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Chapter 121 - Chapter 130

319 Chapters

121. 질문의 범위를 바꾸지 마십시오

세레나의 시선이 장부에 머물렀다.뜻밖의 대답이었다.어머니가 세리스 베인을 세레나의 법적 가명으로 등록한 것이 아니었다.환자 기록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임상용 서명.세레나는 그 이름을 지금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했을 뿐이었다.“그렇다면 세리스 베인은 정식 신분이 아닙니다.”루멘 기록관이 말했다.세레나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황실 기록관이 먼저 시험 공고를 펼쳤다.“예비 시험 규정에는 지원 단계에서 법적 신분이 아니라 신원 보증과 봉사 경력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식 자격 발급 때 본인 신원을 대조하는 절차가 따로 있고요.”“그러나 타인의 봉사 기록을 사용했다면 문제가 됩니다.”세레나가 입을 열었다.“타인의 기록인지 먼저 증명해 주세요.”“당신이 열두 살 때 그곳에서 일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질문의 범위를 바꾸지 마십시오.”그녀는 기록관의 이름을 확인했다.“에버트 기록관님. 현재 문제는 제가 세리스 베인의 봉사 기록을 훔쳤느냐는 것이지요.”“그렇습니다.”“그럼 실제 세리스 베인이 따로 존재한다는 기록을 제시해 주세요.”에버트는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출생지 없음.부모 없음.주소 없음.엘레노라의 추천과 C. Vane이라는 서명뿐이었다.“저는 이 이름의 봉사 기록과 연결된 임상 메모의 작성 방법을 알고 있고, 엘레노라 베일런에게 직접 치료 기록 정리를 배웠습니다.”세레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멈췄다.자신이 세레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신원 심리는 계속 진행하십시오. 다만 예비 시험 합격을 곧바로 부정할 근거는 아닙니다.”황실 기록관도 동의했다.“실기 시험에서 실제 환자를 다룬 능력은 신분과 별개로 이미 기록됐습니다.”에버트의 표정이 굳었다.“성전은 자격 발급을 보류할 수 있습니다.”“보류는 하실 수 있겠지요.”세레나는 시험 결과 통지서를 자신의 쪽으로 가져왔다.“취소와는 다른 말입니다.”그 차이가 중요했다.세레나는 성전을 떠날 수 있었다.하지만 자격을 얻지 못하면 독립 치료원을 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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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알아본 사람

“제가 직접 듣겠습니다.”테오도르가 열린 회의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황실 의료감찰원의 긴 복도에는 아직 아침 냉기가 남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흐린 햇빛이 들어와 바닥의 회색 석판 위에 길게 놓였고, 로이스가 들고 온 북부군 의료 기록은 테오도르의 말이 끝난 뒤에도 펼쳐진 채였다.세레나는 약제함 위에 얹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그가 무엇을 알아내려고 온 것인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하론 씨의 진술을 들으시겠다는 뜻입니까?”“그렇습니다.”테오도르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까?”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로이스가 시선을 낮췄고, 황실 보조관 아벨은 들고 있던 기록판에서 펜을 떼지 않았다.테오도르는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그 가능성까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요.”세레나의 검은 장갑 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걸 목적으로 하론 밀러 씨에게 질문하지는 않겠습니다. 환자가 먼저 말하고 싶다고 요청한 범위만 듣겠습니다.”“제가 자리에 있어도 됩니까?”“하론 씨가 동의한다면요.”“제가 나가 달라고 하면요?”테오도르는 한 박자도 늦추지 않았다.“나가겠습니다.”세레나는 그 대답 뒤에 붙을 말을 기다렸다.없었다.왜 자신이 의심스러운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제는 설명해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자신의 부상 기록을 들고 직접 찾아온 남자는 복도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세레나의 이동 경로를 막지 않았다.오웬 신부가 회의실 안에서 조용히 말했다.“하론의 상태가 오래 대화를 나눌 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밤새 의식은 유지했지만 체력이 떨어졌어요.”세레나가 고개를 돌렸다.“출혈은요?”“새벽 이후 객혈은 없었습니다. 다만 소변량이 여전히 적습니다.”“이동 중 혈압 변화는 있었습니까?”“한 번 떨어졌습니다.”세레나는 더 이상 테오도르를 보지 않았다.“먼저 환자를 보겠습니다.”에버트 기록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신원 심리는”“두 시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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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 아이가 뭐라고 했습니까

