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내 처형에 서명한 공작과 계약 결혼했다: Kabanata 31 - Kabanata 40

49 Kabanata

31. 대신할 수 없는 자리

대신할 수 없는 자리헬레나는 계단의 마지막 칸을 내려온 뒤에도 곧바로 세레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낮은 천장 아래에서 등잔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검은 치맛자락과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뒤따라온 집사 모리스가 입구를 막아 섰고, 하인 둘은 오래된 장부가 쌓인 선반 사이를 천천히 훑었다. 먼지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가득한 지하 서고는 방금 전까지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누가 먼저 약점을 드러내는지 지켜보는 밀실이 되어 있었다.“무엇을 찾았는지 내게도 보여 주겠니, 세레나?”헬레나가 다시 물었다.세레나는 드레스 안감에 넣은 계약서를 만지지 않았다. 숨긴 물건을 의식하면 사람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한다. 그녀는 조금 전 펼쳐 둔 광산 장부를 탁자 중앙으로 밀어 놓은 뒤, 손에 낀 얇은 장갑의 손목 부분을 반듯하게 정리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광산 수익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허락도 없이?”“제 어머니가 혼인할 때 가져오신 지분이 포함된 광산입니다. 딸이 장부를 보는 데 안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조항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헬레나는 대답 대신 탁자 위의 장부를 내려다봤다. 표지에 눌어붙은 먼지, 숫자를 옮겨 적은 세레나의 종이, 열린 채 남아 있는 소유권 상자까지 차례로 살피던 시선이 바닥에 놓인 찢어진 종이 조각에서 멈췄다.두 장을 붙인 계약서를 벌리며 떨어진 가장자리였다.세레나는 늦게 발견한 사람처럼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손가락보다 작은 조각에는 글자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헬레나의 엄지가 검지 마디를 천천히 쓸었다.“그래서 무엇을 알아냈지?”“장부에 적힌 생산량과 세금 기록이 맞지 않습니다.”세레나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 해의 장부를 펼쳤다.“광산 생산량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되어 있는데, 운송비와 황실에 낸 광산세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생산량이 줄었다면 마차도 줄고 세금도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백휘석을 실어 나른 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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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 말씀을 문서로 남겨 주십시오

“어릴 때 쓴 글씨를 네가 모두 기억하니?”“어머니께서 제 글씨를 직접 가르치셨습니다.”세레나는 서명 옆에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적었다. 마지막 철자를 곧게 내려 끝낸 뒤, 위조된 서명과 나란히 놓았다.“어릴 때는 마지막 획을 둥글게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고쳤고요. 이 계약을 작성한 사람은 열두 살의 제가 아니라 현재의 제 필체를 알고 있었습니다.”헬레나의 손이 계약서를 덮었다.“오래된 문서에는 필경사의 손이 들어가기도 한다.”“그렇다면 본인의 동의 없이 필경사가 대신 서명했다는 뜻이겠군요.”“세레나.”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더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어조였다.세레나는 손에 쥐었던 펜을 내려놓았다.“원본을 확인하겠습니다.”“허락하지 않는다.”“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끼어들고 있으니까.”“제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제가 판단하겠습니다.”“그 판단으로 공작의 부름을 거절하고, 성전 시험을 보겠다며 가문을 떠나려는 것이냐?”헬레나는 계약서를 접어 모리스에게 건넸다.“드레이크 후작과의 혼담까지 망치면 네가 자유로워질 것 같니? 후원도, 재산도 없이 이 집을 나가면 성전은 너를 가장 낮은 치료소부터 전쟁터까지 원하는 곳에 배치할 거다. 그때도 지금처럼 선택을 말할 수 있을까?”세레나는 장부 위에 얹은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적어도 제가 치를 대가를 알고 선택할 수는 있겠지요.”“혼인은 네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그 말씀을 문서로 남겨 주십시오.”헬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세레나는 빈 종이를 한 장 꺼내 그녀 앞으로 밀었다.“세레나 베일런은 가문의 채무를 갚기 위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혼인해야 하며, 상대를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적어 주세요. 아버지와 부인께서 서명하시면 저도 보관하겠습니다.”지하 서고에 남아 있던 작은 소음까지 사라졌다.하인들은 시선을 피했고, 모리스의 손에 들린 계약서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구겨졌다. 강제 혼인은 귀족가에서 드물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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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다른 이름이 필요합니다

