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 성전의 기록 보관실에는 창문이 없었다.햇빛 대신 백휘석을 갈아 넣은 등잔이 천장마다 매달려 있었고,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서가 사이에는 오래된 양피지와 약품 냄새가 눅눅하게 엉겨 있었다. 치료사들의 출신과 서약, 파견지, 사망 기록까지 보관하는 장소였지만, 가장 안쪽의 철문 너머에는 일반 기록관조차 열람할 수 없는 봉인 문서가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그날 새벽, 일곱 해 동안 잠잠하던 봉인함 하나가 스스로 갈라졌다.나무가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봉인함 뚜껑을 두르고 있던 백휘석 가루가 안쪽에서부터 검게 변했고, 그 위에 찍혀 있던 태양 문양이 절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에 떨어졌다.당직 기록관은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손을 대지 않았다.백휘석 봉인은 열쇠로 여는 장치가 아니었다. 특정 이름이나 인장, 혈통과 연결된 문서가 성전의 공식 기록망에 다시 나타날 때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감찰 장치였다. 잘못 만지면 어떤 기록이 봉인을 깨웠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흔적이 사라질 수 있었다.기록관은 흰 장갑을 끼고 봉인함 아래의 표시를 확인했다.엘레노라 베일런.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세리스 베인.기록관의 안색이 굳었다.그는 당직 종을 울리지 않고, 책상 아래 숨겨진 검은 끈을 당겼다. 바깥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대신관의 개인 집무실에만 연결된 작은 방울이 세 번 울렸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기록 보관실에 들어왔다.루멘 성전의 대신관, 마티아스 로벤이었다.그는 동행한 사제들에게 철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한 뒤 혼자 봉인함 앞에 섰다.백발이 섞인 머리카락과 온화한 눈매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그를 늙고 자비로운 성직자로 여기기 쉬웠으나, 기록관은 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마티아스는 갈라진 태양 문양을 손수건으로 집어 들었다.“어떤 기록이 새로 만들어졌지?”“성 루치아 구호원에서 과거 봉사자 증명서 사본이 발급됐습니다.”기록관이 장부를 펼쳤다.“발급 대상은
Last Updated : 2026-07-27 Read more