뒤따라온 테오도르가 고개를 들었다.“들어가시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겠습니다.”“말씀하십시오.”“하론 씨가 공작님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틀린 기억을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알고 있습니다.”“환각과 장기적인 고열, 약물 노출이 있었습니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과거 일을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그렇게 하겠습니다.”“그리고 질문은 제가 상태를 확인한 뒤에 해 주세요.”“알겠습니다.”그는 한 번도 ‘내 과거인데 왜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세레나는 방문을 열었다.하론은 창가 가까운 침상에 누워 있었다.지하 치료실에 있을 때보다 얼굴빛은 조금 나아졌으나 눈 밑은 깊게 패여 있었고, 마른 손등 위의 은빛 혈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침상 옆에는 소변량을 기록하는 표와 호흡수, 맥박, 체온을 시간별로 나눈 관찰지가 걸려 있었다.세레나는 가장 먼저 기록지를 확인했다.“하론 씨.”노인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세리스 베인입니다. 지금 상태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하론은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세레나…… 아가씨.”테오도르의 걸음이 문 안쪽에서 멈췄다.세레나는 하론의 호칭을 고치지 않았다.“맥을 짚겠습니다.”그녀가 손목 가까이에 손을 올리자 노인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맥은 약하지만 전날보다 일정했다. 호흡도 이전보다 길어졌고 체온은 조금 내려갔다. 그러나 신장 쪽 성맥의 흐름은 여전히 답답했고, 오래된 손상을 짧은 치료로 돌이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세레나는 손을 뗐다.“오늘은 오래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힘들면 손가락을 한 번 움직여 주세요. 바로 중단하겠습니다.”하론의 시선이 세레나를 지나 문 쪽으로 향했다.테오도르가 서 있었다.노인의 흐린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공작…… 각하.”테오도르는 침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기억하십니까?”하론은 웃으려다 기침했다.세레나가 먼저 물을 주지 않았다.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린 뒤 젖은 천으로 입술만 적셨다.“말씀하실 수 있을 때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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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제가 손을 대도 괜찮습니까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하론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말했다.“먼저 숨을 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세레나의 장갑 끝이 움직이지 않았다.테오도르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그 뒤에는요?”“공작님이 피를 많이 흘린 게 아니라…… 안에서 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수 있으니 성력을 강하게 넣으면…… 출혈이 더 빨라질 수 있다고.”테오도르는 자신의 옆구리에 남아 있는 현재의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려다 손을 멈췄다.똑같았다.얼마 전 베일런 저택에서 이름 없는 소견서가 지적한 위험.지금 세리스 베인이 환자에게 반복해서 사용하는 진단 방식.일곱 해 전 어린 C. Vane이 기록에 남긴 문장.호흡을 먼저 세라.진단 전에 성력을 넣지 마라.“그 아이가 직접 치료했습니까?”테오도르가 물었다.하론은 힘겹게 웃었다.“안 했습니다.”테오도르의 눈썹이 움직였다.“성력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천을 접어 상처를 눌러 놓고…… 사람들한테 일을 나눴습니다. 하나는 숨을 세고, 하나는 엘레노라 부인을 부르러 가고, 저는 공작님이 토하면 몸을 옆으로 돌리라고 했습니다.”세레나는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전생의 자신과 달랐다.열두 살의 자신은 아직 사랑 때문에 모든 일을 혼자 떠안는 법을 배우기 전이었다. 어머니 곁에서 치료는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정확한 일을 나누는 과정이라고 배웠다.언제부터 그것을 잊었을까.테오도르와 가까워진 뒤였을까.성전에서 성녀라 불린 뒤였을까.아니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로 자기 몸까지 치료 도구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을까.하론이 다시 말했다.“엘레노라 부인이 돌아와서…… 잘했다고 했습니다.”“이름은요?”테오도르가 물었다.“그 아이의 이름을 들었습니까?”세레나의 시선이 하론에게 향했다.그는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대답하기 전 호흡이 불규칙해지자 세레나는 즉시 손을 들었다.“여기까지 하겠습니다.”테오도르도 더 묻지 않았다.“하론 씨.”세레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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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그 사실을 사용할 권리는 없습니다