“방으로 돌아가라.”세레나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벤은 제 명령으로 서고를 열었습니다.”등잔을 들고 있던 벤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실제로는 그가 먼저 독촉장을 건넸고 서고의 위치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벤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기 어려웠다.“사용인이 주인의 문서를 빼돌렸다면 책임을 져야지.”“서고 열쇠를 가져오라고 한 것도, 장부를 꺼내라고 한 것도 저입니다. 문책하실 거라면 저에게 하세요.”헬레나는 벤을 천천히 훑어봤다.“사용인 하나를 감싸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네게 기대려 들 거다. 네가 그들의 급료와 식량까지 책임질 수 있니?”“적어도 제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칼베른 공작을 거절하고 하녀를 치료했다더니, 이제는 하인들의 주인이라도 될 생각이구나.”“주인이 되려는 게 아닙니다.”세레나는 탁자 위의 장갑을 다시 꼈다.“제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으려는 겁니다.”헬레나는 한동안 세레나를 바라보다가 모리스에게 고개를 기울였다.“서고를 다시 잠그고, 장부를 전부 위층으로 옮겨. 오늘 안에.”그녀는 계단을 오르기 전 세레나에게 마지막 명령을 남겼다.“열흘 뒤 무도회에는 참석한다. 그날까지 방을 벗어나려면 내 허락을 받아.”“성전 시험 접수도 같은 날입니다.”“가지 못할 거다.”헬레나는 돌아보지 않았다.“그 전에 네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정해질 테니까.”세레나의 침실 문에는 해가 지기 전에 새 자물쇠가 달렸다.문이 완전히 잠긴 것은 아니었으나 헬레나의 시녀가 복도 의자에 앉아 출입을 기록했고, 창문 아래 정원에도 하인 하나가 배치되었다. 누가 보아도 감금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세레나가 혼자 움직일 방법만 차단한 조치였다.방으로 돌아온 세레나는 커튼부터 닫았다.에마가 다친 손을 가슴에 받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붕대 밖으로 드러난 손가락은 혈색이 나쁘지 않았지만, 걱정이 앞선 탓인지 입술을 계속 깨물고 있었다.“장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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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검은 리본 속의 진실

에마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세레나는 서랍에서 치료사 시험 안내서를 꺼냈다. 귀족 지원자는 가주의 허락과 가문 인장을 제출해야 했고, 평민 지원자는 출신 지역 성직자의 보증이 필요했다. 현재 신분으로 정식 절차를 밟는다면 헬레나의 동의를 피할 수 없었다.“저택에서 나가신다는 뜻인가요?”“시험일 전에요.”“열흘밖에 남지 않았어요.”“그래서 오늘부터 준비해야 합니다.”세레나는 필요한 것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개인 장신구, 평민용 옷 두 벌, 치료 도구, 어머니의 의학서, 신분 보증을 구할 경로. 저택에서 도망치는 것보다 도망친 뒤 굶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전생의 세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을 용기라고 믿었지만, 아무 대책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다른 형태의 의존일 뿐이었다.“에마.”“네.”“저를 따라오지 마세요.”에마의 얼굴이 굳었다.“제가 짐이 될까 봐 그러세요?”“손이 회복되지 않았고, 저는 도착할 곳조차 정하지 못했습니다.”“그럼 아가씨 혼자 위험한 곳을 다니시게 두라고요?”“저 때문에 에마가 떠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제가 여기 남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어요.”세레나의 펜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에마는 다친 손을 조심스럽게 탁자에 내려놓았다.“아가씨께서 선택을 존중받고 싶으시다면, 저한테도 고를 기회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방 안에 촛불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세레나는 에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전생에는 누구도 자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명분으로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렸다. 그것이 상대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남겨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았다.테오도르가 자신의 삶을 대신 결정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지금 결정하지 마세요.”세레나는 펜을 내려놓았다.“손이 나은 뒤, 제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도 함께 가고 싶다면 다시 물을게요.”에마가 입술을 다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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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누구를 치료할지는 내가 정합니다

