기록을 덧붙였다.“폐기 예정 수량은 이백 상자였습니다. 북부군으로 백 상자, 외곽 진료소와 시험장에 나머지가 나뉘었습니다.”중앙 홀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시험 지원자들이 같은 증폭제를 마시고 쓰러졌다는 소문은 이미 치료동에 퍼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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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그 사람이 고른 이름

“당신은 이 안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겠습니다.”“대신관님께서 결정하실 일은 아닙니다.”“성전 안에서는 많은 것이 내 결정입니다.”세레나는 중앙 홀 벽에 붙은 군 의료 협약서를 바라봤다.“전부는 아니게 됐군요.”마티아스의 눈에서 잠시 웃음이 사라졌다.엘리아스 홀트가 칼베른 공작저로 돌아온 것은 해가 진 뒤였다.테오도르는 저녁 식사를 집무실로 옮기라는 지시도 하지 않은 채 군수관의 보고부터 받았다. 옆구리 상처는 여전히 완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그는 소파보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엘리아스는 성전에서 작성된 사용 중지 명령과 목격자 기록, 불량 시료의 봉인 확인서를 차례로 올려놓았다.“제3 야전의무대로 향하던 약제 전량을 중지했습니다.”“이미 사용된 물량은?”“이전 제조 번호까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같은 제품이 북부에 먼저 들어갔는지는 내일 오전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테오도르는 기록을 넘겼다.“성전은 뭐라고 했지?”“창고 담당자의 분류 실수일 수 있다고 합니다. 대신관이 직접 공식 검사를 약속했습니다.”“그 말을 믿나?”엘리아스는 짧게 침묵했다.“검사실 열쇠를 성전만 가지고 있다면 믿기 어렵습니다.”“군 약제관을 반드시 입회시켜.”“명령서를 작성해 두었습니다.”테오도르는 목격자 기록의 아래쪽에서 손을 멈췄다.세리스 베인.나디아 로웬.처음 보는 이름이었다.그런데 세리스 베인이라는 이름을 읽는 순간, 오른쪽 손목 안쪽이 차갑게 당겼다. 피부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쇠고리가 조여 오는 듯한 감각이 잠시 지나갔다.테오도르는 소매를 들어 손목을 확인했다.엘리아스가 물었다.“상처가 불편하십니까?”“아니다.”손을 내렸으나 목격자 기록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이 수습생이 처음 발견했나?”“약제사 수습과 함께 조사했습니다.”“어떤 사람이었지?”질문이 나온 뒤 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로이스는 책상 옆에 서 있었고, 엘리아스는 대답을 고르듯 기록을 한 번 내려다봤다.“검은 장갑을 낀 젊은 치료사였습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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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닫히지 않는 문

성전 중앙 홀에는 저녁 종이 울리기 직전 새로운 공고가 붙었다.북부군 제3 야전의무대 출고 약제 사용 중지.동일 제조 번호 물품 전량 봉인.성전과 군 약제관의 공동 검사 실시.환자 안전 문제를 신고한 치료사와 수습생의 신원은 별도로 요구하지 않으며,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경우 군 의료 협약을 재검토한다.가장 아래에는 테오도르 칼베른의 서명이 찍혀 있었다.세레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자신의 이름은 없었다.나디아의 이름도 없었다.발견한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문장도, 공작가가 사건을 해결했다는 과시도 없었다. 신고 내용이 접수되었고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만 남았다.세레나는 검은 장갑의 손끝으로 문서 모서리를 만지려다 멈췄다.테오도르가 자신임을 알아본 것은 아닐 것이다.그는 세리스 베인이라는 이름을 모른다. 성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세레나인지 확인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답을 요구하지 않았고, 자신의 보호 아래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가진 힘은 여전히 컸다.다만 그 힘이 세레나를 향해 닫히는 문으로 사용되지 않았다.세레나는 게시문을 눈으로만 확인한 뒤 한 걸음 물러났다.그때 뒤에서 나디아가 낮게 말했다.“칼베른 공작은 생각보다 절차를 좋아하나 봐요.”“원래 그런 분은 아닙니다.”“잘 아시네요.”세레나는 나디아 쪽으로 돌아보지 않았다.“귀족 사회에서 유명한 분이니까요.”“그런가요?”나디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대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쪽지를 건넸다.“우리 때문에 약제실 접근이 제한됐어요. 당분간 분석실도 못 씁니다.”세레나는 쪽지를 펼쳤다.약제실 무단 열람에 대한 경고와 함께, 두 수습생을 다음 날부터 지하 격리 치료실에 배정한다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표면상으로는 벌이 아니었다.백휘석 노출 환자를 직접 관찰할 기회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하 격리 치료실은 성전이 외부 치료동과 분리해 관리하던 장소였다. 그곳으로 들어간 수습생이 무엇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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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불타지 않은 마지막 장