열두 살짜리가 열아홉 살이 된 지금과 같은 존댓말을 쓸 리는 없었다. 기억 속 표현이 현재의 말과 섞인 것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손을 대기 전에 기다렸고, 흰 천을 접어 상처 위에 놓았으며, 맥을 짚은 뒤 성력을 밀어 넣는 대신 사람들을 불렀다.그리고 자신이 이름을 물었다.“너는 누구지?”어린아이가 돌아봤다.햇빛 때문에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다.“세레나예요.”그 순간 기억 속 얼굴과 지금 복도에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이 겹쳤다.테오도르는 벽에 손을 짚지 않았다.손목을 누르던 차가운 감각도 없었다.이번에는 악몽도, 알 수 없는 쇠사슬도 아니었다.자신이 실제로 살아온 과거였다.“공작님?”세레나가 부르자 테오도르가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아직 세리스 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호두 껍질 물로 어둡게 만든 머리카락.가문 문장 없는 외투.황실 보호 대상이라는 표식.그러나 이제 그는 알았다.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테오도르는 입술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세레나가 물었다.“상처가 아프십니까?”“아닙니다.”“그러면 왜 그러십니까?”테오도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붙잡지 않았다.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겠다며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기억이 났습니다.”세레나의 손이 마른 천 위에서 멈췄다.“일곱 해 전의 일입니까?”“일부만.”테오도르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은 채 말했다.“그날의 얼굴도 조금 기억납니다.”복도의 소리가 멀어진 듯 조용했다.세레나는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래서요?”질문은 차분했다.그런데 테오도르는 그것이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알아봤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세리스라는 이름을 벗길 것인가.가족에게 돌려보낼 것인가.자신이 알고 있는 세레나라고 선언하고 공작가의 권한 아래 두려 할 것인가.테오도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제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세레나의 눈빛이 움직였다.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묻고 있었다.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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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모두 멈추세요

3호실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두 번 울렸다.세레나는 곧바로 돌아갔다.테오도르는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문 앞에서 의료진이 움직일 공간을 비켜 줬다.하론은 침상 위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체온은 다시 올라갔고, 호흡은 짧아졌다. 오른손을 확인하니 은빛 혈관이 손목 위로 더 짙게 올라와 있었다.오웬 신부가 기록지를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이었습니다.”“투약한 건 무엇입니까?”“마지막 처방대로 수분 보충과 진통 약초만 사용했습니다.”세레나는 약병을 하나씩 확인했다.성전에서 온 백휘석 패치도, 성력 증폭제도 없었다.그런데 환자의 피부에서는 아주 희미한 금속성 냄새가 났다.“침구를 언제 갈았습니까?”“새벽에요.”“어디에서 가져온 천입니까?”구호원 보조원이 대답했다.“성전 외부 치료동에서 환자와 함께 온 물품입니다.”세레나는 담요 가장자리를 들었다.흰 먼지가 아주 얇게 묻어 있었다.지하 치료실에서 사용하던 저품질 백휘석 등잔 아래에 오래 노출된 침구였다. 하론을 옮기면서 환자만 씻고 침구 일부는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모두 멈추세요.”세레나는 침구를 털지 못하게 했다.“창문도 지금은 열지 마세요. 천부터 젖은 상태로 접어서 밀폐해야 합니다.”오웬이 곧장 움직였다.“제가 하겠습니다.”“직접 하지 마세요. 장갑을 낀 사람 두 명이 양쪽에서 말아야 합니다.”세레나는 역할을 나눴다.한 명은 호흡과 맥박.한 명은 침구 제거.다른 사람은 깨끗한 옷과 젖은 천 준비.자신은 하론의 성맥을 확인했다.오염원이 제거되자 곧바로 성력을 넣지 않았다. 몸 안에 축적된 독성을 지울 수 없었고, 장기 기능도 이미 약해져 있었다. 호흡을 확보하고 상태 변화를 기록하며, 약제사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먼저였다.나디아가 황실 의료감찰원에서 연락을 받고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이십 분 뒤였다.그녀는 문에 들어오자마자 침구 시료를 별도 병에 담았다.“성전 지하에서 쓰던 천과 냄새가 같아요.”“성분 확인해 주세요.”“하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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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제가 누구입니까