전생보다 빨랐다.마리엘이 테오도르에게 접근한 것은 두 사람이 정략혼을 논의하기 시작한 뒤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레나가 그를 거절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밀어낸 자리가 비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드레이크 후작과의 혼담이 마리엘에게까지 번질 것을 두려워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확실한 것은 한 가지였다.세레나가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할수록 주변 사람들도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자 시녀 셋이 바구니와 천을 들고 들어왔다.그들은 정리하는 척 침대 아래와 책상 서랍부터 살폈다. 한 명은 옷장 안쪽 판자를 두드렸고, 다른 한 명은 벽난로 재를 집게로 뒤집었다. 약제함까지 열어 본 시녀가 낡은 붕대와 빈 병을 꺼내며 말했다.“이 물건도 치우겠습니다.”세레나는 상자 뚜껑 위에 손을 올렸다.“그 자리에 두세요.”“이제 공작님을 치료하지 않으신다면서요.”“누구를 치료할지는 제가 정합니다.”세레나가 시녀를 똑바로 바라봤다.“이 물건의 용도도 마찬가지고요.”시녀는 헬레나의 이름을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세레나가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택 사람들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수색은 한동안 이어졌지만, 계약서는 발견되지 않았다.시녀들이 방을 나간 뒤 에마가 닫힌 문을 노려봤다.“마리엘 아가씨께서 공작님께 무슨 말을 하실까요?”세레나는 흐트러진 도구를 하나씩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저와 관련된 이야기겠지요.”“걱정되지 않으세요?”손을 멈춘 세레나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테오도르와 마리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여전히 가슴 안쪽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다. 전생의 혼인 발표회에서 마리엘의 허리에 손을 얹고 서 있던 테오도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세레나를 향해 고개만 기울였던 남자. 그 기억은 회귀했다고 흐려지지 않았다.세레나는 흐트러진 봉합실을 감아 유리병 안에 넣었다.“걱정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습니다.”에마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세레나는 먼저 덧붙였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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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세레나가 내게 도움을 청했습니까

로이스의 시선이 달라졌다.잠시 후 마리엘은 응접실이 아닌 테오도르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 위에 짙은 조끼만 걸친 차림이었고, 상처가 당기는지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얹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은 냉정했으나, 책상 한쪽에 펼쳐진 짧은 소견서만큼은 여러 번 읽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세레나가 보낸 종이였다.마리엘은 그 사실을 알아보면서도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칼베른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앉으십시오.”테오도르는 세레나에게 하던 것처럼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마리엘은 책상에서 두 의자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인상도, 대화를 피하려는 거리도 아니었다.“상처는 좀 어떠신가요?”“견딜 만합니다.”“라울 의원님께서 만든 연고를 가져왔습니다. 언니가 공작님의 상태를 염려하면서도 직접 찾아뵙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요.”테오도르의 시선이 마리엘에게 향했다.“세레나가 나를 염려한다고 직접 말했습니까?”“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나는 알 수 없군요.”마리엘은 준비했던 미소를 유지했다.“언니는 공작님을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그 마음이 전부 사라질 수는 없잖아요.”“세레나의 감정을 해석해 달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테오도르가 책상 위 서류를 덮었다.“드레이크 후작과의 혼담에 관해 아는 것을 말하십시오.”마리엘의 장갑 안에서 손끝이 굳었다.“아직 정식으로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후작님이 베일런가의 채권을 일부 사들이셨고, 어머니께서 무도회에서 인사를 나누려 하실 뿐이에요.”“세레나는 동의했습니까?”“언니는 무도회 참석도 거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동의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가문의 사정도 고려해야 합니다.”테오도르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가문의 사정이 본인의 거부보다 우선합니까?”마리엘은 목걸이의 진주를 만지려다가 손을 무릎 위에 그대로 두었다.“귀족의 혼인은 원래 개인의 감정만으로 정해지지 않잖아요.”“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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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