그때가 되면 이미 늦다.세레나는 반박부터 하지 않고 빈 기록지를 요청했다. 세 번째 침상에 누운 노인은 베일런 광산의 오래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가슴 부분의 꽃 문장은 절반쯤 닳았지만 세레나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어머니가 광산 인부들의 옷에 직접 달아 주었던 표식이었다. 치료소에서 먼저 볼 수 있도록 붉은 실로 가장자리를 감싼 베일런 문장.세레나는 침상 가까이 다가갔다.노인은 눈을 감고 있었고, 뺨은 움푹 들어갔으며 손가락 관절은 오랜 광산 노동으로 두껍게 굳어 있었다.목 아래로 번진 은빛 혈관은 다른 환자들보다 짙었지만 호흡은 아직 일정했다.“성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관리 사제가 기록판을 넘겼다.“하론 밀러. 베일런 폐광 운송 인부였다고 한다.”폐광이라는 표현에 세레나의 손이 멈췄다.베일런 광산은 공식적으로 아직 운영 중이었다. 생산량이 줄었다고 장부를 조작했을 뿐, 폐광으로 지정된 기록은 없었다.“언제 이곳에 들어왔습니까?”“육 년 전.”어머니가 죽은 다음 해였다.세레나는 노인의 손목을 잡기 전에 말했다.“하론 씨, 맥을 확인하겠습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을 움직여 주세요.”반응이 없었다.관리 사제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지 오래됐다.”세레나는 손목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성맥은 거의 끊어진 것처럼 약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반복된 과도한 성력 주입으로 흐름이 여러 갈래에서 흉터처럼 굳어 있었고, 신장 쪽은 독성 물질로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지금 당장 성력을 넣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세레나는 호흡과 맥박을 기록하고, 손톱 아래에서 광물 가루 시료를 채취할 준비를 했다.그 순간 노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세레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하론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초점이 흐린 눈동자가 검은 장갑을 지나 세레나의 얼굴로 향했다.“엘레노라…….”말라붙은 입술에서 숨과 함께 이름이 흘러나왔다.관리 사제가 다가오려 하자 세레나는 손으로 막지 않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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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잠긴 문은 기록을 남긴다

“아직 성전 안에 있습니다.”하론의 목소리는 끝부분에서 거의 숨으로 흩어졌다.세레나는 노인의 손을 세게 붙잡지 않았다. 손가락이 검은 장갑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등을 받쳐 주며 그의 입술과 눈동자를 번갈아 살폈다. 의식은 잠깐 돌아왔지만, 맥박은 빠르면서도 힘이 없었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오른쪽 가슴이 조금 늦게 올라왔다.지하 치료실 입구에서는 두 번째 잠금쇠가 완전히 돌아간 뒤였다.관리 사제가 철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당겼다.“문을 여십시오!”그가 중앙 종의 끈까지 잡아당겼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천장으로 올라가야 할 철사가 중간에서 느슨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누군가 지상에서 줄을 풀어 놓았거나, 지하에 두 사람을 들여보낸 뒤 종이 울리지 않도록 장치를 끊어 둔 것이 분명했다.나디아가 약제 상자를 침상 아래에 내려놓았다.“네 시간 뒤에 열어 주겠다는 문서가 있었죠?”“있습니다.”세레나는 하론의 맥을 다시 확인했다.“그 문서가 지금 문을 열어 주지는 않겠지만, 닫아 둔 사람의 이름을 남길 수는 있어요.”관리 사제가 불안한 얼굴로 돌아봤다.“대신관님께서 문을 잠그라고 명령하셨을 리 없습니다. 경비가 착각한 겁니다.”“그렇다면 더 쉽게 확인할 수 있겠군요.”세레나는 하론의 손을 침상 위에 내려놓고 기록판을 집었다.“입실 시각, 문이 잠긴 시각, 종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적어 주세요.”“지금 그럴 때입니까?”“지금 적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도 정확한 시각을 기억하지 못합니다.”세레나는 관리 사제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확인했다.“클레멘트 사제님께서 입구를 확인했고, 중앙 종을 세 차례 당겼으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도 적으십시오.”클레멘트는 종이와 세레나를 번갈아 봤다.“왜 제게 시키는 겁니까?”“출입문 관리 책임자로 서명하신 분이니까요.”세레나는 마티아스가 보낸 지하 배정 명령서 사본을 약제함에서 꺼냈다.근무 종료 시각, 출입문 개방 책임자, 응급 연락 방식이 모두 적혀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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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도 설명하는 이유