하론은 더 말하지 않았다.테오도르 역시 과거를 이어 묻지 않았다.병실을 나온 뒤 그는 창문 옆에서 한참 서 있었다.세레나는 손을 씻고 도구를 정리한 뒤 문밖으로 나왔다.“공작님.”“네.”“그때의 일을 빚으로 생각하지 마세요.”테오도르는 돌아봤다.“그러지 않겠습니다.”“제가 그 일을 했다고 해서 지금 공작님에게 무엇을 요구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알고 있습니다.”“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세레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공작님께서 이번에 문을 열어 주고, 약제 조사를 도왔다고 해서 제게 가까워질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테오도르는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묻지 않았다.“네.”그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그것도 알고 있습니다.”세레나는 그 대답을 듣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이번에는 테오도르가 바로 따라오지 않았다.몇 걸음 정도의 거리가 생긴 뒤에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오후가 되자 황실 의료감찰원으로 루멘 성전의 새 통지서가 도착했다.봉투는 세리스 베인 앞으로 왔지만, 문서 첫 줄에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세레나 베일런으로 추정되는 치료사 시험 지원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본당 출석을 요구한다.’세레나는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출석 시한은 다음 날 오전.이유는 신분 위조 조사.수습 자격 정지는 계속 유지.그러나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성전은 해당 지원자가 엘레노라 베일런의 미공개 임상 기록을 불법 취득했을 가능성을 조사한다.’나디아가 옆에서 읽고 얼굴을 찌푸렸다.“이제 어머니 기록을 훔쳤다는 쪽으로 바꾸려는 모양이네요.”“진짜 마지막 장이 드레이크 후작저에서 나왔으니 성전이 먼저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이 어려워졌으니까요.”“출석할 겁니까?”세레나는 통지서와 황실 보호 명령을 나란히 놓았다.“성전 단독 심리에는 가지 않습니다.”“공개 심리를 요구하시게요?”“황실 기록관과 군 의료 감독관 입회를 요구하겠습니다.”나디아가 의자에 앉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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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알아본 남자

“제가 직접 듣겠습니다.”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열린 회의실 문 너머에서 들렸다.황실 의료감찰원 별관의 아침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밤새 드레이크 후작저에서 들여온 장부와 약제 시료가 지하 기록실로 옮겨졌고, 복도를 오가는 조사관들도 발소리를 줄였다. 그런데 테오도르가 나타난 순간, 회의실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향했다.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책상 위에는 성전이 보낸 신원 심리 통지서와 성 루치아 구호원의 낡은 봉사자 등록부, 엘레노라가 남긴 실제 임상 기록 사본이 서로 닿지 않게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C. Vane이라는 서명이 남은 어린 시절 기록이었다.로이스는 테오도르보다 반걸음 뒤에서 북부군 의료 기록을 들고 있었다.세레나가 먼저 물었다.“하론 씨의 진술을 들으시려는 겁니까?”“그렇습니다.”“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요?”회의실 안의 공기가 한 번 가라앉았다.루멘 성전에서 나온 에버트 기록관은 대놓고 테오도르의 대답을 기다렸고,황실 기록관은 펜을 든 채 손을 멈추지 않았다.테오도르는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세레나의 검은 장갑 끝이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이유로 환자를 몰아붙이지는 않겠습니다.”“하론 씨가 말씀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요?”“듣지 않겠습니다.”“제가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하면요?”“나가겠습니다.”세레나는 한동안 테오도르를 바라봤다.그가 세레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굳이 숨길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C. Vane이 남긴 필체, 베일런 저택에서 익명으로 보낸 의학 소견서, 세리스 베인의 치료 방식, 그리고 하론이 반복해서 부른 ‘세레나 아가씨’.증거는 하나씩 겹쳐지고 있었다.테오도르라면 사람을 붙여 하루 안에 확인할 수 있었다.그런데 그러지 않았다.그 사실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아직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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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성력이 독이 되는 순간