마리엘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치료사가 되어 제도를 떠나고 싶어 하고, 베일런가와 칼베른의 관계보다 자신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있어요. 공작 부인에게 필요한 역할을 받아들일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세레나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본인이 결정합니다.”“하지만 공작님께서는 북부와 가문을 책임지셔야 하잖아요.”마리엘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공작 부인은 각하가 자리를 비울 때 귀족들을 상대하고, 가문을 관리하며, 필요할 때 곁에 있어야 합니다. 언니는 이제 그 모든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테오도르의 얼굴에서 마지막 온기까지 사라졌다.그러나 마리엘은 그 반응을 분노가 아니라 아직 가능성이 남았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그가 세레나에게 혼인을 약속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먼저 선택지를 내밀 수 있었다.드레이크 후작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것보다 칼베른 공작저의 차가운 안주인이 되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누구도 헬레나의 빚 때문에 마리엘을 다른 남자에게 넘기지 못할 것이다.“공작님께 필요한 것이 치료사 세레나가 아니라 베일런 가문의 딸이라면…….”마리엘은 장갑 안에서 손톱을 세게 눌렀다.“언니 대신 저를 선택하셔도 됩니다.”집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창밖에서 훈련 중인 기사들의 구령이 희미하게 들려왔고, 난로 속 장작이 무너지는 소리가 그 사이를 스쳤다.테오도르는 마리엘의 얼굴보다 그녀가 앉은 의자와 책상 사이의 거리를 먼저 바라봤다. 세레나가 정원에서 자신과 같은 만큼 물러나던 장면이 떠올랐다. 누구든 대신할 수 있는 자리였다면, 세레나가 그토록 멀어지는 일에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그는 책상 위에 있던 은제 약통을 마리엘 쪽으로 밀었다.“가져가십시오.”마리엘의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약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세레나가 보낸 것이 아니니까요.”“제가 준비한 마음은 받으실 수 없나요?”“영애께서 무엇을 바라며 오셨는지는 들었습니다.”테오도르는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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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울타리를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는 얇은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장부에서 폐기했다고 기록한 백휘석 중 일부가 다른 상단 이름으로 제도에 반입됐습니다. 최종 납품처는 루멘 성전의 정제소입니다.”테오도르는 서류를 펼쳤다.베일런 장부에는 품질 저하로 폐기한 물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같은 날짜, 같은 무게의 백휘석이 이름만 다른 운송 상단을 거쳐 성전으로 들어갔다.“광산에서 빼돌린 뒤 가문의 빚으로 만들었군.”“그럴 가능성이 큽니다.”“드레이크 후작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채권을 인수한 시점으로 보면, 적어도 광산 가치가 장부보다 높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테오도르는 펜을 들어 채권 매입 날짜 옆에 표시했다.드레이크 후작이 세레나와 혼인하면 베일런 광산의 지분을 손에 넣는다. 성전은 이미 광산에서 나오는 백휘석을 빼돌리고 있었고, 베일런가의 빚이 커질수록 원래 소유자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세레나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베일런 저택에 사람을 보내 문서를 확보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 후작의 채권을 사들이고, 헬레나를 회계에서 배제하며, 세레나의 혼담을 중단시키는 일도 테오도르에게는 어렵지 않았다.그러나 정원에서 들었던 말이 손을 붙잡았다.제가 도움을 청했습니까?테오도르는 호출종 옆에 놓인 공작가 인장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베일런 저택의 경비는?”“오늘 오후부터 출입이 통제됐습니다. 세레나 영애의 방 앞에도 사람이 배치됐다는 보고가 있습니다.”“감금인가?”“겉으로는 무도회 준비를 위한 보호라고 할 겁니다.”테오도르의 시선이 차갑게 굳었다.“사람을 보내겠습니다.”로이스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려 하자 테오도르가 말을 멈췄다.사람을 보내 세레나를 데려오면 가장 간단했다. 헬레나는 칼베른 공작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고, 드레이크 후작의 혼담도 끝난다.그러나 세레나가 공작저로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드레이크 후작에게서 빼내 자신의 울타리에 옮겨 놓는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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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불길이 삼키기 전에

