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는 독촉장의 마지막 문장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장녀 세레나 베일런과 드레이크 후작의 혼인이 성사될 경우, 잔여 채무 전액을 재조정한다.그 문장을 읽은 순간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분노가 아니라 날짜였다. 성전 치료사 선발 시험 접수 마감과 드레이크 후작이 참석하는 무도회가 같은 날이었다.헬레나가 우연히 그 일정을 겹치게 두었을 가능성은 낮았다. 무도회에서 혼담을 굳힌 뒤에는 세레나가 저택 밖으로 나갈 명분부터 사라질 터였다.그녀는 독촉장을 장부 사이에 넣고 서재 문을 닫았다. 복도 끝에서 다가오던 발소리는 마리엘의 시녀가 지나가는 소리였고, 늙은 서기 벤은 먼지를 털러 나온 사람처럼 허리를 굽힌 채 반대편 계단으로 사라졌다.세레나는 곧장 문을 잠그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이 숨길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보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움직이는 편이 안전했다.장부를 덮은 뒤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을 용도별로 정리했다. 전생의 사건을 기록한 장부, 드레이크 후작의 채무 문서, 성전 시험에 필요한 신분 증명 목록. 손이 할 일을 찾는 동안 호흡도 조금씩 제자리를 되찾았다.베일런 가문의 빚은 단순한 몰락의 결과가 아니었다.채무 독촉장에는 광산 지분이 담보로 잡혀 있었고, 채권을 사들인 상단들 사이에 루멘 성전의 대리 인장이 찍혀 있었다. 드레이크 후작은 마지막 단계에 등장한 사람이었다. 가문이 갚지 못할 만큼 빚을 키운 뒤, 혼인을 조건으로 채무를 조정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문제는 시작점이었다.베일런 가문은 오래전부터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전생에서 세레나가 기억하는 몰락은 지나치게 빨랐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광산 수익으로 영지의 곡물 부족을 메웠고, 제도에 작은 저택을 유지할 정도의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죽은 뒤 몇 해 사이 광산은 사고가 잇따랐고, 운송비와 복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아버지는 천재지변과 불운을 탓했다.헬레나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희
Huling Na-update : 2026-07-22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