테오도르는 문밖에서 멈췄다.세레나는 하론의 호칭을 정정하지 않았다.“상태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손목을 만져도 괜찮습니까?”하론이 고개를 끄덕였다.세레나는 검은 장갑을 벗고 손을 씻은 뒤 그의 손목에 손가락을 올렸다. 성맥은 여전히 탁했지만 지하 치료실에 있을 때처럼 거칠게 요동치지는 않았다. 신장 쪽 흐름은 약했고, 오래된 장기 손상은 분명했다.기적처럼 원래 상태로 돌릴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지금은 더 망가지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했다.“숨은 어제보다 편하십니까?”“조금…….”“어지러운 건요?”“일어나면…….”“당분간 혼자 일어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하론이 문 쪽을 바라봤다.테오도르와 눈이 마주쳤다.노인의 눈동자가 오래전 기억을 더듬듯 조금 흔들렸다.“공작…… 각하.”테오도르는 그제야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침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저를 기억하십니까?”하론은 숨을 고른 뒤 말했다.“예전보다…… 더 무서운 얼굴이 됐습니다.”오웬 신부가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참았다.로이스의 눈썹도 아주 조금 움직였다.테오도르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지만 대답은 했다.“그때도 비슷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하론은 짧게 웃다가 기침했다.세레나는 바로 대화를 끊었다.“지금은 쉬세요.”기침이 잦아든 뒤 하론이 먼저 손가락을 움직였다.말하겠다는 신호처럼 보였다.세레나는 다시 물었다.“계속 말씀하고 싶으십니까?”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힘들면 오른손 검지를 한 번 접으세요. 바로 중단하겠습니다.”황실 보조관 아벨이 방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진술 기록을 시작했다.테오도르는 질문하지 않았다.하론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일곱 해 전…… 서쪽 길에서 마차가 뒤집혔습니다.”로이스가 가져온 북부군 기록에도 같은 사고가 적혀 있었다.칼베른가 후계자 테오도르, 베일런 영지 북서쪽 도로에서 낙석 사고.늑골 손상.우측 옆구리 자상.세레나는 그 내용을 읽은 적이 없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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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기억이 났습니다

테오도르에게 희미했던 기억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침상 곁에 선 작은 아이.손목이 가늘어 장갑이 남아돌던 손.자신보다 훨씬 어린 주제에 어른들에게 거리낌 없이 일을 나누던 목소리.“그 천은 거기 말고요. 피가 얼마나 번지는지 봐야 하니까 다른 걸로 덮으면 안 돼요.”“지금 빛 넣지 마세요.”“숨부터 세어 주세요.”그때는 건방지다고 생각했다.통증 때문에 짜증도 났다.그런데 결국 엘레노라가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한 처치를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오히려 말했다.잘했구나.그 말까지 돌아왔다.테오도르는 방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이름을 들으셨습니까?”질문하고 나서도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하론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세레나는 맥박을 확인했다.빨라지고 있었다.“잠시 멈추겠습니다.”테오도르는 더 묻지 않았다.하론이 숨을 고를 동안 세레나는 입술을 물로 적셨고, 침상의 상체 각도를 조금 높였다. 호흡이 다시 일정해진 뒤에도 먼저 질문하지 않았다.하론이 직접 말했다.“각하가 물었습니다.”테오도르의 눈이 움직였다.“뭘 말입니까?”“너는 누구냐고.”그 순간 기억이 소리보다 먼저 돌아왔다.어린 테오도르는 눕혀 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다 옆구리 통증에 다시 침상으로 쓰러졌다. 검은 머리카락 끝이 땀에 젖어 있었고, 자신을 간호하던 어린 여자애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봤다.“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요.”“너는 누구지?”“그건 왜요?”“내게 명령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아이의 손이 깨끗한 천을 반으로 접었다.그리고 대답했다.“세레나예요.”테오도르의 호흡이 아주 조금 멎었다.지금 3호실 침상 옆에 서 있는 여자의 옆얼굴과 일곱 해 전 기억 속 얼굴이 정확히 겹쳤다.그동안 비어 있던 자리에 이름이 들어갔다.세레나.하론이 작게 말했다.“베일런가의…… 세레나 아가씨였습니다.”아벨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세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테오도르는 그녀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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