“공작님께서 약을 받지 않으셨어요.”헬레나는 놀라지 않았다.“세레나가 보낸 것이 아니라는 이유겠지.”마리엘은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 안쪽에는 손톱에 눌린 붉은 자국이 네 개나 남아 있었다.“공작님께 필요한 게 베일런가의 딸이라면 저를 선택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헬레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잘했구나.”“거절하셨습니다.”“당장은 그럴 수 있어.”“당장의 문제가 아니었어요.”마리엘은 손바닥을 감추듯 장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언니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헬레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세레나가 공작을 거절했는데도?”“언니가 떠나는 것도 언니의 선택이라고 하셨어요.”“테오도르 칼베른이 그런 말을 했다고?”마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헬레나의 손가락이 찻잔 손잡이 위에서 멈췄다. 계산이 어긋났을 때 나타나는 침묵이었다. 세레나가 공작의 부름을 거절하면 테오도르는 화를 내거나 관심을 거둘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세레나를 강제로 불러들이는 대신 그녀의 의사를 묻기 시작했다.마리엘은 창가로 가 커튼을 젖혔다.건너편 별채 이층에 세레나의 방이 있었다. 창은 닫혀 있었고, 커튼 뒤로 촛불만 희미하게 흔들렸다.“어머니.”마리엘이 말했다.“언니를 드레이크 후작에게 보내면 공작님께서 가만히 계실까요?”“가만히 있어야지.”헬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금고를 열었다. 목에 걸고 있던 은색 열쇠가 자물쇠 안에서 돌아갔다.“그분께는 개입할 명분이 없다.”“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실 것 같지는 않았어요.”헬레나는 금고 안에서 오래된 서류 묶음을 꺼냈다. 빛바랜 끈에는 베일런가의 꽃 문양이 달려 있었다.“그렇다면 명분이 생기기 전에 끝내면 된다.”“무도회까지 열흘 남았어요.”“열흘이나 남은 거다.”헬레나는 시녀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내일부터 세레나가 본관 서쪽 복도로 가지 못하게 해. 엘레노라가 쓰던 방에 있는 물건도 전부 정리하고.”마리엘이 돌아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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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찢겨 나간 마지막 장

창문을 연 순간 밤공기가 방 안으로 깊숙이 밀려들었다.커튼이 한쪽으로 부풀며 촛불을 흔들었고, 창틀 아래를 지나던 경비의 등불이 젖은 잔디 위로 길게 미끄러졌다. 세레나는 불빛이 별채 모퉁이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뒤 약제함의 가죽 끈을 어깨에 걸었다. 검은 장갑은 손목까지 단단히 당겨 꼈고, 머리카락 안쪽에는 지하 서고에서 가져온 계약서가 리본과 함께 감겨 있었다.에마가 창밖을 내려다봤다.이층이라 해도 바로 아래에 낮은 차양이 있었고, 그 옆으로 담쟁이 덩굴이 덮인 나무 격자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세레나는 어머니의 방에서 별채로 몰래 돌아올 때 몇 번이나 그 길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때는 몸이 가벼운 열두 살이었고, 지금은 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에마까지 함께였다.“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세레나가 창틀을 짚자 에마가 곧장 고개를 저었다.“아가씨께서 먼저 내려가시면 제가 미끄러졌을 때 잡아 주실 수 없잖아요.”“에마가 먼저 내려가면 제가 위에서 손을 받쳐야 합니다. 다친 손으로 창틀을 잡게 둘 수는 없어요.”“그럼 저는 방에 남겠습니다.”세레나가 창틀 위에 올렸던 발을 내렸다.에마는 다친 손을 가슴에 받치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함께 가겠다고 한 건 저예요. 그렇다고 아가씨 발목까지 잡겠다는 뜻은 아니에요.”“발목을 잡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같은 얼굴을 하고 계세요.”세레나는 대답 대신 창문 옆의 침대 시트를 바라봤다. 묶어 내리기에는 길이가 부족했고, 천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 아래 경비가 바로 올 것이다. 방을 둘러보던 시선이 약제함 안에 든 붕대 꾸러미에 닿았다.그녀는 약제함을 열어 사용하지 않은 긴 붕대 세 장을 꺼냈다.붕대를 겹쳐 매듭을 만들고 한쪽 끝을 침대 기둥 아래에 단단히 묶었다. 성인의 무게를 오래 견딜 물건은 아니었지만, 몸의 균형을 잡는 정도로는 충분했다.“에마가 먼저 내려가세요.”“아까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다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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