대답이 지나치게 빨랐다.세레나는 클레멘트를 추궁하는 대신 하론의 상태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더 많은 말을 끌어내려 하면 남은 기력까지 소모할 수 있었다.“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그녀는 노인의 손가락을 천천히 펴 주었다.“다시 말씀하실 수 있을 때 물어볼게요.”하론의 눈이 세레나에게 머물렀다.흐리던 초점이 잠깐 또렷해졌다.“엘레노라 님이…… 기다리라고 했습니다.”“무엇을요?”“아가씨가…… 자기 이름으로 올 때까지.”세레나의 손이 장갑 위에서 멈췄다.그녀는 지금 세레나 베일런이라는 이름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세리스 베인.어머니가 가문 밖으로 나갈 길을 위해 남긴 이름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하론이 말한 ‘자기 이름’이 어느 쪽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노인은 더 말하지 못했다. 눈꺼풀이 내려왔고, 손가락도 다시 힘을 잃었다.세레나는 질문을 중단했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답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의 남은 생명까지 사용해서는 안 됐다.“나디아.”“네.”“하론 씨의 호흡과 맥을 맡아 주세요. 클레멘트 사제님께서는 다른 환자들의 현재 상태를 확인해 주십시오. 문이 열리지 않는 동안 악화되는 사람이 없는지 먼저 봐야 합니다.”클레멘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출구를 찾지 않습니까?”“찾을 겁니다.”세레나는 지하 치료실을 둘러봤다.“다만 문이 열릴 때까지 환자를 방치할 생각은 없습니다.”철문이 잠긴 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곱 번째 침상의 환자가 고열과 함께 경련을 일으켰다.정제소에서 광석을 씻던 중년 여성이었다. 팔 전체에 번진 은빛 혈관은 이전보다 짙어졌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천장 한쪽을 따라 움직였다.“누가 저 위에서 물을 붓고 있어요.”여성이 허공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백휘열이 진행될 때 나타나는 환각이었다.클레멘트는 성수병을 가져오려 했지만 세레나가 먼저 침상 옆의 투약 기록을 확인했다. 여성에게는 지난 여섯 시간 동안 성수와 성력 안정 주입이 세 차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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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숨을 쉴 시간을 만드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성맥 처치는 끝났습니다.”“열이 그대로인데요.”“열을 지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숨을 쉴 시간을 만든 겁니다.”세레나는 차가운 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물로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 주변을 천천히 식히도록 지시했다. 몸 전체에 찬물을 붓는 방식은 오한을 유발해 열 생성을 더 늘릴 수 있었다.나디아가 소변 기록지를 들고 돌아왔다.“여덟 시간째 없습니다.”“상부 치료동에 신장 손상을 볼 수 있는 의원이 있습니까?”클레멘트가 대답했다.“정식 의원은 대신관 회의에 들어갔습니다.”“회의가 언제 끝납니까?”“알 수 없습니다.”세레나는 철문을 바라봤다.중앙 종은 끊어졌고, 문은 바깥에서 잠겼다. 치료동에 있는 장비만으로는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다른 연락 방법이 있을 겁니다.”나디아가 천장을 올려다봤다.“식사와 약을 내려보내는 배급구가 있어요. 저쪽 벽 뒤에.”지하 치료실 가장 안쪽에는 좁은 승강 상자가 있었다. 음식과 린넨을 내리는 용도라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물건을 지상으로 올려보낼 수는 있었다.문제는 지상에서 줄을 당겨야 움직이는 구조라는 점이었다.세레나는 승강 상자 아래의 금속판을 열었다. 안쪽에는 무게가 실리면 위쪽 표시판이 내려가는 단순한 장치가 있었다.“사람을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그녀는 방금 작성한 응급 기록과 문이 잠긴 시각, 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깨끗한 천에 싸서 승강 상자 안에 넣었다. 그 위에는 빈 약병 세 개를 눕혀 두었다.“왜 병을 넣습니까?”클레멘트가 물었다.“상자가 움직일 때 소리가 나도록요.”세레나는 금속판 아래에 붕대를 접어 넣어 무게 중심을 앞으로 기울였다.승강 상자가 조금만 흔들려도 약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울릴 것이다. 지상에서 배급구를 열지 않더라도 평소와 다른 소음을 들을 가능성이 있었다.나디아가 구조를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사람을 부르는 종이 끊겼으니, 상자를 종으로 쓰는군요.”“한 번으로 부족할 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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